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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북거, 아북거 ㅣ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3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 시공주니어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89
네 짝님 마음을 아니?
― 아북거 아북거
로알드 달 글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1997.11.14.
사귀고 싶은 동무가 있으면 온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귀고 싶은 동무한테 다가서고 싶으면 그 동무가 좋아하거나 바라거나 꿈꾸는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귀고 싶은 동무더러 ‘무턱대고 나한테 따라오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함께 걷는 길을 생각해야 하고, 함께 노래하는 길을 살펴야 하며, 함께 사랑할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함께 어울리는 동무가 있으면 따사롭게 마주해야 합니다. 함께 노는 동무더러 무턱대고 나를 따라오라 할 수 없습니다. 나 혼자만 재미난 놀이를 할 수 없고, 나 혼자만 맛난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함께 즐길 놀이를 생각할 노릇이고, 함께 나눌 밥을 헤아릴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두 나라가 서로 이웃이 되려고 하는 때를 헤아려 보셔요. 한쪽 나라가 다른 나라더러 ‘너희 나라는 나빠!’ 하고 외치면 두 나라가 이웃이 될 만할까요? 한쪽 나라가 다른 나라더러 ‘너희 나라는 나빠서 우리가 군대를 이끌고 짓밟아 주겠어!’ 하고 외치면 두 나라는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 문제는, 실버 부인이 열렬히 사랑을 쏟아붓는 상대가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그 상대는 바로 알피하고 불리는 조그만 거북이었다 … 호피 씨는 거북이 되어도 전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거북이 된다는 것이, 매일 아침 실버 부인이 자기에게 다정다감한 말을 속삭이며 등을 어룸나져 주는 것을 뜻한다면 말이다 .. (16∼17, 18쪽)
로알드 달 님이 빚은 어린이문학 《아북거 아북거》(시공주니어,199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북거 아북거》에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웃집에는 호피 아저씨가 있고, 아랫집에는 실버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이웃으로 지냅니다. 사이좋은 이웃인데, 호퍼 아저씨는 실버 아주머니하고 ‘이웃으로만 지내기’보다 한집을 이루어서 살고 싶습니다. 이리하여, 호퍼 아저씨는 실버 아주머니하고 함께 한집에서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외국어인가요?” 실버 부인은 어안이 벙벙해져 물었다. “거북들의 말이죠. 거북들은 무엇이든지 거꾸로 하는 동물들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말도 거꾸로 써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군요. 정말 대단하세요. 그런데 ‘쑥쑥’이라는 말이 굉장히 많이 있네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실버 부인이 물었다. “‘쑥쑥’이라는 말은 어느 언어에서나 대단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단어랍니다.” .. (32, 34쪽)
두 사람은 어떻게 하면 ‘한집 사람’이 될까요? 둘은 어떻게 해야 ‘이웃집 사람’에서 ‘한집 사람’으로 거듭날까요? 네, 두 사람이 한마음이 되면 ‘한집 사람’이 될 테지요. 먼저 한 사람부터 다른 한 사람 마음을 읽고, 다른 한 사람 마음으로 따사롭게 다가설 수 있으면, 둘은 바야흐로 한집 사람으로 거듭날 테지요.
이리하여, 실버 아주머니한테 마음이 끌린 호퍼 아저씨는 실버 아주머니가 아끼고 돌보는 거북이를 함게 아끼고 돌보는 길을 살핍니다. ‘내 뜻’을 바보스럽거나 우악스레 밀어붙이려 하지 않습니다. 호퍼 아저씨한테 마음이 있는 실버 아주머니가 따사롭게 마음을 열 수 있을 때까지 기쁘게 기다리면서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실버 아주머니가 기쁘게 웃음짓는 일을 살피고, 실버 아주머니와 함께 호퍼 아저씨도 멋지고 신나게 웃음지을 만한 일을 꾀합니다.
.. “이게 모두 우리 알피 덕택이에요.” 실버 부인은 다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히 고마운 녀석이죠. 우리 영원히 데리고 살도록 합시다.” .. (78쪽)
사랑은 아주 쉽습니다. 서로 한마음이 될 때에 사랑이 싹틉니다. 사랑은 아주 따사롭습니다. 서로 아끼면서 즐겁게 돌볼 수 있는 마음이기에 사랑이 자랍니다. 사랑은 아주 기뻐요.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한길을 노래하면서 걸어가니, 이 사랑이란 늘 노래잔치요 춤잔치이며 기쁨잔치입니다.
‘사랑’은 입맞춤이나 손잡기가 아닙니다. ‘사랑’은 마음짓기입니다.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한마음이 되어 한길을 기쁘게 노래하면서 걷는 마음살이입니다.
사랑은 어른만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어른도 하고 아이도 합니다. 누구나 사랑이 됩니다. 마음을 따스하게 돌보고, 마음을 넉넉하게 가꿀 때에, 누구나 가슴에서 사랑이 태어납니다. 《아북거 아북거》는 아이들도 ‘사랑’이 무엇인지 환하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이끄는 예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로알드 달 님은 “어린아이들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쑥쑥 크고 있지만 어머니들은 옷이 맞지 않을 때까지는 그걸 전혀 느끼지 못한다(59쪽).” 같은 이야기를 살짝 곁들입니다. 참말 이럴까요? 참말 이럴 수 있을까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이 말은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들 몸이 자라는 흐름을 못 알아볼 수 없어요. ‘어머니는 아이가 자라는 결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기다립’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저 스스로 얼마나 자랐는가를 깨달으면서 기쁘게 웃음짓고 노래하는 때까지 기다립니다. 아이가 스스로 노래하고 웃을 적에 비로소 말하지요. ‘어머나, 네가 이렇게 컸구나’ 하고.
《아북거 아북거》에 나오는 실버 아주머니는 이녁 거북이가 커졌다가 작아진 줄 몰랐을까요? 모를 턱이 없습니다. 모른 척을 했을 테지요. 거북이를 사이에 놓고 실버 아주머니한테 따스하게 다가오려는 호퍼 아저씨 마음을 읽고, 느긋하고 넉넉하게 기다렸으리라 느낍니다. 사랑으로 사람을 믿고 다가오려는 따스한 숨결을 느끼면서, ‘아이 같은 호퍼 아저씨’가 스스로 기쁜 사랑을 채워서 다가오는 날까지 날마다 두근두근 기다렸으리라 느낍니다. 4348.3.2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