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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문학과지성 시인선 178
김신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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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를 말하는 시 83



시와 이곳에서

―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김신영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96.4.25.



  나는 늘 이곳에서 바람을 마십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도 마시고, 한들한들 부는 바람도 마십니다. 따사롭게 부는 바람도 마시며, 포근하게 부는 바람도 마셔요. 때로는 차갑게 부는 바람을 마시고, 어느 날에는 스산하게 부는 바람을 마십니다.


  어떠한 바람이든 기꺼이 마십니다. 어떤 바람이 불든 씩씩하게 마십니다. 어떻게 부는 바람이라 하더라도 고맙게 마십니다.


  왜냐하면, 나는 바람을 마셔야 살 수 있는 목숨이기 때문입니다. 나한테 밥이나 소금이나 물이 없어도 살 수 있으나, 나한테 바람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나는 밥을 달포쯤 끊거나 소금이나 물을 열흘이건 보름이건 입에도 못 댈 수 있습니다만, 바람 한 줄기는 1초라도 끊을 수 없습니다.



.. 여기 황폐한 문지방이며 무너진 흙담을 / 일으키어 내 출렁이는 바닷과 별들과 / 유성이 되어도 좋은 밤을 맞고 싶다 ..  (가벼운 섬 1)



  꽃이 핀 나무 곁에 서서 꽃바람을 마십니다. 꽃바람을 마시면서 생각합니다. 꽃바람이란 이처럼 향긋하고 놀랍구나. 꽃바람을 마시면서 나뭇줄기를 쓰다듬습니다. 네가 나한테 이렇게 놀라우면서 멋진 바람을 베풀어 주니, 너는 나한테 아름다운 님이로구나.


  꽃바람을 나누어 준 나무한테 입을 맞춥니다. 아직 꽃몽우리가 터지지 않은 나무 옆에도 서서 나뭇줄기를 살살 어루만지다가 입을 맞춥니다. 어떤 나무이든 모두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답거든요.



.. 매일 내분이 이는 종로 오가 / 기독교연합회관 십층에서 나는 책을 만든다고 / 죽을 쑤는데 옆건물 기독농민회에서 머리에 붉은 두건 / 두른 전대협 예수들 연좌농성, 퇴근 시간 다되도록 일렁이고 ..  (개방 압력)



  김신영 님이 선보인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문학과지성사,1996)을 읽습니다. 김신영 님이 선보인 시집에는 김신영 님이 누린 삶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김신영 님이 지은 웃음과 눈물이 드러나고, 김신영 님이 바라본 이웃과 동무가 드러납니다.


  웃음과 눈물은 좋은 웃음이나 나쁜 눈물이 아닙니다. 그저 웃음과 눈물입니다. 이웃과 동무는 좋은 이웃이나 나쁜 동무가 아닙니다. 모두 그대로 이웃과 동무입니다.


  좋은 시가 있을까요? 나쁜 시가 있을까요? 독재부역을 하지 않았으나 맹숭맹숭한 시라면, 이러한 시는 좋은 시일까요? 맛깔스럽게 빚었으나 독재부역을 한 시라면, 이러한 시는 나쁜 시일까요?



.. 소풍 가는 학생들 쏟아져내리고 / 지하철 환승역 나갈 출구가 없다 // 역은 최상의 포화 상태, 긴 줄을 세우는 거대한 / 공포의 특급 놀이시설이 된다 아무도 나갈 수 없다 / 역무원은 목이 쉰 호루라기를 쉭쉭 불어대고 ..  (환승역에서)



  이곳에서 시가 태어납니다. 다른 곳이 아닌 이곳에서 시가 태어납니다. 흔히들, 사진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찍는다고 말하는데, 사진만 바로 오늘 이곳에서 찍지 않습니다. 시도 바로 오늘 이곳에서 태어납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글쓴이 스스로 겪고 느끼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아파하고 한숨쉬고 노래하고 춤추고 짝짓기를 한 모든 이야기가 시라는 옷을 입고 새롭게 태어납니다.



.. 아산만까지 따라온 詩集은 / 산보다 바다보다 넓어 보였다 ..  (復原)



  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사진을 읽을 줄 압니다. 사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시를 읽을 줄 압니다. 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만화를 읽을 줄 압니다. 만화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시를 읽을 줄 압니다. 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동화를 읽을 줄 압니다. 동화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시를 읽을 줄 압니다.


  그러니까, 시는 읽되 사진이나 만화나 동화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시읽기’를 겉훑기로만 한다는 뜻입니다. 사진이나 만화나 동화를 읽을 줄 아는 넋이나 마음이 될 수 있어야, 비로소 시를 읽으면서 아름답게 사랑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 새는 구름을 부르며 하늘에 오르고, / 나는 노래를 부르며 꿈에 오른다 ..  (마른 종자 활동 장치)



  문학평론을 쓰는 이들은 사진을 찍을까요? 문학비평을 하는 이들은 만화책을 읽을까요? 문학평론을 쓰는 이들은 아이를 낳아 말을 가르칠까요? 문학비평을 하는 이들은 갓난쟁이한테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거나 하면서 아이와 함께 삶을 지을까요?


  우리는 평론이나 비평을 하기 앞서 삶을 먼저 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시를 쓰거나 읽기 앞서 삶을 먼저 가꿀 줄 알아야 합니다.


  삶이 없이는 아무런 평론이나 비평이 나올 수 없습니다. 삶을 모른다면 어떠한 시도 쓸 수 없습니다. 삶이 없다면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삶을 모른다면 헛소리일 뿐입니다.



..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 길은 많지만 / 나는 고속도로를 탄다 / 통행료를 지불하고서 / 고속으로 달릴 수 있는 권한 누린다 / 신호등에 걸릴 염려 없는 곳 /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되는 곳 ..  (고속도로)



  좋은 삶은 없습니다. 좋은 시는 없습니다. 그저 삶이 있고, 그예 시가 있습니다. 나쁜 삶은 없습니다. 나쁜 시는 없습니다. 그대로 삶이요, 고스란히 시입니다.


  이곳에서 시가 태어나고, 이곳에서 시를 읽습니다. 이곳에서 시를 노래하고, 이곳에서 시를 사랑합니다. 4348.3.2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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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사하라 애지시선 3
김수우 지음 / 애지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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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2



시와 모래밭

― 붉은 사하라

 김수우 글

 애지 펴냄, 2005.9.12.



  바람이 아무리 차갑게 불어도 바닷가 모래밭은 따뜻합니다. 찬바람에 몸을 웅크리기만 하면 춥지만, 모래밭에 두 손을 묻고 모래놀이를 하면 두 손은 따뜻할 뿐 아니라, 어느새 땀이 나기도 합니다.


  꽃샘바람이 불어 풀과 나무가 오들오들 떱니다. 그러나 풀과 나무는 꽃샘바람에 시들거나 얼어서 죽는 일이 없습니다. 한동안 오들오들 떨 뿐, 햇볕이 다시 내리쬐고 바람이 가라앉으면, 언제 오들오들 떨었느냐는 듯이 잎을 한껏 열어젖힙니다. 찬바람을 먹으면서 더욱 기운차고, 흙 품에 안겨서 더욱 싱그러우며, 이웃한 다른 풀과 올망졸망 어깨동무를 하면서 더욱 푸른 빛입니다.



.. 푸른 바다가 붉은 사하라가 될 때까지 / 사막은 얼마나 이빨 시린, 슬픔의 유전인자를 숨기고 있는 걸까 ..  (붉은 사하라)



  모래밭에는 어떤 그림이든 그릴 수 있습니다. 모래밭에 그리는 그림은 바닷물이 밀려들어 모두 지웁니다. 나뭇가지를 써서 아무리 깊게 파면서 그림을 그렸어도, 바닷물은 모든 ‘모래밭 그림’을 말끔히 지웁니다. 모래밭은 바닷물결이 닿은 뒤에는 예전처럼 반반하면서 차분한 빛으로 돌아갑니다.


  모래밭에 그린 그림은 종이에 그린 그림과 달리 오래도록 안 남습니다. 종이에 그린 그림은 퍽 오래도록 남습니다. 그런데, 모래밭에 그린 그림이어도 언제나 우리가 바라보고 우리 손을 거친 그림이기에, 우리 마음에는 고이 남아요. 우리는 모래밭뿐 아니라 마음밭에도 그림을 함께 그려요.


  한편, 종이에 그린 그림은 ‘종이가 된 나무’가 살아낼 수 있을 만한 나날 동안 남습니다. 나무가 종이로 모습을 바뀌었을 뿐이니, 우리는 나무한테 그림을 새긴다고 할 만합니다. 나무한테 새긴 그림을 읽고, 나무한테 새긴 글을 읽습니다.



.. 산골 옛집 부엌문짝 / 버려졌다 그 세월 길어 올린 손끝에서 / 앉은뱅이책상이 되었다 ..  (오래된 것들은 눈이 많다)



  김수우 님이 빚은 시집 《붉은 사하라》(애지,2005)를 읽습니다. 붉은 빛깔은 무엇이고, 사하라는 어떤 곳일까요. 우리 몸을 이루는 핏물이 붉은 빛일까요. 모든 목숨을 살찌우는 열매가 붉은 빛일까요. 아침에 뜨고 저녁에 기우는 해는 붉은 빛일까요. 사랑으로 타오르는 숨결은 붉은 빛일까요. 뜨겁게 솟구치는 기쁨이나 미움 같은 뭇느낌이 붉은 빛일까요.


  모래밭은 어떤 곳일까요. 발이 폭폭 빠지는 모래밭일까요, 발이 안 빠지고 자동차가 구를 수 있을 만한 모래밭일까요. 조개가 살고 새가 날아들 수 있는 모래밭일까요, 관광지로 바뀌어 쓰레기가 나뒹구는 모래밭일까요. 아니면, 군부대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는 쇠가시그물을 길게 박아 놓는 모래밭일까요.



.. 500원 내고 붕어빵 두 마리 산 / 털실모자 할머니, 굼적굼적 / 수레에 쌓인 겨울딸기를 지나, 댓걸음 / 트럭에 실려온 충무 멍게를 지나, 몇 발짝 / 광고게시판을 지나 /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거기 ..  (산맥)



  삶을 사랑으로 짓는 사람은 하루하루 아름다운 꽃밭입니다. 삶을 사랑으로 짓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고단한 모래밭입니다. 삶을 사랑으로 짓다가 이 사랑이 무너지면, 꽃밭은 어느새 풀이 죽습니다. 삶을 사랑이 없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달아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리는 길을 찾으면, 모래밭에도 풀이 돋고 꽃이 핍니다.


  텃밭에서만 꽃이 피지 않습니다. 모래밭에 아무런 목숨이 못 깃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문명과 문화와 경제 따위를 내세워 ‘기름진 밭’이나 ‘아름다운 들과 숲’을 파헤쳐서 고속도로로 바꾼다든지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들인다든지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를 덮어씌우기 일쑤입니다. 짙푸른 숲이 하루아침에 망가집니다. 드넓은 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집니다. 문명이 빚는 건물은 재개발을 끝없이 되풀이하면서 높이 치솟으려고 애씁니다.


  사랑이 없이 짓는 문명은 어디로 갈는지요. 꿈이 없이 나아가려는 문명은 무엇이 될는지요. 삶이 없이 복닥거리는 문명은 누구한테 아름다울는지요. 정치는 정치꾼이 붙잡고, 경제는 경제꾼이 떠들며, 문화와 예술은 문화꾼과 예술꾼이 왁자지껄합니다. 다들 날마다 밥을 먹으면서도, 밥 한 그릇이 나오는 밭자락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다들 언제나 바람을 마시면서도, 바람 한 줄기가 흐르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습니다. 다들 으레 물을 들이켜면서도, 물 한 방울이 돋는 숲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 삭은 나뭇단 뒤에서 나온 / 두 가마니는 족히 넘을 판피린병 / 아궁이 앞에서 불때던 풀솜할매가 / 찬장에 숨겼다 꺼내 마시곤 / 나무광 뒤로 된시름 던지듯 / 던지고, 던지고, 던지고 했을 거다 ..  (옛집을 허물다)



  시집 《붉은 사하라》를 읽습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뜨거운 볕이 아닌, 마음에서 샘솟는 따뜻한 숨을 헤아리면서 읽습니다. 풀솜할매는 언제부터 풀솜할매가 되었을까 헤아리면서 시 한 줄을 읽습니다. 풀솜할배도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시 두 줄을 읽습니다.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낳은 할머니입니다. 할머니가 어머니를 낳고, 어머니가 나를 낳으며, 나는 새롭게 아이를 낳아 어머니가 될 테고, 내 아이가 아이를 낳으면 나는 새롭게 할머니가 됩니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왜 외할머니일까요. 우리는 언제부터 ‘親’이나 ‘外’라는 한자를 빌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나누었을까요. 한자라는 중국글을 쓴 임금과 권력자와 지식인이 아닌 시골사람도 ‘친·외’라는 한자를 빌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바라보았을까요. 조선이나 고려나 고구려나 신라나 백제나 가야나 옛조선이나, 이런 ‘나라이름’이 아닌, 500년대나 기원전 500년대에 시골에서 흙을 지어 살던 사람들도 ‘친·외’라는 한자를 빌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마주했을까요.



.. 다발머리 여자애가 고무줄을 논다 / 날품팔이 면장갑이 뽀얗게 마른다 / 풍경의 틈, / 으로 불어오는 눈짓, 눈짓들 ..  (콩밭에 놀다)



  모래밭에 그린 그림은 꼭 하루를 흐릅니다. 마음밭에 그린 그림은 꼭 내 삶만큼 흐릅니다. 모래알은 어느 만큼 살았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모래알을 손바닥에 얹습니다. 나는 이제껏 어느 만큼 이 땅에서 살았을까 하고 돌아보면서 눈을 감습니다. 나는 내 마음에 새긴 이야기를 어느 만큼 떠올릴 수 있을까요. 나는 내 삶에 그린 그림을 늘 잊고 다시 잊고 또 잊으면서 바보스러운 몸짓을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삶에 새긴 그림을 가만히 되새기고 떠올리면서 이제부터 바보스러운 몸짓은 씻어내고 사랑스러운 몸짓과 손짓으로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내 삶을 마음자락에 곱다시 그려서 언제까지나 바라볼 수 있을 때에 사랑이 태어납니다. 내 삶을 마음자락에 그리지 못하거나, 애써 그렸어도 모래밭 그림처럼 곧 사라져서 잊히도록 한다면, 나는 아무런 사랑을 짓지 못합니다. 하루가 저물면서 새로운 하루가 찾아옵니다. 4348.3.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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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58
임동확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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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1



시와 꽃님

―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임동확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5.11.25.



  매화꽃이 가득 핀 나무 옆에 서면 매화꽃내음이 훅 퍼집니다. 온몸으로 매화꽃내음이 스며듭니다. 동백꽃이 잔뜩 핀 나무 곁에 서면 동백꽃내음이 확 퍼집니다. 온몸으로 동백꽃내음이 감겨듭니다. 꽃내음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집니다. 봄에 피어나는 수많은 꽃은 겨울을 고요히 잠들다 일어난 모든 숨결을 살살 간질입니다. 봄꽃이 봄노래를 부르고, 봄바람이 봄노래를 실어 나르며, 봄볕이 봄노래를 듣고 더 기쁘게 웃습니다.



.. 불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보다 다시 그 순간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우릴 더 초조하게 만든다. 단 한순간에 영원히 정지한 불꽃, 그때 이후 늘 한결같은 그 불꽃이 ..  (불꽃에게 바치는 송가)



  뒤꼍에서 함께 쑥을 뜯은 큰아이가 손바닥을 펼칩니다. 쑥을 뜯느라 손바닥과 손가락에 쑥내음이 듬뿍 배었다고 말합니다. 그래, 네 손에 쑥내가 배었구나. 그러면 네 아버지 손에도 쑥내가 배었을 테지? 우리 손에도 몸에도 마음에도 눈에도 귀에도 가슴에도 온통 쑥내가 배었어. 오늘은 이 쑥으로 쑥국을 끓였으니, 쑥국을 기쁘게 먹으면 몸 구석구석으로 쑥물이 고루 퍼진단다.



.. 다 옳다, 흠도 손댈 곳도 없다 / 경주 남산에 무더기로 목 없이 서 있는 / 석불도 석불은 석불이다 ..  (온몸을 들어올려)



  임동확 님이 쓴 시집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실천문학사,2005)를 읽습니다. 시를 읽는 동안 봄꽃과 봄풀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아이들과 함께 새로 맞이한 봄을 그리고, 올해에 새롭게 맞이한 봄은 지난해와 어떻게 다른가를 그리며, 올해에 새로 누리는 봄은 앞으로 찾아올 수많은 봄하고 어떻게 다를까 하고 가만히 그립니다.


  내 그림은 먼저 마음에 그립니다. 마음에 그린 그림은 어느새 눈을 거쳐 머릿속으로 스미고, 머릿속으로 스민 그림은 가슴을 지나 온몸으로 퍼집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얼굴을 비빕니다. 물 묻은 손으로 얼굴을 비비는데 찬물이 찬기운을 짜르르 퍼뜨리면서도 상큼하고 시원한 기운을 함께 퍼뜨립니다. 그야말로 봄내요 봄기운입니다. 설거지를 마쳤어도 쑥내는 손에서 안 가십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아이들을 재우는 잠자리에서도 쑥내는 안 가셔요. 이불깃을 여미는 손에도 쑥내가 퍼지고, 아이들이 덮은 이불에도 쑥내가 흐릅니다.



.. 미루고 미루다가 / 연세대 구내 안경점에서 돋보기를 맞추고 / 잠시 기다리는 동안 / 여직 다 읽지 못한 세상과 책, / 그리고 부르다 만 노래와 / 여전히 미로일 뿐인 사랑의 길을 생각한다 ..  (노안)



  사람한테는 몇 가지 몸이 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 몸은 눈으로 보는 몸만 있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때때로 우리 아이들을 마음으로 쓰다듬을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제 어버이를 마음으로 어루만져 주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두 손을 가슴에 포개면서 잠이 들 때에 조용히 꿈을 꿉니다. 이 아이들과 누리는 삶을 꿈꾸고, 내가 이 아이들한테서 받는 사랑을 꿈꿉니다. 함께 짓는 삶을 꿈꾸고, 함께 가꾸면서 온누리로 퍼뜨리는 이야기를 꿈꿉니다.



.. 어느새 커튼 자락에 숨어 있는 청개구리 한 마리 / 파리채로 등 떠밀어 서둘러 밖으로 내보낸다 ..  (파리채와 더불어)



  꽃님은 어디에서나 꽃님입니다. 별님은 언제나 별님입니다. 오줌그릇을 비우러 뒤꼍을 다녀오면서 별빛을 바라봅니다. 바야흐로 저녁에도 포근하게 스미는 바람결을 천천히 느낍니다. 우리 집 나무한테 인사를 하고, 이튿날에도 다 함께 즐겁게 놀자는 마음을 남기면서 마루로 올라섭니다.



.. 저도 모르게 왼손이 편하고 좋아 / 왼손으로 밥 먹고 글씨를 쓰다가 / 오른손은 늘 바르고 옳으니 / 오른손만 사용하라며 어릴 때부터 / 엄마한테 사랑의 회초리 맞고 자란 / 내 귀여운 왼손잡이 애인은 이제 / 왼손 오른손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 양손잡이가 되어 있지요 ..  (내 애인은 왼손잡이)



  내 님은 언제나 내 님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숨쉬는 하느님은 늘 내 하느님입니다. 아이들 마음속에도 하느님이 있고, 곁님 마음속에도 하느님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하느님을 품습니다. 이 하느님은 봄이 되면 꽃이 피어나는 바람을 타고 꽃님으로 거듭납니다. 이 하느님은 여름이 되면 하얀 꽃이 지고 빨간 열매를 매다는 딸기처럼 새님이 됩니다. 이 하느님은 가을이 되면 논자락을 누렇게 덮으면서 물결치는 샛노란 나락처럼 고운 들님이 됩니다. 이 하느님은 겨울이 되면 더욱 새파란 하늘빛처럼 싱그럽게 춤추다가 고요히 잠드는 꿈님이 되어요.


  시 한 줄에 담는 이야기는 꽃님이면서 새님이요 들님이면서 꿈님입니다. 시 한 줄로 나누는 이야기는 삶이면서 사랑이고 노래입니다. 시집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는 우리한테 어떤 삶과 사랑과 노래를 들려주려 할까요. 우리는 저마다 먼먼 옛날에도 이곳에 있었을 텐데, 어떤 넋을 품은 숨결로 서로 이웃이 되어 삶을 지었을까요. 쑥내가 물씬 풍기는 손으로 시집을 잘 읽고 조용히 덮습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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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 신경림 동시집 담쟁이 동시집
신경림 지음, 이은희 그림 / 실천문학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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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54



철이 들 때에 비로소 어른

―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신경림 글

 이은희 그림

 실천문학사 펴냄, 2012.5.18.



  어머니는 모든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도 얼마 앞서까지 나처럼 조그마한 아이였어요.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도 얼마 앞서까지 나처럼 자그마한 아이인 줄 까맣게 잊었거든요.


  어른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녁도 얼마 앞서까지 아이로 지낸 줄 늘 떠올리면서 되새겨서 오늘 하루 씩씩하고 즐겁게 산다면 모든 것을 알아요. 철이 든 어른이지요. 이와 달리, 어른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녁도 얼마 앞서까지 아이로 무럭무럭 큰 줄 잊거나 잃으면 오늘 하루를 재미있거나 새롭게 맞이하지 못해요. 이때에는 아무것도 모를 뿐 아니라, 철도 안 들어요.



..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저씨 / 얼굴이 검다 / 어느 먼 나라에서 왔나 보다 ..  (공사장 아저씨와)



  철이 드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철이 안 든 사람은 어른이 아닙니다. 나이가 많기에 어른이 아니에요. 나이가 많은 그냥 ‘나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인데, 나이가 어리면 그냥 ‘나이 어린 사람’이에요. 나이가 어려도 철이 든 사람이 있고, 나이가 어리지만 똑똑하고 생각이 밝은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서로 마주하면서 ‘나이’가 아닌 ‘마음’을 헤아리면서, 저마다 어느 만큼 ‘철’이 들어서 ‘셈’이 밝거나 또렷한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제 철과 셈을 모른다면 아름답지 않아요. 제 철과 셈을 놓친다면 사랑스럽지 못해요. 그러니, 철을 모르고 셈을 모르는 ‘몸만 어른 같아 보이는 사람’은 재미없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 우리는 / 우리말로 공부를 하는데 // 어른들은 / 그것이 싫은가 봐 // 미국 말로 얘기하고 / 미국 말로 노래하라니 ..  (어른들은 싫은가 봐)



  신경림 님이 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실천문학사,2012)를 읽습니다. 신경림 님이 처음으로 내놓은 동시집이라고 합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신경림 님이 처음부터 ‘어른시’ 아닌 ‘동시’를 썼다면 어떠했을까요?


  어린이와 함께 읽을 시를 쓴 신경림 님은 이 책에서 한자를 하나도 안 씁니다. 아이들 앞에서 한자를 쓸 수 없을 테지요. 아이들한테 한자를 가르칠 뜻으로 시를 쓸 수 없을 테지요. 그러나, 신경림 님은 이녁 첫 시집을 ‘농무’도 아닌 ‘農舞’라는 한자를 써서 냈어요. 신경림 님은 우리네 ‘삶노래(민요)’를 구수하게 녹여서 시를 썼다고 하지만, 막상 신경림 님이 쓴 시는 ‘삶노래를 손수 지은 여느 사람’은 읽을 수 없었어요. 한글도 잘 모르는 시골지기는 한자로 쓴 시를 읽을 수 없으니까요.



.. 평양에 가선 평양 아이들을 만나고 / 몽골에 가선 몽골 아이들을 만나서 / 동무가 되어 달리고 싶다 ..  (자전거를 타고)



  어느 ‘민요’도 한자로 안 적습니다. 모든 ‘민요’는 오롯이 한국말입니다. 중국말도 중국 한자말도 일본 한자말도 아닌 ‘한국말’로 이루는 삶노래인 민요예요. 그러니까, ‘민요’라는 이름도 ‘민요를 부르는 사람’은 안 써요. 참말 ‘민요’란 무엇일까요? ‘사람(民) + 노래(謠)’를 학자들이 ‘민요’라는 낱말로 적는데, 왜 ‘사람노래’나 ‘삶노래’ 같은 낱말로는 학문을 안 했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노래를 부른 여느 사람들은 그저 ‘노래’라고만 했어요. 이를 학자와 시인과 예술과와 작가는 ‘民謠’라고 하는 그럴듯하다고 하는 한자로 내세우면서 말했습니다.



.. 빌딩을 지나면 또 빌딩 / 아파트 옆에는 또 아파트 // 엄마, 섭섭해하지 마 / 내 눈에는 지금도 // 만두 가게 지마녀 / 잡화점 // 학교 앞에는 / 큰 은행나무 ..  (학교 앞에는 큰 은행나무)



  오늘날 아이들은 거의 다 도시에서 삽니다. 시골에서 사는 아이조차 ‘도시 문화’와 ‘도시 문명’을 누릴 뿐 아니라, 하루 빨리 도시로 가려고 합니다. 시골 이버이도 아이들을 하루 빨리 도시로 보낼 생각으로 ‘더 높은 학교’ 있는 도시바라기를 합니다. 이리하여, 신경림 님이 처음 선보인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에도 도시 아이들 이야기가 가득해요.


  어쩔 수 없어요. 신경림 님도 도시 문화로 살고, 이 동시집을 읽을 아이도 거의 다 도시에 사니까요. 그러니까, 신경림 님이 시골을 두루 돌아다닐 무렵, 아직 시골에 아이들이 제법 많았을 지난날에, 신경림 님이 ‘어른시’ 아닌 ‘동시’를 썼다면, 참말로 ‘말을 살리는 노래’를 불렀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식인이나 학자가 즐기는 민요가 아니라, 흙을 밟고 노래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신경림 님 싯말로 새롭게 태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 꼬부랑 할머니가 / 두부 일곱 모 쑤어 이고 / 일곱 밤을 자고서 / 일곱 손주 만나러 // 한 고개 넘어섰다 / 두부 한 모 놓고 / 길 잃고 밤새 헤맬 / 아기 노루 먹으라고 ..  (꼬부랑 할머니가)



  아이들은 도시에도 살고 시골에도 삽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살더라도 ‘삶’을 꿈꿉니다. 아이들은 시골에서 살면서 ‘꿈’을 짓고 싶습니다. 이 대목을 우리 어른들이 잘 짚고 헤아릴 수 있기를 바라요. 철이 들 때에 비로소 어른인 줄 알기를 바라요. 서로서로 즐겁게 철이 들면서 아름답게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라요.


  봄은 어디에서나 봄이니, 이 봄볕을 함께 쬐요. 겨울은 어디에서나 겨울이니, 겨울바람을 함께 마셔요.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곳 지구별도 별이고, 멀고 깊은 온별누리도 별이에요. 다 다른 별이 함께 있는 누리이고, 다 다른 사람이 함께 있는 지구별입니다. 이 별에서 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따사로이 사랑하는 하루를 짓는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빌어요.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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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3 - 자음 편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 3
최승호 지음, 윤정주 그림 / 비룡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53



모든 말은 즐거운 놀이가 되지만

―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3

 최승호 글

 윤정주 그림

 비룡소 펴냄, 2007.7.27.



  우리는 말을 짓습니다. 나는 나대로 말을 짓고, 너는 너대로 말을 짓습니다. 나는 내 삶을 누리면서 말을 짓고, 너는 네 삶을 누리면서 말을 지어요. 저마다 다른 삶자리에서 다른 살림을 꾸리면서 다른 말을 짓습니다. 이리하여, 마을마다 말이 조금씩 다르고, 고을마다 말이 조금씩 달라요. 고장마다 말이 다르기 마련이고, 나라마다 말이 다릅니다.


  모든 말은 뿌리가 하나라 하지만, 사람마다 ‘같은 말’을 다 다르게 씁니다.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 다 다른 것을 생각하기에 다 다른 말이 태어납니다. 같은 것을 다르게 생각하는 까닭은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지구별에서도 어느 한쪽이 낮이면 다른 한쪽은 밤이에요. 어느 한쪽은 아침이라면 다른 한쪽은 저녁입니다. 뭍에서는 높낮이에 따라 날씨가 조금씩 다르며, 똑같이 비가 오더라도 하늘에 뜬 구름결에 따라 빗결도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느낍니다.


  요즈음은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이 있기에, 똑같은 것을 아주 똑같이 바라보도록 길듭니다. 게다가 학교에서 똑같은 교과서를 쓰는 터라, 그야말로 똑같은 것을 다 다른 사람이 그저 똑같이 바라보고 생각하고 느끼기만 하면서, 그야말로 똑같은 말만 흐릅니다.



.. 너, 구려 / 너 구린 거 알아 / 너 똥 먹었지 / 안 먹었어 / 그런데 왜 구린내가 나냐 / 저리 가 ..  (너구리)



  얼마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동네마다 놀이가 다 달랐습니다. 놀이를 가리키는 이름이 달랐고, 놀이를 하는 틀이 달랐습니다. 같은 하늘을 등에 지고 사는 서울에서도 이 동네와 저 동네가 말씨도 놀이도 삶도 달라요. 그렇지만, 이제 골목놀이조차 모조리 사라지고 학교와 학원 사이를 맴돌다가 인터넷게임으로 바뀐 흐름이 되니, 서울과 부산에서도 ‘똑같은 삶’이 되고 똑같은 말이 됩니다. 말결이 살짝 다르기는 하더라도, 이제 한국에서 ‘다른 말’을 쓰는 ‘다른 삶’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문학을 하는 이들이 고장말이나 마을말을 쓰는 일이 드뭅니다. 학문을 하는 이라면 모두 표준말을 쓴다고 하는데, 이 표준말은 한국말이 아니기 일쑤입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한국말대로 맞추거나 띄기는 할 테지만, 이야기를 다루는 알맹이는 중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이나 영어로 쓰기 일쑤입니다. 겉으로 보자면 모두 ‘한글’이지만, 속으로 보자면 ‘한국말’이 아니라고 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은 ‘다른 모습’이 없습니다. 다른 모습이 없을 뿐 아니라, ‘새로운 모습’도 없습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새로 가꾸지 않아요.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새로 일구지 않습니다.



.. 내 이름은 산딸기 / 나는 산의 딸이에요 / 산이 날 낳아 줬어요 / 내 이름은 산딸기 / 나는 산의 사랑스런 딸이랍니다 ..  (산딸기)



  요즈음은 새로운 문화나 문명이나 물질이 생기면 으레 영어나 서양말을 붙입니다. 영어나 서양말을 가끔 한자말로 옮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국말로 새로운 문화나 문명이나 물질을 가리키거나 나타내려 하지 않아요. 한국말은 아예 없는 말처럼 다루고,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아예 멀리 밀어놓습니다. 한국말로 생각하지 않고, 한국말로 살지 않으며, 한국말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한국말로 삶을 가꾸거나 짓거나 돌보지 않습니다.



.. 담이 우는 거 봤니 / 난 봤다 / 비 오는 날이었는데 / 담이 울고 있는 게 아니겠어 / 담이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 / 괴로웠나 봐 / 하긴 담쟁이덩굴이 벽을 많이도 뜯어 먹었더군 / 뜯어 먹기만 했겠어 / 벽을 쭉쭉 빨아 먹기도 했을 거야 / 흡혈귀처럼 ..  (담 이야기)



  최승호 님이 쓴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비룡소,2007) 셋째 권을 읽습니다. 최승호 님은 ‘말놀이’ 동시집을 여러 권 씁니다. 동시를 쓰기는 쓰는데, ‘말놀이’를 하는 동시입니다. 낱말 하나를 놓고 최승호 님 나름대로 풀거나 엮거나 짜서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을 읽으면, 참말 ‘말’을 ‘다르게 읽’으면서 ‘노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동안 나온 수많은 동시집하고 여러모로 다릅니다. 다만, ‘새롭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숨결을 말에 넣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넋을 말에 심지는 않습니다. 말로 놀이를 할 수는 있되, 말로 삶을 가꾸거나 짓지는 못합니다. 말로 하하호호 깔깔낄낄 웃거나 노래할 수는 있되, 말로 꿈을 꾸거나 짓지는 못합니다.



.. 봄, 봄에 본다 / 보이지 않는 봄바람 본다 // 봄, 봄에 본다 // 보이지 않는 봄기운 본다 // 푸른푸릇한 풀 / 따스한 햇살 // 노란 민들레에 / 봄 한 송이 피었네 ..  (봄)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은 재미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기에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은 기쁘거나 즐겁지는 않습니다. 우리 삶을 새롭게 읽거나 바라보도록 이끌지는 않기 때문에 기쁘거나 즐겁게 읽을 만하지는 않습니다.


  최승호 님은 이녁이 머릿속으로 품은 생각에 따라 말놀이를 합니다. 새롭게 바라보면서 말놀이를 하지는 않습니다. ‘사회의식’과 ‘고정관념’에 따라 말놀이를 합니다. 그래서, 여느 동시집하고 이 동시집은 ‘다르’지만, ‘새로움’은 하나도 없습니다.


  담쟁이덩굴이 벽을 뜯어 먹는다는 생각은 재미있습니다. 여느 어른들 생각과는 좀 다릅니다. 그래요, 다르지요. 그렇지만 새롭지 않아요. 더욱이, 담쟁이덩굴 마음을 읽거나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산딸기가 산이 낳은 딸이라고 바라보는 생각은 재미있습니다. 여느 어른들 생각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래요, 달라요. 그렇지만 새롭지 않습니다. 더구나, ‘멧토끼’와 ‘멧나물’로 이어지는 ‘멧자락’에서 돋는 ‘멧딸기’를 읽지는 못합니다. 언뜻 겉으로 보이는 ‘말꼬리 잡는 놀이’로는 재미있습니다만, 이 다음으로 잇거나 흐르는 숨결까지는 없어요.



.. 말썽꾸러기 / 원숭이 귀를 잡아당기자 / 원숭이가 이상한 소리를 지르네 // 아야 /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 오요 /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 으이 / 아야어여오유우유으이 ..  (원숭이)



  똥은 구릴까요, 안 구릴까요? 똥이 구리다고 여기면 구립니다. 똥이 구릴 까닭이 없다고 여기면 안 구립니다. 손수 씨앗을 심어서 거두어 먹는 밥으로 삶을 짓는 사람은, 똥내음이 구리지 않습니다. 멧짐승이나 들짐승은 똥내음이 구릴까요? 멧짐승이나 들짐승이 누는 똥이 구린 냄새가 난다면, 아마 숲이나 들에서 우리는 모두 코를 막아야 할 테지요. 숲과 들에는 벌레와 짐승들이 사니까요.


  최승호 님이 쓴 동시에 가락을 입히면 멋지며 재미난 노래가 태어납니다. 이를테면 〈원숭이〉는 아이들이 널리 좋아하는 재미난 노래입니다.


  바로 이 대목입니다. 최승호 님이 쓴 동시는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뜻이 없’습니다. 뜻이 없다는 말은, ‘장난스러운 몸짓’은 되지만, 막상 ‘신나거나 즐거운 놀이’는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책이름은 ‘말놀이 동시집’이지만, 정작 최승호 님이 펼치는 동시 이야기는 ‘말장난 동시집’입니다.


  말장난이라고 해서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말로 장난을 해 보았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최승호 님은 장난꾸러기입니다. 장난꾸러기 ‘어른아이 최승호’가 말을 놓고 요모조모 장난질을 해서 재미나게 하루를 보냈다는 소리입니다. 4348.3.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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