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시작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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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4.

노래책시렁 288


《참된 시작》

 박노해

 창비

 1993.6.15.



  어린 날을 돌아보면, 둘레 어른들은 돌이한테 “참한 색시를 얻어야지.” 하고 읊조렸습니다. 이런 말을 가만히 듣다가 “사내도 참한 짝꿍이 되어야 하지 않아요?” 하고 대꾸했어요. 이런 대꾸가 건방지다고 여기면서도 ‘아이가 하는 말’이니 허허 웃는 할배가 많았습니다. 《참된 시작》을 모처럼 되읽었습니다. 푸른배움터 막바지, 이른바 ‘고3’에 이 꾸러미를 읽으며 ‘사람이 이렇게 바뀌기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아니, 바뀌었다기보다 처음부터 이만 한 그릇이었겠지’ 하고 되새겼습니다. 이겨야 하거나 져야 하지 않는 길입니다. 때로는 싸움판에 설는지 모르나, ‘저놈을 때려잡거나 죽이려는 칼부림’을 할 까닭이 없어요. 왜 싸울까요? 스스로 구렁에 뛰어들어 밥벌이를 해야 하던 쳇바퀴를 허물려는 싸움입니다. 흙을 부칠 조각밭조차 없어 맨몸으로 부딪히면서 살림을 일으키려던 싸움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봐요. 수렁도 구렁도 쳇바퀴도 허물 노릇이지만, ‘아이돌보기’는 싸움으로는 못 합니다. 게다가 아이한테 싸움을 물려줄 까닭도 일도 없어요. 이긴 이도 진 이도 없습니다. 헛걸음도 첫걸음입니다. ‘참’이 왜 참인지 보아야 합니다. 참하고 참된 차오르는 빛을 보아야 비로소 사랑이고, 스스로 섭니다.


ㅅㄴㄹ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떼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 그해 겨울, /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그해 겨울나무/14쪽)


나는 사람이 아닌 짐승 같은 적들을 없애지도 못하였다 / 겨우 쥐어짜듯 노동해방 외쳐온 내가 저 짐슴같은 자본의 손에 / 이렇게 짐승처럼 죽어가야 하는가 죽어야만 하는가 (나는 사람이 아닌 짐승을 죽였어요/80쪽)


집회장에 함께 나가 투쟁의 손을 내뻗으며 / 당당하게 새순처럼 일어서고 있다 / 일시 흩어지던 해고자 동지들도 / 다시 조적되어 일어서고 있다 (무너진 탑/108쪽)


+


《참된 시작》(박노해, 창비, 1993)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 지친 몸에 마구 줄을 감았다

14쪽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 첫걸음은 졌다

→ 처음부터 무너졌다

14쪽


집회장에 함께 나가 투쟁의 손을 내뻗으며

→ 모임터에 함께 나가 싸우는 손을 내뻗으며

108쪽


당당하게 새순처럼 일어서고 있다

→ 씩씩하게 새싹처럼 일어선다

《참된 시작》(박노해, 창비, 1993) 108쪽


다시 조적되어 일어서고 있다

→ 다시 뭉쳐서 일어선다

→ 다시 쌓아서 일어선다

→ 다시 겹겹이 일어선다

10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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