동네에서 만난 새
이치니치 잇슈 지음, 전선영 옮김, 박진영 감수 / 도서출판 가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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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숲노래 책읽기 2022.11.28.

숲책 읽기 181


《동네에서 만난 새》

 이치니치 잇슈

 전선영 옮김

 가지

 2022.2.1.



  《동네에서 만난 새》(이치니치 잇슈/전선영 옮김, 가지, 2022)는 뜻있으리라 여겨 마을책집에서 장만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새바라기를 즐기는 마을책집에 나들이를 가던 여름에 장만했고,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읽으며 뭔가 알쏭하구나 싶었는데, 그래도 우리 집 아이들한테 건네었어요.


  큰아이나 작은아이나 이 책을 못마땅해 하더군요. 왜 이런 책을 읽으라고 건네느냐며 숲노래 씨를 핀잔합니다. 아이들한테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여러모로 아쉬운 대목이 있더라도, 시골이 아닌 서울(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새바라기를 헤아리는 이웃이 있다고 느낄 책으로 여긴다고 얘기했지만, 투덜투덜 성난 아이들을 달랠 수 없었습니다.


  이 책 《동네에서 만난 새》에 나오는 새는 다 똑같이 생겼습니다. 다 다른 새인데, 모든 새를 동글동글 ‘귀염이(캐릭터)’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 책은 새를 새라는 숨결이 아닌 사람 눈썰미로 따지거나 잽니다. 이 책은 새살림을 가만히 헤아리는 길이 아니라, 짝짓기에 너무 얽매여 다루고, 이 짝짓기도 그저 사람 눈썰미로 구경한 대목에서 그칩니다. 마지막으로 옮김말씨가 안 쉽습니다. 얼핏 보면 어린이도 읽을 만하구나 느낄 텐데, 정작 펼쳐서 읽다 보면, 일본 한자말이나 옮김말씨(번역체)가 너무 춤춥니다.


  65쪽에 적듯 “동박새 커플은 사람이 보기에도 좀 창피할 만큼”은 뭔 소리일까요? 동박새한테 창피한 글이지 싶습니다. 모든 새가 다 다르게 노래하는 줄 모르는 채 새노래를 들으려 했을까요? 69쪽 글도 너무 엉성합니다. 74쪽에서는 “단시간에 끝나는 새들의 짝짓기가 어떤 의미로는 합리적”이라 적는데, 그저 할 말을 잃었습니다. 93쪽에서는 “새들에게는 자연물이건 인공물이건 튼튼해서 잘 망가지지만 않으면 그만”이라 적는데, 그야말로 새를 얕보는 글입니다. 더구나 사람들이 온누리를 쓰레기판으로 망가뜨린 짓을 스리슬쩍 넘어가는 셈입니다.


  이리하여, 매우 안타깝습니다.


  마을에서만 새를 구경하지 않기를 바라요. 새가 살던 보금자리를 빼앗은 사람으로서, 오직 새를 새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부터 가다듬기를 바랍니다. 새바라기는 새를 바라보면서 사람이라는 숨결을 새롭게 가다듬는 길이 아닐는지요? 부디 서울(도시)을 떠나 숲으로 가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이처럼 자연을 관찰해서 날씨를 예측하는 일을 옛사람들은 ‘관천망기觀天望氣’라고 하여 다양하게 표현해 왔다. (57쪽)


새는 평소에는 스스로 자기 몸의 깃털을 가다듬지만 신뢰 관계가 있는 커플 사이에서는 서로의 깃털을 골라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상대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마음을 씀으로써 비로소 한 쌍으로 맺어진 인연이 진정으로 깊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는 해도 동박새 커플은 사람이 보기에도 좀 창피할 만큼 사이가 뜨겁다. (65쪽)


휘파람새에게는 사투리라고 할 만한 지역성도 확인되며, 그 소리를 잘 들어 보면 새들의 노랫소리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느껴진다. (69쪽)


많은 동물에게 짝짓기 시간이란 천적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므로 단시간에 끝나는 새들의 짝짓기가 어떤 의미로는 합리적일지 모른다. (74쪽)


도시 새들의 둥지를 보면 쓰레기투성이라서 가엾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새들에게는 자연물이건 인공물이건 튼튼해서 잘 망가지지만 않으면 그만일지 모른다. (9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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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11-28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아이들한테 비셨군요^^

숲노래 2022-11-29 03:46   좋아요 0 | URL
시골 아이들 눈썰미는 꾸밈없이 알려주거든요. ^^;;;
 
카카오 - 신들의 양식, 인간의 욕망 역사를 바꾼 물질 이야기 5
안드레아 더리 & 토마스 쉬퍼 지음, 조규희 옮김 / 자연과생태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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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숲노래 환경책 2022.11.14.

숲책 읽기 160


《카카오, 신들의 양식 인간의 욕망》

 안드레아 더리·토마스 쉬퍼

 조규희 옮김

 자연과생태

 2014.8.11.



  《카카오》(안드레아 더리·토마스 쉬퍼/조규희 옮김, 자연과생태, 2014)를 여러 해 앞서 읽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마시는 까맣고 달콤한 덩이나 물이 무엇이고 어떤 길을 거치는가를 수수하게 들려주는 꾸러미입니다. 까만 달콤이나 달콤물을 즐긴다면, 카카오라는 열매나 나무나 씨앗을 문득 눈여겨볼 만할 텐데, 뜻밖에 열매나 나무나 씨앗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드문 듯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겨레는 쌀밥을 늘 먹지만 막상 ‘벼·나락·쌀’을 찬찬히 짚는 책이 읽히지는 않는구나 싶고, 이 이야기를 쓰거나 그리거나 담는 사람도 드물어요. 어쩌면 ‘없다’고 해야 할 테지요. 보리나 서숙을 누가 이야기할까요. 팥이나 수수를 누가 쳐다볼까요. 씨앗 한 톨부터 비롯하는 모든 열매를 차근차근 짚으면서 마음으로 만나지 않고서는 풀밥(채식·비건)을 누린다고 말한다면 좀 창피한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풀밥을 먹느냐 고기밥을 먹느냐 그냥밥을 먹느냐 하고 가르기 앞서, 푸른별을 이루는 뭇숨결을 하나하나 마주하면서 스스로 살림짓기를 가다듬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풀밥을 먹으나 막상 풀꽃나무가 자라나는 들숲바다를 등지는 서울(도시)에서 돈을 벌기만 한다면, 무엇보다 스스로 왜 사람인가부터 잊기 쉽다고 느껴요.


  어느덧 우리나라는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 이 나라 지음터(공장)뿐 아니라 삽일(토목공사)을 하는 데에다가 논밭까지 들어와서 일합니다. 이웃일꾼이 이 나라를 떠나면 이 나라는 멈춥니다. 싸움터(군대)가 없어도 나라가 멈출 일이 없으나, 이웃일꾼이 멈추면 그야말로 나라가 끝장나요.


  카카오밭을 살피는 눈길은 너와 나 사이가 무엇인지를 바라보는 첫걸음입니다. 더디거나 작아도 됩니다. 첫걸음을 뗄 노릇입니다. 앞으로 이 나라 젊은이가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우면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스스로 꿈을 가꾸는 어른으로 살아갈 적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아주 늦었습니다만, 이제라도 제대로 바라볼 때입니다.


ㅅㄴㄹ


병충해에 강한 몇 가지 복제종으로 구성된 경작지는 몇 세대가 지나면 결국 새로운 전염병에 특히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53∼54쪽)


2009년 100그램 초콜릿 한 판 가격은 평균 69센트다 …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약 3센트다. 카카오 재배는 곧 가난한 삶을 의미한다. (79쪽)


카카오를 재배하고 수확하는 대다수 농민은 최종 산물인 초콜릿을 즐기지 못한다. 카카오 농민과 그 가족 대부분은 초콜릿 한 조각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많은 농민은 카카오를 가지고 정확히 무엇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81쪽)


오늘날 우리가 아는 유용식물 중 상당수는 중남미가 원산지다. 예를 들면 해바라기, 감자, 호박, 옥수수, 아보카도, 담배, 토마토, 콩, 카카오가 그렇다. (187쪽)


마야는 글을 돌에 새겼을 뿐 아니라 코덱스처럼 책에 적어 넣기도 했다. 무화과나무 껍질로 만든 몇 미터나 되는 긴 껍질종이에 매우 얇게 석회를 발라 글을 썼다. 폭이 좁은 이 두루마리 종이를 연속 용지처럼 접었고, 나무로 책 표지를 만들었다. 어떤 문건들은 재규어 가죽으로 표지를 만들었다. 마야 책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양이 엄청났으리라 추정된다. (20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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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과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계사
케이트 메스너 지음, 팰린 코치 그림, 김미선 옮김 / 책과함께어린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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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책읽기 2022.11.13.

인문책시렁 251


《세균과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계사》

 케이트 메스너 글

 팰린 코치 그림

 김미선 옮김

 책과함께어린이

 2022.6.10.



  《세균과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계사》(케이트 메스너·팰린 코치/김미선 옮김, 책과함께어린이, 2022)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닌 이웃나라 사람이 쓴 글이어서 책으로도 나오고 읽힐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아직 이 나라에서는 이 책에 적힌 줄거리만큼도 목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이런 목소리조차 ‘가짜뉴스’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지워버리려 하거든요.


  미리맞기(예방접종)를 다룬 꼭지를 보면 “천연두 예방접종으로 2퍼센트가 죽었다”고만 말할 뿐, ‘부작용은 얼마나 되는가’는 말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은 2/100요, 다치거나 앓거나 아이들한테 씨(유전자)로 이어간 사람도 수두룩했을 텐데, 이 대목은 짚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지난날에도 우리나라도 이웃나라도 “사망률을 낮추는 데에는 아주 큰 효과를 보았(58쪽)”다고 말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미리맞기를 하지 않을 적에 죽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도 따져야 할 텐데, 이 대목도 언제나 쉬쉬하게 마련이에요. 더구나 미리맞기를 할 적에 누가 죽거나 다치거나 앓아도 나라에서 값을 치러거나 잘못을 비는 일마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미리맞기’를 한다면서 나라에서 어마어마하게 돈을 퍼붓는데, 이런 데에 돈을 퍼붓지 말고, 모든 마을이 숲빛으로 푸르게 거듭나도록 돈을 쓸 적에, 비로소 아프거나 앓는 일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돌림앓이가 퍼졌다고 하는 지난 몇 해 사이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온누리 여러 나라에서 ‘미리맞기 탓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또렷이 안 밝힙니다. 미리맞기로 죽은 사람한테 잘못을 빌거나 값을 치른 나라는 얼마나 있을까요? 아니, 목숨값을 어떻게 치를 수 있을까요?


  드센 고뿔에 걸리더라도 느긋이 쉬고 밥을 한동안 끊고 고요히 마음을 다스리면 찬찬히 낫습니다. 쉬잖고 일하기에 쓰러집니다. 근심걱정을 달고 사니까 무너집니다. 알맞게 일할 수 있고, 집이며 마을이 숲으로 둘러싸인 터전이면서, 부릉부릉 매캐한 바람이 일지 않는 나라라면, 아프거나 앓는 사람은 사라질 만해요.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푸른별 어느 나라도 서울(도시)을 더 키울 뿐입니다. 부릉이를 줄이지 않아요. 들숲메를 밀어없애면서 잿더미(아파트)를 더 올리려 합니다.


  곰곰이 보면 ‘세균과 바이러스에 감염된’ 푸른별이 아닌 ‘허방에 빠진’ 사람들이지 싶습니다. 입가리개도 미리맞기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습니다. 참모습·참삶·참넋·참사랑·참길을 바라보려는 마음을 스스로 오롯이 일으킬 적에만, 누구나 스스로 지킬 수 있습니다. 허방다리 같은 뜬말은 바로 나라에서 퍼뜨립니다. 나라 이야기에 귀를 닫고서 우리 보금자리를 바라볼 때라야 이 푸른별이 아름답겠지요.


ㅅㄴㄹ


전염병에 관한 이러한 소문은 사실과 달라도 사람들에게 그다지 해롭지 않지만,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자신을 겁주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비난의 화살을 다른 이들에게 돌렸어요. (36쪽)


‘불편’과 ‘손해’는 사실 큰 문제였어요. 예방접종은 정말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거든요. 사람들이 천연두에 약하게 걸리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접종한 사람들 중 약 2퍼센트는 목숨을 잃고 말았답니다. 그럼에도 천연두에 걸린 사람들의 사망률을 낮추는 데에는 아주 큰 효과를 보았어요. (57∼58쪽)


독감에 걸린 사람은 대개 1∼2주 정도 앓다가 좋아져요. 하지만 몇몇은 더 심한 증상을 겪기도 해요. 세계 보건 기구는 해마다 약 10억 명이 독감에 걸리고 이 중에서 최대 65만 명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121쪽)


이렇게 다른 이들 탓으로 돌리는 전략은 비단 독감에만 해당하지 않아요. 어떤 나라에서 전염병이 창궐할 때, 국가 지도자들이 다른 나라에 화살을 돌리는 일은 여전히 흔하답니다.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버리려는 속셈이지요. (12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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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정원사 - 누구에게나 눈부신 날들을 위한 선물
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김나현 옮김 / 휴먼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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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숲노래 책읽기 2022.11.12.

인문책시렁 248


《충실한 정원사》

 클라리사 에스테스

 김나현 옮김

 휴먼하우스

 2017.11.15.



  《충실한 정원사》(클라리사 에스테스/김나현 옮김, 휴먼하우스, 2017)는 땅과 나무와 씨앗과 하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책이름에 붙은 ‘정원사’라는 이름인 분들은 ‘따로 손을 대어 심고 가꾸는 일’을 가리키기에, 이 책이 들려주려는 이야기하고는 좀 어긋납니다. 차라리 “뜰을 돌보다”나 “밭을 보듬다”쯤으로 수수하게 옮기는 길이 나았으리라 봅니다. “살뜰히 푸른손”이나 “알뜰히 풀빛손”이라는 숨결을 느끼도록 말결을 가다듬을 만합니다.


  이 나라에서 쓰는 ‘정원’이라는 한자말은 ‘매만져서 꾸며 놓은 꽃나무밭’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와 달리 이 책은 ‘매만지지 않고 땅심을 지켜보고 해바람비를 맞아들이는 길’을 다루지요.


  우리말 ‘돌보다·가꾸다’는 억지를 안 쓰는 길입니다. 숨결을 고이 헤아리면서 품는 길입니다. ‘매만지다·꾸미다’는 억지를 쓰는 길이에요. 숨결보다는 겉으로 보기에 좋도록 하는 길입니다.


  해를 읽고 바람을 맞고 비를 누릴 적에는 어디나 저절로 숲을 이룹니다. 사람이 손을 안 대기에 애벌레가 잎을 알맞게 갉고서 나비로 깨어나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잎만 푸를 적에는 애벌레로 살고, 바야흐로 꽃이 피려고 할 즈음 고치를 틀어 꿈누리로 간 뒤, 어느덧 꽃망울이 터져 둘레를 밝힐 무렵 날개가 눈부신 나비로 거듭나는 숲이요 들이며 터전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뜰을 돌보는 눈길이라면 이 얼거리를 기쁘게 맞이하리라 생각해요. 시골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공원·정원’이 아닌 ‘풀밭·풀숲’을 누리고 나누면서 푸른손가락으로 살림을 다독일 만합니다.


  나무는 해바람비를 먹기에 튼튼히 자라요. 사람도 해바람비를 머금기에 튼튼히 삽니다. 오늘 우리가 아이들한테 물려줄 이 터에, 해바람비가 고루 깃들면서 푸른들에 파란하늘로 넘실거리기를 바라요.


ㅅㄴㄹ


선생님이 있는 학교가 아니라, 들판의 학교에서 모든 것을 배웠단다. 그 누구도 이 전쟁이 커다란 매처럼 급습하여 마을 전체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릴 줄은 몰랐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지도 몰랐어. (40쪽)


“여기에 뭘 심을 거예요?” 내가 물었다. “아무것도 심지 않을 거란다.” 삼촌이 말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전에는 거칠어진 땅을 비옥하게 하기 위해 땅을 불태웠다. “왜 아무것도 안 심고 맨땅으로 두려는 거예요?” “아, 내 강아지야, 이건 초대장이란다.” (57쪽)


“가난한 사람이 나무도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굶주린 사람이 되는 거란다. 그런데 가난하지만 나무가 있다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가지 큰 부자가 되는 거지.” (58쪽)


“땅은 아주 인내심이 강하단다. 알겠니? 씨앗과 잡초, 나무와 꽃을 받아들이고, 비와 곡식의 낟알, 불을 받아들이지. 자신에게 오라고 초대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오는 걸 허락하기도 해. 완벽한 주인이지.” (59쪽)


#TheFaithfulGardener #ClarissaPEstes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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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이옥남 지음 / 양철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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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1.3.

인문책시렁 244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이옥남

 양철북

 2018.8.7.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이옥남, 양철북, 2018)을 읽었습니다. 1922년에 시골에서 나고자라서 시골사람으로 살아온 나날을 틈틈이 글로 남긴 할머니 삶길을 옮긴 책입니다. 무척 뜻있다고 여기지만 여러모로 아쉽기도 합니다. 이 책은 할머니 하루쓰기(일기)를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누는데, 할머니 하루쓰기를 뒤죽박죽으로 엮었습니다. 철에 따라 나누었다지만, 해도 날도 오락가락일 뿐 아니라, 꼭지마다 글이름을 새로 붙였는데 ㄱㄴㄷ으로 벌이지도 않았어요.


  왜 이렇게 해야 했을까요? 할머니가 오랜 나날 이녁 삶을 옮긴 하루쓰기는 그저 ‘해·날에 따라’ 옮기면 됩니다. 모두 시골살이를 담았고, 모두 아이를 그리는 마음을 담았고, 모두 숲빛을 헤아리고 읽는 나날을 담았어요. 처음 쓴 글부터 맨 나중에 쓴 글까지 차곡차곡 담으면 될 뿐입니다. 할머니가 걸어온 나날을 할머니 손끝으로 읽도록 엮어야 알맞습니다.


  하나 더 아쉬운데, 글씨가 너무 커요. ‘할머니가 읽기에 좋도록 큰글씨’로 하려면 따로 내서 드려야지요. 할머니가 읽을 책도 어린이가 읽을 책도 아닌, ‘할머니를 이웃으로 여기면서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읽을 책’이라면 구태여 큰글씨로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글씨를 줄여서 할머니 하루쓰기를 더 담아내어 보여줄 노릇입니다.


  그리고 책끝에 풀이말을 길게 안 적어도 돼요. 할머니가 적은 맺음말이면 넉넉합니다. 또한 책을 두툼종이(양장)로 여미었는데, 책이 무겁기까지 합니다. 할머니 하루쓰기를 넉넉히 담지 않은, 고작 224쪽짜리인데 왜 두툼종이까지 써서 책값을 올려야 할까요? 수수한 시골 할매가 투박하게 여민 글씨로 숲빛으로 들려주는 하루쓰기를 그야말로 수수하고 투박하면서 숲빛으로 엮어서 선보였다면, 할머니하고 새록새록 마음읽기를 펼 뿐 아니라, 서울 아닌 시골이라는 터전을 새롭게 바라보는 길잡이로 삼을 만했으리라 봅니다.


  시골 할머니가 남긴 애틋하고 알뜰한 하루쓰기를 살려내지 못 한 엮음새가 대단히 아쉬운 책입니다.


ㅅㄴㄹ


큰딸이 온다기에 줄려고 개울 건너가서 원추리를 되렸다. 칼로 되리는데 비둘기가 어찌나 슬피 우는지 괜히 내 마음이 처량해져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네. (2002.3.20./28쪽)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앞밭에 감자밭을 맸다. 풀이 재잔은기 어떻게 많이 올라오는지 매는기 더디다. 감자가 먼저 올라온 건 벌써 이파리가 너불너불하다. (2015.5.4.맑음./60쪽)


건너 밭에 깨 모종을 심었다. 어제 심다가 못 다 심어서 오늘도 가서 심었지. 심는데 새소리가 들리는 것이 별 새가 다 있다. 호호로 백쪽쪽 하고 버드낭그에 올라앉아서 우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겠는가 하고 아무리 찾아봐도 못 찾아서 결국은 못 보고 말았네. (2003.6.26.흐림/86쪽)


오늘은 벌써 투둑새가 운다. 날씨는 추운데 봄은 가차운 모양이다. 안 울든 새가 다 운다. (2009.2.20.맑음/19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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