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 문지아이들
유희윤 지음, 김영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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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85


잎이 더 있든 덜 있든 모두 이쁘다
―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
 유희윤 글·김영미 그림
 문학과지성사, 2017.6.30. 9000원


풀밭 동네 토끼풀 집 아이네.
토끼풀 집 아이들 중에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네.
우리 동네 찬이도 그런데
남다르게 생겼지만 예쁘네.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


  동시집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문학과지성사, 2017)에는 ‘할머니의 한 움큼’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 “할머니의 한 움큼은 / 많기도 하다” 하고 두 줄이 나오는데, 군말도 꾸밈말도 부질없이 이 두 줄로 할머니 몸짓이나 마음이나 살림을 잘 헤아릴 만합니다.

  ‘고모 방’이라는 시를 읽으면 “고모 시집가면 내 차지! // 내가 찜한 고모 방 / 썰렁이가 먼저 차지해 버렸다” 같은 이야기가 흘러요. 고모가 시집을 가면서 빈 방이 생각보다 크고 넓어서 벌렁 드러누워서 ‘이제 내 방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막상 벌렁 드러누워서 넓고 시원한 방을 느껴 보려 하니 무엇보다 ‘썰렁’을 느낀다고 해요. 두 말도 석 말도 덧없이 ‘썰렁’ 한 마디가 아이 마음을 잘 그리는구나 싶어요.


쥐고 있던 주먹
봉긋이 펴 보이네.

그 애 손은
반쯤 핀 연분홍 꽃

연분홍 꽃 속에
까만 씨앗 몇 개 (연분홍 손 꽃)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풀밭에도 있고, 마을이나 학교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는 그저 잎이 하나 더 있을 뿐이에요.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우리 사회나 학교나 마을에서는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를 어떻게 마주할까요?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를 이웃이나 동무로 여기면서 ‘잎이 하나 더 있지 않은 아이’하고 함께 한 교실이나 학교에서 즐거이 어우러지는 배움 얼거리일까요? 아니면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들만 한 학교나 학급에 몰아넣는 틀거리일까요?

  어른들은 아이가 조그맣게 쥔 손에 무엇이 있으리라 생각하려나요. 아이가 꽃씨를 곱게 쥐고서 기뻐하는 줄 느낄 수 있으려나요. 아이가 두 손에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과 꿈’을 쥔 줄 알아챌 수 있으려나요.


까치발 들고
엄마 등 뒤로 다가온 아기
두 팔 벌려
엄마 목을 감는다.

“내 손이 뭐게?”

“엄마 목도리지!”

“따뜻해?”

“응, 아주 따뜻해.” (쉬는 시간)


  아이 손이 목도리가 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손도 목도리가 됩니다. 아이 몸이 겉옷이 되어 줍니다. 어버이 몸도 아이한테 겉옷이 되어 줍니다. 우리는 서로 따뜻하게 품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두 팔을 활짝 벌려 서로서로 포근하게 보듬고 어루만집니다.

  이러한 마음을 늘 건사할 수 있다면,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결로 하루를 맞이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나 누구나 웃음꽃이나 웃음노래가 될 만하겠지요. 1위부터 꼴찌까지 점수를 매기는 학교가 아닌, 경제성장이라는 숫자를 내세우는 사회가 아닌, 기쁘게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한 발짝씩 내딛는 홀가분한 몸짓이 될 테고요.


동생과 싸운다고 벌!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벌!

벌 잘 주는 엄마
자기에게도 벌을 준다

몸무게가 자꾸 는다고
날마다 벌을 준다. (벌 잘 주는 엄마)


  아이한테 벌을 안 주어도 되어요. 어른도 스스로 벌을 안 주어도 됩니다. 몸무게가 자꾸 늘 수 있지요. 아이들이 뭔가 깨뜨리거나 잘못할 수 있지요. 서로 너그럽게 헤아리면 어떨까요. 오늘은 오늘대로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모레는 모레대로 새롭게 거듭나자고 생각할 수 있으면 어떨까요.

  벌을 주듯이 운동장을 달리면서 몸무게를 빼려는 몸짓이 아니라, 신나게 놀이하듯이 달리기를 누리면 어떨까요. 아이가 잘못한 일이 있을 적에 따끔하게 나무라기보다는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걸음을 새로 씩씩하게 내딛도록 이끌어 보면 어떨까요.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가 있듯이, 잎이 하나 더 있는 어른이 있습니다. 그동안 다른 아이나 어른하고 똑같은 잎이었다가도 어느 날 문득 잎이 하나 더 돋을 수 있어요. 때로는 잎이 하나 줄 수 있고요. 이 잎을, 꽃잎을, 풀잎을, 꿈잎을, 사랑잎을, 마음잎을, 생각잎을 고이 마주하는 삶을 빕니다. 아이 마음에도 어른 마음에도 너른 숨결이 흐르는 살림을 빕니다. 잎이 더 있든 덜 있든, 때로는 잎이 하나도 없든, 모두 이쁩니다. 2017.11.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동시읽기/동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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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0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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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11


이 가을에 모두 잘 있다는 한 마디
―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병률 글
 문학과지성사, 2017.9.20. 8000원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살지요
실패하지 않으려 가시가 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죽지요
그리하여 사막은 자꾸 넓어지지요 (사람)


  가을이 깊습니다. 저희 집 뒤꼍에서 크는 감나무는 올해에 감을 제법 많이 맺습니다. 큰아이하고 즐겁게 한 소쿠리를 따서 말랑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얼려 놓습니다. 말랑감은 말랑할 적에 먹어도 맛나고, 꽁꽁 얼려서 숟가락으로 파먹어도 맛있습니다. 아이들이 배불리 먹고서 남은 말랑감을 얼리면서 겨울을 기다립니다. 언말랑감은 다른 철보다 추운 겨울에 제맛이더군요.

  마을에서 집집마다 감을 따느라 부산합니다. 나락을 베고 털고 말린 뒤에는 으레 감을 따요. 그리고 십일월이 깊으면 유자를 땁니다. 제주에서 겨울에 귤이 잔뜩 나오듯, 남녘 바다를 낀 포근한 고장에서는 찬바람이 싱싱 부는 철에 유자알이 샛노랗게 익어요.


그 사람은 지금 여기 없습니다

충분히 기억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내 목을 조른 사람이거든요

처음부터 나중까지 오래
올 수 있으며
한참을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

지금 여기 없습니다
내게 칼을 들이댄 적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 사람은 여기 없습니다)


  가을에 모두 잘 있습니다. 가랑잎을 떨구는 나무는 곧 앙상한 가지가 되려고 부지런히 잎을 내놓습니다. 겨울에도 잎이 푸른 나무는 새봄에 꽃을 피우려고 곳곳에 꽃망울이며 잎망울을 내놓습니다. 후박나무나 동백나무가 이런 모습이지요.

  들풀도 씨앗을 퍼뜨리려고 바쁘고, 솔(부추)도 새까만 씨앗을 잔뜩 맺으면서 터뜨리려고 합니다. 논둑이나 조용한 멧자락에는 가을 산국이 노랗게 올라오고요. 그리고 사마귀는 알을 낳으려고 마땅한 자리를 찾아나섭니다. 때로는 어느 틈인가 찾아내어 집에까지 들어와서 알을 낳습니다. 마당 한복판에서 가쁜 숨을 내쉬면서 알 낳을 곳을 찾기도 합니다.

  따뜻한 나라를 찾는 새는 벌써 이 고장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이 고장에서 겨울을 나는 텃새는 추위를 앞두고 몸을 부풀리려고 나무 열매나 곡식을 찾아 바쁘게 날아다닙니다. 아이들도 이제는 긴소매에 긴바지를 챙겨서 입으며 양말을 꼬박꼬박 신습니다. 바야흐로 새로운 철을 앞두고 모두 새로운 몸짓입니다.


만나도 모르는 사람들
몰라도 만나는 사람들

만나더라도 만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이 좁디좁은 우주에서 우리는 그리 되었다 (사람의 재료)

만약 내가 여자였다면 집을 지을 것이다
아프리카 마사이 여부족처럼
결혼해서 살 집을 내 손으로 지을 것이다

꽃을 꺾지 않으려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꽃을 꺾는 마음도 마음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여자라면 사랑한다고 자주 말할 것이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신을 매번 염려할 것이다 (정착)


  이병률 님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7)를 읽습니다. 시인 곁에 있는 사람을 그리기도 하고, 시인 곁에 없는 사람을 그리기도 합니다. 시인 곁에 있는 사람을 마주하면서 서로 얼마나 살갑거나 가까운가를 헤아립니다. 시인 곁에 없는 사람을 문득 맞닥뜨리고는 서로 어쭐 줄 몰라서 허둥지둥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시인은 “내가 여자였다면 집을 지을” 생각이라고 하는데, 여자 아닌 남자여도 집을 지으면 되겠지요. 시인은 “내가 여자라면 사랑한다고 자주 말할” 생각이라고 하는데, 여자 아닌 남자여도 늘 사랑한다고 말하며 살면 될 테지요.

  가만히 보면 한국 사회에서 숱한 사내는 보금자리를 짓고 가꾸는 일보다는, 집 바깥을 떠도는 일로 삶을 보내기 일쑤입니다. 왜, 그렇잖아요. 아직도 집일은 거의 모두 가시내가 해요. 아직도 아이는 거의 모두 가시내가 돌봐요. 바깥으로 나도는 사내요, 집에서는 도무지 손에 물도 잘 못 묻히고 도마질이 무엇인지조차 잘 몰라요.

  어쩌면 숱한 한국 사내는 보금자리를 짓거나 가꿀 줄 모를 뿐 아니라,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셈 아닐까 싶어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니 바깥으로만 맴돌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니 속에서 우러나오는 따사로운 사랑 한 마디를 노래할 줄 모르지 싶어요.


한 잔만 더 마시면 죽을 수도 있고
그 한 잔으로
어쩌면 잘 살 수도 있겠다 싶어 들어간 어느 포장마차에서
딱 한 잔만 달라고 하였다

한 잔을 비우고 난 뒤 한 병 값을 치르겠다고 하자
주인이 술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당신이 취하기 위해 필요한 건 한 잔이 아니었냐며
주인은 헐거워진 마개로 술병을 닫았다 (미신)


  모든 사내가 사랑을 모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해요. 포장마차에 살짝 들어 소주 한 잔을 거저로 얻어마신 시인인데요, 시인한테 소주 한 잔쯤 아무렇지 않게 그냥 내어줄 줄 아는 가게지기는 틀림없이 사랑을 알겠지요. 밤새 포장마차에서 선 채로 도마질을 하고 술손을 맞이하는 가게지기는 참말로 보금자리를 짓거나 가꾸는 살림살이를 알 테지요.


눈을 뜨고 잠을 잘 수는 없어
창문을 얼어 두고 잠을 잤더니
어느새 나무 이파리 한 장이 들어와 내 옆에서 잠을 잔다 (내가 쓴 것)


  이 가을에 모두 잘 있다는 한 마디를 들려주고 싶은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이지 싶습니다. 바다도 잘 있을 테고, 들도 멧골도 냇물도 잘 있을 테지요. 아픈 바다가 있고, 아픈 들이며 멧골이며 냇물도 있습니다. 부디 가을이 깊고 겨울이 찾아들면, 아픈 골골샅샅으로 소복소복 포근한 눈이 덮이면서 앙금도 생채기도 시름도 씻어낼 수 있기를 빕니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 나뭇잎 하나 들어와서 잠들면서 노래를 남긴다고 하듯이, 우리 마음자리에 시 한 줄이 가만히 스며들어서 웃음꽃으로 새롭게 피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10.27.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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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모래 - 이시카와 다쿠보쿠 단카집
이시카와 다쿠보쿠 지음, 엄인경 옮김 / 필요한책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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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06


석 줄로 삶을 노래하며 울던 사람
― 한 줌의 모래
 이시카와 다쿠보쿠 글/엄인경 옮김
 필요한책 펴냄, 2017.5.18. 13500원


장난 삼아서 엄마를 업어 보고
그 너무나도 가벼움에 울다가
세 걸음도 못 걷네 (21쪽)

거울 가게의 앞에 와서
문득 놀라버렸네
추레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나여서 (33쪽)


  노래를 짧게 읊어 봅니다. 글잣수를 맞추기도 하고, 조금 홀가분하게 이야기를 펼치기도 하는 짧게 읊는 노래에는 삶을 지으면서 느끼는 기쁨이나 슬픔을 담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짧게 노래를 읊으나, 글을 안 쓰는 사람도 짧게 노래를 읊어요. 꼭 종이에 글로 적바림하지 않더라도 입으로 가만히 읊으면서 기쁨이나 슬픔을 노래합니다. 곁에 있는 동무나 이웃한테 노래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이 노래를 물려받습니다. 일하다가, 놀다가, 쉬다가, 살림하다가, 문득문득 짤막하게 노래를 읊습니다.


참 슬픈 것은
목이 마른 것까지 참아가면서
추운 밤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 때 (61쪽)

어떤 사람이 전차에서 바닥에 침을 뱉는다
여기에도
내 마음 아파지려고 하네 (79쪽)


  《한 줌의 모래》(필요한책, 2017)는 1886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숨을 거둔 이시카와 다쿠보쿠라는 분이 지은 석 줄짜리 짧은 노래를 들려줍니다. 기쁠 적에는 기쁜 마음을 가만히 담고, 슬플 적에는 슬픈 마음을 눈물로 담습닏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가 볼 적에는, 또는 서른이나 마흔이나 쉰이나 예순 ……이라는 나이로 볼 적에는, 스물일곱 앳된 나이에 숨을 거둔 이웃나라 시인 한 사람이 백 해도 앞서 남긴 짧은 노래가 대수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적거나 많아야 기쁨이나 슬픔을 더 느끼지 않아요. 젊은 사람도 짊어져야 할 삶이란 무게가 있어요. 젊기 때문에 딛고 서야 할 살림이란 무게도 있고요. 그리고 누구는 서른 마흔 쉰 예순 ……을 살더라도 서른조차 못 살고 이 땅을 떠나니, 스물일곱 젊은 시인이 읊는 노래에 흐르는 기쁨이나 슬픔은 퍽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밤에 누워서도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은
열다섯 살 때 나의 노래였던 것이니 (98쪽)

헤어져 있으면 여동생 그립구나
빨간 끈 달린
게타 갖고 싶다고 울던 아이였는데 (120쪽)


  노랫말은 길지 않아도 됩니다. 다문 한 줄로 읊는 노래도 얼마든지 노래입니다. “밤에 누워서도 휘파람을 불었다” 이 한 줄로도 노래입니다. 교과서를 읽듯이 힘 없는 목소리가 아니라면, 곁에 살가운 벗님을 마주하면서 가만히 읊고 나직이 노래하며 사랑으로 이야기할 수 있으면, “헤어져 있으면 여동생 그립구나” 하고 적바림하는 글줄은 얼마든지 노래라고 느껴요.

  생각해 보면 그래요. 이런저런 꾸밈말을 꼭 안 붙여도 됩니다. 수수하거나 투박하게 기쁨이나 슬픔을 읊으면 됩니다. 힘들기에 “아이고 힘들어”라든지 “죽도록 힘들어” 하고 읊는 노래가 있어요. 힘겹지만 “그래도 일어서야지”라든지 “사는 데까지 살 테야” 하고 읊는 노래가 있습니다.

  일본에는 “게타 갖고 싶다고 울던 아이”가 있으면, 한국에는 “댕기 갖고 싶다고 울던 아이”가 있을 테지요. 말도 삶도 살림도 숲도 다른 한국하고 일본입니다만,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 흐르는 마음은 서로 맞물리거나 이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서글프구나 내가 가르쳤었던
아이들도 또
이윽고 고향 마을 버리고 떠나겠지 (124쪽)

무엇 하나도 생각하는 일 없이
그날그날을
기차 기적 울림에 마음을 맡겼다네 (214쪽)


  1800년대에서 1900년대로 넘어서는 일본에서 ‘시골(고향)’을 버리고 ‘서울(도시)’로 가는 아이들이 또 있었다는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에 잠겨 봅니다. 한국에서는 어느 무렵부터 서울바람이 불었을까요. 이 땅이든 이웃 땅이든 구태여 서울로 가야만 무언가 할 수 있거나 이름을 드날릴 만할까 궁금합니다.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삶을 지으면서 새롭게 꿈을 지필 수 있을까요. 시골숲에 깃들어 찬찬히 살림을 가꾸면서 드넓은 하늘을 품는 사랑을 피울 수 있을까요.

  글월 한 줄에 흐르는 마음은 차분히 노래가 됩니다. 글월 한 줄에 옮긴 마음은 애틋한 노래가 됩니다. 글월 한 줄로 또박또박 밝힌 마음은 해가 가고 달이 가더라도 두고두고 따사로운 노래가 됩니다.

  《한 줌의 모래》는 2017년에 한국말로 새로 나온 책이에요. 저한테는 1930년대에 일본에서 나온 이시카와 다쿠보쿠 님 시집이 있습니다. 거의 아흔 해를 가로지르는 두 책을 나란히 책상맡에 놓아 봅니다. 그동안 틈틈이 사 모으면서 읽은 다른 이시카와 다쿠보쿠 님 책들도 함께 쓰다듬으면서 삶이랑 노래를 헤아립니다. 2017.10.2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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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o 2017-10-20 12:45   좋아요 0 | URL
가을 떨어지는 낙엽과 한 줄 시는 참 잘 어울립니다

숲노래 2017-10-20 19:59   좋아요 0 | URL
날마다 숱하게 떨어지는 가랑잎을 쓸어서 태우고
밭에 거름으로 내는
가을 하루입니다.
이 가을에 시 한 줄 즐거이 누리셔요 ^^
 
웃는 연습 창비시선 413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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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09


어른이 되고부터 웃는 연습을 하는 하루
― 웃는 연습
 박성우 글
 창비, 2017.8.31. 8000원


딸, 뭐 해?

응, 파도 발자국을 만져보는 거야! (중요한 일)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아이가 마냥 웃음을 짓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함께 웃습니다. 웃음을 거의 잃은 채 살던 어른들은 아이들이 까르르 짓는 웃음을 마주보면서 얼결에 따라 웃습니다.

  저는 큰아이가 갓 태어나고 나서 할머니들이 들려준 말에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그무렵 할머니들은 “요새 웃을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아기를 보니까 웃음이 나네. 웃을 일이 생겨.” 하고 말씀했어요. 아니 왜 웃을 일이 없다고 여기시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는데요, 삶이 팍팍하거나 살림이 고단할 적에는 웃을 일이 없으시다더군요.

  그렇다면 아기는 왜 웃을 수 있을까요? 왜 할머니들은 아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함께 웃으실 수 있을까요? 아기는 삶이나 살림을 굳이 걱정하지 않아요. 아기는 사회나 문화나 예술을 따로 생각하지 않아요. 아기는 어버이가 가난한지 넉넉한지 따지지 않아요. 아기는 저를 안아서 새근새근 노래하며 재우는 어버이가 포근히 감싸는 손길을 헤아리면서 웃음을 지어요. 아기를 보고 웃는 할머니들도 다른 시름이나 생각을 모두 내려놓을 적에 비로소 웃음을 짓고요.


딸, 이거 웬 보리야?
응, 보리긴 보린데 물만 주면 자라는 보리야
딸애는 용돈으로 투명 용기에 담긴
보리를 사서 베란다 쪽 창가에 둔다
이거 키워서 보리차도 하고 보리빵도 할 거야
내 말 잘 들으면 아빠 맥주도 만들어줄게! (보리)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나이를 더하면서 불쑥 들려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요, 때로는 아이들이 들려준 말이 고스란히 노래로구나 싶기도 해요. 아이는 딱히 시를 쓰거나 수필을 쓸 마음이 없으나, 아이 입에서 톡톡 튀어나오는 말마디를 글월로 옮기면 어느새 아름다운 이야기꽃이 되곤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이한테서 어떤 말이 새삼스럽게 싱그럽다고 느낄까요? 우리는 아이한테서 어떤 말을 귀담아듣고서 이를 글로 옮길 만할까요? 우리 어른들을 둘러싼 아이들한테는 늘 웃음이며 노래가 있으나, 어른들은 스스로 웃음을 놓거나 잊은 채 팍팍하거나 고단하게 살지는 않나요. 어쩌면 우리 어른들은 우리 마음속을 비롯하여 우리 곁 아이들한테 늘 노래랑 웃음이 있는 줄 모르는 채 살지는 않나요.


고향 마을에 들어 내가 뛰어다니던 논두렁을 바라보니 논두렁 물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논 거울)

아버지는 논두렁에서 풀을 한짐 베어다놓고는
어머니와 함께 떡가랑잎을 따러 산에 올랐다
쉬는 날에는 조무래기인 우리도 따라나섰다
소금실재 골짝으로도 가고 재실재 골짝으로도 갔다 (푸른 구멍)


  시집 《웃는 연습》(창비, 2017)을 읽습니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시인하고 함께 사는 딸아이 웃음을 지켜보고, 시인이 머무는 시골마을 할매나 할배 몸짓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시인이 적바림하는 글을 들여다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릴 적부터 잘 웃고 잘 노래하며 잘 뛰어놀던 아이였을 텐데, 어느새 웃음을 잃고 말dk “웃는 연습”을 해야 하는 어른이 되고 말았는지 모릅니다.


가지를 뻗고 몸을 낮추는가 싶더니
우리 집 텃밭으로 드는 길을 딱 막고
매실을 주렁주렁 욕심껏 매달았다
내 것이 아니어도 오지고 오진 매실,
새터할매 허리 높이에서 마침맞게 익어갔다 (이웃)


  아이들은 연습을 하고서 노래하지 않습니다. 그냥 노래하고 싶을 적에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연습을 하고서 놀지 않습니다. 그저 놀고 싶을 적에 놉니다. 아이들은 연습을 하고서 웃지 않습니다. 웃음이 터져나오면 그대로 웃음을 자지러지게 풀어놓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떤 하루일까요? 웃는 하루일까요, 웃는 연습으로 지새운 하루일까요? 오늘 하루를 티없이 웃고 마냥 웃으며 홀가분하게 웃으면서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 집 텃밭으로 넘어오는 이웃집 할매 매화나무 가지를 웃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갓난쟁이가 이불에 오줌을 싸도 허허 웃으면서 신나게 이불빨래를 할 수 있을까요? 아이가 학교에서 재미난 성적표, 이를테면 0점이 가득한 성적표를 들고 와서 춤을 출 적에 함께 손을 맞잡고 하하하 춤을 출 수 있을까요?

  버스를 코앞에서 놓치고도 빙그레 웃음지을 수 있을까요? 한참 기다리던 택시를 누가 앞에서 새치기를 하고 타더라도 가만히 웃음지을 수 있을까요?

  작은 살림자리에서 웃음을 찾을 수 있다면, 수수한 마을에서 웃음을 띄울 수 있다면, 따사로운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되고 노래님이 될 만하지 싶습니다. 2017.10.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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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感에 관한 사담들 문학동네 시인선 45
윤성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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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08



시인마다 다른 삶결

― 감(感)에 관한 사담들

 윤성택 글

 문학동네, 2013.6.27. 8000원



그 살아 있는 순간을 위해 나는 아직 떠나지 못한다

알약 속에 켜져 있는 안개.

창틀에서 뻗어온 가장 시든 잎이 숨을 몰아쉰다 (안개)


나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지도 어디쯤에서

한쪽 눈을 감고 이곳 장면을 저장해간다 (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



  말 한 마디에서 결을 읽습니다. 결이란 말결일 수 있고, 말에 담은 삶결일 수 있습니다. 삶결이란 이제까지 살아오며 배우거나 겪거나 듣거나 보거나 읽은 모든 이야기입니다.


  결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옳은 결이나 틀린 결이란 없습니다. 그동안 겪거나 치른 삶은 같을 수 없으니, 삶에서 길어올리는 말 한 마디도 같을 수 없습니다. 누구는 자전거를 달리다가 손잡이하고 몸통이 떨어지면서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을 겪고도 빙그레 웃으면서 털고 일어납니다. 누구는 이런 일을 치르고 나면 자전거는 엄두를 못 냅니다. 누구는 이런 일을 맞닥뜨리고 난 뒤에 둘레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볼 적마다 그 자전거는 튼튼한가를 살피는 몸짓이 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말 한 마디를 지을 수 있습니다. 즐거움이 없는 마음으로 말 한 마디를 꾸밀 수 있습니다. 즐거움이랄 수도 즐거움이 아니랄 수도 없는 어정쩡한 자리에서 멀거니 말 한 마디를 엮을 수 있습니다.


  시집 《감(感)에 관한 사담들》을 읽으면서 ‘결에 얽힌 한 사람 이야기’를 찬찬히 짚습니다. 시인 한 사람은 삶을 이렇게 읽어서 글을 이렇게 쓰는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우리 시골집 지붕에 감 떨어지며 나는 쿵 소리를 들으며 새벽을 엽니다. 지붕에 떨어지며 쿵 소리를 내고는 뒷밭에 안긴 감은 사람도 먹고 새도 먹으며 개미나 벌도 먹으며, 딱정벌레도 먹습니다. 달팽이도 지렁이도 먹으며, 때로는 모기하고 파리도 함께 먹습니다. 감 한 알로 숱한 목숨이 이 가을에 배부릅니다. 2017.10.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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