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힐에서 온 편지 - 발도르프 아줌마의 삶과 교육 이야기
김은영 지음 / 지와사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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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25



편지를 주고받고 싶은 이웃

― 캠프힐에서 온 편지

 김은영 글

 知와 사랑 펴냄, 2008.12.6.



  아이가 어버이한테 편지를 씁니다. 어버이도 아이한테 편지를 씁니다. 할 말이 있으면 얼굴을 보며 말해도 되지만, 종이에 살며시 글을 적어 넌지시 건네도 됩니다. 우리가 서로 나누는 이야기는 얼굴을 마주볼 때에만 주고받지 않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도 마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때로는 종이에 단출하게 글 몇 줄 적어 주고받습니다.


  마음을 나누기에 이야기입니다. 마음이 없이 덧없는 말을 잔뜩 늘어놓는다면, 서로 얼굴을 마주하더라도 거북합니다. 아니, 괴롭지요. 마음이 있기에 아무리 멀리 떨어진 데에서도 아주 가깝거나 살가운 이웃으로 지낼 수 있어요.



.. 장애가 심하면 일반교사들이 장애 아이들의 통합을 꺼린다며 하소연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특수학교 내에서도 장애가 심하다는 이유로 일부 교사들은 서로 심한 장애 아이들을 맡지 않으려 합니다 … 몬테소리든 발도르프든 아이들이 중심에 있고, 우리 아이들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하게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그들과 배움의 공간에서, 놀이의 공간에서 만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30, 73쪽)



  편지를 주고받고 싶은 이웃이란, 서로 아름다이 사귀고 싶은 사이입니다. 편지를 주고받는 이웃이란, 서로 사랑을 나누는 사이입니다. 그러니까, 편지는 아무한테나 쓰지 않습니다. 마음을 담아 띄우는 편지는 아무한테나 쓸 수 없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자라는 사랑을 씨앗 한 톨로 여미어 담을 때에 편지입니다. 내 편지가 살랑살랑 날아서 닿으면, 이 편지에 깃든 씨앗은 천천히 뿌리를 내려 싹을 틔웁니다.


  편지쓰기뿐 아니라,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도 씨앗심기와 같습니다. 아이를 가르치거나 이끄는 삶도 씨앗심기와 같아요.


  아이는 어버이나 둘레 어른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는 어버이나 둘레 어른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제 가슴에 살포시 담습니다. 가슴으로 씨앗을 키우고, 알뜰살뜰 씨앗을 돌보아, 마침내 푸르며 곱고 싱그러운 꽃을 피웁니다.



.. (아이는) 한국에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몇 번의 한국행에서 많이 실망하고 돌아왔던 것 같습니다. 방학이라 한 번씩 나가면 친구들은 학원이다 보충학습이다 해서 방학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보는 것도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친한 친구가 이곳에 와서 우리 가족과 함께 프랑스 여행을 갔는데, 그 친구는 과외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그곳까지 들고 와 호텔에서 문제풀이를 하는 것을 보고는 끔찍했던 모양입니다 … 우리 나라의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들이 이러한 생각(슈타이너 인지학)을 염두에 두고 매일 아침 아이들을 만난다면, 시험성적이 좋지 않다고 벌로 물을 먹이고, 학부모로부터 돈과 향응을 받고 그 대가로 내신을 높여주는 등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아이들의 배울 권리와 가르칠 권리를 담보로 거래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  (102, 219쪽)



  김은영 님이 쓴 《캠프힐에서 온 편지》(知와 사랑,2008)를 읽습니다. 이 책은 김은영 님이 ‘캠프힐’이라고 하는 마을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삶을 배우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교육이론’을 알리거나 보여주려는 책이 아닙니다. ‘교육이론’이 아니라 ‘함께 어깨동무를 하는 삶’을 몸소 누리면서 배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교육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교과서나 교재로 학습진도를 나가는 일은 교육이 아닙니다. 시험성적에 따라 높은학교로 보내는 일은 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교육이란, 어른과 아이가 서로 배우면서 가르치는 삶입니다. 어른과 아이가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아름다운 삶을 일구는 나날이 교육입니다.



.. 캠프힐의 가족 공동체, 즉 하우스는 흔히 생각하는 피로 연결된 가족과는 다르지만, 이들은 ‘정신’으로 연결된 가족이 되는 셈이지요 … 그렇구나. 이곳에서 돈이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구나 싶더군요 … 프로그램도 없이 마치 가족이 여행을 온 것 같은 그런 학급여행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학교 현실에서는 상상도 못한, 계획이나 준비가 없는 그런 여행이었지요 ..  (135, 143, 243쪽)



  사회를 알게 이끄는 일은 교육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이한테 사회를 가르치거나 보여줄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사회’가 아닌 ‘마을’을 보고 느끼면서 알면 됩니다. 아이들은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예술’이 아니라, 사랑을 배우고 느끼면서 즐길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운 삶으로 깨어나서 언제나 기쁘게 웃고 노래하는 하루를 누릴 수 있으면 됩니다.


  날마다 새 하루를 맞이할 수 있어야 즐겁게 놉니다. 언제나 새 하루를 맞이할 수 있어야 기쁘게 일합니다.


  오늘이 새 하루가 아니라면, 누구나 지겹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새 하루가 아니라 ‘똑같은 굴레’라 한다면 ‘지겨운 돈벌이’가 됩니다.


  아이들은 ‘지겨운 돈벌이에 얽매이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아닌, 스스로 삶을 짓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을 심고 가꾸면서 아끼는 따사로운 숨결이 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경쟁이라는 구조를 심지어는 ‘선의의 경쟁’이라는 이름으로까지 미화시키며 경쟁 사회, 경쟁 교육, 모든 것을 경쟁의 논리로 이야기합니다. 왜 죽는 것은 경쟁적으로 죽지 않는지, 우습죠 … 경쟁 논리와 잣대로 인간을 설명한다면, 아마 인간이라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 발도르프 교육이 그러한 승자와 패자의 논리를 위해서 매진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매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한국은) 거리에서 노는 아이들이 사라지고 사설학원에 갇혀 마치 우리에서 사육되는 동물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아이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 걱정이 앞섭니다 ..  (252∼253, 258쪽)



  우리는 언제나 ‘아이’를 바라봅니다. 이 아이는 그저 ‘아이’입니다. ‘부자 아이’나 ‘가난한 아이’가 아닌, 그냥 ‘아이’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아이는 ‘비장애 아이’도 ‘장애 아이’도 아닌, 그냥 ‘아이’예요.


  사랑을 받을 아이입니다. 사랑을 배워 사랑을 꽃으로 피울 아이입니다.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웃을 아이입니다. 신나게 뛰놀면서 온몸이 튼튼하게 자라야 할 아이입니다.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면서 이웃과 동무하고 기쁘게 어깨를 겯을 아이입니다.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뛰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교육을 받거나 입시에 찌들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깨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부터 깨어나야 하고, 둘레 어른들 모두 눈을 떠야 합니다.


  아이가 살 만하지 않은 곳은 어른도 살 만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뛰놀지 못하는 곳은 어른도 일할 만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아름답게 자라기 힘든 곳이라면 어른도 사랑스레 삶을 꾸리기 힘든 곳입니다.



..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고는 자신의 정신 세계를 성숙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기호와 고정관념만 고착되어 갈 뿐이지요. 특히 나이 들수록 그 증상은 더욱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새롭게 보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278쪽)



  아이들은 앓으면서 한결 튼튼하게 자랍니다. 어른들도 앓으면서 더욱 씩씩하게 자랍니다. 아이만 자라지 않아요. 어른도 자랍니다. 키나 몸은 더 자라지 않을 수 있지만, 마음은 늘 새롭게 자라야 비로소 ‘참 어른’입니다. 마음이 자라지 않고 고인다면 어른답지 않습니다. 마음과 생각과 사랑이 날마다 새롭게 자랄 때에 비로소 어른이요,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마주하고 따사롭게 보살필 수 있을 때에 아이도 싱그러이 웃으면서 자랍니다.


  삶을 배우고, 삶을 가르칩니다.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가르칩니다. 꿈을 배우고, 꿈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교육’이라는 이름을 내걸며 무언가 하려 한다면, 삶과 사랑과 꿈이 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지어야 합니다. 4347.10.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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