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허에 떨어진 꽃잎 VivaVivo (비바비보) 3
카롤린 필립스 지음, 유혜자 옮김 / 뜨인돌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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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91



와 나는 모두 아름답다

― 황허에 떨어진 꽃잎

 카롤린 필립스 글

 유혜자 옮김

 뜨인돌 펴냄, 2008.2.29.



  우리 집에는 세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이 가운데 두 아이는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고이 채워서 태어났고, 한 아이는 너무 서둘러 나오면서 일찌감치 숨을 거두었습니다. 두 아이는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면서 싱그럽게 뛰놉니다. 한 아이는 우리 집 뒤꼍 무화과나무 밑에 묻힌 채 고이 잠듭니다. 뛰노는 아이는 하늘숨을 마시면서 큽니다. 잠든 아이는 고요히 흙으로 돌아가서 머잖아 새로운 숨결을 받아 다시 이 땅으로 찾아오리라 느낍니다.



.. 수첩에 그 내용을 열심히 옮겨 적던 레아는 진시황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누리고, 진귀한 보물은 물론 수만 명의 생사를 결정짓는 권력을 갖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는 생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 그 애는 피자를 좋아하지만 아무리 아빠가 원한다고 해도 평생 부모가 해오던 피자 가게 계산대에 앉아 돈이나 받으면서 인생을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피자 가게는 이미 2대째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고, 루카가 계속 한다면 3대째가 되고, 루카의 자식이 이어받으면 4대째가 된다 ..  (8, 34쪽)



  아이들은 모두 싱그럽습니다. 싱그러운 아이들이 자라서 싱그러운 어른으로 거듭납니다. 그래서 어른들도 누구나 싱그럽습니다. 나이가 마흔 살이든, 여든 살이든, 백 살이든, 모두 싱그러운 사람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이 지구별을 곱게 흐르는 바람을 함께 마시니, 어떤 사람이든 싱그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미운 사람이나 모진 사람이 없습니다. 궂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똑같은 사람입니다. 다만, 스스로 사람인 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스스로 싱그러운 줄 알아채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 아름다운 목숨이로구나 하고 느끼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스스로 사랑을 받아 태어난 숨결인 줄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아이들이 싱그러운 까닭은 아이 스스로 싱그러운 줄 알고 느끼면서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누구나 싱그러우니, 어른도 스스로 얼마나 싱그러운가를 차분히 돌아보면서 깨달으려 한다면, 언제나 맑고 밝은 넋으로 아름다운 삶을 지을 수 있습니다.



.. 20초가 지나자 레이 앞에 수많은 검색 결과가 펼쳐졌다. 수백 건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을 레아만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 “그렇지만 그 나라 출신이잖아. 저 애 고향에서 일어난 일이야!” “레아도 너처럼 중국하고 관련이 없는 사람이야. 고향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이 고향이지. 레아는 중국에서 태어났을 뿐 그게 전부라고.” ..  (56, 65쪽)



  카롤린 필립스 님이 빚은 청소년문학 《황허에 떨어진 꽃잎》(뜨인돌,2008)을 읽습니다. 이 책을 이루는 이야기는 ‘중국 인구정책’입니다. 중국 정부에서 ‘한 집에 아이 하나’만 낳게 못박은 정책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내가 핏줄을 이어받아 집안을 지킨다’고 하는 낡은 사회 얼거리가 사람을 얼마나 괴롭히거나 짓누르는가 하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보듬는 슬기로운 살림을 가꾸지 못한 채, 겉치레와 낯값에 얽매인다면, 아름다운 사랑은 조금도 싹틀 수 없다는 이야기를 고요히 밝힙니다.



.. “그 여자는 어떻게든지 자식의 목숨을 구하려고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래서 아기를 당신들에게 주고 갔을 거예요.” 청소부가 말했다. “어떻게 아이 엄마라는 사람이 자식을 남에게 줄 수 있죠?” “죽이지 않아도 되니까요. 생명은 건질 수 있잖아요.” … 레아는 구역질이 났다. 얼른 화장실로 달려가 점심에 먹은 것과 이미 소화된 아침 음식을 토해 냈다. 쓰레기처럼 비닐봉지에 담겨 버려졌다니! 레아의 얼굴은 분노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 나무 아래에 있는 흔들의자가 편안했다. 그 의자는 항상 그곳에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여기에는 황제도 없고, 사람을 살인자로 만드는 법도 없다. 낯선 사람에게 자식을 줘 버리는 여인도 없다. 나뭇잎이 바람결에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코를 찌르는 사과 냄새를 맡고, 하늘에 떠 있는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레아는 새벽 무렵 스르르 잠이 들었다 ..  (76, 78, 81쪽)



  우리가 즐겁게 지낼 보금자리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가시내를 높여야 할 까닭이 없고, 사내를 우러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쁘게 가꿀 삶자리에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사내가 집안일을 물려받아야 할 까닭이 없고, 가시내가 집안일을 도맡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보금자리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일굽니다. 사랑스러운 살림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가꿉니다. 밥과 옷과 집은 어버이와 아이가 함께 돌봅니다. 아기는 어머니가 낳지만, 아기를 돌보는 사랑스러운 손길은 온 식구가 함께 뻗습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함께 가르칩니다. 어머니 혼자 아이를 가르치지 않고, 아버지 홀로 아이를 가르치지 않아요. 마을은 어떤 곳일까요? 꽉 막힌 계급주의와 지역주의를 내세우는 데가 마을일까요? 아닙니다. 마을은 아이들이 오직 기쁨으로 가득 찬 숨결로 신나게 뛰놀 수 있도록 너른 마당이 되어 주는 따순 품입니다. 두레와 품앗이로 서로 아낄 수 있는 터전이 비로소 마을입니다. 우두머리가 있거나, 규칙이나 제도나 법률을 내세우는 데는 마을이 아닙니다.



.. 아무도 위협을 가하지 않았지만 레아는 두려웠다. 아무도 웃지 않았고, 인사도 안 했다. 코쟁이가 이것저것 캐묻는 것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었다 … 레아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달아나야 한다고, 어서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인이 몸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여인이 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레아는 가만히 있었다. 레아가 허공에 흩어지거나 달아나 버리기라도 할까 두려운 듯 여인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  (133, 134쪽)



  이야기책 《황허에 떨어진 꽃잎》에 나오는 아이한테는 이름이 둘입니다. 하나는 이 아이를 낳은 어머니가 붙인 ‘인야오’이고, 하나는 이 아이를 건사한 독일 어버이 둘이 붙인 ‘레아’입니다. ‘인야오’는 중국 어머니가 낳았으나, 중국 아버지는 이 아이가 가시내이기 때문에 냇물에 던져서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야오를 낳은 어머니는 인야오네 언니를 중국 아버지 손에 빼앗겼습니다. 인야오네 언니는 갓 태어나자마자 죽음길로 가 버렸습니다. 중국 어머니는 둘째 아이 인야오를 낳고 나서 이 아이마저 빼앗길 수 없어서, 중국 아버지 몰래 도시로 나와서 마땅한 외국사람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두 독일사람한테 이녁 아이를 맡겼습니다. 비취 목걸이와 함께 맡겨요.


  두 독일사람은 난데없이 떠맡은 갓난쟁이를 바라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이내 이 아이를 잘 돌보아서 사랑스레 키워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아이가 그들한테 온 까닭이 있다고, 하늘이 뜻한 바가 있다고, 이 아이가 살아남아서 씩씩하게 두 발로 서야 할 까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체면이 깎인다고요?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사람들은 정말 우스워. 그게 무슨 대수예요? 그저 겁이 나서 나를 그냥 잊고 싶은 거예요.” 레아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체면이 깎이는 일은 중국인에게 있어서 큰 망신이야.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이지. 계급이 수직 체계로 잡혀 있는 사회에서는 체면이 매우 중요해.” … 매년 6만 명의 여아가 죽는다고 했다. 레아의 언니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은 것이다 … “우리 중국에서는 모든 것이 원을 그린다고 말해. 마음의 평화는 각각의 원을 완성해야 찾아온다고 믿지. 그런데 네가 도망치거나, 원을 완성하지 않은 채 내팽개치면 평화는 네 마음에 절대 찾아오지 않아. 레아는 독일로 도망칠 수 있겠지. 그런데 인야오는? 그 애는 어디에 있게 되지?” … 레아는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지만 친엄마를 다시 봐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하룻밤이나 더 걸렸다 ..  (138, 166, 180쪽)



  ‘레아’와 ‘인야오’라는 두 이름이 있는 아이는 중국사람도 독일사람도 아닙니다. 중국에서 났어도 중국 호적이 없고, 독일에서 살아도 곧잘 놀림을 받습니다. 레아이자 인야오라는 아이한테는 누가 이웃이고 누가 동무일까요? 이 아이한테는 누가 어버이일까요? 이 아이한테는 누가 하느님이고 누가 곁님일까요?


  너와 나는 모두 아름답습니다. 너와 나는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너와 나는 모두 지구이웃이요 지구벗이며 지구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너른 온별누리에 가득한 별이웃이고 별벗이며 별사람입니다.


  너와 나는 부질없이 죽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너와 나는 이 땅에서 아름답게 살아야 할 일만 있습니다. 너와 나는 덧없이 놀리거나 괴롭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너와 나는 이 땅에서 서로 아끼면서 사랑을 나눌 노릇입니다.


  레아이자 인야오인 아이는 앞으로 홀로서야 합니다. 아이 스스로 새 이름을 지어서 스스로 서야 합니다. 중국도 독일도 아닌 ‘보금자리’를 찾고, 이런 규칙이나 저런 사회에 얽매이지 않는 아름다운 마을을 가꾸어야 합니다. 모든 아이는 사랑을 받으며 태어나야 하고, 모든 어버이는 사랑을 바쳐 아이를 돌보아야 합니다. 4348.4.2.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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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랑 함께 있어서 좋을 때가 더 많아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9
구드룬 멥스 글, 로트라우트 주잔나 베르너 그림, 문성원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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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90



너희와 함께 살아서

― 나는 너랑 함께 있어서 좋을 때가 더 많아

 구드룬 맵스 글

 로트라우트 주자나 베르너 그림

 문성원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1999.12.30.



  아침과 저녁 사이에 샛밥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뒤꼍으로 가서 쑥을 뜯습니다. 비가 오는 날씨에 비를 맞으면서 쑥을 뜯습니다. 가볍게 내리는 보슬비는 싱그럽습니다. 따뜻하게 내리는 봄비이기도 해서 즐겁게 비를 맞습니다. 빗물이 달린 쑥을 하나둘 뜯으면, 빗물에 실린 쑥내음이 손끝으로 퍼져서 물듭니다.


  밀가루에 달걀을 풀고 소금과 설탕을 살짝 넣고는 반죽을 합니다. 물을 섞어 밀가루를 녹인 다음 쑥을 넣습니다. 소쿠리 가득 뜯은 쑥이지만, 밀반죽과 섞으니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쑥을 더 뜯을 수 있지만, 꼭 이만큼이 알맞습니다. 동그랗게 부치는 쑥부침개는 거의 다 푸른 물입니다.


  감자를 저며서 올립니다. 버섯도 저며서 함께 올립니다. 여린 불로 익힌 부침개를 한 번만 뒤집습니다. 쑥부침개 익는 냄새가 퍼지면서 아이들은 부엌으로 오고, 쑥부침개 넉 장을 말끔히 비웁니다.



.. 나는 아버지가 보내는 선물 때문에 부활절이 좋다. 아버지가 보낸 선물 꾸러미 속에는 늘 우스꽝스러운 물건들이 들어 있는데, 대체로 나한테 필요 없는 물건이다 … 꼬맹이 동생이 내 다리 사이를 엉금엉금 기어다니거나, 또 하필이면 대 공책 위에다 레고 블록으로 탑을 쌓으면 숙제가 제대로 될 리 없다. 그런데도 동생은 꼭 내 공책 위에다 탑을 쌓는다. 그것도 늘 똑같은 탑만 … 동생을 나무라는 것은 옳지 않다. 동생이 일부러 울음을 터뜨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안다. 동생이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  (9, 27, 35쪽)



  우리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에 샛밥을 늘 마련해 주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려 주고는, 사이에 가볍게 주전부리를 마련해 줍니다. 출출할 즈음 받는 주전부리는 더없이 고맙습니다. 주전부리 한 점을 입에 넣어 새롭게 기운을 차리고 한결 씩씩하게 놉니다.


  밥상맡에서 부침개를 먹는 아이들은 소꿉을 가져와서 밥상에 올립니다. “나도 부침개 끓여야지.” 하고 말합니다. 부침개를 끓여? 그래, 너희는 아직 모르지. “부침개는 끓인다고 하지 않고 부친다고 해.” 소꿉 장난감으로 부침개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부침개 부쳐야지.” 하고 말을 바꿉니다. 동생이 물잔에 소꿉을 올린 뒤 천조각을 얹은 뒤 마루로 가서 딴 놀이를 합니다. 누나가 물잔 소꿉이 부글부글 끓는다는 소리를 냅니다. “어서 와, 넘쳐.” 부침개는 부친다고 알려주었지만, 국이 끓듯 부글부글 소리를 냅니다. 동생은 다시 부엌으로 달려와서 천조각을 열더니, 소꿉 냄비에 있는 나무조각을 손가락으로 살살 매만집니다. 뒤집개는 없이 손으로 뒤집는구나. 이 아이들이 곧 무럭무럭 커서 손수 불을 다룰 나이가 되면, 맛나며 아름다운 부침개를 베풀어 주리라 생각합니다.



.. 아버지는 수를 받은 시험지를 보자마자, 당장 달려나갔다. 나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려고 말이다. 나는 어떤 선물일까 기대하면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장난감 권총을 갖고 싶긴 하지만, 그런 선물은 절대로 받지 못할 것이다. 그 점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 “너랑 같이 놀고 싶어.” 나는 스반티예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나랑 같이 놀아도 되고 말고! 나랑 같이 우리 집에 가서 놀자! 내 장난감도 보여줄게. 나는 아주 멋진 장난감을 갖고 있거든 ..  (55, 87쪽)



  구드룬 맵스 님이 글을 쓰고, 로트라우트 주자나 베르너 님이 그림을 그린 《나는 너랑 함께 있어서 좋을 때가 더 많아》(시공주니어,1999)를 읽습니다. 짤막한 이야기가 잇달아 나오는 이쁘장한 책입니다. 동화라고 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마주할 만한 ‘삶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동양과 서양이 삶이나 문화가 많이 달랐을 테지만, 요즈음은 동서양이 삶이나 문화가 엇비슷합니다. 구드룬 맵스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이 이름’과 ‘어버이 이름’만 저 먼 나라 이름일 뿐, 우리 곁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고 할 만합니다.



.. 이번에는 먼지가 쌓일 염려도 없고, 또 쉽게 고장도 나지 않는 선물을 받고 싶었다. 생일날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기뻐할 수 있고, 또 쉽게 싫증이 나지 않는 그런 선물을 받고 싶었다. 나는 곧 그런 선물을 떠올렸다! 할아버지를 선물로 받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우리 집으로 와서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이다. 내 생일날, 그날 하루 종일 말이다 … 할아버지에게서 무슨 냄새가 나든, 나는 상관없다. 냄새를 안 맡으면 그만이니까 ..  (92, 94쪽)



  《나는 너랑 함께 있어서 좋을 때가 더 많아》는 책이름 그대로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럼요. 나는 너랑 함께 있어서 더 기쁘지요. 너는 나랑 함께 있어서 더 기쁠까요? 네, 그러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서로 함께 있어서 아름다우면서 기쁘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는 아이와 함께 있어서 기쁩니다. 어머니만 있든 아버지만 있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가 하나이든 둘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있어도 기쁘고, 어버이와 아이 둘만 단출하게 있어도 대수롭지 않아요.


  낯선 동네에서 낯선 아이한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아이가 쭈뼛쭈뼛 망설여도 사랑스럽습니다. 양로원에서 혼자 외로운 할아버지를 내 생일잔치에 모실 수 있어서 사랑스럽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양로원에 할아버지를 넣느라 돈을 벌지 말고, 집에서 할아버지와 오순도순 지낼 적에 한결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우리라 느낍니다.



.. 할아버지 무릎 위에 앉기엔 내 나이가 너무 들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혼자서 음식을 먹고 정상적으로 행동을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 우리는 둘 다 너무 나이가 들어 버렸다 … 우리는 케이크를 먹고 커피 마시는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케이크가 다 뭉개지긴 했지만, 뭉개진 케이크도 뭉개지기 전하고 맛이 똑같이 좋았다. 오히려 더 맛있게 느껴지기까지 했는데, 초콜릿과 생크림이 잘 뒤섞였기 때문이다 ..  (124, 127쪽)



  어른은 아이를 즐겁게 해 주려고 돈을 벌지 않습니다. 아이를 즐겁게 해 주고 싶다면 말 그대로 즐겁게 해 줄 노릇입니다. 돈이 아닌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어른 스스로 돈을 더 벌고 싶다면, 그냥 돈을 더 벌면 돼요. 이러면서 아이한테 제대로 말해야지요. 어른으로서 돈을 더 버는 데에 마음이 있다고 털어놓아야지요.


  자, 그러면 생각해 보셔요. 아이는 어버이가 ‘돈을 더 벌고 싶다’고 말하면 어떻게 대꾸를 할까요? 아이는 어버이가 저와 함께 있기보다는 돈을 더 벌고 싶다고 하면 어떤 마음이 될까요? 저와 함께 즐거운 삶을 누리려 하지 않고, 돈에만 얽매이는 어버이를 보고 자라는 아이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돈만 바라보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아이가 어른이 되면, 내 어버이도 양로원에 넣어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돈에만 얽매인 채 바깥일로 바쁜 오늘날 우리 어른들은 앞으로 양로원에 들어가려고 신나게 돈을 버는 셈 아닐까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아이와 함께 기쁘게 하루를 지으려 하지 않는 어른이라면, 참말 다들 양로원을 바라보려는 마음인 셈 아닐까요?


  나는 여기에서 웃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노래합니다. 나는 아이가 되어 내 어버이하고 웃고 노래합니다. 우리 집 아이는 나를 어버이로 삼아 함께 웃고 노래합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아끼고 보듬으면서 하루를 따사롭게 열고 닫습니다.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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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북거, 아북거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3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 시공주니어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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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89



네 짝님 마음을 아니?

― 아북거 아북거

 로알드 달 글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1997.11.14.



  사귀고 싶은 동무가 있으면 온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귀고 싶은 동무한테 다가서고 싶으면 그 동무가 좋아하거나 바라거나 꿈꾸는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귀고 싶은 동무더러 ‘무턱대고 나한테 따라오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함께 걷는 길을 생각해야 하고, 함께 노래하는 길을 살펴야 하며, 함께 사랑할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함께 어울리는 동무가 있으면 따사롭게 마주해야 합니다. 함께 노는 동무더러 무턱대고 나를 따라오라 할 수 없습니다. 나 혼자만 재미난 놀이를 할 수 없고, 나 혼자만 맛난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함께 즐길 놀이를 생각할 노릇이고, 함께 나눌 밥을 헤아릴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두 나라가 서로 이웃이 되려고 하는 때를 헤아려 보셔요. 한쪽 나라가 다른 나라더러 ‘너희 나라는 나빠!’ 하고 외치면 두 나라가 이웃이 될 만할까요? 한쪽 나라가 다른 나라더러 ‘너희 나라는 나빠서 우리가 군대를 이끌고 짓밟아 주겠어!’ 하고 외치면 두 나라는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 문제는, 실버 부인이 열렬히 사랑을 쏟아붓는 상대가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그 상대는 바로 알피하고 불리는 조그만 거북이었다 … 호피 씨는 거북이 되어도 전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거북이 된다는 것이, 매일 아침 실버 부인이 자기에게 다정다감한 말을 속삭이며 등을 어룸나져 주는 것을 뜻한다면 말이다 ..  (16∼17, 18쪽)



  로알드 달 님이 빚은 어린이문학 《아북거 아북거》(시공주니어,199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북거 아북거》에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웃집에는 호피 아저씨가 있고, 아랫집에는 실버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이웃으로 지냅니다. 사이좋은 이웃인데, 호퍼 아저씨는 실버 아주머니하고 ‘이웃으로만 지내기’보다 한집을 이루어서 살고 싶습니다. 이리하여, 호퍼 아저씨는 실버 아주머니하고 함께 한집에서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외국어인가요?” 실버 부인은 어안이 벙벙해져 물었다. “거북들의 말이죠. 거북들은 무엇이든지 거꾸로 하는 동물들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말도 거꾸로 써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군요. 정말 대단하세요. 그런데 ‘쑥쑥’이라는 말이 굉장히 많이 있네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실버 부인이 물었다. “‘쑥쑥’이라는 말은 어느 언어에서나 대단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단어랍니다.” ..  (32, 34쪽)



  두 사람은 어떻게 하면 ‘한집 사람’이 될까요? 둘은 어떻게 해야 ‘이웃집 사람’에서 ‘한집 사람’으로 거듭날까요? 네, 두 사람이 한마음이 되면 ‘한집 사람’이 될 테지요. 먼저 한 사람부터 다른 한 사람 마음을 읽고, 다른 한 사람 마음으로 따사롭게 다가설 수 있으면, 둘은 바야흐로 한집 사람으로 거듭날 테지요.


  이리하여, 실버 아주머니한테 마음이 끌린 호퍼 아저씨는 실버 아주머니가 아끼고 돌보는 거북이를 함게 아끼고 돌보는 길을 살핍니다. ‘내 뜻’을 바보스럽거나 우악스레 밀어붙이려 하지 않습니다. 호퍼 아저씨한테 마음이 있는 실버 아주머니가 따사롭게 마음을 열 수 있을 때까지 기쁘게 기다리면서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실버 아주머니가 기쁘게 웃음짓는 일을 살피고, 실버 아주머니와 함께 호퍼 아저씨도 멋지고 신나게 웃음지을 만한 일을 꾀합니다.



.. “이게 모두 우리 알피 덕택이에요.” 실버 부인은 다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히 고마운 녀석이죠. 우리 영원히 데리고 살도록 합시다.” ..  (78쪽)



  사랑은 아주 쉽습니다. 서로 한마음이 될 때에 사랑이 싹틉니다. 사랑은 아주 따사롭습니다. 서로 아끼면서 즐겁게 돌볼 수 있는 마음이기에 사랑이 자랍니다. 사랑은 아주 기뻐요.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한길을 노래하면서 걸어가니, 이 사랑이란 늘 노래잔치요 춤잔치이며 기쁨잔치입니다.


  ‘사랑’은 입맞춤이나 손잡기가 아닙니다. ‘사랑’은 마음짓기입니다.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한마음이 되어 한길을 기쁘게 노래하면서 걷는 마음살이입니다.


  사랑은 어른만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어른도 하고 아이도 합니다. 누구나 사랑이 됩니다. 마음을 따스하게 돌보고, 마음을 넉넉하게 가꿀 때에, 누구나 가슴에서 사랑이 태어납니다. 《아북거 아북거》는 아이들도 ‘사랑’이 무엇인지 환하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이끄는 예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로알드 달 님은 “어린아이들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쑥쑥 크고 있지만 어머니들은 옷이 맞지 않을 때까지는 그걸 전혀 느끼지 못한다(59쪽).” 같은 이야기를 살짝 곁들입니다. 참말 이럴까요? 참말 이럴 수 있을까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이 말은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들 몸이 자라는 흐름을 못 알아볼 수 없어요. ‘어머니는 아이가 자라는 결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기다립’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저 스스로 얼마나 자랐는가를 깨달으면서 기쁘게 웃음짓고 노래하는 때까지 기다립니다. 아이가 스스로 노래하고 웃을 적에 비로소 말하지요. ‘어머나, 네가 이렇게 컸구나’ 하고.


  《아북거 아북거》에 나오는 실버 아주머니는 이녁 거북이가 커졌다가 작아진 줄 몰랐을까요? 모를 턱이 없습니다. 모른 척을 했을 테지요. 거북이를 사이에 놓고 실버 아주머니한테 따스하게 다가오려는 호퍼 아저씨 마음을 읽고, 느긋하고 넉넉하게 기다렸으리라 느낍니다. 사랑으로 사람을 믿고 다가오려는 따스한 숨결을 느끼면서, ‘아이 같은 호퍼 아저씨’가 스스로 기쁜 사랑을 채워서 다가오는 날까지 날마다 두근두근 기다렸으리라 느낍니다. 4348.3.2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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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3-29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이도 이 책 좋아했어요.
다시 한번 읽어보자 해야겠어요

숲노래 2015-03-29 09:46   좋아요 0 | URL
번역을 조금 더 가다듬으면 아주 멋진 작품이었을 텐데
아무튼, 어린이한테도 `사랑`을 알려줄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우주는 네가 시작하기만 기다리고 있어 - 우물쭈물 기웃대는 당신을 위한 마법의 주문
샬롯 리드 지음, 최고은 옮김 / 샨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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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82



하늘을 마시는 우리 목숨

― 우주는 네가 시작하기만 기다리고 있어

 샬롯 리드 글·그림

 최고은 옮김

 샨티 펴냄, 2015.3.17.



  하늘을 마시는 목숨입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하늘을 마십니다. 사람은 ‘숨’을 쉰다고 하는데, 숨이란 언제나 하늘입니다. 하늘을 흐르는 바람입니다. 하늘을 마시고 바람을 마시기에 숨을 쉰다고 합니다. 하늘바람을 마시기에 목숨입니다.


  풀과 나무와 꽃도 하늘바람을 마십니다. 지구별에 있는 모든 목숨은 하늘바람을 마십니다. 하늘이 바람이고 바람이 하늘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을 감돌면서 새 기운을 나누어 주는 숨이 하늘이면서 바람입니다.


  하늘을 마시는 사람은 하늘님(하느님)입니다. 바람을 마시는 사람은 바람님입니다. 하늘이요 바람으로 늘 새롭게 깨어나는 목숨이 바로 사람이로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일이든 꿈을 꿀 수 있고, 꿈으로 짓는 모든 일을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이룰 수 있는 줄 알아차립니다.



- 기적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것보다 기적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신날 거야. (7쪽)

- 만약 네가 그 과정을 즐기지 않는다면, 목표를 이룬다 해도 무의미할 거야. (19쪽)

- 지혜로운 사람이란 절망의 바닥까지 여행한 뒤 세상에 줄 선물을 가지고 돌아오는 사람들이야. (27쪽)

- 어느 누구도 현대의 삶이 바빠야 한다거나 스트레스가 많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네 삶의 속도는 네가 만들기 나름이야. (43쪽)





  꿈을 생각으로 짓는 사람은 꿈을 이룹니다. 꿈을 안 짓는 사람은 아무것도 안 이룹니다. 지을 꿈이 없으니 지을 삶이 없습니다. 지을 꿈이 있을 적에 스스로 길을 열어 삶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한테는 꿈이 태어날 겨를이 없습니다. 내가 하려는 일을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일 때에 비로소 꿈이 태어날 자리가 열립니다.


  학교를 다니며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삶을 돌아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스승을 찾아다니면서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 깊숙이 파다 보면 모든 것의 근원에 사랑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될 거야. (50쪽)

- 진정한 자유를 맛보려면, 상황을 컨트롤하려고 하지 마! (63쪽)

- 두려움, 결핍 따위는 과거의 것으로 흘려보내. (77쪽)

- 학교에서는 배운 적 없는 방정식. 단순함 + 균형감 = 행복. (83쪽)




  샬롯 리드 님이 쓴 《우주는 네가 시작하기만 기다리고 있어》(샨티,2015)를 읽습니다. 이 책은 샬롯 리드 님이 스스로 겪은 모든 일을 바탕에 두면서 짤막하게 쓴 글과 단출하게 붙인 그림으로 엮습니다. 남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샬롯 리드 님이 스스로 깨달은 이야기입니다. 남이 알려준 슬기가 아니라, 샬롯 리드 님이 스스로 알아차린 슬기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한테 기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네가 나한테 기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회라는 곳은 사람이 서로 어우러지는 곳이라 하지만, 우리는 누구한테도 기댈 까닭이 없습니다. 참말, 사람은, 아무한테도 기대야 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가 스스로 할 뿐이고, 오직 내가 스스로 지을 뿐이며, 오직 내가 스스로 깨달을 뿐입니다.



- 자기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렴. (91쪽)

- 직관력은 근육과 같아. 자주 쓰면 쓸수록 더욱 튼튼해지지. (103쪽)

- 원치 않는 걸 거절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네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겠어? (109쪽)

- 기억해, 넌 언제든 우주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어. (139쪽)




  너와 나는 서로서로 기댈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할 뿐입니다. ‘기대기’와 ‘어깨동무’는 다릅니다. 한 사람이 몹시 아파서 드러누워 지낸다 하더라도 ‘기대기’가 아닙니다. ‘어깨동무’를 합니다. 도움을 주거나 받는 일은 ‘기대기’가 아니라 ‘서로 하나가 되는 어깨동무’입니다. 몸으로도 어깨를 겯고, 마음으로도 어깨를 겯어요. 내가 너보다 더 있어서 선물하는 몸짓이 아니고, 내가 너보다 덜 있어서 선물받는 몸짓이 아니라, 언제나 오롯이 따스한 사랑을 나누는 몸짓입니다.


  우리는 ‘이웃돕기’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이웃사랑’입니다. 그래서 ‘불우이웃돕기’ 같은 몸짓으로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말로는 하나도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말은 처음부터 ‘도움 받는 사람’을 낮게 내리깔기 때문입니다. 서로 동무로 여기고 이웃으로 느껴서 사랑을 나누려 한다면 ‘이웃돕기’를 하지 않습니다. 참말 그렇지요. 사랑을 나누려 하는 사람은 ‘이웃사랑’을 합니다. ‘사랑’과 ‘돕기’는 바탕도 몸짓도 넋도 모두 다릅니다.



- 영혼은 강아지와 같아서 자연에서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147쪽)

- 넌 이미 무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되고 싶은지 다 알고 있고, 네 문제에 대한 답도 알고 있어. 네가 영혼을 가진 이유가 그거 말고 달리 뭐가 있겠어? (153쪽)

- 사랑은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야. (179쪽)

- 꿈은 정말 이루어져. (234쪽)




  《우주는 네가 시작하기만 기다리고 있어》를 쓴 샬롯 리드 님은 ‘우리를 도우려는 뜻’에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오직 샬롯 리드 님 스스로를 일으켜세워서 활짝 웃으려는 몸짓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바로 글쓴이 스스로 살리는 글과 그림이기에, 이 글과 그림은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사랑으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책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너보다 더 많은 일을 겪었기에, 이 일을 바탕으로 너한테 가르쳐 주려고 한다면, 책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너보다 학교도 많이 다니고 책도 많이 읽었기에, 너보다 많이 쌓은 지식을 너한테 알려주려고 한다면, 책이 될 수 없습니다.


  책이 책다울 수 있으려면, 언제나 사랑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책을 책으로 여겨 기쁘게 가슴에 안으려면, 언제나 사랑이 가득하여 사랑을 주고받는 이야기꽃이 되어야 합니다. 《우주는 네가 시작하기만 기다리고 있어》를 읽는 이웃님이라면 아마 다 알리라 느껴요. 무엇을 아느냐 하면,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다 알 테지요? 무엇을 알까요?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주 쉽고 홀가분한 말마디’입니다. 우리가 모를 수 없는 말마디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와 힘들다는 핑계와 가난하다는 핑계로 이 말마디를 등지면서 지내기 일쑤입니다. ‘다 안다’고 하지만, 막상 어느 한 가지조차 ‘삶으로 누리지’ 않는 말마디라고 할까요. 차근차근 가슴으로 새기면, 모든 아름다운 말은 내 삶으로 태어납니다. 4348.3.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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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5-03-28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내주신 함께살기책 잘 받았습니다. ^-^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숲노래 2015-03-28 16:10   좋아요 0 | URL
아, 즐겁게 누리셔요~ 고맙습니다 ^^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네버랜드 클래식 13
케니스 그레이엄 지음, 어니스트 하워드 쉐퍼드 그림, 신수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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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88



‘영국 고전’을 굳이 읽혀야 한다면

―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케네스 그레이엄 글

 어니스트 하워드 쉐퍼드 그림

 신수진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3.5.5.



  ‘영국 고전 동화(명작)’라고 하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시공주니어,2003)을 읽습니다. 영국에서는 어떤 동화를 놓고 이렇게 침이 마르고 닳도록 부추기는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 책을 보면 앞뒤로 수많은 칭찬과 추천글이 실립니다. 그만큼 대단하니까 갖가지 칭찬과 추천글을 붙이는구나 싶으면서도, 이 책을 읽을 아이들한테 그 같은 칭찬과 추천글이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좀 아리송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책이건 칭찬과 추천을 못 받을 만한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 “난 강 옆에서, 강과 함께, 강 위에서, 강 속에서 살아. 나한테 강은 형이자 누이이자 숙모이자 친구이자 음식이고, 술이자 목욕탕이기도 해. 강이 내 세상이고, 다른 건 하나도 필요 없어. 강이 갖고 있지 않은 건 가질 필요도 없고, 강이 모르는 건 알 필요도 없어.” … “세상에, 붉은 태양이 떠올라서 까만 나무줄기를 비추는데, 그 눈길을 걸어오는 기분이라니! 고요한 길을 따라서 걸어오는데, 이따금 눈덩이들이 미끄러져 내리면서 가지가 뚝 부러지는 거야. 그러면 펄쩍 뛰어 숨을 곳을 찾게 되지.” ..  (20, 96쪽)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라는 책을 손에 집을 적에, 미국에서 ‘고전 동화(명작)’라고 손꼽는 《초원의 집》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초원의 집》처럼 시골살이나 숲살이 이야기를 알뜰살뜰 담은 책일까 하고 궁금했습니다. 책이름부터 ‘버드나무’와 ‘바람’을 밝히니까요.


  그런데, 막상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펼치니, 버드나무 이야기도 없고 바람 이야기도 없습니다. 시골이나 숲이나 삶하고 얽힌 이야기가 하나도 흐르지 않습니다. 영국사람이 현대문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누리는가 하는 대목은 나오지만, 이러한 현대문명을 누가 어떻게 손수 짓는가 하는 이야기마저 한 줄로도 안 나옵니다. 책 첫머리에 ‘강’을 노래하는 말마디가 몇 줄 나오기는 하되, 냇물이 어떠한 숨결이고 무늬이고 빛깔이고 냄새인지 같은 이야기는 따로 없습니다. “나한테 강은 형이자 누이이자 숙모이자 친구이자 음식이고, 술이자 목욕탕이기도 해(20쪽).” 같은 이야기가 끝입니다.


  미국에서 고전 동화로 손꼽는 《초원의 집》을 보면, 집을 어떻게 짓고, 밥을 어떻게 지으며, 옷을 어떻게 짓는가 같은 이야기가 아주 꼼꼼하면서 부드럽게 흐릅니다. 우물을 어떻게 파고, 새로운 집으로 떠날 적에 짐을 어떻게 꾸리며, 밥상은 어떻게 차리고, 설거지는 어떻게 하고, 씨앗은 어떻게 심고 …… 같은 이야기가 군더더기 없이 맑고 밝게 흐릅니다.


  이와 달리 영국 고전 동화라 하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보면, 온통 ‘소비’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쓰고 저것을 누리고 하는 이야기만 있을 뿐, 이것과 저것을 어떻게 지어서 누리는가 하는 이야기는 참말로 책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로조차 안 나옵니다.



.. 모울이 새로운 소식을 들려주었다. “얘기 들었니? 강마을에선 온통 그 얘기뿐이야. 토드가 오늘 새벽에 기차를 타고 시내에 가서 아주 커다랗고 비싼 자동차를 주문했대.” … “인간들은 늘 어딘가에 도착해서 한동안 머물고, 번창하고, 건물을 짓고는 또 떠나지. 그게 그들이 사는 방식이야 … 인간들이 사라진 건 세찬 바람과 끈질긴 비가 세상을 뒤흔들던 때였어. 몇 년 동안 그치지 않고 계속 비가 내렸지. 우리 오소리들도 그 일에 한몫 거들었을지 누가 알겠니? 도시는 점점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았어.” ..  (60, 102쪽)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보면, 사람 사이에서 온갖 모험을 하는 여러 들짐승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들짐승은 사람과 똑같은 옷을 입고, 사람과 똑같은 집에서 살며, 사람과 똑같은 밥을 먹습니다. 두꺼비가 살코기를 접시에 담아서 먹습니다. 오소리와 족제비가 술을 마십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라는 책에 여러 들짐승을 ‘주인공’처럼 집어넣었지만, 이들 몸짓이나 삶이나 생각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름과 겉모습만 사람이 아닌 들짐승으로 다루었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짐승’이나 ‘벌레’를 좋아한다고 여겨, ‘주인공’과 ‘등장인물’을 짐승이나 벌레로 꾸몄을 뿐입니다.



.. “저,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아주머니는 세탁 일을 한다고 하셨죠? 바로 그거예요. 나는 보시다시피 기관사예요. 끔찍하게 옷을 더럽히는 직업이죠. 날마다 그렇게 많은 셔츠를 벗어 놓으니 제 아내가 빨래라면 진저리를 내는 것도 당연해요. 만약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가서 더러운 셔츠들을 빨아 주신다면, 이 기차에 태워 드리겠어요. 회사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이건 아주 특별한 경우니까요.” … 래트는 이렇게 말하고 서둘러 집으로 갔다. 그리고 도시락 바구니를 꺼내어 음식을 간단히 챙겼다. 손님의 태생과 입맛을 생각해서 기다란 프랑스 빵 한 덩어리와 마늘 생그리어에서 꺼낸 소시지, 저장해 두었던 치즈 조금 ..  (199∼200, 229쪽)



  영국에서 영국 아이들이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라는 책을 신나게 즐기는 일은 그 나라 삶입니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한국 아이들이 이 책을 어떻게 즐길 만할까요? 현대문명과 도시문명을 찬양하듯이 그리는 이 작품에서 무슨 ‘자연’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자연 묘사’조차 한 줄로도 안 나오는 작품인데, 이 책에서 어떤 ‘자연 예찬’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해리 포터》를 쓴 사람도 어릴 적에 이 책을 신나게 읽었다고 하는 추천글을 붙이면, 이 책을 한국 아이들도 읽을 만한가요? 우리가 이 땅에서 아이들한테 선물처럼 물려줄 ‘모험 이야기’는 기껏 ‘마차를 밀어낸 자동차’에 흠뻑 사로잡혀서 고속도로를 아주 거침없이 싱싱 달리는 짓거리일는지요? 시골길에서도 자동차를 마구 달려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처박는 몸짓이 아이들한테 물려줄 ‘모험 이야기’일는지요?



.. 래트는 제비들을 질투하면서 물었다. “그럼 도대체 왜 다시 돌아온 거야? 이렇게 초라하고 재미없는 마을에 무슨 볼일이 남아서?” 한 제비가 말했다. “때가 되면 또다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싱싱한 풀, 촉촉한 과수원, 따뜻한 날씨, 곤충이 사는 연못, 소가 풀을 뜯고, 건초를 만들고, 죄 없는 이브가 사는 집 주위에 늘어선 농장 들이 우리를 불러대는 소리가 말이야.” … 아이들이 떼를 쓰거나, 말을 듣지 않거나, 도저히 입을 다물지 않거나, 잘못을 뉘우치지 않을 때에는 무서운 배저 아저씨가 와서 잡아갈 거라고만 하면 금세 잠잠해졌다. 비록 남들과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배저 아저씨에게 이것은 참으로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다 ..  (216, 320쪽)



  고전이나 명작을 읽히는 일은 나쁘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고전이나 명작을 읽히는 일이 썩 좋다고도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이들한테 고전이나 명작을 읽힐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들도 읽고 어른들도 읽을 ‘이야기’라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아름다운 삶이 따사롭게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삶을 그리지 않고 툭탁질을 다루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이모저모 ‘가르침(교훈)’은 있으리라 느낍니다. 욕심쟁이에다가 수다쟁이에다가 자랑쟁이인 두꺼비를 빗대어 아이들한테 어떤 교훈을 심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이런 교훈 때문에 꼭 이 책을 읽혀야 한다면, 따로 아이들한테 책을 읽히려 하지 말고, 어버이 누구나 아이를 곁에 앉히고 먼먼 옛날부터 이 땅에서 내려온 옛이야기 한 토막을 조곤조곤 입으로 들려주면 넉넉하리라 생각합니다. 꼭 책을 거쳐서 ‘교훈 심기’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아이를 가르치거나 키울 수 있습니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이 책을 쓴 분이 이녁 아이한테 들려주려고 쓴 책이라고 합니다. 많이 아픈 이녁 아이한테 ‘영국 문화’와 ‘영국 사회’와 ‘영국 현대문명’을 알기 쉽도록 풀어서 보여주려고 이러한 책을 썼다고 느낍니다. 몸이 아파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하는 이녁 아이한테 여러모로 생각힘을 북돋우려고 이런 이야기를 쓸 만하리라 느낍니다. 그뿐입니다. 4348.3.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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