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 걷는사람 시인선 79
최명진 지음 / 걷는사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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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4.

노래책시렁 328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

 최명진

 걷는사람

 2023.1.25.



  한숨을 쉬다가 읽습니다. 읽다가 한숨을 쉽니다. 책을 내려놓고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책을 잊고서 새노래에 풀노래를 귀담아듣습니다. 이윽고 햇빛이 반짝이고 햇살이 퍼지는 소리를 듣고, 어느새 해가 지더니 별이 돋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가 노래를 쓰거나 읽을 수 있다면, 새하고 바람뿐 아니라 해하고 별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는 뜻이라고 봅니다. 들숲이 들려주는 소리를 못 듣는다면 붓을 쥐지 않을 노릇이요, 바다가 들려주는 소리를 잊는다면 책을 펴지 않을 노릇이지 싶습니다. 들숲바다 품에 안겨서 삶을 짓는 사람일 텐데, 무엇을 쓰고 읽는가요?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는 “슬픈 불”도 “슬픔불”도 아닌 “슬픔의 불”이라고 적습니다. 우리는 우리말을 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말을 읽을 수 있나요? “눈발이 짙다”라 하지 못 한다면, “빵을 굽지” 않는다면, “띠처럼 돋는” 모습을 못 본다면, “더운밤에 끌리지” 않으면, 무엇을 보고 느끼고 말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슬픔도 기쁨도, 삶도 죽음도 손바닥 뒤집기예요. 얼핏 있는 듯 보이나 막상 없는 허울에 사로잡힐 적에는 으레 말을 꾸미더군요. 속이 있는 듯 꾸미는 풀포기는 쭉정이입니다. 속이 있어야 ‘알차다’라 합니다. 알이 차야 누런들입니다.



화를 참는 건 아내가 할 일 내가 측은해 보이는 것도 아내가 할 일 재래시장 돌고 나와 신호등 건너 오르막 오를 때 비닐봉지 훅 털어 버리려고 발 휘두르지만 (비닐봉지/16쪽)


아내와 싸웠다 아내는 지쳤다 예민하다는 말에 예민해 주고받다 보면 왠지 내가 궁지에 몰리는 느낌이지만 잘못이 늘 그 잘못이지만 (마스크팩의 여유/34쪽)


+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최명진, 걷는사람, 2023)


눈발이 점점 성해지고 있다

→ 눈발이 더 짙다

→ 눈발이 차츰 너울거린다

→ 눈발이 자꾸 춤춘다

11쪽


정말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 참말 골똘히 생각한다

13쪽


재래시장 돌고 나와 신호등 건너

→ 저잣거리 돌고 나와 길불 건너

16쪽


아빠가 빵 만든다

→ 아빠가 빵 굽는다

28쪽


오른편에 띠 형태의 발진이 오르더니

→ 오른켠에 띠처럼 돋더니

→ 오른켠에 줄줄이 오르더니

40쪽


내가 출퇴근하는 그 시간에 바구닐 들고 서 있다

→ 내가 오가는 그즈음에 바구닐 들고 선다

→ 내가 오고가는 그때에 바구닐 들고 선다

47쪽


열대야는 취객들을 쉬이 이곳으로 불러온다

→ 더운밤에 술꾼은 쉬이 이곳으로 끌린다

→ 밤더위에 술고래는 쉬이 이곳으로 홀린다

75쪽


오물세가 또 어쩌고

→ 구정삯이 또 어쩌고

→ 더럼삯이 또 어쩌고

→ 치움삯이 또 어쩌고

7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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