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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연습 ㅣ 창비시선 413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평점 :
시를 노래하는 말 309
어른이 되고부터 웃는 연습을 하는 하루
― 웃는 연습
박성우 글
창비, 2017.8.31. 8000원
딸, 뭐 해?
응, 파도 발자국을 만져보는 거야! (중요한 일)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아이가 마냥 웃음을 짓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함께 웃습니다. 웃음을 거의 잃은 채 살던 어른들은 아이들이 까르르 짓는 웃음을 마주보면서 얼결에 따라 웃습니다.
저는 큰아이가 갓 태어나고 나서 할머니들이 들려준 말에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그무렵 할머니들은 “요새 웃을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아기를 보니까 웃음이 나네. 웃을 일이 생겨.” 하고 말씀했어요. 아니 왜 웃을 일이 없다고 여기시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는데요, 삶이 팍팍하거나 살림이 고단할 적에는 웃을 일이 없으시다더군요.
그렇다면 아기는 왜 웃을 수 있을까요? 왜 할머니들은 아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함께 웃으실 수 있을까요? 아기는 삶이나 살림을 굳이 걱정하지 않아요. 아기는 사회나 문화나 예술을 따로 생각하지 않아요. 아기는 어버이가 가난한지 넉넉한지 따지지 않아요. 아기는 저를 안아서 새근새근 노래하며 재우는 어버이가 포근히 감싸는 손길을 헤아리면서 웃음을 지어요. 아기를 보고 웃는 할머니들도 다른 시름이나 생각을 모두 내려놓을 적에 비로소 웃음을 짓고요.
딸, 이거 웬 보리야?
응, 보리긴 보린데 물만 주면 자라는 보리야
딸애는 용돈으로 투명 용기에 담긴
보리를 사서 베란다 쪽 창가에 둔다
이거 키워서 보리차도 하고 보리빵도 할 거야
내 말 잘 들으면 아빠 맥주도 만들어줄게! (보리)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나이를 더하면서 불쑥 들려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요, 때로는 아이들이 들려준 말이 고스란히 노래로구나 싶기도 해요. 아이는 딱히 시를 쓰거나 수필을 쓸 마음이 없으나, 아이 입에서 톡톡 튀어나오는 말마디를 글월로 옮기면 어느새 아름다운 이야기꽃이 되곤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이한테서 어떤 말이 새삼스럽게 싱그럽다고 느낄까요? 우리는 아이한테서 어떤 말을 귀담아듣고서 이를 글로 옮길 만할까요? 우리 어른들을 둘러싼 아이들한테는 늘 웃음이며 노래가 있으나, 어른들은 스스로 웃음을 놓거나 잊은 채 팍팍하거나 고단하게 살지는 않나요. 어쩌면 우리 어른들은 우리 마음속을 비롯하여 우리 곁 아이들한테 늘 노래랑 웃음이 있는 줄 모르는 채 살지는 않나요.
고향 마을에 들어 내가 뛰어다니던 논두렁을 바라보니 논두렁 물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논 거울)
아버지는 논두렁에서 풀을 한짐 베어다놓고는
어머니와 함께 떡가랑잎을 따러 산에 올랐다
쉬는 날에는 조무래기인 우리도 따라나섰다
소금실재 골짝으로도 가고 재실재 골짝으로도 갔다 (푸른 구멍)
시집 《웃는 연습》(창비, 2017)을 읽습니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시인하고 함께 사는 딸아이 웃음을 지켜보고, 시인이 머무는 시골마을 할매나 할배 몸짓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시인이 적바림하는 글을 들여다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릴 적부터 잘 웃고 잘 노래하며 잘 뛰어놀던 아이였을 텐데, 어느새 웃음을 잃고 말dk “웃는 연습”을 해야 하는 어른이 되고 말았는지 모릅니다.
가지를 뻗고 몸을 낮추는가 싶더니
우리 집 텃밭으로 드는 길을 딱 막고
매실을 주렁주렁 욕심껏 매달았다
내 것이 아니어도 오지고 오진 매실,
새터할매 허리 높이에서 마침맞게 익어갔다 (이웃)
아이들은 연습을 하고서 노래하지 않습니다. 그냥 노래하고 싶을 적에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연습을 하고서 놀지 않습니다. 그저 놀고 싶을 적에 놉니다. 아이들은 연습을 하고서 웃지 않습니다. 웃음이 터져나오면 그대로 웃음을 자지러지게 풀어놓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떤 하루일까요? 웃는 하루일까요, 웃는 연습으로 지새운 하루일까요? 오늘 하루를 티없이 웃고 마냥 웃으며 홀가분하게 웃으면서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 집 텃밭으로 넘어오는 이웃집 할매 매화나무 가지를 웃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갓난쟁이가 이불에 오줌을 싸도 허허 웃으면서 신나게 이불빨래를 할 수 있을까요? 아이가 학교에서 재미난 성적표, 이를테면 0점이 가득한 성적표를 들고 와서 춤을 출 적에 함께 손을 맞잡고 하하하 춤을 출 수 있을까요?
버스를 코앞에서 놓치고도 빙그레 웃음지을 수 있을까요? 한참 기다리던 택시를 누가 앞에서 새치기를 하고 타더라도 가만히 웃음지을 수 있을까요?
작은 살림자리에서 웃음을 찾을 수 있다면, 수수한 마을에서 웃음을 띄울 수 있다면, 따사로운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되고 노래님이 될 만하지 싶습니다. 2017.10.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