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눌린 기억을 펴다 시와문화 시집 56
박몽구 지음 / 시와문화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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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4.

노래책시렁 321


《어느날 극장을 나오며》

 박몽구

 한길사

 1991.10.5.



  삼십만이라는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던 예전에 전남 고흥에 봄판(극장)이 있었을까 모르겠는데, 고흥·강진·해남·보성·장흥·구례·곡성처럼 조그마한 시골에 봄판이 굳이 있을 까닭은 없습니다. 작은시골이라 봄판이 없어도 된다기보다, 들숲바다하고 풀꽃나무가 한 해 내내 새록새록 봄판입니다. 들도 숲도 바다도 없거나 매캐한 서울(도시)이기에, 풀도 꽃도 나무도 시들시들하고 부릉부릉 시끄러운 서울이니까, 그런 데에는 봄판이 많을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어느날 극장을 나오며》에는 흙내음도 흙빛도 흐르지 않습니다. 서울내음하고 서울빛이 흐릅니다. 그러나 서울살이를 썩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를테면 “달콤한 양키 노래를 온 운동장에 마취제처럼 풀어놓아 관중석을 흐물흐물 만들어버렸다” 같은 대목이 줄잇습니다. 노래는 그저 노래일 뿐이고, 아름노래는 저놈(양키)이건 요놈(우리)이건 아름답습니다. 구지레한 노래는 요놈이건 저놈이건 구지레할 뿐입니다. 스스로 눈을 뜨면 시골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골목꽃을 마주하는데, 우리 손으로 빈터에 나무씨앗을 심어서 사랑으로 돌볼 노릇이에요. 나무 한 그루가 우거지기까지 사랑을 쏟는 손길로 붓을 쥔다면, 누가 어디에서 무슨 글을 쓰든 푸르게 빛납니다. 풀꽃씨를 심으소서.


ㅅㄴㄹ


찔레꽃은 온몸을 기울인 향기를 자아내 / 천리를 떨어져 있어도 지척같이 만나고 / 강물은 열 갈래 백 갈래여도 / 저를 허물어뜨리며 내리는 빗방울로 만나는데 / 우리들은 한하늘에서 그리운 말 보낼 수 없구나 (깨알 같은 이름/19쪽)


어깨 겯고 통일 노래 부르려 해도 / 어디선가 온몸이 가시투성이인 알몸들이 불쑥 튀어나와 / 우리들을 물과 기름처럼 갈라놓고 / 달콤한 양키 노래를 온 운동장에 / 마취제처럼 풀어놓아 관중석을 흐물흐물 만들어버렸다 (까치밥/39쪽)


서울 부자에게 홀려 정든 땅을 등진 채 / 양로원 뜰에서 오지 않는 자식을 / 눈이 빠지게 기다리기나 하듯 / 머쓱하게 황금의 공터가 비좁게 어깨를 포개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로 온 돌부처/7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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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시작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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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4.

노래책시렁 288


《참된 시작》

 박노해

 창비

 1993.6.15.



  어린 날을 돌아보면, 둘레 어른들은 돌이한테 “참한 색시를 얻어야지.” 하고 읊조렸습니다. 이런 말을 가만히 듣다가 “사내도 참한 짝꿍이 되어야 하지 않아요?” 하고 대꾸했어요. 이런 대꾸가 건방지다고 여기면서도 ‘아이가 하는 말’이니 허허 웃는 할배가 많았습니다. 《참된 시작》을 모처럼 되읽었습니다. 푸른배움터 막바지, 이른바 ‘고3’에 이 꾸러미를 읽으며 ‘사람이 이렇게 바뀌기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아니, 바뀌었다기보다 처음부터 이만 한 그릇이었겠지’ 하고 되새겼습니다. 이겨야 하거나 져야 하지 않는 길입니다. 때로는 싸움판에 설는지 모르나, ‘저놈을 때려잡거나 죽이려는 칼부림’을 할 까닭이 없어요. 왜 싸울까요? 스스로 구렁에 뛰어들어 밥벌이를 해야 하던 쳇바퀴를 허물려는 싸움입니다. 흙을 부칠 조각밭조차 없어 맨몸으로 부딪히면서 살림을 일으키려던 싸움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봐요. 수렁도 구렁도 쳇바퀴도 허물 노릇이지만, ‘아이돌보기’는 싸움으로는 못 합니다. 게다가 아이한테 싸움을 물려줄 까닭도 일도 없어요. 이긴 이도 진 이도 없습니다. 헛걸음도 첫걸음입니다. ‘참’이 왜 참인지 보아야 합니다. 참하고 참된 차오르는 빛을 보아야 비로소 사랑이고, 스스로 섭니다.


ㅅㄴㄹ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떼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 그해 겨울, /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그해 겨울나무/14쪽)


나는 사람이 아닌 짐승 같은 적들을 없애지도 못하였다 / 겨우 쥐어짜듯 노동해방 외쳐온 내가 저 짐슴같은 자본의 손에 / 이렇게 짐승처럼 죽어가야 하는가 죽어야만 하는가 (나는 사람이 아닌 짐승을 죽였어요/80쪽)


집회장에 함께 나가 투쟁의 손을 내뻗으며 / 당당하게 새순처럼 일어서고 있다 / 일시 흩어지던 해고자 동지들도 / 다시 조적되어 일어서고 있다 (무너진 탑/108쪽)


+


《참된 시작》(박노해, 창비, 1993)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 지친 몸에 마구 줄을 감았다

14쪽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 첫걸음은 졌다

→ 처음부터 무너졌다

14쪽


집회장에 함께 나가 투쟁의 손을 내뻗으며

→ 모임터에 함께 나가 싸우는 손을 내뻗으며

108쪽


당당하게 새순처럼 일어서고 있다

→ 씩씩하게 새싹처럼 일어선다

《참된 시작》(박노해, 창비, 1993) 108쪽


다시 조적되어 일어서고 있다

→ 다시 뭉쳐서 일어선다

→ 다시 쌓아서 일어선다

→ 다시 겹겹이 일어선다

10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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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라리 한국대표시 다시찾기 101
신현림 엮음 / 사과꽃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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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4.

노래책시렁 289


《정선 아라리》

 신현림 엮음

 사과꽃

 2018.2.1.



  글이 없이 말로 살아오던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부르던 노래를 갈무리할 적에는, ‘글이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 뿐 아니라, 글이 없기에 다투거나 싸우거나 자랑하거나 우쭐대는 짓도 없구나’ 하고 깨달을 만합니다. 두고두고 새기려고 글을 그립니다만, 마음에 오롯이 담을 줄 알면, 언제라도 마음밭에서 꺼내어 두런두런 이야기씨앗을 심을 만합니다. 《정선 아라리》는 뜻깊게 나온 꾸러미라고 느끼되, 읽는 내내 아쉽더군요. 아라리를 부른 순이는 짝짓기(연애)만 바라지 않습니다. 짝짓기를 바랄 때도 있으나, 짝짓기만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아라리를 그러모으며 바라보는 엮은이 눈길은 짝짓기에서 맴도는 듯싶습니다. 들숲내를 품으면서 돌보는 길, 아이하고 이 숲을 품고 가꾸는 길, 순이돌이가 어깨동무하면서 짓는 길, 스스로 하늘이 되고 메가 되고 내가 되고 비가 되어 빛나는 길, 이런 뭇길하고는 어쩐지 멀어 보여요. 삶을 담은 노래란, 살림을 실은 노래이고, 사랑을 펴는 노래이며, 어린이 곁에서 온빛을 속삭이는 노래입니다. 그저 먼 옛날부터 흐르고 흘렀기에 값진 가락이지 않습니다. 어제하고 오늘하고 모레 사이에 고이 흐르는 바람과 해와 별을 느끼고 읽을 때라야 비로소 노래일 텐데요?


ㅅㄴㄹ


89. 지게를 만들 때는 나무를 하자는 말이요 / 총각색씨 걸어갈 때는 정들자는 말이다. (21쪽)


511. 산천에 초목은 나날이 젊어 가는데 / 이팔청춘에 이내 몸들은 왜 늙어가나 (74쪽)


796. 여다지 쌍다지 미닫이 문을 / 가만살짝 드러닫어도 소리만 나네 (11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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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 걷는사람 시인선 79
최명진 지음 / 걷는사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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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4.

노래책시렁 328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

 최명진

 걷는사람

 2023.1.25.



  한숨을 쉬다가 읽습니다. 읽다가 한숨을 쉽니다. 책을 내려놓고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책을 잊고서 새노래에 풀노래를 귀담아듣습니다. 이윽고 햇빛이 반짝이고 햇살이 퍼지는 소리를 듣고, 어느새 해가 지더니 별이 돋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가 노래를 쓰거나 읽을 수 있다면, 새하고 바람뿐 아니라 해하고 별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는 뜻이라고 봅니다. 들숲이 들려주는 소리를 못 듣는다면 붓을 쥐지 않을 노릇이요, 바다가 들려주는 소리를 잊는다면 책을 펴지 않을 노릇이지 싶습니다. 들숲바다 품에 안겨서 삶을 짓는 사람일 텐데, 무엇을 쓰고 읽는가요?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는 “슬픈 불”도 “슬픔불”도 아닌 “슬픔의 불”이라고 적습니다. 우리는 우리말을 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말을 읽을 수 있나요? “눈발이 짙다”라 하지 못 한다면, “빵을 굽지” 않는다면, “띠처럼 돋는” 모습을 못 본다면, “더운밤에 끌리지” 않으면, 무엇을 보고 느끼고 말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슬픔도 기쁨도, 삶도 죽음도 손바닥 뒤집기예요. 얼핏 있는 듯 보이나 막상 없는 허울에 사로잡힐 적에는 으레 말을 꾸미더군요. 속이 있는 듯 꾸미는 풀포기는 쭉정이입니다. 속이 있어야 ‘알차다’라 합니다. 알이 차야 누런들입니다.



화를 참는 건 아내가 할 일 내가 측은해 보이는 것도 아내가 할 일 재래시장 돌고 나와 신호등 건너 오르막 오를 때 비닐봉지 훅 털어 버리려고 발 휘두르지만 (비닐봉지/16쪽)


아내와 싸웠다 아내는 지쳤다 예민하다는 말에 예민해 주고받다 보면 왠지 내가 궁지에 몰리는 느낌이지만 잘못이 늘 그 잘못이지만 (마스크팩의 여유/34쪽)


+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최명진, 걷는사람, 2023)


눈발이 점점 성해지고 있다

→ 눈발이 더 짙다

→ 눈발이 차츰 너울거린다

→ 눈발이 자꾸 춤춘다

11쪽


정말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 참말 골똘히 생각한다

13쪽


재래시장 돌고 나와 신호등 건너

→ 저잣거리 돌고 나와 길불 건너

16쪽


아빠가 빵 만든다

→ 아빠가 빵 굽는다

28쪽


오른편에 띠 형태의 발진이 오르더니

→ 오른켠에 띠처럼 돋더니

→ 오른켠에 줄줄이 오르더니

40쪽


내가 출퇴근하는 그 시간에 바구닐 들고 서 있다

→ 내가 오가는 그즈음에 바구닐 들고 선다

→ 내가 오고가는 그때에 바구닐 들고 선다

47쪽


열대야는 취객들을 쉬이 이곳으로 불러온다

→ 더운밤에 술꾼은 쉬이 이곳으로 끌린다

→ 밤더위에 술고래는 쉬이 이곳으로 홀린다

75쪽


오물세가 또 어쩌고

→ 구정삯이 또 어쩌고

→ 더럼삯이 또 어쩌고

→ 치움삯이 또 어쩌고

7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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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엄지척 문학동네 동시집 81
권오삼 지음, 이주희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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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3.

노래책시렁 364


《너도 나도 엄지척》

 권오삼

 문학동네

 2021.6.18.



  잘할 수 있는 길이나 못하는 길은 없습니다. ‘잘하다·못하다’는 ‘잘생기다·못생기다’처럼, 사람들이 틀을 세워서 좋거나 나쁘다고 가르는 굴레나 수렁이에요. 누구를 뽑아서 일을 맡겨야 좋지 않아요. 누가 뽑혀서 어느 자리에 올랐기에 나쁘지 않아요. 해를 보고 별을 봐요. 새를 보고 비를 봐요. 들숲바다하고 풀꽃나무는 사람들이 어떤 씨앗을 심든 지켜봅니다. 누가 무엇을 하건 우리 스스로 마음에 사랑을 심고서 한 발짝씩 걸으면 됩니다. 누구를 뽑느냐가 아닌, 우리 스스로 어떤 터전을 일구려는 사랑을 서로 어깨동무로 나누려느냐 하는 마음일 노릇입니다. 《너도 나도 엄지척》을 읽었습니다. ‘엄지척’을 왜 해야 하는지 알쏭합니다. 잘했기에 엄지척인가요? 못했을 적에는요? 추킴말(칭찬)이 안 나쁘되, 섣불리 엄지척을 안 할 노릇입니다. 다독이고 달래고 함께 웃고 울며 도란도란한 길을 열어야지요. 오늘날 ‘어른 아닌 꼰대’인 분들은 ‘저쪽 놈들은 나빠!’ 하고 가르려고 하는데, 그런 말 한 마디가 바로 싸움(전쟁)입니다. 싸움말을 노래(동시)에까지 심으려 한다면, 어린이는 무엇을 배울까요? 비하고 바람이 왜 올까요? 말장난 아닌 삶읽기를 해야 하지 않나요? ‘착한마음’을 ‘훔쳐’서 주려 한다니, 너무 철없어요.



하늘에서 / 살수기 수억만 대가 / 물을 쏴아쏴아 // 선풍기 수억만 대가 / 바람을 쏴아쏴아 // 둘 다 고물인지 / 이리저리 / 제멋대로 뿌려 댄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25쪽)


양심이 없는 사람에겐 / 양심을 / 훔쳐서라도 주고 싶다 (어느 도둑 아저씨의 꿈/28쪽)


+


《너도 나도 엄지척》(권오삼, 문학동네, 2021)


다음은 제가 정한 제 동시나라 헌법입니다

→ 다음은 제가 잡은 노래나라 길입니다

→ 다음은 우리 노래나라 으뜸길입니다

4쪽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휙― 공중으로

→ 살짝 머뭇머뭇하다가 휙 하늘로

19쪽


기도할 때마다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야

→ 빌 때마다 비는 대로 이루지는 않아

→ 바랄 때마다 바라는 대로 이루지는 않아

20쪽


이 어른 덕분에 모두 무사히 여름을 넘긴다

→ 이 어른 힘으로 모두 여름을 잘 넘긴다

→ 이 어른이 있어 모두 여름을 잘 넘긴다

76쪽


태극기들이 거리에서 국기게양대에서

→ 한나래가 거리에서 나래올림대에서

→ 한날개가 거리에서 나래걸대에서

8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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