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 2
아오기리 나츠 글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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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시렁 120


《flat 2》

 아오기리 나츠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0.2.15.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럽느냐고 누가 물으면 “글쎄요.” 하는 말이 대뜸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들은 아이대로 저마다 사랑스러우니 우리 아이나 이웃 아이나 다 달리 사랑스러워서 따로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 없다고 느껴요. 제가 대꾸할 만한 말이라면 “아이는 아이답습니다.” 한 마디입니다. 《flat》 두걸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가까운 듯하면서 멉니다. 또 먼 듯하면서 가깝습니다. 고등학생인 푸름이는 매우 어린 조카하고 어울리거나 노는 일이 그리 반갑거나 재미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려니 받아들여요. 이 푸름이 곁에 있는 여러 동무(고등학생)는 어린 조카하고 어울린다니 대견하다 여기면서도 어린 조카 마음을 너무 못 읽는다고 타박합니다. 타박을 듣는 푸름이는 타박을 듣는 까닭을 제대로 읽지 못해요. 문득 생각합니다. 어린이라는 나이에서 푸름이라는 나이로 접어들기만 해도 어릴 적 제 모습을 잊을 수 있겠다고. 그렇다고 아이를 낳는 어른(어버이) 마음을 다 읽어내지는 못하겠지요. 사이에 있는 아이가 사이에서 아이를 바라보고 동무를 바라보다가 하늘도 마을도 가만히 바라봅니다. 저마다 마음자리에 어떤 이야기가 새겨질까요. ㅅㄴㄹ



“보렴, 저렇게 기뻐하잖니. 이런데도 귀찮다거나 기력이 없다고 하면, 넌 악마야.” (132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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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비히 B.
데즈카 오사무 지음, 조민경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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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115


《루드비히 B.》

 데즈카 오사무

 조민경 옮김

 AK comics

 2017.10.12.



  꿈을 꿀 수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꿉니다. 좁은 우물에 갇혔어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도, 꽃밭에 엎으려 개미를 보더라도, 땡볕에 낫질을 하며 풀을 베더라도, 우리는 마음 가득 꿈노래를 채울 수 있습니다. 꿈을 꿀 수 없다면 어느 때 어느 곳에서라도 못 꿉니다. 가멸찬 어버이 품에서 태어났어도, 빼어난 스승이 가르쳐 주더라도, 훌륭한 이슬떨이가 길을 알려주어도, 가슴을 틔우지 못한 삶에는 어떠한 꿈도 깃들지 못해요. 《루드비히 B.》는 데즈카 오사무 님이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붓을 내려놓은 만화책이라고 합니다. 며칠쯤 더 살 수 있다면 몇 쪽을 더 그릴 수 있었을 테고, 달포쯤 더 살 수 있으면 한두 꼭지를 더 맺을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끝맺지 못한 만화 이야기라 하더라도, 꼭 그려내어 새롭게 꽃피울 숨결을 온누리 아이들한테 들려주고 싶었다 하더라도, 이 애틋한 만화에 흐르는 베토벤이며 노래님 발자국은 우리 마음을 살며시 건드리면서 스스로 꿈을 키우는 길을 비추어 주겠지요. 귀가 닫히기 앞서 숲소리를 하나라도 더 품에 안으려고 했다는 베토벤이라면, 붓을 내려놓기 앞서 아이들 앞날에 꿈이 가득한 사랑을 씨앗 한 톨로 더 심고 싶었던 만화님 데즈카 오사무 어른이었겠지요. ㅅㄴㄹ



“확실히 아까워. 하이든 선생님은 초일류 작곡가야. 하지만 반년 넘도록 이래서야 앞으로도 제대로 배울 수 없을 거야. 게다가 하이든 선생님만이 빈의 음악가는 아니지.” (448쪽)


“여기엔 뭐든지 있어. 훌륭해! 온 우주의 소리가 모여 있어!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신께서는 전 세계의 생물과 자연에 소리와 울음을 주셨어. 어차피 내 귀는 언젠가 멀 거야. 그 전에 이 소리를 다 기억해 둬야 해!” (481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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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리 안에 1
오시미 슈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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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시렁 119


《나는 마리 안에 1》

 오시미 슈조

 장지연 옮김

 대원씨아이

 2015.10.31.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는 눈이 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은 누가 나를 쳐다보는 줄 뻔히 느낍니다. 뻔히 느끼면서도 모른 척하거나 못 느낀 척하지요. 그런데 적잖은 사람들은 멀쩡히 지나가는 사람을 자꾸 쳐다보거나 키들거립니다. 그들 키들거리는 치들은 저희를 두고 누가 키들거리거나 자꾸 쳐다보면 즐거울까요? 《나는 마리 안에》 첫걸음을 읽으면, 시골에서 살던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 서울(도쿄)로 애써 왔으나, 아무런 꿈도 빛도 찾아볼 수 없어서 벼랑에서 굴러떨어졌는데, 편의점에서 자주 스치는 고운 아가씨에 마음이 홀린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만화 이야기를 새로 폅니다. 벼랑에서 굴러떨어졌다고 여겨 마구잡이로 지내던 갓 스물이 넘은 대학생은 어느 날 아침에 깨어 보니 ‘마음이 홀린 아가씨 몸’에 제 넋이 들어갔어요. 넋은 그대로인데 몸이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고운 아가씨 몸에 깃든 넋은 어디로? ‘나’였다고 여긴 몸이 사라지고 ‘넘볼 수조차 없이 빛나는 아가씨 몸’에 내 넋이 깃들어 버렸다면, 나 스스로 나는 쓰레기와 같다고 여긴 사내가 더없이 맑고 고운 아가씨 몸을 움직이는 넋이 되었다면, 누가 ‘나’이고, 누가 ‘나 아닌 숨결’일까요? 길을 잊은 사내는 길을 아예 잃어버릴까요? ㅅㄴㄹ



‘다 알 수 있구나. 쳐다보는 걸. 그렇다면 이제껏 내가 쳐다본 것도 다 들켰겠네?’ (74쪽)


‘낙서 따윈 하나도 없고, 성실하구나, 마리 씨는. 내 교과서는 온통 낙서투성이였는데.’ (94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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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왕자님 1
유아나 카즈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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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118


《인어 왕자님 1》

 카즈미 유아나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6.6.15.



  어릴 적에 누가 ‘왕자님’이란 말을 하면 대단히 거북했습니다. 사내라면 ‘사내’라 하든 ‘남자’라 하면 될 텐데 왜 ‘왕자님’이라 할까요? 이와 맞물려 가시내한테 ‘가시내’나 ‘여자’라 하지 않고 ‘공주님’이라 하는 말씨도 참말로 거북했습니다. 어른이란 사람들이 모조리 ‘왕자병 공주병’에 걸렸나 하고도 생각했습니다. 《인어 왕자님》 첫걸음을 읽으며 ‘왕자님’이란 말에 살짝 걸릴 뻔했지만 “인어 공주” 아닌 “인어 왕자”라고 한 대목이 외려 눈길이 갑니다. 그래요. 인어를 놓고 본다면 공주만이 아니라 왕자도 있어야겠지요. 아니, 인어를 성별로 가르려면 두 성별이 함께 있어야 할 테지요. 만화책에 나오는 인어는 사람이 되고픈 꿈을 키웁니다. 사람이 되려는 뜻은 아주 투박합니다. ‘사람이 되어 사랑을 하고 싶다’고 해요. 응? 인어로 지내면서도 사랑을 할 수 있지 않나? 굳이 사람이 되어야 하나? 사람은 이 땅에서 아름다운 숨결일까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으로 살며 사랑할 적에 아름답게 아끼거나 보듬는 손길일까 잘 모르겠습니다. 만화책 줄거리로 보면 이 땅에서 무엇이든 쓴맛만 보는 사내가 제 목숨을 바쳐 인어 꿈을 들어 주기를 빕니다. 그래요, 사람한테는 이런 모습이 있지요. 제 목숨을 바칠 줄 아는. ㅅㄴㄹ



“그게 가능하다면 그 녀석의 소원을 이뤄 주고 싶어.” “좋아, 그럼 결정한 거다. 그럼 네 1년어치 인생을 사용해 볼까?” (40∼41쪽)


“소중한 건 소중히 아껴야 비로소 정말 소중한 게 되는 거라고. 키스는 좋아하는 상대와 하는 거야. 넌 소중한 걸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 (148∼149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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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비와 세레나데 1 삼양출판사 SC컬렉션
카와치 하루카 지음, 심이슬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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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117


《눈물비와 세레나데 1》

 카와치 하루카

 심이슬 옮김

 삼양출판사

 2018.3.26.



  학교에서 책상에 엎드려 곯아떨어지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수업이 따분해서 곯아떨어졌을 수 있지만, 몸을 푹 쉬고 새로운 꿈나라에서 날아오르고 싶은 마음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몸을 이곳 교실 한켠에 내려놓고서 마음으로 훨훨 날아 먼먼 별나라나 옛날이나 이웃나라로 찾아가서 신나게 돌아다닐 수 있어요. 어느 쪽이 참모습일까요? 자는 모습하고 꿈꾸는 모습 가운데 어느 쪽이 곯아떨어진 아이한테 참넋일까요? 《눈물비와 세레나데》는 증조할머니한테서 받은 목걸이를 찬 아이가 어떤 노래를 들으면 문득 새로운 꿈나라로 가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이 꿈나라는 얼추 백 해쯤 앞서인 일본인데, 아이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인 같은 일본이지만 백 해라는 나날을 거슬러 올라가니 아주 딴 나라에 왔다고 느낍니다. 말은 같아도 말결하고 말뜻이 다르고, 자리는 같아도 사람하고 삶터가 달라요. 그렇지만 아이는 어릴 적부터 한 가지를 마음에 품습니다. ‘히나’라는 아이는 “히나는 히나” 곧 “나는 나”인 줄 알아요. 내가 스스로 나인 줄 알기에 꿈나라를 실컷 누비다가도 이곳으로 돌아옵니다. 내가 스스로 나인 줄 잊는다면 꿈나라이든 이곳이든 그만 길을 잃고 헤매겠지요. ㅅㄴㄹ



“히나는 히나야.” “히나? 이름이 히나야?” “응.” (6쪽)


“히나코는 내가 무섭지 않아?” “처음에는 놀랐지만 도저히 남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걸요.” ‘그렇다. 얼굴이 닮았을 뿐만 아니라 이 느낌은 뭘까?’ (65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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