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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코와 술 5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4월
평점 :
만화책 즐겨읽기 631
아이 같은 마음으로 술 한잔 즐기는 아가씨
― 와카코와 술 5
신큐 치에 글·그림
문기업 옮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16.4.25. 8000원
만화책 《와카코와 술》은 일본에서 만화영화와 연속극으로도 나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 작품을 연속극으로 새롭게 꾸몄다고도 해요. 나는 집에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았고 방송을 보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 만화를 연속극으로 새롭게 꾸며서 내보냈는지를 여태 몰랐습니다. 한국에서는 연속극으로 새롭게 꾸미면서 〈나에게 건배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만화책에는 ‘와카코’라고 하는 젊은 아가씨가 혼자 술집을 다니면서 술맛을 즐기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굳이 술동무를 찾지 않고, 딱히 술벗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러한 줄거리이니 한국에서 새로운 연속극을 꾸미면서 “나에게 건배를” 같은 이름을 붙일 만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참으로 그렇지요. 바로 내가 나한테 술잔을 짠하고 부딪힙니다. 바로 내가 나한테 ‘너 오늘 하루 씩씩하게 잘 보냈어!’ 하고 북돋우면서 술 한잔 내밀 만합니다.
사람의 따뜻한 온기를 느낀 날에는 따뜻한 술로 마무리하고 싶다. (11쪽)
이 굴에 우스터소스, 케첩, 마요네즈라는 3대 어린이 양념을 찍어 먹는 거야. 들썩이는 마음을 억누르며 맥주를 한 모금. (38쪽)
만화책 《와카코와 술》 다섯째 권 첫머리를 보면, 아침에 낯선 사람한테서 따스함을 느낀 기쁨을 저녁에 술 한잔으로 마무리하겠노라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러한 기쁨은 굳이 술이 없어도 얼마든지 누릴 만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혼자 호젓하게 술 한잔을 즐기면서 더욱 새삼스레 기쁨을 북돋울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만화책 주인공 와카코는 저녁에 찾아간 술자리에서 ‘이녁도 모르는 사이’에 낯선 옆자리 사람한테 따스한 손길을 베풉니다. 아무것이 아니라 할 만한 손짓이었지만, 이 손짓으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쏠쏠히 도움을 받았고, 도움을 받은 옆자리 사람은 웃음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기쁨은 기쁨으로 이어지는 셈일까요. 내가 받은 기쁨은 내가 남한테도 스스럼없이 나누어 주는 기쁨이 되는 셈일까요. 아니, 남이 나한테 기쁨을 베풀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얼마든지 다른 사람한테 기쁨을 나누어 줄 수 있겠지요.
아침술은 어떤 맛일까. 아침부터 술을 마신다는 배덕감을 초월해,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다 들어. (44쪽)
튀김의 풍성함. 매실과 차조기의 산뜻함. 야채, 고기. 정성을 가득 담아 만든 색이 선명한 요리라 소주와 한층 더 잘 어울리는구나. (69∼70쪽)
신나게 밥을 짓습니다. 나는 내가 먹을 밥을 늘 스스로 짓는다고 할 텐데, 곁님하고 아이들이 먹을 밥을 늘 손수 짓습니다. 엊그제 아침에 미역을 불리니 이 모습을 본 곁님이 무척 반깁니다. 미역국이 더없이 맛있으니 반갑다고 한마디를 합니다. 처음에는 그런가 하고 그저 그렇게 여겼는데, 냄비에 밥물을 맞추어 불을 올리고 나서 미역국에 넣을 무를 썰고 소고기를 헹구다가 문득 다시 생각해 보았어요. 늘 밥을 지어서 차리는 사람으로서 ‘맛있다’라든지 ‘반갑다’라든지 ‘즐겁다’ 같은 아주 짤막한 한 마디를 들으면, 그때에는 몰라도 나중에 밥을 차리고 치울 적에 알게 모르게 힘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아이들하고 밥상맡에 즐겁게 둘러앉아 한 끼니를 맛나게 먹습니다. 밥그릇을 비우고 밥상도 이럭저럭 치운 뒤에 막걸리 한잔을 밥상맡에 올려 봅니다. 만화책에 나온 젊은 아가씨만큼은 아닐 테지만, 나도 혼자서 술 한잔을 즐겨 보자는 생각이 듭니다. ‘술을 이야기하는 만화’를 읽을 적에는 이렇게 술 한잔을 옆에 놓고서 읽어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술을 마실 때 말 상대가 되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도 꽤 즐거운 것 같아. 술과 안주가 맛있기도 하지만, 역시 이런 것도 밖에서 마실 때의 즐거움이겠지? (98쪽)
아아아, 아아아아, 이 작은 한 접시 안에 감동이 살아 있구나. (102쪽)
만화책 《와카코와 술》이라는 작품은 ‘맛난 술’이 얼마나 맛난가를 전문가처럼 짚지 않습니다. 이 만화책은 ‘맛난 술을 빛내는 안주’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전문가처럼 조목조목 밝히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요리법(레시피)’은 하나도 안 다룹니다.
마치 아이들처럼 밥 한 그릇을 기쁘게 맞아들이는 마음이 흐르는 이야기라고 할 만합니다. 아이들은 밥상맡에서 이 밥이나 국이나 반찬을 ‘어떻게 지지고 볶고 삶고 다듬고 했는가’를 묻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입에 들어오는 밥이 얼마나 ‘맛있’는가를 생각할 뿐입니다. 아이들은 저희가 수저를 들고 먹는 이 밥으로 얼마나 ‘즐거운’가를 헤아릴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처럼 가볍고 산뜻한 마음으로 술 한잔을 즐기는 젊은 아가씨 삶이 차분하게 드러나는 만화책 《와카코와 술》이라고 할 만해요. 대단한 ‘미식가’도 아니고 놀라운 ‘맛집 찾기’도 아닌 만화입니다만, 수수한 삶을 수수하게 사랑하고 수수하게 누리는 기쁨을 조용히 드러내는 만화라고 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코리아타운을 산책. 풍겨 오는 불고기의 향기. 가게 앞에 늘어선 다양한 김치와 부침개. 모든 게 매력적. 이렇게 쭉 늘어놓아서 그런지 다른 음식도 덩달아 맛있어 보인다. 그래서 아무 가게나 얼른 들어가 한잔 마시고 싶은 그런 충동에 자꾸만 휩싸인다. (137쪽)
《와카코와 술》 다섯째 권 끝자락에는 ‘코리아타운’을 사뿐사뿐 걷다가 떡볶이에 막걸리를 즐기는 모습이 흐릅니다. 떡볶이에 막걸리라니! 한국에도 이처럼 분식하고 술을 즐기는 곳이 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떡볶이라면 아이들하고 즐기는 한 끼니라고만 여겼는데, 술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렇게 어우를 수 있겠구나 싶군요. 떡볶이에 곁들이는 튀김도 멋진 술안주라고 말하는 대목을 보면서, 술꾼(또는 술님) 눈길로는 이렇게 볼 수 있구나 싶기도 해요.
그리고 만화책에 나오는 막걸리 한 병(페트병) 값은 1000엔입니다. 일본사람으로서는 막걸리 한 병에 1000엔이 여느 값일 테지요. 한국에서는 막걸리 한 병에 1000원 언저리이지만요. 다시금 재미있네 하고 생각하면서 다섯째 권을 덮습니다. 2016.6.17.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