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자존감 -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서
댄 뉴하스 지음, 안진희 옮김 / 양철북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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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28



아이와 나무를 심는 어버이

― 부모의 자존감,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서

 댄 뉴하스 글

 안진희 옮김

 양철북 펴냄, 2013.9.9.



  요즈음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 나무한테 인사합니다. 앞마당과 뒤꼍에 있는 나무한테 찾아가서, 나무 앞에 섭니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서서 지내니, 내가 나무한테 찾아갑니다. 나무 앞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나무 둘레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나뭇가지를 살살 쓰다듬는다든지, 겨울을 앞두고 찬찬히 돋는 겨울눈을 어루만집니다.


  우리 집 나무가 있어 인사할 수 있으니 무척 기쁩니다. 우리가 돌보는 나무가 있을 뿐 아니라, 그늘을 누리는 나무요, 열매를 얻는 나무이니, 더없이 반갑습니다. 우리 집 나무는 누구보다 우리한테 맑고 푸른 숨결을 베풉니다.


  저녁에 아이들을 재우기 앞서 마당과 뒤꼍에서 나무한테 인사하다가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 적에 ‘우리 집 나무’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처음 태어난 뒤에도, 열 살이 지난 뒤에도, 스무 살을 넘고, 서른 살이 흐르도록 ‘우리 집 나무’를 누리지 못했어요.



.. 건강하지 않은 통제는 평생토록 손실을 남긴다. 이러한 양육 방식은 아이를 우울, 불안, 자기 비하, 중독, 자기 파괴적 행동, 그리고 스트레스와 관련된 건강 문제 등에 시달릴 위험에 빠뜨린다 … 몇 대에 걸쳐 내려온 통제의 패턴에 대해 탐색하는 일은 절대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 전가를 멈출 수 있는 첫걸음이다. 당신은 가정 안의 건강하지 않은 통제의 패턴들을 살펴봄으로 이 패턴들을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다. 부모는 할 수 없었던 혹은 하고 싶지 않았던 중대한 선택을 바로 당신이 내리는 것이다 … 부모와 달리 당신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당신은 상처를 무시하거나 숨는 대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  (8, 19, 20쪽)



  나무가 없는 삶은 싱그럽지 않습니다. 나무가 없는 삶은 즐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넋이 깃든 몸뚱이는 늘 숨을 쉬는데, 우리 몸뚱이가 숨을 쉬려면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나무가 없으면 어느 누구도 숨을 못 쉽니다. 숨을 못 쉬면 몸뚱이는 목숨을 잃고, 우리 넋은 갈 곳이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든 도시에서 살든 나무를 누려야 합니다. 나무를 누리지 못한다면 삶을 못 누립니다. 나무를 누릴 때에 비로소 삶이고, 나무와 함께 있을 적에 바야흐로 사랑이 깨어납니다.


  그러면, 내 어버이는 왜 나한테 ‘우리 집 나무’를 베풀지 못했을까요. 내 어버이는 왜 나한테 ‘우리 집 나무’를 누리도록 이끌지 못했을까요.



.. 완벽주의 가정의 가장 유해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외모 관리와 수행 능력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감정 또한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슬픔, 의심, 비탄, 분노, 두려움과 같은 완벽하지 않은 감정은 허용되지 않는다 … 사회·정치 집단 혹은 회사에서 유명한 가정 또한 광신도적 성향을 띤다. 유명한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하거나 사회·정치적으로 지위가 높아질 수 있는 부모의 기회에 누를 끼치는 일은 큰 죄로 여긴다 ..  (63, 74쪽)



  제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나무가 없으면 목숨이 없습니다. 제아무리 값진 옷을 입거나 넓은 집에 깃들어도 나무가 없으면 목숨이 없습니다. 제아무리 온갖 학교를 나왔거나 갖은 책을 읽었어도 나무가 없으면 목숨이 없습니다.


  사람 몸뚱이는 바람과 볕과 빗물, 이 세 가지를 반드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구별은 바람과 해와 물, 이 세 가지가 밑바탕이 되어 모든 물질이 태어납니다. 우리가 먹는 밥은 무엇일까요? 바로 바람과 해와 물이 어우러진 먹을거리입니다. 쌀 한 톨이든 고기 한 점이든 모두 바람과 해와 물로 이루어집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려는 어버이라면, 우리 몸을 이루는 바탕과 우리가 먹는 밥을 이루는 바탕을 잘 헤아려야지 싶어요. 몸을 살찌우면서 마음을 가꾸는 길을 알아야 하고, 몸을 다스리면서 넋을 북돋우는 길을 깨달아야지 싶어요.


  그래서 나는 어릴 적부터 나무를 그렸지 싶어요. 나무를 그리워 하고, 나무를 바라며, 나무와 함께 살 집을 마음으로 품었어요.



.. 우리는 언어적 학대와 정서적 폭압의 힘을 가볍게 여기기도 한다. 아마 눈으로 볼 수 있는 멍 같은 것이 남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매질이 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말이 우리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린다 … 통제적 부모들은 그 자신 또한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겪은 경우가 많다 … 트라우마로부터 최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사건과 그때 느꼈던 감정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안전한 환경이 필요하다 … 통제적 부모가 된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로부터 회복하는 여정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  (106, 175, 177, 178쪽)



  댄 뉴하스 님이 쓴 《부모의 자존감,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서》(양철북,2013)라는 책을 읽습니다. 어버이가 물려준 생채기를 고스란히 짊어지는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생채기를 짊어진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 뒤, 이녁 아이를 새롭게 낳을 적에 다시금 생채기를 물려줄 생각인지, 아니면 이 생채기를 이제 끊고 사랑을 물려줄 생각인지 묻는 이야기책입니다.


  자,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이한테 생채기를 입히겠습니까, 아니면 아이를 사랑하겠습니까.


  이 말은, 남이 나를 괴롭히거나 들볶거나 아프게 할 적에도 똑같이 살필 수 있어요. 남이 나를 괴롭혔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를 괴롭힌 그이를 죽여야 할까요? 남이 나를 들볶았으면 나는 어찌 해야 할까요? 나를 들볶은 그 녀석을 족쳐야 할까요? 남이 나를 아프게 했으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요? 나를 아프게 한 그놈을 두들겨패야 할까요?



.. 잘못된 감정이란 없다. 감정은 저절로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통제할 수는 있어도 어떤 감정을 느낄지 통제할 수는 없다. 당신이 통제를 받으며 자랐다면, 감정에 대한 의무 사항을 들으며 자랐을 것이다. 이제 그 의무 사항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 용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치유를 시작하게 도와준 역할을 한 ‘상처 입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놓아 버리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용서는 자신이 어떻게 상처를 입었고 어떠한 피해를 받았는지에 대한 고통스러운 인식을 버리는 느낌을 줄 수 있다 …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기 바란다 ..  (230, 259, 264쪽)



  나는 어버이한테서 나무를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퍽 오랫동안 이 대목을 아예 잊은 채 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내 가슴에 이 이야기가 흘렀어요. 이리하여 나는 마흔 살을 앞두고 ‘우리 집 나무’를 비로소 누릴 수 있었고, 시골마을 우리 보금자리에서 우리 나무를 보듬으면서 하루를 즐길 수 있습니다. 서른 해 남짓 자란 제법 우람한 ‘우리 집 나무’도 있고, 아이들과 함께 심은 ‘우리 집 나무’도 있습니다. 모두 사랑스럽고, 하나같이 애틋합니다. 앞으로 이 나무는 우리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이녁 아이들한테 새롭게 물려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려주고 또 물려주면서, 물려받고 또 물려받으면서, 나무가 크고 사람이 클 테지요. 나무와 함께 보금자리는 한결 푸르게 우거질 테고, 나무는 차츰 가지를 키워 온 마을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베풀리라 생각합니다.



.. 당신은 몇 세대에 걸친 문제 때문에 고통 받았을지 모르지만 이제 당신이 게임의 말을 멈추어야 할 때다. 통제의 고통 속에서 연마된 감정들을 이용하라. 당신은 정보도 동맹군도 없는 가혹한 통제 아래에서 세뇌를 당하며 자랐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이 사실은 당신이 어떠한 역경에도 맞설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324쪽)



  내 어버이가 나한테 무엇을 물려주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곱게 돌보면서 예쁘게 키워, 우리 아이들한테 새롭게 물려주면 됩니다.


  내가 이 땅에 서서 하루하루 맞이할 수 있는 몸뚱이야말로 사랑입니다. 오늘 하루 웃고 노래할 수 있는 몸뚱이가 바로 사랑입니다. 이밖에 다른 어떤 사랑이 더 있어야 할까요? 아름답게 태어난 내 몸을 아끼고, 아름다이 맞이하는 새 하루를 품으며, 아름답게 얼싸안을 새로운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습니다.


  나는 아이와 함께 나무를 심는 어버이로 살아갈 생각입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나무 심는 어버이’로 곁에 있을 생각입니다. 나를 살리고 살찌우는 길에는 언제나 나무가 있습니다. 4347.1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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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폴리노의 모험 비룡소 클래식 20
잔니 로다리 지음, 이현경 옮김, 막심 미트로파노프 그림 / 비룡소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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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63


 

아이들이 모험을 하는 곳

― 치폴리노의 모험

 잔니 로다리 글

 막심 미트로파노프 그림

 이현경 옮김

 비룡소 펴냄, 2007.4.30.



  잔니 로다니 님이 쓴 어린이문학 《치폴리노의 모험》(비룡소,2007)을 읽습니다. ‘치폴리노’는 양파입니다. 양파는 모험을 떠납니다. 양파가 모험을 떠나는 까닭은 아버지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요, 멀리 끌려간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파 치폴리노는 멀디먼 길을 나섭니다. 어린 양파 치폴리노는 모험길에 나서면서 수많은 이웃과 동무를 사귑니다. 이웃 가운데에는 바보스러운 이가 있고 슬기로운 이가 있습니다. 동무 가운데에는 엉뚱한 이가 있고 멋진 이가 있습니다. 어린 양파 치폴리노는 모든 이웃과 동무를 눈여겨봅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하면서 씩씩하게 나아갑니다.


  치폴리노는 어떻게 이처럼 사랑스러우면서 씩씩할까요? 네, 치폴리노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스러우면서 씩씩합니다. 두 어버이한테서 피를 물려받았으니 치폴리노도 사랑스러우면서 씩씩합니다.



.. 한번은 그 지방을 다스리는 레몬 영주가 치폴리노가 사는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어요. 궁정의 높은 관리들은 몹시 걱정했지요. “가난한 사람들의 냄새를 맡게 되면, 영주님께서 뭐라고 하실까요?” 시종장이 조언했어요. “가만한 사람들에게 향수를 뿌리면 될 겁니다.” 그래서 레몬 병사 열두 명이 마을로 파견되어, 냄새가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향수를 뿌리게 되었어요 … “그럼 그 사람들이 무슨 나쁜 짓을 했는데요?”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단다. 나쁜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옥에 들어온 거야. 레몬 영주는 착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아.” … “저는 착한 시민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감옥에 갇히지는 않을 거예요. 뿐만 아니라, 나중에 이곳에 와서 여기 있는 사람 모두를 자유롭게 해 줄 거예요.” ..  (8, 15쪽)



  우리는 누구나 아이한테 우리 숨결을 물려줍니다. 으레 골을 내는 어버이는 으레 골을 내는 아이를 낳습니다. 언제나 노래하는 어버이는 언제나 노래하는 아이를 낳습니다. 기쁘게 춤출 줄 아는 어버이는 기쁘게 춤출 줄 아는 아이를 낳아요. 예쁘게 웃을 줄 아는 어버이는 예쁘게 웃을 줄 아는 아이를 낳으며, 개구지게 뛰놀며 자란 어버이는 개구지게 뛰놀며 자라는 아이를 낳지요.


  그러니까, 아이가 아름답게 자라기를 바라면, 어버이 스스로 아름답게 살면 됩니다. 아이가 돈을 많이 벌기를 바란다면, 어버이 스스로 돈을 많이 벌면 됩니다.


  자, 이제 우리 스스로 물어 볼 때입니다.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많이 벌어들일 돈이란 무엇인가요?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울까요? 돈은 어떻게 해야 많이 벌 수 있는가요?



.. “너는 어디서 나온 거냐? 왜 일을 하지 않는 거지?” “난 일을 하지 않아요. 공부를 하고 있지요.” 치폴리노가 말했어요. “뭘 공부하는데? 책은 어디 있지?” “나리, 전 악당들을 공부하고 있답니다.” … 치폴리노는 친구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런 착한 마음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  (35, 121쪽)



  마루문에 커튼을 드리우니, 두 아이가 커튼 뒤로 몸을 숨깁니다. 먼저 작은아이가 숨고, 다음으로 큰아이가 숨습니다. 두 아이는 커튼놀이를 합니다. 마당에 이불을 널면, 두 아이는 이불 사이로 파고들어 놉니다. 발만 살짝 나오면서 이불놀이를 합니다. 머리와 몸을 숨기면 저희가 마치 안 보이기라도 하는 줄 여기는데, 이불 사이로 파고든 녀석들이 바깥을 못 볼 뿐, 바깥에서는 녀석들을 훤히 바라봅니다.


  여름 내내 아이들은 평상 밑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놀이를 합니다. 일곱 살 어린이는 평상 밑에 들어가기 빠듯하지만, 씩씩하게 들어가서 숨었다가 나옵니다. 네 살 어린이는 평상 밑으로 들어가기에도 수월하고 나오기에도 수월합니다. 이 아이들은 땅바닥을 기면서 옷과 머리카락이 흙투성이가 되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한테는 무엇보다 놀이가 즐겁습니다. 놀이에 온마음을 쏟습니다. 놀이를 즐기면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집 아이들이 노는 꼴은 내가 어릴 적에 놀던 꼴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내가 어릴 적에 놀던 모습입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개구지다고 느끼면 내가 어릴 적에 개구졌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을 마주하며 사랑스럽다고 느끼면 내가 어릴 적에 사랑스러웠다는 뜻입니다.



.. 포도모로 기사가 눈을 크게 뜨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에게는 마음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눈물을 흘려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리고 양파 껍질을 벗겨 본 일도 없었지요 … “오,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만약 감옥이 비게 되면, 드디어 나도 시골로 갈 수 있게 될 테니까.”  ..  (38, 270쪽)



  《치폴리노의 모험》에 나오는 치폴리노는 모든 이웃과 동무를 아끼고 싶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웃과 동무를 아낄 수 있는 길로 나아갑니다. 치폴리노가 ‘나쁜 놈은 무찔러 없애야지!’ 하고 생각했다면 참말 이대로 나아갔으리라 느껴요. 그렇지요.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나아갑니다. 못 이룰 꿈은 없어요. 생각을 하지 않을 때에만 못 이룰 뿐입니다. 생각을 하는 꿈은 언제나 이루어요. 생각으로 짓는 꿈이기에 언제나 이룰 수 있어요.


  모험에 나서는 기운은 어디에서 샘솟을까요? 바로 나한테서 샘솟습니다. 아버지가 주지 않고, 어머니가 주지 않습니다. 힘센 우두머리가 나한테 기운을 주지 않아요. 돈 많은 장사꾼이 나한테 기운을 주지 않아요. 오직 내가 나한테 주는 기운입니다.


  착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참답게 삶을 가꾸고 싶은 마음도, 곱게 어깨동무하고 싶은 마음도, 바로 내가 나한테 주는 기운입니다.



.. 영주와 백작 부인들은 추방당했어요! 영주가 추방당한 거야 당연하지만 백작 부인들은 왜 떠난 것일까요? 백작 부인들을 해치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부인들은 스스로 망명의 길을 택했어요. 그게 부인들에게 더 나았기 때문이에요 … 성에 웬 학교 수위냐고요? 이상할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되었어요. 성은 이제 성이 아니라 놀이 집이 되었어요 ..  (328, 330쪽)



  아이들이 모험을 하는 곳은, 바로 아이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아이들은 손바닥을 살그마니 펼쳐서 거친 물살을 헤치는 뱃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두 눈을 살그마니 감고는 하늘을 훨훨 날면서 구름과 벗삼을 수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씨앗을 심어 나무를 키웁니다. 우리 어른들은 씨앗을 뿌려 남새를 얻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나무를 잘라 집을 짓고 책상과 걸상을 짭니다. 우리 어른들은 까치밥을 남기면서 열매를 따고, 풀벌레 노랫소리와 멧새 노랫소리를 늘 들으면서 이야기를 새로 짓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삶이기에, 멀리 길을 나서도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즐겁게 놀고 모험을 하기에, 멀리 나들이를 다녀도 신나게 놀면서 모험을 누립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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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힐에서 온 편지 - 발도르프 아줌마의 삶과 교육 이야기
김은영 지음 / 지와사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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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25



편지를 주고받고 싶은 이웃

― 캠프힐에서 온 편지

 김은영 글

 知와 사랑 펴냄, 2008.12.6.



  아이가 어버이한테 편지를 씁니다. 어버이도 아이한테 편지를 씁니다. 할 말이 있으면 얼굴을 보며 말해도 되지만, 종이에 살며시 글을 적어 넌지시 건네도 됩니다. 우리가 서로 나누는 이야기는 얼굴을 마주볼 때에만 주고받지 않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도 마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때로는 종이에 단출하게 글 몇 줄 적어 주고받습니다.


  마음을 나누기에 이야기입니다. 마음이 없이 덧없는 말을 잔뜩 늘어놓는다면, 서로 얼굴을 마주하더라도 거북합니다. 아니, 괴롭지요. 마음이 있기에 아무리 멀리 떨어진 데에서도 아주 가깝거나 살가운 이웃으로 지낼 수 있어요.



.. 장애가 심하면 일반교사들이 장애 아이들의 통합을 꺼린다며 하소연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특수학교 내에서도 장애가 심하다는 이유로 일부 교사들은 서로 심한 장애 아이들을 맡지 않으려 합니다 … 몬테소리든 발도르프든 아이들이 중심에 있고, 우리 아이들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하게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그들과 배움의 공간에서, 놀이의 공간에서 만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30, 73쪽)



  편지를 주고받고 싶은 이웃이란, 서로 아름다이 사귀고 싶은 사이입니다. 편지를 주고받는 이웃이란, 서로 사랑을 나누는 사이입니다. 그러니까, 편지는 아무한테나 쓰지 않습니다. 마음을 담아 띄우는 편지는 아무한테나 쓸 수 없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자라는 사랑을 씨앗 한 톨로 여미어 담을 때에 편지입니다. 내 편지가 살랑살랑 날아서 닿으면, 이 편지에 깃든 씨앗은 천천히 뿌리를 내려 싹을 틔웁니다.


  편지쓰기뿐 아니라,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도 씨앗심기와 같습니다. 아이를 가르치거나 이끄는 삶도 씨앗심기와 같아요.


  아이는 어버이나 둘레 어른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는 어버이나 둘레 어른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제 가슴에 살포시 담습니다. 가슴으로 씨앗을 키우고, 알뜰살뜰 씨앗을 돌보아, 마침내 푸르며 곱고 싱그러운 꽃을 피웁니다.



.. (아이는) 한국에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몇 번의 한국행에서 많이 실망하고 돌아왔던 것 같습니다. 방학이라 한 번씩 나가면 친구들은 학원이다 보충학습이다 해서 방학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보는 것도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친한 친구가 이곳에 와서 우리 가족과 함께 프랑스 여행을 갔는데, 그 친구는 과외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그곳까지 들고 와 호텔에서 문제풀이를 하는 것을 보고는 끔찍했던 모양입니다 … 우리 나라의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들이 이러한 생각(슈타이너 인지학)을 염두에 두고 매일 아침 아이들을 만난다면, 시험성적이 좋지 않다고 벌로 물을 먹이고, 학부모로부터 돈과 향응을 받고 그 대가로 내신을 높여주는 등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아이들의 배울 권리와 가르칠 권리를 담보로 거래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  (102, 219쪽)



  김은영 님이 쓴 《캠프힐에서 온 편지》(知와 사랑,2008)를 읽습니다. 이 책은 김은영 님이 ‘캠프힐’이라고 하는 마을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삶을 배우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교육이론’을 알리거나 보여주려는 책이 아닙니다. ‘교육이론’이 아니라 ‘함께 어깨동무를 하는 삶’을 몸소 누리면서 배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교육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교과서나 교재로 학습진도를 나가는 일은 교육이 아닙니다. 시험성적에 따라 높은학교로 보내는 일은 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교육이란, 어른과 아이가 서로 배우면서 가르치는 삶입니다. 어른과 아이가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아름다운 삶을 일구는 나날이 교육입니다.



.. 캠프힐의 가족 공동체, 즉 하우스는 흔히 생각하는 피로 연결된 가족과는 다르지만, 이들은 ‘정신’으로 연결된 가족이 되는 셈이지요 … 그렇구나. 이곳에서 돈이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구나 싶더군요 … 프로그램도 없이 마치 가족이 여행을 온 것 같은 그런 학급여행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학교 현실에서는 상상도 못한, 계획이나 준비가 없는 그런 여행이었지요 ..  (135, 143, 243쪽)



  사회를 알게 이끄는 일은 교육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이한테 사회를 가르치거나 보여줄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사회’가 아닌 ‘마을’을 보고 느끼면서 알면 됩니다. 아이들은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예술’이 아니라, 사랑을 배우고 느끼면서 즐길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운 삶으로 깨어나서 언제나 기쁘게 웃고 노래하는 하루를 누릴 수 있으면 됩니다.


  날마다 새 하루를 맞이할 수 있어야 즐겁게 놉니다. 언제나 새 하루를 맞이할 수 있어야 기쁘게 일합니다.


  오늘이 새 하루가 아니라면, 누구나 지겹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새 하루가 아니라 ‘똑같은 굴레’라 한다면 ‘지겨운 돈벌이’가 됩니다.


  아이들은 ‘지겨운 돈벌이에 얽매이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아닌, 스스로 삶을 짓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을 심고 가꾸면서 아끼는 따사로운 숨결이 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경쟁이라는 구조를 심지어는 ‘선의의 경쟁’이라는 이름으로까지 미화시키며 경쟁 사회, 경쟁 교육, 모든 것을 경쟁의 논리로 이야기합니다. 왜 죽는 것은 경쟁적으로 죽지 않는지, 우습죠 … 경쟁 논리와 잣대로 인간을 설명한다면, 아마 인간이라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 발도르프 교육이 그러한 승자와 패자의 논리를 위해서 매진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매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한국은) 거리에서 노는 아이들이 사라지고 사설학원에 갇혀 마치 우리에서 사육되는 동물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아이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 걱정이 앞섭니다 ..  (252∼253, 258쪽)



  우리는 언제나 ‘아이’를 바라봅니다. 이 아이는 그저 ‘아이’입니다. ‘부자 아이’나 ‘가난한 아이’가 아닌, 그냥 ‘아이’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아이는 ‘비장애 아이’도 ‘장애 아이’도 아닌, 그냥 ‘아이’예요.


  사랑을 받을 아이입니다. 사랑을 배워 사랑을 꽃으로 피울 아이입니다.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웃을 아이입니다. 신나게 뛰놀면서 온몸이 튼튼하게 자라야 할 아이입니다.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면서 이웃과 동무하고 기쁘게 어깨를 겯을 아이입니다.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뛰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교육을 받거나 입시에 찌들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깨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부터 깨어나야 하고, 둘레 어른들 모두 눈을 떠야 합니다.


  아이가 살 만하지 않은 곳은 어른도 살 만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뛰놀지 못하는 곳은 어른도 일할 만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아름답게 자라기 힘든 곳이라면 어른도 사랑스레 삶을 꾸리기 힘든 곳입니다.



..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고는 자신의 정신 세계를 성숙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기호와 고정관념만 고착되어 갈 뿐이지요. 특히 나이 들수록 그 증상은 더욱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새롭게 보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278쪽)



  아이들은 앓으면서 한결 튼튼하게 자랍니다. 어른들도 앓으면서 더욱 씩씩하게 자랍니다. 아이만 자라지 않아요. 어른도 자랍니다. 키나 몸은 더 자라지 않을 수 있지만, 마음은 늘 새롭게 자라야 비로소 ‘참 어른’입니다. 마음이 자라지 않고 고인다면 어른답지 않습니다. 마음과 생각과 사랑이 날마다 새롭게 자랄 때에 비로소 어른이요,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마주하고 따사롭게 보살필 수 있을 때에 아이도 싱그러이 웃으면서 자랍니다.


  삶을 배우고, 삶을 가르칩니다.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가르칩니다. 꿈을 배우고, 꿈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교육’이라는 이름을 내걸며 무언가 하려 한다면, 삶과 사랑과 꿈이 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지어야 합니다. 4347.10.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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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선장과 은하계 스파이 시공주니어 문고 1단계 9
제인 욜런 지음, 브루스 데근 그림, 박향주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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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71


 

지구별과 이웃 별

― 토드 선장과 은하계 스파이

 제인 욜런 글

 브루스 데근 그림

 박향주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1998.12.24.



  지구는 별입니다. 지구는 너른 누리에 있는 수많은 별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 몸을 너른 누리로 친다면, 지구는 손톱 끄트머리라든지 머리카락 한 올을 살짝 끊은 도막쯤 될 만합니다.


  지구에서만 생각한다면, 지구에 있는 어느 대륙에서만 생각한다면, 지구에 있는 몇몇 대륙에 있는 어느 나라에서만 생각한다면, 지구에 있는 몇몇 대륙 가운데 어느 나라에서도 작은 도시나 시골에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주 좁은 눈으로 둘레를 바라보는 셈입니다. 지구별은 아주 조그마한 마을이요, 지구와 같은 이웃 별이 너른 누리에 수없이 많습니다.



.. 탐사선은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애기미나리아재비꽃이 만발한 들판에 내려앉았습니다. 꿀벌이 윙윙거리고 새들이 즐겁게 지저귑니다. 참 아름다운 별입니다. 대원들은 탐사선에서 내려 주변을 거닐며 향기로운 공기를 들이마셨습니다 ..  (28쪽)



  지구가 아름다운 별이 되려면, 지구에서 사는 사람들 스스로 아름답게 삶을 가꾸어야 합니다. 자꾸 전쟁무기를 만들면서 서로 해코지를 하거나 괴롭히거나 들볶는다면, 지구별은 아름다움하고는 등집니다. 작은 지구별에 있는 다 다른 이웃과 동무를 서로 살뜰히 마주하면서 예쁜 이웃으로 지내지 않는다면, 지구별이 앞으로 갈 길은 쓸쓸한 무덤이나 잿더미이지 싶어요.


  평화를 지키려면 군대가 아닌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즐겁게 살려면 경제개발이 아닌 즐거운 삶이 있어야 합니다. 배고픈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 없으려면 돈이 아닌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평화가 아닌 군대가 있기에 자꾸 전쟁이 터져요. 즐거운 삶이 아닌 경제개발이 있기에 사람들이 서로 다투거나 겨루면서 미움과 따돌림이 생겨요. 사랑이 아닌 돈이 있기에 어깨동무를 잊으면서 혼자 밥그릇 움켜쥐려는 못난 짓이 불거져요.



.. “형! 나야. 내가 바로 변장술의 명수, 팔짝이라고. 다른 놈들은 모두 가짜야. 형의 우주선을 빼앗고 기밀을 훔쳐 내려는 나쁜 스파이들이야.” 다섯 마리의 괴물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어요 ..  (40쪽)



  제인 욜런 님이 글을 쓰고 브루스 데근 님이 그림을 그린 《토드 선장과 은하계 스파이》(시공주니어,1998)를 읽습니다. ‘두꺼비’인 토드 선장이 여러 별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사촌 동생 두꺼비’를 찾으러 다녀오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여러 별을 다니던 토드 선장과 벗님들은 낯선 별에 즐겁게 찾아가고, 낯설지만 아름다운 별을 기쁘게 살핍니다. 낯설지만 아름다운 별에 내려앉아 저마다 맡은 일을 하는데, 포근하면서 부드럽게 일을 맺고 끊습니다.



.. “잠깐! 한마디만 할게요. 내가 형과 똑같이 잘생겨 보인다는 것은 나야말로 변장술의 명수라는 증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팔짝이 요원이 말했어요 ..  (63쪽)



  지구별 사람들이 이웃 여러 별을 생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구별에 있는 이 나라 사람들이 이웃 여러 나라를 헤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가 우리 이웃인가요. 나는 누구한테 이웃인가요. 우리 마음에는 어떤 사랑을 심을 때에 아름답고, 네 마음과 내 마음은 어떻게 만날 때에 서로 환하게 웃으면서 노래할 만한가요. 우리 어른들부터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고, 사랑이라는 나무를 돌보며, 사랑이라는 열매를 즐길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0.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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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리 보리피리 이야기 3
박선미 글, 이혜란 그림 / 보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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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69


 

멧골짝 조그마한 나리꽃은

― 산나리

 박선미 글

 이혜란 그림

 보리 펴냄, 2007.10.20.



  시외버스를 달려 시골을 벗어나면 창밖으로 새삼스러울 것 없는 모습이 죽 이어집니다. 시골을 벗어나는 시외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시골에서 멀어질수록 숲이나 나무가 줄어듭니다. 도시와 가까울수록 숲이며 나무가 거의 사라집니다. 도시로 접어든 시외버스는 숲도 나무도 도무지 없는 아스팔트길을 달립니다.


  시외버스를 달려 도시를 벗어나면 창밖으로 새로운 모습이 죽 펼쳐집니다. 도시를 벗어나는 시외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이 숲과 저 골짜기 사이를 누빕니다. 비록 이 고속도로가 숲과 멧골과 냇물을 깎고 밀어서 지었어도, 도시를 벗어나서 시골로 돌아가는 길은 포근합니다.



.. 봄이 되었어. 매화가 지고 나면 집 뒷마당이나 밭머리에 한 그루씩 서 있는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동네를 환하게 밝혀 줘 … 유난히 검고 삐죽삐죽 모난 돌이 많은 애장골. 야야는 그 시커먼 돌 틈으로 쏘옥 싹을 내민 산나리를 캐다가 집 안마당에 심어 두고 싶어 해마다 속을 끓였어 ..  (4, 12쪽)



  개화기나 식민지라고 하던 때,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와 상업주의는 이 땅에 온갖 철길과 찻길을 닦았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와 상업주의는 한국에서 나는 모든 것을 일본으로 빼앗으려고 철길과 찻길을 닦았습니다.


  오늘날 경제개발 한국에서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와 철길과 하늘길을 끝없이 다시 놓고 새로 놓으며 더 놓습니다. 도시와 도시가 더 커지기를 바라는 뜻이며, 시골은 차츰 작아지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시골이 작아져야 도시가 커지니까요. 시골 들과 숲을 도시가 잡아먹어야 도시가 커지니까요.


  모든 찻길과 철길과 하늘길은 오직 도시와 도시를 이을 뜻입니다. 시골과 시골을 이으려고 찻길이나 철길이나 하늘길을 놓는 일은 없습니다. 시골과 시골을 잇는 길을 놓는다면, 도시에서 관광이나 여행을 온 사람들이 다니기 좋도록 하려는 뜻입니다.



.. 애장골 옆으로 참빗나무가 더러 자라고 있었어. 참빗나무에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날 것같이 반짝거리는 새 잎이 돋아나면, 동네 사람들은 그 홀잎 나물을 훑으러 가 ..  (36쪽)



  박선미 님이 글을 쓰고 이혜란 님이 그림을 넣은 《산나리꽃》(보리,2007)을 시외버스를 달리는 길에 읽습니다. 고흥을 벗어나 보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읽습니다. 박선미 님은 이녁이 어릴 적에 그토록 캐서 장독 언저리에 심고팠던 산나리꽃과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야기 끝을 좀 어영부영 흐릿흐릿 맺습니다. 마지막 줄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무언가 더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가 있을 텐데, 알맹이를 빠뜨린 듯합니다. 깊은 멧골에서 자라는 나리꽃과 얽힌 이야기이든, 박선미 님이 어릴 적에 놀렸던 동무와 얽힌 이야기이든, 박선미 님과 동무들이 자라던 시골마을과 얽힌 이야기이든, 끝에서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가 하나 빠집니다.


  그림에서도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림을 보면 열 살 남짓 조그마한 가시내가 어린 동생을 포대기로 업은 모습이 나오는데, 영 잘못 그렸습니다. 포대기가 허리 아래에서 엉덩이에 느슨하게 걸쳐졌고, 갓난쟁이는 어설프게 가시내 등판에 붙습니다. 포대기가 저렇게 느슨하다면 등에 업힌 아기는 머리가 뒤로 폭 꺾여요. 게다가 포대기에서 떨어집니다. 포대기로 아기를 업으려면 바짝 조입니다. 포대기가 느슨히 풀리면 이내 끈을 단단히 조이지요.



.. 야야는 그걸 보지도 듣지도 못했으면서 지나가는 그 아이 등에다 대고 ‘엣취 뽕’이라고 놀려댔어. 그런데 순복이는 한 번도 그게 아니라고,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는 적도 없어.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푹 숙이고 쫓기듯이 지나가기만 하는 거야 ..  (44쪽)



  올여름, 나는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골짝마실을 자주 다녔습니다. 자전거를 몰고 가파른 멧길을 오르는 일은 무척 고됩니다. 그러나 네 살 작은아이는 아직 멧길을 오르기에는 다리힘이 부칩니다. 이듬해에 다섯 살이 된다면 작은아이도 씩씩하게 멧길을 오르면서 골짝마실을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름 내내 골짝마실을 하면서 말갛게 피어난 나리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고운 나리꽃입니다. 멧골에서 피니 멧나리꽃이에요.


  멧나리꽃을 보고 문득 생각했어요. 이 아이를 캐서 우리 집 마당에 옮겨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렇지만, 이튿날도 다음날도 골짝마실을 하면서 호미나 꽃삽을 안 챙깁니다. 그저 마실을 할 적마다 빙그레 웃음지으면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열 송이 스무 송이 백 송이쯤 피어나면 그즈음 살며시 한 포기를 옮기자고 생각했어요.


  한참 멧나리꽃을 누리면서 골짝마실을 하던 어느 날, 아이들과 내가 즐겁게 만나던 멧나리꽃이 사라집니다. 꽃도 줄기도 뿌리도 잎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갔을까. 언제나 골짜기 한켠에서 곱다라니 꽃내음을 나누어 주던 멧나리꽃은 어디로 갔을까요.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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