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숲 26 한정판 - 완결
이시키 마코토 지음,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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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32



‘끝’이 끝이 아닌 이야기

― 피아노의 숲 26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

 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5.6.14. 6500원



  이시키 마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피아노의 숲》(삼양출판사) 스물여섯째 권이 나왔습니다. 스물다섯째 권으로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짓는구나 하고 느꼈는데 한 권이 더 나왔습니다. 이제 스물여섯째 권은 참말로 ‘끝’을 맺는 이야기이리라 생각합니다. 설마 여기에서 일부러 한 권을 더 늘리지는 않을 테지요. 스물여섯째 권은 ‘추억의 미니 화보집’이라고 해서, 첫째 권부터 스물다섯째 권에 이르는 겉그림을 한 자리에 모으는 조그마한 책을 선물로 붙여 주었습니다.



“너의 피아노는 우연인지 기적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안에서는 대 사건이었어.” “고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도 모든 게 대 사건이에요. 피아노는 우연이 아니었다고 믿고 싶지만, 결과는 기적이네요.” (12쪽)



  ‘숲 가장자리’에서 태어나 마을이나 학교나 사회에서 온통 버림이나 따돌림을 받는 터전을 겪어야 하던 ‘이찌노세 카이’는 ‘아지노 소우스케’를 만나면서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어요. 카이는 숲에 버려진 피아노를 오직 제 놀잇감이자 놀이동무로 삼으면서 어린 나날을 보냈는데, 카이가 숲에서 찾은 버려진 피아노는 바로 ‘아지노가 버린 피아노’였다지요. 아지노는 사고로 한손을 쓸 수 없는 몸이 되면서 피아노를 스스로 버렸는데, 마침 아지노가 버린 피아노가 뜻밖에 ‘숲 가장자리’로 흘러들었고, 그곳에서 외톨이처럼 자라던 카이가 ‘버려진 피아노’를 버려진 피아노가 아니라 ‘숲을 밝히는 고요한 새 피아노’로 여겼어요.



“불만이 있으시면 다음부턴 회장님이 이곳에 오셔서, 직접 그 귀로 경연자들의 피아노를 들어 주세요!” (41쪽)



  만화책 《피아노의 숲》은 바로 이 같은 줄거리로 첫머리를 열었습니다. 버려진 마을과 버려진 아이가 버려진 연주자한테서 버려진 피아노를 만나는 이야기가 첫 줄거리예요. 이 다음부터는 아지노가 ‘작은 초등학교 음악 교사’로 일하면서 살림돈을 버는 줄거리가 흐르고, 이때에 카이를 만나는 줄거리가 흐르지요. 아지노는 이녁이 버린 피아노가 ‘피아노도 노래도 배운 적이 없는 시골스러운 아이’가 마음껏 치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요. 바야흐로 새로운 눈을 뜬다고 할까요. 이제껏 배운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할까요.


  아지노는 카이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꿈꾸기로 하지요. 아무것도 모르지만 모든 것을 하는 카이를 보면서, 이 아이가 앞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익혀서 ‘어떤 것’도 카이 마음대로 이룰 수 있도록 길동무가 되겠노라 하고 꿈을 꾸어요.



“이찌노세 군은 앞으로 자신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인생에 있어서, 당신을 피아니스트로 복귀시키는 일이 절대 불가결이라고 하더군요.” “네?” “그렇게 말하며 저에게 당신의 수술을 의뢰해 왔습니다.” ‘뭐?’ “수술 얘기는 이찌노세 군이 아니라, 모두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아지노 씨. 사고로 부상을 입은 당신의 왼손 얘기입니다.” (108∼109쪽)



  아지노한테서 피아노와 노래와 삶과 살림과 사랑 모두를 처음으로 배우는 카이는 아지노한테서 배우면 배울수록 ‘고마움’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데, 여기에 한 가지 마음을 더 키웁니다. 무엇인가 하면, ‘숲 가장자리 마을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던 저를 살려내면서 키운 아지노한테 무언가 하나 ‘선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키우지요.


  이 꿈은 바로 ‘한손을 사고로 잃어 피아노 연주자로 더는 뛰지 못하는 아지노’한테 ‘사고로 잃은 한손’을 되찾도록 하는 일입니다.


  아지노가 한손을 잃다시피 한 때에서 스물다섯 해가 흐른 때에는 ‘옛날에는 할 수 없던 수술’을 ‘이제는 손쉽게 할 수 있는 수술’로 바뀌었다고 해요. 참말 그렇겠지요? 만화책 《피아노의 숲》이 처음 나오던 때만 하더라도 인터넷은 그리 발돋움하지 않았고, 손전화도 그냥 ‘전화만 되던 손전화’였습니다. 만화책 주인공인 아지노한테 스물다섯 해가 흐른 나날뿐 아니라, 이 만화책이 나오고 또 나오며 기나긴 해가 흐른 나날을 돌아본다면, 참으로 모든 것이 아주 새롭도록 달라지거나 거듭났습니다.



“아지노의 손이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지노는 그런 생각이 없더라도요. 그만큼 피아노를 쳐 왔던 손은, 손가락은, 무대에 오르고 싶어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129쪽)



  만화책 《피아노의 숲》은 ‘즐거운 끝(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느 모로 보면 ‘즐거운 끝’이지만, 곰곰이 돌아보면 좀 다른 말을 해야지 싶어요. 즐거움은 언제나 있었거든요. 카이가 숲 가장자리 마을에서 살며 학교나 사회에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았을 적에도 카이는 늘 ‘버려진 피아노를 치면서 즐거움을 스스로 지었’어요. 그러니까 카이로서는 늘 ‘즐거운 삶’이에요. 이런 카이한테 아지노는 ‘새로운 삶’을 선물했고, 카이도 스스로 ‘새로운 삶’을 더 힘차게 가꾸었습니다.


  이 흐름에서 아지노만큼은 스스로 ‘즐거운 삶’도 ‘새로운 삶’도 북돋우거나 가꿀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피아노의 숲》 스물여섯째 권 이야기에서 카이가 아지노를 일깨워서 ‘낡은 틀’을 버리고 ‘아지노 선생님 스스로 마음 깊이 하고 싶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자꾸자꾸 건드립니다. 선생님한테서 “바보구나!” 하는 소리를 듣더라도 ‘쇼팽 콩쿠르 우승자’로서 엄청난 돈과 이름값을 거머쥘 수 있는 자리까지 가볍게 내려놓으면서 ‘아지노 선생님이 한손을 되살리는 길을 걷도록’ 곁에서 새로운 길동무가 되어 줍니다.



“내 일 따위는 어찌되든 좋아! 너는 너 스스로의 일만 생각하면 돼!” “어찌되든 좋지 않아요! 나는 말이죠, 아지노랑 연습하는 게 100배는 더 중요하다구요!” “바보구나!” (254쪽)



  이리하여 《피아노의 숲》은 스물다섯째 권에서 ‘카이가 아름답게 우승하는 모습’으로 한 번 끝을 맺었지만, 스물여섯째 권에서 ‘카이와 아지노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다시금 끝을 맺습니다. 우리도 누구나 무엇이든 스스로 마음에 품는 대로 하거나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들려주며 새롭게 끝을 맺습니다.


  피아노를 빼어나게 쳐야 하는 삶이 아니라, 어떤 일을 뛰어나게 해야 하는 살림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늘 즐거움과 기쁨으로 사랑을 가꾸는 꿈을 마음에 품을 적에 날마다 새롭구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 《피아노의 숲》이리라 생각합니다. 2016.6.2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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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다이家 사람들 3 삼양출판사 SC컬렉션
모리모토 코즈에코 글.그림,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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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30



사람을 만나 사랑을 이루는 길

― 코우다이 家 사람들 3

 모리모토 코즈에코 글·그림

 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6.5.6. 7000원



  모리모토 코즈에코 님 만화책 《코우다이 家 사람들》(삼양출판사,2016) 셋째 권을 읽습니다. 꿈나라에 젖어들면서 스스로 기쁨이나 슬픔을 일으키는 아가씨는 예나 이제나 이 같은 모습을 그대로 잇습니다. 다른 사람 마음을 읽을 줄 알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 마음을 읽으면서 외려 스스로 마음을 굳게 닫으면서 지내던 젊은 사내는 꿈나라 아가씨를 마주하면서 차츰 마음을 부드럽게 열고, 이윽고 ‘함께 있으면서 마음이 느긋하고 즐거운 사람’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대목을 깊이 깨닫습니다. 이리하여 젊은 사내는 꿈나라 아가씨하고 혼인을 하고 싶은데, 이 젊은 사내 집안에서 어머니 한 사람이 손사래를 쳐요. 모든 일에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어머니는 꿈나라 아가씨가 어쩐지 맹하거나 멍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우리가 결혼하는 거랑은 관계없으니까.” “그렇다면, 우리들, 사랑의 도피를 하는 거야?” (16쪽)


“어쨌든 엄마의 허황된 얘기는 잊어 줬으면 좋겠어.” “응.” ‘그치만 미츠마사 씨의 어머니인걸. 잊고서 결혼을 하다니,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야.’ (19쪽)



  우리는 어떤 사람을 좋아할 만할까요? 나를 돋보이게 해 줄 만한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할까요? 나한테 돈을 선물해 줄 만한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할까요? 내 일을 덜어 줄 만한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할까요? 이와 달리 나를 돋보이게 해 주지 않을 만하면 안 좋아할 만할까요? 나한테 돈을 안 줄 만한 사람이라면 안 좋아할 만할까요? 내 일을 안 덜어 줄 만한 사람이라면 안 좋아할 만할까요?


  만화책 《코우다이 家 사람들》을 이끄는 주인공 사내는 오직 하나를 생각하면서 한 사람을 바라봅니다. 사랑스러우면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꿈을 짓는 생각이 있느냐라고 하는 모습 하나를 살피면서 바라보아요. 이 만화책을 이끄는 주인공 가시내는 마음속으로 꿈을 짓듯이 그리는 사랑 하나만 바라보고요.



“할머니도 찬성이라면 엄마를, 어떻게든 하는 거, 도와줄 거지?” “만나기 전부터 난 찬성이야.” “어?” “미츠 너를 보고 곧바로 알았지. 넌 셋 중에서도 가장 타인과 엮이지 않으려 하잖니. 어릴 적부터 마음속에 벽을 만들고선 틀어박혀 있었어. 그랬는데 그 벽이 지금 좋은 느낌으로 허물어지고 있는 게 느껴지거든.” (26∼27쪽)



  무엇을 바라보든 좋거나 나쁘지 않다고 느낍니다. 무엇을 바라보든 모두 우리 삶이나 살림이 된다고 느낍니다. 무엇을 바라보든 스스로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라야 즐거울 수 있다고 느낍니다. 나한테는 좋아도 너한테는 안 좋을 수 있겠지요. 너한테는 좋아도 나한테는 안 좋을 수 있을 테고요. 어느 쪽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 되든 내가 스스로 내 삶과 살림을 즐겁게 짓겠다고 하는 생각이 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이리하여 만화책에 나오는 두 주인공은 이 길대로 씩씩하게 나아갑니다. 다른 눈치를 보지 않아요. 스스로 가장 좋아할 만한 길을 생각하고, 스스로 가장 사랑할 만한 길을 걸으려 하며, 스스로 가장 꿈꾸는 아름다운 살림을 함께 지으려 합니다.



“정말이지, 별 시답잖은 능력을 유전시켜서 미안하구나.” “무슨 말이야. 이제 와서.” “타인의 마음 같은 걸 읽을 수 있으면 살아가기 힘들잖니. 함께 있어도 마음 편한 타인은 좀처럼 없지. 그런 의미에서, 줄곧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과 만나는 건 정말 행운인 거야. 소중히 대하렴.” (28쪽)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이루는 길을 갑니다. 내가 너를 만나서 사랑을 이루고, 네가 나를 만나서 사랑을 이룹니다. 너랑 나는 서로서로 모든 것을 빠짐없이 갖추었기에 사랑할 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맨몸이거나 빈손일 수 있으나, 즐겁게 새로 짓는 기쁨을 누리려고 하는 꿈을 키우기에 아름답게 사랑을 합니다. 우리는 빈털터리이거나 알몸뚱이라 하더라도 활짝 웃으면서 노래하는 마음이 되기에 홀가분하게 사랑을 합니다. 2016.6.2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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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코와 술 5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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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31



아이 같은 마음으로 술 한잔 즐기는 아가씨

― 와카코와 술 5

 신큐 치에 글·그림

 문기업 옮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16.4.25. 8000원



  만화책 《와카코와 술》은 일본에서 만화영화와 연속극으로도 나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 작품을 연속극으로 새롭게 꾸몄다고도 해요. 나는 집에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았고 방송을 보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 만화를 연속극으로 새롭게 꾸며서 내보냈는지를 여태 몰랐습니다. 한국에서는 연속극으로 새롭게 꾸미면서 〈나에게 건배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만화책에는 ‘와카코’라고 하는 젊은 아가씨가 혼자 술집을 다니면서 술맛을 즐기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굳이 술동무를 찾지 않고, 딱히 술벗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러한 줄거리이니 한국에서 새로운 연속극을 꾸미면서 “나에게 건배를” 같은 이름을 붙일 만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참으로 그렇지요. 바로 내가 나한테 술잔을 짠하고 부딪힙니다. 바로 내가 나한테 ‘너 오늘 하루 씩씩하게 잘 보냈어!’ 하고 북돋우면서 술 한잔 내밀 만합니다.



사람의 따뜻한 온기를 느낀 날에는 따뜻한 술로 마무리하고 싶다. (11쪽)


이 굴에 우스터소스, 케첩, 마요네즈라는 3대 어린이 양념을 찍어 먹는 거야. 들썩이는 마음을 억누르며 맥주를 한 모금. (38쪽)



  만화책 《와카코와 술》 다섯째 권 첫머리를 보면, 아침에 낯선 사람한테서 따스함을 느낀 기쁨을 저녁에 술 한잔으로 마무리하겠노라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러한 기쁨은 굳이 술이 없어도 얼마든지 누릴 만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혼자 호젓하게 술 한잔을 즐기면서 더욱 새삼스레 기쁨을 북돋울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만화책 주인공 와카코는 저녁에 찾아간 술자리에서 ‘이녁도 모르는 사이’에 낯선 옆자리 사람한테 따스한 손길을 베풉니다. 아무것이 아니라 할 만한 손짓이었지만, 이 손짓으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쏠쏠히 도움을 받았고, 도움을 받은 옆자리 사람은 웃음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기쁨은 기쁨으로 이어지는 셈일까요. 내가 받은 기쁨은 내가 남한테도 스스럼없이 나누어 주는 기쁨이 되는 셈일까요. 아니, 남이 나한테 기쁨을 베풀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얼마든지 다른 사람한테 기쁨을 나누어 줄 수 있겠지요.



아침술은 어떤 맛일까. 아침부터 술을 마신다는 배덕감을 초월해,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다 들어. (44쪽)


튀김의 풍성함. 매실과 차조기의 산뜻함. 야채, 고기. 정성을 가득 담아 만든 색이 선명한 요리라 소주와 한층 더 잘 어울리는구나. (69∼70쪽)



  신나게 밥을 짓습니다. 나는 내가 먹을 밥을 늘 스스로 짓는다고 할 텐데, 곁님하고 아이들이 먹을 밥을 늘 손수 짓습니다. 엊그제 아침에 미역을 불리니 이 모습을 본 곁님이 무척 반깁니다. 미역국이 더없이 맛있으니 반갑다고 한마디를 합니다. 처음에는 그런가 하고 그저 그렇게 여겼는데, 냄비에 밥물을 맞추어 불을 올리고 나서 미역국에 넣을 무를 썰고 소고기를 헹구다가 문득 다시 생각해 보았어요. 늘 밥을 지어서 차리는 사람으로서 ‘맛있다’라든지 ‘반갑다’라든지 ‘즐겁다’ 같은 아주 짤막한 한 마디를 들으면, 그때에는 몰라도 나중에 밥을 차리고 치울 적에 알게 모르게 힘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아이들하고 밥상맡에 즐겁게 둘러앉아 한 끼니를 맛나게 먹습니다. 밥그릇을 비우고 밥상도 이럭저럭 치운 뒤에 막걸리 한잔을 밥상맡에 올려 봅니다. 만화책에 나온 젊은 아가씨만큼은 아닐 테지만, 나도 혼자서 술 한잔을 즐겨 보자는 생각이 듭니다. ‘술을 이야기하는 만화’를 읽을 적에는 이렇게 술 한잔을 옆에 놓고서 읽어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술을 마실 때 말 상대가 되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도 꽤 즐거운 것 같아. 술과 안주가 맛있기도 하지만, 역시 이런 것도 밖에서 마실 때의 즐거움이겠지? (98쪽)


아아아, 아아아아, 이 작은 한 접시 안에 감동이 살아 있구나. (102쪽)



  만화책 《와카코와 술》이라는 작품은 ‘맛난 술’이 얼마나 맛난가를 전문가처럼 짚지 않습니다. 이 만화책은 ‘맛난 술을 빛내는 안주’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전문가처럼 조목조목 밝히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요리법(레시피)’은 하나도 안 다룹니다.


  마치 아이들처럼 밥 한 그릇을 기쁘게 맞아들이는 마음이 흐르는 이야기라고 할 만합니다. 아이들은 밥상맡에서 이 밥이나 국이나 반찬을 ‘어떻게 지지고 볶고 삶고 다듬고 했는가’를 묻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입에 들어오는 밥이 얼마나 ‘맛있’는가를 생각할 뿐입니다. 아이들은 저희가 수저를 들고 먹는 이 밥으로 얼마나 ‘즐거운’가를 헤아릴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처럼 가볍고 산뜻한 마음으로 술 한잔을 즐기는 젊은 아가씨 삶이 차분하게 드러나는 만화책 《와카코와 술》이라고 할 만해요. 대단한 ‘미식가’도 아니고 놀라운 ‘맛집 찾기’도 아닌 만화입니다만, 수수한 삶을 수수하게 사랑하고 수수하게 누리는 기쁨을 조용히 드러내는 만화라고 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코리아타운을 산책. 풍겨 오는 불고기의 향기. 가게 앞에 늘어선 다양한 김치와 부침개. 모든 게 매력적. 이렇게 쭉 늘어놓아서 그런지 다른 음식도 덩달아 맛있어 보인다. 그래서 아무 가게나 얼른 들어가 한잔 마시고 싶은 그런 충동에 자꾸만 휩싸인다. (137쪽)



  《와카코와 술》 다섯째 권 끝자락에는 ‘코리아타운’을 사뿐사뿐 걷다가 떡볶이에 막걸리를 즐기는 모습이 흐릅니다. 떡볶이에 막걸리라니! 한국에도 이처럼 분식하고 술을 즐기는 곳이 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떡볶이라면 아이들하고 즐기는 한 끼니라고만 여겼는데, 술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렇게 어우를 수 있겠구나 싶군요. 떡볶이에 곁들이는 튀김도 멋진 술안주라고 말하는 대목을 보면서, 술꾼(또는 술님) 눈길로는 이렇게 볼 수 있구나 싶기도 해요.


  그리고 만화책에 나오는 막걸리 한 병(페트병) 값은 1000엔입니다. 일본사람으로서는 막걸리 한 병에 1000엔이 여느 값일 테지요. 한국에서는 막걸리 한 병에 1000원 언저리이지만요. 다시금 재미있네 하고 생각하면서 다섯째 권을 덮습니다. 2016.6.17.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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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의 남편 1
타가메 겐고로 지음, 김봄 옮김 / 길찾기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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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29



아빠가 둘, 또는 서로 아끼는 곁님

― 아우의 남편 1

 타가메 겐고로 글·그림

 김보미 옮김

 길찾기 펴냄, 2016.5.10. 7000원



  만화책 《아우의 남편》(길찾기,2016)은 ‘남자 동성애’를 다룹니다. 그렇다고 이 만화책에서 사내끼리 살을 섞는 대목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둘째 권에서는 달라질는지 모르나, 이제 막 한국말로 나온 《아우의 남편》 첫째 권을 보면, ‘남동생이 남자와 혼인한’ 이야기가 흐르며, 이를 어린이 눈높이에서 다루려고 합니다.



“우와, 외국인이다.” “외국인 아닙니다. 캐나다 사람.” (19쪽)


“저는 카나의 고모부입니다.” “무슨 말이야? 의미를 모르겠어!” “저는 캐나다에서 야이치 씨의 남동생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니까 카나의 고모부예요.” (21쪽)



  쌍둥이 형제 가운데 동생은 어느 날 쌍둥이 형한테 ‘드러내기(커밍아웃)’를 했고, 이무렵부터 쌍둥이 형은 동생을 차츰 멀리했다고 해요. 쌍둥이 동생은 이즈음부터 다른 길을 걷다가 캐나다로 건너가서 살았고, 그곳에서 ‘합법 동성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은 캐나다에서 그만 죽었고, 이녁하고 함께 살던 캐나다 사내가 일본으로 건너옵니다. ‘짝을 잃은 캐나다 사내’는 이녁 짝이 태어나서 자라던 일본이라는 나라가 그리웠고, 일본에 있는 ‘이녁 짝 식구’가 궁금했다고 해요.



“야이치 씨, 카나 아빠. 카나를 위해 매일 밥 짓고 청소하고 세탁하고, 그거 훌륭한 일이잖아요?” (68쪽)


“캐나다인 고모부가 생기다니, 왠지 대단하고 왠지 신나!” “그런가? 나도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되려나.” (74∼75쪽)



  아이를 낳으려면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만 있거나 아버지만 있다면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나 아버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보살필’ 수 있어요. 낳지 못하더라도 너르고 따스한 사랑은 얼마든지 베풀 수 있지요.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어머니만 둘’이라든지 ‘아버지만 둘’인 집이 제법 있어요. 한국에서는 이러한 집을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한국은 아직 ‘동성결혼’을 법으로 받아들이지 않거든요.


  그런데 말이에요, 혼인을 한다고 해서 ‘살섞기’를 꼭 해야 하지 않습니다. 동성이 아닌 이성끼리 혼인을 했어도 ‘살섞기’를 하지 않는 집이 차츰 늘어나요. 동성이 아닌 이성끼리 살면서 ‘살섞기’를 안 할 뿐 아니라 아이를 낳지 않는 집도 차츰 늘어나지요. 왜냐하면 서로 마음과 뜻이 맞으면서 고이 사랑하는 살림을 바랄 적에는 살섞기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따사롭고 넉넉한 숨결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허즈밴드는 료우지. 료우지의 허즈밴드는 나.’ 그 말을 들었을 때,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남동생이 남자와 결혼해서 줄곧 내 마음 한구석에서 카나가 한 말처럼 ‘마이크랑 료우지, 어느 쪽이 남편이고 어느 쪽이 아내였어?’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다.’ (91∼92쪽)



  사내와 가시내가 혼인을 하면 어느 한쪽을 아내라 하고 다른 한쪽을 남편이라 해요. 사회라는 틀에서는 이렇게 ‘성별’과 ‘이름(설 자리)’을 가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조금 더 생각해 본다면, ‘남편 몫’이나 ‘아내 구실’을 넘어서 ‘서로 아끼는 사이’로 지낼 수 있어요. 이를테면 성별에 따라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 성별을 가르지 않고 누구한테나 똑같이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저는 ‘곁님’이라는 이름을 제 나름대로 지어서 씁니다. 곁에서 아끼고 보살피는 살가운 임(님)이라는 뜻으로 쓰는 ‘곁님’이라는 이름은 내 짝꿍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기도 하지만, 내 짝꿍이 나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기도 합니다. ‘곁님’이라는 낱말 얼거리처럼 ‘짝님’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해요. 한짝이나 짝꿍을 이루는 살가운 임(님)이라는 뜻으로 ‘짝님’이라고 하지요.


  사랑할 수 있기에 함께 살고,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함께 산다고 느낍니다. 한집에 아버지가 둘일 수 있고, 어머니가 둘일 수 있어요. 아이한테는 고모나 고모부가 모두 사내일 수 있고, 이모나 이모부도 모두 가시내일 수 있어요. 성별로 가르는 겉모습보다 마음으로 드러나는 사랑이 어떠한가를 살필 때에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살림이 되리라 느낍니다. 만화책 《아우의 남편》이 ‘동성결혼’을 바라보거나 마주하는 눈길을 부드러이 어루만져 줄 수 있기를 빕니다. 2016.6.1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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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철공소 5
무네히로 노무라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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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28



용접공을 좋아하는 투박한 만화

― 말랑말랑 철공소 5

 노무라 무네히로 글 ·그림

 이지혜 옮김

 시리얼 펴냄, 2016.3.25. 8000원



  만화책 《말랑말랑 철공소》 첫째 권이 2012년에 처음 나왔을 무렵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그무렵에 이 만화책을 장만하지 못했습니다. 그리 안 두껍고 무지개빛을 넣지 않은 판짜임인데 8000원 값은 세다고 여겼습니다. 《말랑말랑 철공소》는 꾸준히 나오면서 2016년에 다섯째 권이 나옵니다. 책값은 2012년이나 2016년이나 8000원입니다. 다섯 해 동안 책값이 그대로이네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달리 생각해 봅니다. 2016년에 8000원이라면 2012년에 5000원이나 6000원쯤 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고요.



“요짱, 이 일은, 프로 복서처럼 선택된 사람이 아니라, 입사한 날부터 누구든 바로 프로야. 그러면서 기술이 붙어 가지만, 프로 의식만은 가지고 있어야 해. 요짱은 이제 남에게 줄 수 있는 위치니까.” (117쪽)



  만화책 《말랑말랑 철공소》는 책이름처럼 철공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철공소는 용접기를 빌어 쇠붙이를 말랑말랑하게 주무른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단단하고 투박한 쇠붙이를 다루는 사내들은 얼핏 단단하고 투박해 보이지만,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말랑말랑한 마음결이요 살림이라는 대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러면서 ‘철공소 일꾼’을 남편으로 둔 아내가 마을에서 이웃하고 어떤 말을 섞는가 하는 대목도 살짝살짝 재미나게 비추어 줍니다.


  《말랑말랑 철공소》 다섯째 권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이 만화책을 철공소와 용접과 쇠붙이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빚은 작품입니다. 만화로 다루는 이야기가 철공소와 용접과 쇠붙이일 뿐, 여느 순정만화나 운동만화나 생활만화하고 비슷한 결이요 흐름입니다.


  용접공이라고 해서 아주 남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대목을 보여주고, 여느 사람하고 똑같은 용접공이지만 용접공은 용접공 나름대로 기쁨과 보람을 누린다고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앞으로 이 만화책이 더 번역된다고 할 적에 여섯째 권이나 일곱째 권을 새로 장만해서 읽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수수하고 투박한 눈썰미로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만화책입니다만, 바로 이 자리에서 가만히 맴돌기만 하거든요. 꾸준히 ‘다른 이야깃감’을 끌어내어 연재를 잇는 일도 재미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이보다는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숨결과 눈길’을 다룰 때에 비로소 고요히 빛이 나는 어여쁜 수수함이나 투박함으로 거듭나리라 느낍니다.


  한 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는 느낌에 아쉽고, 한 발 더 넓게 얼싸안지 못하는구나 싶은 생각에 밋밋합니다. 2016.5.27.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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