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
이수애 글.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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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에 새잎이 돋으니 걱정하지 마

― 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

 이수애 글·그림

 한울림어린이 펴냄, 2015.12.24. 12000원



  겨울에도 제법 포근한 고장에서 살기 앞서까지 ‘늘푸른나무’는 거의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소나무나 잣나무쯤은 겨울에도 푸른 잎을 매다는 줄 알았지만, 다른 나무는 생각해 보기 어려웠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겨울이 꽁꽁 얼어붙는 고장에서는 딱히 다른 늘푸른나무를 만나기 어려웠거든요.


  전남 고흥에서 살며 여러 가지 늘푸른나무를 만납니다. 맨 먼저 동백나무하고 후박나무를 만났고, 가시나무와 아왜나무를 만났어요. 유자나무를 만나고, 태산목 같은 나무도 만나고요. 이들 나무는 한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아요. 아니, 한겨울에도 잎을 푸르게 매단다고 해야 맞겠지요. 때때로 눈이 내리는 날씨가 찾아오면 이들 나무는 바르르 떨면서 눈송이를 잎에 얹는데, 햇볕이 나면서 눈이 녹으면 다시 기운을 내어 짙푸른 잎으로 바뀌어요.



“머리가 너무 둥글고 무거워요. 멋있고 화려한 양버즘나무 머리로 해 주세요.” “아하! 손님한테 잘 어울리겠네요.” 애벌레 미용사는 야금야금 나뭇잎을 갉아 대기 시작했어요. (6쪽)




  이수애 님이 빚은 그림책 《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한울림어린이,2015)를 읽으면서 나뭇잎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 그림책은 ‘가을이 한껏 무르익은 어느 날 잎이 무척 커다랗게 자란’ 나뭇잎 손님이 숲속 머리집으로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잎사귀가 아주 커다랗게 자란 손님은 ‘너무 크다 싶은’ 머리(머리카락 구실을 하는 잎몸)를 좀 손질해 주기를 바랍니다. 숲속 머리집 일꾼인 애벌레는 나뭇잎 손님 잎몸을 야금야금 갉으면서 이모저모 예쁘게 가꾸어 준다고 해요.


  그런데 숲속 머리집에서 나뭇잎 머리를 손질해 주는 애벌레는 고단합니다. 나뭇잎 손님은 이도 저도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애벌레 미용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갉아서 잎몸을 줄이기’뿐인데, 잎몸은 자꾸자꾸 줄지만, 나뭇잎 손님으로서는 이 모습도 저 모습도 마음에 안 들어요.



애벌레 미용사는 한숨을 폭 내쉬었어요. 그러곤 다시 나뭇잎을 야금야금 갉아 대기 시작했지요. 머리는 밝은 노란색으로 물들이고요. (14쪽)



  애벌레 미용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놓고 망설입니다. 가슴을 졸이고, 어쩔 줄 모릅니다. 이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요. 애벌레 미용사는 나뭇잎 손님 머리를 알록달록 꾸며 주지요. 잎몸이 거의 다 사라졌지만 알록달록 새롭게 꾸민 모습을 본 나뭇잎 손님은 이를 마음에 들어 해요. 홀가분하면서 기쁜 몸짓으로 숲속 머리집을 나서지요.


  그렇지만 나뭇잎 손님한테는 또 괴로운 일이 닥칩니다. 아마 겨울을 재촉하는 비일 듯한데, 가을비가 쏟아지면서 ‘애써 손질한 머리’가 모두 망가져요. 나뭇잎 손님은 그저 울음을 터뜨릴밖에 없고, 울음을 터뜨리다가 졸음이 쏟아져서 얼른 나무로 돌아가서 겨울잠을 자기로 합니다. 깊고 깊은 겨울잠을, 고요하고 고요한 겨울잠을, 포근하면서 넉넉한 겨울잠을 달콤하게 자기로 해요.




나뭇잎 손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미용실을 나섰어요. 그런데 갑자기 톡톡톡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졌어요. “으악, 내 머리가 다 망가지겠어!” (26∼27쪽)



  《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는 그림책이니까 나뭇잎이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을 그리고, 애벌레가 미용사 구실을 하는 모습으로 그립니다. 우리 삶으로 돌아본다면, 나뭇잎은 한 해나 여러 해를 살다가 져요. 한 해만 사는 나뭇잎이라면 겨우내 흙으로 돌아갈 테고, 여러 해를 사는 나뭇잎이라면 겨울잠을 잔다고도 할 만하지요.


  그러면 늘푸른나무는 어떠할까요? 늘푸른나무는 잎을 언제 떨굴까요?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에서 자라는 늘푸른나무를 찬찬히 살펴보면, 늘푸른나무는 겨울을 뺀 봄이랑 여름이랑 가을 언제나 잎을 떨굽니다. 딱히 어느 철에 더 많이 떨군다고 하기보다는 세 철 내내 조금씩 잎을 떨구면서 새 잎으로 바꾸어요. 다른 철보다 늦봄하고 첫여름에 잎을 많이 떨군다고도 할 만해요.



나뭇잎 손님은 너무너무 슬펐어요. 몸도 마음도 지쳐 버렸지요. 나뭇잎 손님은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어요. 따뜻한 바람이 불 무렵, 나뭇잎 손님은 긴 잠에서 깨어났어요. (30∼32쪽)




  추운 겨울은 추위로 모두 얼어붙게 합니다. 추위가 닥치면 누구나 오들오들 떨면서 몸을 웅크립니다. 풀은 겨우내 거의 모두 시들어 죽고, 나무도 겨우내 잔뜩 옹크려요. 다만, 나무는 겨우내 몸을 옹크려도 씩씩하게 겨울눈을 내놓습니다. 가장 추운 겨울에 나무는 새롭게 꿈을 꾸면서 겨울눈을 두 가지 내놓지요. 하나는 꽃눈이고 하나는 잎눈이에요. 봄을 기다리면서 터뜨릴 새 꽃송이하고 잎사귀는 겨울 바람을 마시면서 고요히 꿈을 꾸듯이 천천히 자랍니다.


  그림책 《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는 겨우내 꿈을 꾸면서 새봄에 새롭게 깨어나는 나뭇잎을 가만히 보여줍니다. 이 그림책은 숲속 머리집에서 온갖 예쁜 모습으로 잎몸을 꾸미는 줄거리를 길게 다루지만,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자리에서 ‘새봄 새잎’을 상냥하게 보여주어요.


  걱정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까요. 커다란 잎몸이 모두 없어졌다고 한들 걱정할 까닭이 없다는 이야기를 속삭인다고 할까요. 새봄에 새롭게 돋으면서 그야말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테니까요. 그리고, 숲속 머리집 일꾼인 애벌레도 나뭇잎처럼 겨울잠을 잘 테지요. 겨울 들머리까지 힘껏 일하며 잎을 잔뜩 갉아먹은 애벌레는 이제 더는 잎을 갉을 수 없도록 자라서 기나긴 겨울잠을 자겠지요. 그러고는 새봄에 새잎이 돋을 즈음, 어여쁜 나비로 눈부시게 태어나서 나뭇잎한테 찾아갈 테고요. 나뭇잎한테 인사하고 함께 놀다가 어느 날 나뭇잎 뒤쪽에 앙증맞도록 작은 알을 깔 테고, 이 알은 다시 애벌레로 자라서 ‘숲속 나뭇잎 머리(잎몸) 손질’을 해 주는 몫을 맡을 테지요.


  어른인 나도, 어여쁜 아이들도, 날마다 즐겁고 고요히 밤잠을 자면서 새롭게 꿈을 꿉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밤이 지나면 아침이 와요. 하루를 기쁘게 누렸으니 즐겁게 잡니다. 아침마다 기지개를 한껏 켜면서 새롭게 노래를 부릅니다. 4349.1.3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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