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이 맨 처음 무엇을 보는가.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이 맨 처음 어떤 소리를 듣는가. 아침에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는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마음속에 품는가. 아침에 일어나 뛰노는 아이들이 맨 먼저 어떤 놀이를 즐기는가.


  어린이날 맞이해 아이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으로 온 이틀째 아침, 나는 이곳에서 오늘 아침 직박구리 두 마리 만난다. 우람한 송전탑이 논 한복판에 우뚝 선 일산 구산동 한쪽 조그마한 집 가장자리에 직박구리 두 마리 찾아들어 찌익찌익 노래한다. 내 바로 옆,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자리에 앉아서 노래를 한다.


  작은아이가 으앙 소리를 내며 일어난다. “아부지!” 하고 부른다. 작은아이를 안아 쉬를 누인다. 작은아이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일구는 텃밭 바라보는데, 이 옆으로 커다란 짐차 우르릉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작은아이는 오늘 아침 맨 처음으로 저 커다란 짐차를 보고 짐차 소리를 듣는구나.


  큰아이는 오늘 아침에 무엇을 보고 어떤 소리를 들었을까. 외할아버지가 켠 텔레비전을 보았을까. 외할머니하고 인사를 주고받았을까.


  우리 아이들은 도시로 마실을 나오면 어떤 모습을 가슴에 담고, 어떤 소리를 마음에 담을까. 우리 아이들은 도시에서 어떤 꿈과 사랑을 받아먹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하고 또래가 될 다른 아이들은 이 도시에서 날마다 어떤 빛과 소리와 무늬와 결과 냄새를 받아먹으면서 하루를 일굴까. 4346.5.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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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나오는 아이들과

 


  어린이날 맞추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으로 찾아간다. 나는 밤새 집안일 한다. 새벽에 빨래를 하고 밥을 한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잔다. 자다가 칭얼거리는 아이들 쉬를 누인 다음 토닥토닥 재우고는, 다시 이것저것 일손 붙잡는다. 고흥부터 일산까지 가는 길에 아이들 먹을 밥이랑 이것저것 꾸린다. 아침 여덟 시 십오 분 군내버스 타고 읍내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모든 짐 다 꾸린 아침 여덟 시에 아이들 깨운다. 큰아이는 스스로 옷 입으라 하고, 작은아이는 바지 갈아입히고 양말 신긴다.


  부랴부랴 마을 어귀 버스터로 나온다. 한참 기다려도 군내버스 안 온다. 왜 오는가 싶더니, 내가 버스때를 잘못 읽었다. 여덟 시 십오 분 아닌 여덟 시 사십오 분 버스였다.


  아이들이 배고프다 한다. 시외버스에서 주려 하던 빵을 꺼낸다. 잼병도 꺼낸다. 달기잼을 발라 두 장씩 준다. 시골마을 아침볕 받으며 나무걸상에 앉아 군내버스 기다리는 동안 빵조각 먹는다. 아이들 곁에 내가 짊어질 가방을 놓고 바라보니, 내가 짊어질 가방은 아이들 몸피보다 크고 아이들 몸무게보다 무겁다. 서울 가는 시외버스 탈 때까지 졸음을 참자.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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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써는 손도마

 


  아이들 아침밥 차리려고 찌개를 끓이며 두부를 송송 썬다. 이제 두부는 사지 않으려 했는데, 가게에서 두부를 지지며 파는 아주머니를 보고는, 한 번만 더 사야겠다고 느낀다. 어느 가게에서나 으레 ‘국산 콩’으로 두부를 빚는다고 말하지만, ‘유전자 건드린 콩’인지 아닌지까지 말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러한 두부를 굳이 먹어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낀다.


  가게에서 사들인 두부는 맛나게 먹자 생각하며 두부를 송송 썰다가 문득 생각한다. 찌개에 넣는 두부를 썰 때에 나무도마에 대고 썬 일이 거의 없다. 언제나 손바닥을 도마로 삼아 송송 썰어서 곧바로 냄비에 넣는다. 도마에 얹어 썰면 더 모양 나게 썰는지 모르지만, 두부는 손바닥에 올려서 썰어도 모양이 잘 난다. 손바닥에 얹어서 냄비에 넣을 때에 냄비물이 덜 튄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는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논다. 밥과 찌개와 이런저런 반찬들 다 차렸다. 아이들을 부른다. 여섯 살 큰아이더러 수저를 놓으라 시킨다. 아이들은 조잘조잘 떠들면서 밥상 앞에 앉는다. 얘들아, 맛있게 먹고 즐겁게 놀자. 싹싹 비우고 개구지게 뛰어놀자. 4346.5.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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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으로 파고드는 책읽기

 


  그림책 펼쳐 읽어 줄라 치면,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무릎으로 파고든다. 이제 큰아이는 몸이 제법 자라, 어머니도 아버지도 두 아이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 주기 살짝 벅차다. 큰아이 스스로 잘 알 테지. 그래도 머리라도 쑥 집어넣으려 하고, 몸 한쪽 기대어 무릎을 조금이라도 차지하고 싶다. 그런데 작은아이도 세 살 되다 보니, 작은아이 몸뚱이도 퍽 크다. 두 아이 몸무게 더하면 삼십삼 킬로그램이 되고, 곧 삼십오 킬로그램 넘으리라. 얘들아, 이젠 너희들이 스스로 따로따로 앉아서 놀 때란다. 무릎은 가끔 살짝 내어줄게. 4346.5.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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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팔에 안고

 


  여섯 살 큰아이와 세 살 작은아이는 늘 아버지와 어머니 팔과 어깨와 등과 가슴에 안긴 채 돌아다닌다. 두 아이는 스스로 신나게 뛰고 걷고 달리고 날고 할 적에는 어버이 품을 떠나지만, 졸립거나 힘들거나 고단하거나 잠들면 언제나 어버이 품에 찰싹 달라붙는다.


  여섯 살 큰아이 데리고 여섯 해 살아오는 동안 날마다 느낀다. 이 아이가 바깥에서 잠들어 집까지 고이 안고 들어와서 자리에 눕힐라치면, 어느새 벌떡 일어난다. 집으로 오기까지 퍽 먼 길에 일어나서 걸어 주어도 되련만, 이때에는 걷지도 일어나지도 않는다. 이리하여, 아버지는 온갖 짐을 짊어지고 든 채 아이를 안고 걷는다. 팔에 힘이 다 빠진다. 좀 쉬자, 하고 생각할 무렵 큰아이가 눈을 번쩍 뜬다.


  큰아이는 알까? 이럴 때마다 얼마나 얄미운지. 그런데 이 얄미운 짓을 벌써 여섯 해째 한다.


  일곱 살이 되어도, 여덟 살이 되어도, 아홉 살이 되거나 열 살이 되어도 이 같은 모습을 보여줄까? 히유. 아버지 팔뚝이 무쇠 팔뚝이 되면 될까? 아버지 어깨가 무서 어깨가 되면 될까? 아버지 등짝이 무쇠 등짝이 되면 될까? 얘야. 좀 자자. 4346.4.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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