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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의 장군 ㅣ 뜨인돌 그림책 24
재닛 차터스 글, 마이클 포먼 그림, 김혜진 옮김 / 뜨인돌어린이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0
‘꽃밭 대통령’과 ‘텃밭 장군님’을 기다리며
― 꽃밭의 장군
재닛 차터스 글
마이클 포먼 그림
김혜진 옮김
뜨인돌어린이 펴냄, 2011.3.7. 11000원
아이들하고 살면 아이들을 돌보는 하루를 누리지요. 어버이라면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데에 온힘을 쏟아요. 그런데, 어버이는 아이들을 돌보기만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언제나 그 자그마한 손으로 어버이를 감싸 주고 어루만져 줍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데, 아이들도 자그마한 손으로 ‘돌봄질’을 배워서 고스란히 따라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무엇이든 새롭게 배울 뿐 아니라, 어버이를 새롭게 가르쳐요.
까르르 웃으면 기쁨이 샘솟는다는 대목을 온몸으로 가르치는 아이들이에요. 낭낭낭 노래하면 즐거움이 자란다는 대목을 온몸으로 가르치는 아이들이지요. 어버이는 말을 가르치고 살림이나 일이나 심부름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새로운 말을 짓는 놀이를 어버이한테 가르칠 뿐 아니라, 살림이나 일이나 심부름을 웃고 노래하면서 기쁨이 되도록 하는 몸짓을 가르쳐 줍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이 되고 싶었고 자기 군대가 세상 모든 나라의 장군들에게 칭찬 듣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조드퍼 장군은 날마다 무기를 닦고, 군복을 다리고, 군화에 광을 내도록 병사들을 훈련시켰습니다. (4쪽)
재닛 차터스 님이 글을 쓰고, 마이클 포먼 님이 그림을 그린 《꽃밭의 장군》(뜨인돌어린이,2011)이라는 그림책을 가만히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이 그림책을 아홉 살 큰아이하고 방바닥에 함께 엎드려서 천천히 읽습니다. 서로서로 한 줄씩 두 줄씩 소리내어 읽습니다. 이동안 여섯 살 작은아이는 곁에서 말소리를 듣지요.
그림책 《꽃밭의 장군》에 나오는 ‘조드퍼 장군’은 처음에는 수많은 여느 장군하고 엇비슷합니다. ‘싸움터에서 이름을 드날리는 장군’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습니다. 조드퍼 장군은 이녁이 다스리는 부대에서 군인들이 늘 훈련을 잘 받도록 북돋우고, 군화에 먼지 한 점 내려앉지 않도록 지켜보았습니다. 무기를 닦도록 시키고, 무기를 잘 다루도록 이끌지요.
부대로 돌아가는 길에 숲 속 동물들이 조드퍼 장군의 눈에 띄었습니다. 수없이 지나다닌 길이었지만 말을 타고 너무 빨리 지나쳤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장군은 다람쥐, 토끼, 들쥐, 고슴도치, 제비, 멧비둘기 등을 보았습니다. 보기 힘든 공작도 보았지요. (11쪽)
그림책 이야기가 이대로 흐른다면 재미없을 테지요? 곰곰이 들여다보면 군인이 군대에서 하는 일이란 참 재미없어 보여요. 무기를 닦고, 군화를 닦고, 내무반을 치우고, 옷을 깔끔하게 다려입고, 그러면서 훈련할 적에는 옷을 온통 더럽히면서 뒹굴고, 다시 청소하고 군화와 무기를 닦고, 총칼을 잘 다루는 솜씨를 갈고닦고 …….
군대를 다녀온 어버이로서 군대를 돌아봅니다. 군대에서 하는 일에는 ‘생산’이 없습니다. 집에서 하는 일, 이른바 집안일은 ‘집살림’이 될 수 있어요. 집살림을 알뜰살뜰 가꾸면 아이들도 즐거워요. 그렇지만 군대에서 ‘군대일’이나 ‘군대살림’을 알뜰살뜰 가꾸면 누구한테 즐거울까요? 바로 몇몇 사람 ‘장군’이나 ‘정치 우두머리(대통령)’한테 즐겁겠지요.
전쟁무기를 잘 닦아서 번쩍번쩍 빛나도록 하면 무엇이 좋을까요? 부엌칼을 잘 갈거나 호미를 잘 다스리도록 하면 무엇이 좋을까요? 전쟁무기는 ‘누군가를 적으로 삼아서 죽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무기는 아무것도 빚지(생산하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는 모든 것을 없앨(파괴) 뿐입니다.
집안일이나 집살림은 모든 것을 새롭게 빚고(생산하고) 살리지요. 살리는 일이기에 ‘살림’이면서 ‘집살림’이고, 집안을 살려서 웃음과 노래가 흐르도록 하는 사람이 ‘살림꾼’이에요. 아무튼, 그림책 《꽃밭의 장군》에 나오는 조드퍼 장군은 여느 날하고 똑같이 말을 타고 어느 길을 가다가 그만 말에서 미끄러져요. 그만 꽃밭에 나자빠지지요.
조드퍼 장군은 오랫동안 꽃과 벌을 지켜보았습니다. 얼마나 평화롭던지요. 전에는 왜 이런 것들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한참 후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장군은 자기가 꽃을 깔고 앉았다는 것을 알고 당황했습니다. 꽃은 처지고 슬퍼 보였습니다. 장군은 꽃밭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병사들에게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장군은 꽃 두 송이를 꺾어 가기로 했습니다. (16쪽)
꽃밭에 나자빠진 장군은 다친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날부터 무엇인가 달라져요. 왜냐하면, 꽃밭에 나자빠지면서 ‘꽃’을 처음으로 느꼈거든요. 이제껏 군사훈련만 하고 ‘전쟁 영웅’이 되기를 꿈꾸던 장군인데, 이렇게 많은 꽃이 이렇게 곱게 피어서 이렇게 향긋한 숨결을 이루는 줄 처음으로 느껴요.
수많은 병사를 거느리면서 전쟁무기로 이웃나라를 윽박지를 수 있던 ‘장군님’이지만, 숲을 걸어가면서 ‘벌 한 마리’를 보며 움찔 놀라요. 벌이 저를 쏠까 봐 두려워합니다.
참으로 웃기지요! 총칼로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는 훈련을 하면서 ‘벌 한 마리’가 무섭다니요! 그런데 숲에서 벌은 장군을 쳐다보지 않아요. 벌은 꿀과 꽃가루를 모으느라 바쁘기에 ‘장군 따위는 쳐다보지 않’는다고 해요.
다음날 아침, 조드퍼 장군은 병사들에게 군대를 떠나 집으로 가서 각자의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 되도록 도와 달라고도 했지요. 병사들은 모두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조드퍼 장군보다 더 기쁜 사람은 없었습니다. (21쪽)
그림책 《꽃밭의 장군》에 나오는 조드퍼 장군은 말에서 떨어져서 꽃밭에 드러누우며 한낮을 보낸 뒤에 숲길을 걸어서 부대로 돌아오고 나서 ‘아주 다른 사람’이 됩니다. 전쟁훈련이나 전쟁무기가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부대 해산’을 하기로 다짐해요. 모든 병사한테 ‘집으로 돌아가라’고 시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이제까지 하던 일을 다시 하라’고 시켜요.
집으로 돌아간 병사는 이제 ‘군인’이 아닌 ‘아버지’가 됩니다. 때로는 ‘마을 젊은이’가 되지요. 때로는 ‘멋진 일꾼’이 되어요. 들에서 바다에서 숲에서 마을에서 저마다 솜씨를 뽐내면서 제 고향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는 ‘새로운 사람’으로 즐겁게 노래하면서 살림을 짓습니다.
조드퍼 장군은 ‘군부대’를 바꾸기로 합니다. 군부대에 학교를 세우고 공원을 두며 밭을 일구지요. 짙푸른 텃밭하고 눈부신 꽃밭을 일구어요. 이리하여 조드퍼 장군은 이제부터는 ‘장군’이 아니라 ‘시골 아재’로 거듭납니다. 묵은 탈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어요. ‘이름난 장군’으로 나아가는 길은 내려놓고 ‘사랑스러운 어른’으로 일어서는 길을 걸어요.
아이들하고 오순도순 이 그림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에서도 군부대 장군님들이 ‘부대 해산’을 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요. 남북녘 정치 지도자가 모여서 ‘남북녘 군대 해산 + 남북녘 전쟁무기 없애기’를 하자면서 다짐을 하고 도장을 꾹 찍으며, 서로서로 젊은 일꾼이 고향마을로 돌아가서 아름다운 마을살림을 가꾸도록 북돋우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하고도 생각합니다.
군부대 유지하고 전쟁무기 생산에 돈을 쓰지 말고, 마을을 살리고 집살림을 돌보는 데에 슬기롭게 돈을 쓰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나라가 되고 지구별이 될 테지요? 남북녘 정치지도자와 장군님이 모두 ‘꽃밭 대통령’이 되고 ‘꽃밭 장군님’이 될 수 있는 날을 빌어 봅니다. 4349.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