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리 보리피리 이야기 3
박선미 글, 이혜란 그림 / 보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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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69


 

멧골짝 조그마한 나리꽃은

― 산나리

 박선미 글

 이혜란 그림

 보리 펴냄, 2007.10.20.



  시외버스를 달려 시골을 벗어나면 창밖으로 새삼스러울 것 없는 모습이 죽 이어집니다. 시골을 벗어나는 시외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시골에서 멀어질수록 숲이나 나무가 줄어듭니다. 도시와 가까울수록 숲이며 나무가 거의 사라집니다. 도시로 접어든 시외버스는 숲도 나무도 도무지 없는 아스팔트길을 달립니다.


  시외버스를 달려 도시를 벗어나면 창밖으로 새로운 모습이 죽 펼쳐집니다. 도시를 벗어나는 시외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이 숲과 저 골짜기 사이를 누빕니다. 비록 이 고속도로가 숲과 멧골과 냇물을 깎고 밀어서 지었어도, 도시를 벗어나서 시골로 돌아가는 길은 포근합니다.



.. 봄이 되었어. 매화가 지고 나면 집 뒷마당이나 밭머리에 한 그루씩 서 있는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동네를 환하게 밝혀 줘 … 유난히 검고 삐죽삐죽 모난 돌이 많은 애장골. 야야는 그 시커먼 돌 틈으로 쏘옥 싹을 내민 산나리를 캐다가 집 안마당에 심어 두고 싶어 해마다 속을 끓였어 ..  (4, 12쪽)



  개화기나 식민지라고 하던 때,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와 상업주의는 이 땅에 온갖 철길과 찻길을 닦았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와 상업주의는 한국에서 나는 모든 것을 일본으로 빼앗으려고 철길과 찻길을 닦았습니다.


  오늘날 경제개발 한국에서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와 철길과 하늘길을 끝없이 다시 놓고 새로 놓으며 더 놓습니다. 도시와 도시가 더 커지기를 바라는 뜻이며, 시골은 차츰 작아지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시골이 작아져야 도시가 커지니까요. 시골 들과 숲을 도시가 잡아먹어야 도시가 커지니까요.


  모든 찻길과 철길과 하늘길은 오직 도시와 도시를 이을 뜻입니다. 시골과 시골을 이으려고 찻길이나 철길이나 하늘길을 놓는 일은 없습니다. 시골과 시골을 잇는 길을 놓는다면, 도시에서 관광이나 여행을 온 사람들이 다니기 좋도록 하려는 뜻입니다.



.. 애장골 옆으로 참빗나무가 더러 자라고 있었어. 참빗나무에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날 것같이 반짝거리는 새 잎이 돋아나면, 동네 사람들은 그 홀잎 나물을 훑으러 가 ..  (36쪽)



  박선미 님이 글을 쓰고 이혜란 님이 그림을 넣은 《산나리꽃》(보리,2007)을 시외버스를 달리는 길에 읽습니다. 고흥을 벗어나 보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읽습니다. 박선미 님은 이녁이 어릴 적에 그토록 캐서 장독 언저리에 심고팠던 산나리꽃과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야기 끝을 좀 어영부영 흐릿흐릿 맺습니다. 마지막 줄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무언가 더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가 있을 텐데, 알맹이를 빠뜨린 듯합니다. 깊은 멧골에서 자라는 나리꽃과 얽힌 이야기이든, 박선미 님이 어릴 적에 놀렸던 동무와 얽힌 이야기이든, 박선미 님과 동무들이 자라던 시골마을과 얽힌 이야기이든, 끝에서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가 하나 빠집니다.


  그림에서도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림을 보면 열 살 남짓 조그마한 가시내가 어린 동생을 포대기로 업은 모습이 나오는데, 영 잘못 그렸습니다. 포대기가 허리 아래에서 엉덩이에 느슨하게 걸쳐졌고, 갓난쟁이는 어설프게 가시내 등판에 붙습니다. 포대기가 저렇게 느슨하다면 등에 업힌 아기는 머리가 뒤로 폭 꺾여요. 게다가 포대기에서 떨어집니다. 포대기로 아기를 업으려면 바짝 조입니다. 포대기가 느슨히 풀리면 이내 끈을 단단히 조이지요.



.. 야야는 그걸 보지도 듣지도 못했으면서 지나가는 그 아이 등에다 대고 ‘엣취 뽕’이라고 놀려댔어. 그런데 순복이는 한 번도 그게 아니라고,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는 적도 없어.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푹 숙이고 쫓기듯이 지나가기만 하는 거야 ..  (44쪽)



  올여름, 나는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골짝마실을 자주 다녔습니다. 자전거를 몰고 가파른 멧길을 오르는 일은 무척 고됩니다. 그러나 네 살 작은아이는 아직 멧길을 오르기에는 다리힘이 부칩니다. 이듬해에 다섯 살이 된다면 작은아이도 씩씩하게 멧길을 오르면서 골짝마실을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름 내내 골짝마실을 하면서 말갛게 피어난 나리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고운 나리꽃입니다. 멧골에서 피니 멧나리꽃이에요.


  멧나리꽃을 보고 문득 생각했어요. 이 아이를 캐서 우리 집 마당에 옮겨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렇지만, 이튿날도 다음날도 골짝마실을 하면서 호미나 꽃삽을 안 챙깁니다. 그저 마실을 할 적마다 빙그레 웃음지으면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열 송이 스무 송이 백 송이쯤 피어나면 그즈음 살며시 한 포기를 옮기자고 생각했어요.


  한참 멧나리꽃을 누리면서 골짝마실을 하던 어느 날, 아이들과 내가 즐겁게 만나던 멧나리꽃이 사라집니다. 꽃도 줄기도 뿌리도 잎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갔을까. 언제나 골짜기 한켠에서 곱다라니 꽃내음을 나누어 주던 멧나리꽃은 어디로 갔을까요.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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