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는데

 


  빨래줄이 한 번 톡 풀렸다. 아이들이 빨래줄 이은 자리를 자꾸 잡아당기고 이래저래 하느라 풀렸을는지 모르나, 매듭을 지은 내가 제대로 매듭을 안 지었으니 풀렸을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살짝 늘어진 매듭을 잡으려고 펄쩍펄쩍 뛰면서 노니까,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들 탓’ 하기란 참 쉽다. 이러면서 아이들한테 말할 테지. “하지 말라고 했잖니?” 그래,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하지 말라”고 말했지. 아이는 이 말을 들었지. 그리고 아이는 이 말을 이내 잊지. 아이는 스스로 놀고픈 놀잇감과 놀잇거리를 찾고 생각하고 살피고 즐기니까. 슬그머니 눈치를 보기도 하지만, 눈치를 아예 안 보기도 하고, 이러거나 말거나 신나게 뛰놀면 가장 즐겁다. 아무렴, 놀아야지. 놀고 또 놀아야지. 놀며 넘어뜨리고 넘어지고. 놀다가 뒹굴고 구르고. 부딪히고 부대끼고 하면서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겠지. (4345.1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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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안다

 


  아이들은 안다. 스스로 어엿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어른들도 안다. 어른 또한 스스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다만,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너무 어릴 때부터 울타리 안쪽에 갇혀 지식외우기·시험공부에 얽매이면, 스스로 아무것도 모른다. 어른이라 하더라도 돈벌이에 목을 매달며 하루하루 삶을 잊을 적에는 스스로 아무것도 못 느끼고 못 보며 못 깨닫는다. 모든 아이들이 어른이 되지만, 모든 어른들은 아이로 오랜 나날을 살았다. 아이도 어른도 똑같이 사람이며, 저마다 가슴속에 푸른 숨결을 건사한다. 푸른 숨결을 읽으며 느끼고 즐길 때에 비로소 사람이라는 이름이 붙고, 푸른 숨결을 못 읽거나 못 느끼거나 못 즐길 때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4345.1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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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을 떠나 밖에서 하루만 지내도

 


  집을 떠나 밖에서 하루만 지내도 시골집으로 돌아오면 여러 날 고단한 기운을 씻어야 합니다. 왜 이렇게 바깥마실이 고단할까 하고 헤아리고 보면, 시골집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던 사랑이 없는 탓 아닌가 싶습니다. 고작 하루라 하더라도 아이들 삶과 사랑과 꿈을 내 마음과 눈과 몸에서 잊은 채 바깥일에 따라 움직이니, 밖에서는 으레 고단하거나 지치지 싶어요.


  집을 떠나 밖에서 하루만 지내더라도 ‘아이들 찍는 사진’이 하루치 없습니다.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 뒹구는 모습을 꾸준하게 사진으로 담다 보니, 고작 하루라 하더라도, 아니 한 시간이라 하더라도 아이들을 지켜보지 않거나 아이들이랑 부대끼지 않으면 몹시 허전하거나 서운합니다. 어버이 없으면 아이들이 밥을 굶거나 못 사는 셈 아니라, 아이들 없으면 어버이로서 허전하고 쓸쓸하달까요.


  아이들을 예쁘게 바라보며 내 마음 예쁘게 다스립니다. 어버이로서 예쁘게 살아가며 아이들은 어버이랑 뒹굴 적에 예쁜 꿈을 받아먹습니다. (4345.1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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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은 너희 것이다

 


  이 지구별은 너희 것이다. 이 나라는 너희 것이다. 이 땅은 너희 것이다. 어른들 것은 하나도 없다. 어른이 되어 ‘힘·이름·돈’에 얽매인 사람들은 이 지구별도 이 나라도 이 땅도 가질 수 없다. 힘도 이름도 돈도 살피지 않고 홀가분한 너희가 바로 이 지구별과 이 나라와 이 땅을 가질 수 있다.


  내려놓는대서 가지지 못한다. 풀어놓는대서 얻지 못한다. 내려놓을 것조차 없이 처음부터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는 사람만 가진다. 풀어놓거나 나누어 줄 것조차 없이 처음부터 홀가분한 몸과 마음인 사람만 얻는다.


  어른이란 누구나 아기로 태어나 어린 나날을 보낸다. 곧, 몸은 어른이되 마음은 어린이라면, 이들도 이 지구별을 가진다. 그런데, 마음이 어린이인 사람은 어린이 몸뚱이라 하건 어른 몸뚱이라 하건 굳이 이 지구별을 가질 마음이 없다. 다 같이 누리는 삶터요 서로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삶자리인 줄 몸으로 살가이 느낄 테니까. 달리자, 흙을 박차고 달리자. 마시자, 싱그러운 햇살바람을 마시자. (4345.1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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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이가 지켜보다

 


  네 식구 함께 맑고 밝은 가을날 한껏 누리려고 천등산 나들이를 간다. 밥을 먹이고 빨래를 마무리지은 다음 감 여덟 알이랑 물이랑 옷가지를 챙긴다. 낮잠이 살짝 모자란 아이들은 대문을 나서며 조금 걸을 때부터 이리 칭얼 저리 종알 힘들다 노래한다. 그러게, 잠 넉넉히 자고 일어난 다음, 밥 알뜰히 먹으면 얼마나 좋니, 자라 할 때 안 자고 먹으라 할 때 안 먹으니까, 이렇게 나들이 나올 적에 벌써 힘들다 소리 나오지.


  달래고 어르고 업고 안고 하면서 멧기슭 쉼터까지 오른다. 냇물에 낯을 씻고 감을 먹으며 쉰다. 작은아이가 한 시간 남짓 달게 자고 나서 멧길을 내려온다. 가을일로 바쁜 논배미를 지날 무렵, 가을걷이 끝내고 볏짚을 묶는 큰차를 지켜본다며 작은아이가 우뚝 선다. 작은아이 곁에 큰아이도 함께 선다. 두 아이는 한참 물끄러미 지켜본다. 큰아이는 이내 까르르 웃으며 다른 데로 달린다. 작은아이는 마냥 서서 바라본다.


  물끄러미 지켜보는 작은아이 가슴에 어떤 이야기가 스며들까. 작은아이가 받는 가을볕은 어떤 기운일까. 파랗디파란 하늘이 아이들 머리 위에서 춤춘다. 언뜻선뜻 비질을 하다 말다 그림 같은 구름이 하얗게 물든다. 온 들판과 마을에는 나락내음이 물씬 풍긴다. 들에서 일을 하건 들길을 걷건, 모든 마을사람은 온몸에 나락내음이 깊이 밴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운 삶을 바라보며 자란다. 어버이는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아이들 바라보며 나날이 새삼스레 넋과 얼을 북돋우며 함께 자란다. (4345.10.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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