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달, 웃는 오이

 


  동그랗게 썬 오이를 먹던 큰아이가 문득 묻는다. “아버지, 이거 달이야?” “아니. 보름달이야.” “오잉? 그러면 이거는? 이거 달이야?” “아니. 그건 초승달이야. 달은 동그랄 때에는 보름달이고, 가느다랄 때에는 초승달이고, 반토막일 때에는 반달이야.” 잘 알아들었을까? 한창 뭔가를 쪼물딱쪼물딱하더니 빙긋 웃는다. 뭔데? 오이를 조금씩 잘라서 먹고 붙여서 “아버지, 이거 웃는 달이야.” 하면서, ‘웃는 오이’를 만들어 밥상 귀퉁이에 올린다. 작은아이도 옆에서 “웅는 달. 웅는 달.” 하고 누나 말을 따라하려고 애쓴다. 4346.5.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들과 자전거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운 다음, 아이들 이모부더러 자전거를 몰아 보라 한다. 집에서 면소재지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이 길에는 자전거 타기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그럭저럭 갈 만하고, 두 아이와 수레를 붙인 무거운 자전거도 이럭저럭 끌 만하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이 샛자전거와 수레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를 들여다본다.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달리는 맛 어떠하니. 이모부가 달리는 자전거 맛은 아버지가 달리는 자전거 맛하고 얼마나 다르니.


  자전거로 함께 달리면서 바람소리를 듣고 바람내음을 맡는다. 자전거로 나란히 달리면서 멧새와 개구리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다. 길바닥을 볼볼 기는 풀벌레 바라보고, 이웃마을 논과 밭을 내다본다. 우리를 둘러싼 마을과 숲과 멧골을 천천히 천천히 헤아린다. 4346.5.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5-21 13:17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저까지 마음이 싱그러워 지네요.
^^ 근데 자전거가 씽씽 달리고 있나봐요.
산들보라의 꼭 잡은 두 손과 얼굴을 보니까요.~^^

숲노래 2013-05-21 16:17   좋아요 0 | URL
네, 달리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달려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전거마실' 모습이랍니다~~ ^^;;
 

설거지 하고 싶어

 


  설거지를 하는 아버지 곁에 걸상을 받치고 선 여섯 살 사름벼리가 문득 “나도 설거지 하고 싶어.” 하고 말한다. “그래? 그런데 네가 설거지를 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음. 하고 싶어?” “응.” “그러면, 잘 봐.” 아이 왼손으로 설거지감 하나를 쥐도록 하고 아이 오른손으로 수세미를 쥐도록 한다. 그러고 내 왼손으로 아이 왼손을 잡고, 내 오른손으로 아이 오른손을 잡는다. 설거지를 어떻게 하면 되는가를 두 번 보여준다. 그러고 나서 아이한테 맡긴다. 아이는 아버지한테 손이 잡히며 설거지를 한 느낌을 살려 따라한다. 기름기 있는 밥은 거의 먹지 않으니, 설거지를 하며 비누를 묻히는 일 거의 없다. 물이 흐르게 해서 슥슥 문지르고 헹구면 끝이다. 앞으로 큰아이한테 설거지를 더러 맡길 만하겠다고 느낀다. 좋다. 여섯 살 사름벼리 첫 설거지 누린 날이로구나. 4346.5.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5-20 09:46   좋아요 0 | URL
아유~마치 아가씨같은 모습의 샤름벼리가 설겆이하는 뒷모습의,
발판을 딛고서도 살짝 뒤꿈치를 올린 다리의 선과 하나로 묶은 머리와 팔 모양으로
열심히 설겆이를 하려는 마음이 다 보입니다.~^^
사진,이란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감탄을 하며...*^^*

숲노래 2013-05-20 09:57   좋아요 0 | URL
사진이 있어, 이 예쁜 모습 찍을 수 있어, 참 고맙습니다.
 

고무신 띄우기

 


  마을 빨래터 청소 하러 갈 적에 고무신 신겨 갔더니, 큰아이가 고무신을 물에 띄우며 논다. 고무신이 물에 잘 뜨는 줄 언제 알았을까. 청소를 거의 마쳤기에 신 다 말리면 잘 신고 돌아갈 생각을 했더니, 큰아이는 다른 생각이다. 놀 때에 실컷 놀자는 생각이다. 참 잘 노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물끄러미 바라본다. 큰아이는 제 고무신으로 오래도록 물놀이를 하니 고무신이 안 마르고, 큰아이는 고무신이 안 마르니 아무렇지 않게 맨발로 척척 집으로 돌아간다. 얼씨구. 하기는, 너희들 집에서도 마당에서 놀 적에 으레 맨발로 뛰어다니니, 젖은 고무신 손에 쥐고 맨발로 마을길 걷는 일도 대수롭지는 않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맨발로 마을 어귀까지 달음박질하곤 하니까. 4346.5.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풀밭집

 


  집 둘레가 온통 풀밭을 이룬다. 봄이 무르익는다. 구름이 멧자락에 걸치고, 들풀은 푸른빛 뽐낸다. 어른도 아이도 밖에서 지내기에 좋고, 밖에서 일하든 놀든 사랑스러운 날씨가 이어진다. 풀밭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뛸 수 있다. 이리 달리고, 저리 뜀박질 할 만하다. 목소리를 굳이 낮추지 않아도 된다. 마룻바닥이나 마당을 쿵쿵 울리도록 굴러도 된다. 새들과 함께 까르르 웃음을 터뜨려고 되고, 후박나무 그늘에서 노래를 불러도 된다. 거리껴야 할 것이 없다. 아이들 놀이를 가로막을 것이 없다. 아이들이 떠들며 논대서 이웃에서 무어라 할 사람 없다. 우리 아이들 소리가 마을을 울린다.


  어떤 집에서 살아야 즐거운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아이들이 뛰고 놀고 노래하고 춤추고 구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살 만한 집이라고 생각한다. 뛸 수도 노래할 수도 없다면, 살 만하지 못한 집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자동차 소리를 아침부터 밤까지 늘 들어야 한다면, 신나게 뛰거나 구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살 만하지 못한 집이라고 생각한다. 기계소리나 전자제품 소리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날 수 있어야,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와 벌레와 개구리와 새들 노랫소리 어울려야, 참말 살 만한 좋은 보금자리 된다고 생각한다.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즐겁게 살림 꾸리며 사랑 피워올릴 아름다운 보금자리 일굴 수 있기를 빈다. 4346.5.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