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다닌다

 


  아이들과 어디이든 다닌다. 그런데, 아이들 데리고 읍내마실만 다녀오더라도 온몸에 기운이 많이 빠진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입혀서 재우기까지 기운을 참으로 많이 쓴다. 아이들 고단히 잠들고 나서 혼자서 느긋한 겨를을 누릴까 싶으나, 아이들 재우고 나면 내 몸에 있던 마지막 기운까지 함께 빠져나가서 도무지 버티지 못하기 일쑤이다.


  아이들하고 순천에 있는 책방으로 마실을 다녀온다. 이달 끝무렵에 순천에 있는 책방에서 사진잔치를 열기로 해서 이것저것 살피고 이야기를 나누러 가는 길이었다. 아이들은 책방에서도 잘 놀고, 놀이터에서도 개구지게 논다. 한참 놀고 나서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으로 오는 길에 둘 모두 깊이 곯아떨어진다. 작은아이는 내 무릎에 누이고, 큰아이는 내 어깨에 기대어 자도록 했다. 그러니까, 이러면서 나는 잠들 수 없다. 이날 따라 순천으로 놀러갔다가 고흥으로 돌아오는 젊은이들 많아서, 맨 끄트머리 자리 겨우 얻었기에, 나는 힘들게 아이들 보듬으면서 고흥읍으로 돌아왔다.


  읍내에서 아이들 가볍게 먹을것 챙겨서 먹이고, 몇 가지 밑감을 장만한다. 그러고서 시골집 돌아가는 군내버스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다시금 버스역 맞이방을 이리저리 달리면서 논다.


  아이들은 이렇게 놀고도 집에 가서 더 논다. 나는 버티지 못하고 먼저 자리에 눕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아이들은 잘 낌새가 없다. 가까스로 불러서 살살 달래며 재운다. 이듬날 아이들은 새로운 기운을 뽐내며 또 신나게 논다. 나는 기운이 돌아오지 않아 오늘 하루 내도록 드러누운 채 기운을 되찾으려고 하지만 많이 어렵다. 아침에도 낮에도 그저 드러눕기만 하고, 아이들하고 놀 힘을 못 낸다. 저녁을 앞두고 섬돌에 앉아서 비를 구경한다. 아이들 빗물놀이 시키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옷 젖도록 놀게 하고는 씻겨서 밥 먹이면 잘 잠들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실컷 빗물놀이를 하고도 기운이 넘쳐서 마루를 이리저리 달리면서 논다. 참 대단하구나. 그러나, 이토록 기운이 넘쳐야 아이답지. 기운이 못 넘치면서 자꾸 픽픽 쓰러지는 나는 아이다움이 하나도 없는 셈이지. 잘 노는구나. 너희 아버지도 얼른 기지개를 켜고 말끔히 일어서야겠다. 4346.7.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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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을 줍다

 


  순천 시내 어느 놀이터에 갔다. 큰아이가 문득 은행잎 하나 줍는다. 어, 얘는 어쩜 벌써 노랗게 물이 들었지? 잎 끝자락은 푸른 기운 조금 남았지만, 온통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다. 이 잎빛이 예뻐서 주웠구나. 네가 눈이 밝아서 주웠을는지 모르지만, 네 마음속으로 예쁜 꽃을 늘 생각하며 살아가니까, 이런 은행잎 알아차리며 줍는구나. 4346.7.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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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 밤기저귀 떼기

 


  사내는 가시내보다 똥가리기와 오줌가리기에다가 말하기 모두 늦다고 한다. 사내와 가시내를 나란히 키우고 보니 이러한 얘기를 잘 알 만하다. 큰아이(가시내)는 무엇이든 스스로 하려고 온 집안 살림살이 들쑤시더니, 돌쟁이 즈음에는 혼자 단추를 꿸 줄 알았고, 옷도 스스로 입을 수 있었다. 이와 달리 작은아이는 세 살이지만 아직 단추를 못 꿸 뿐더러, 말도 제대로 못하고, 똥오줌도 잘 안 가린다. 스스로 오줌을 누거나 스스로 똥걸상에 앉아 누지 않는다. 작은아이는 옷을 혼자서 챙겨 입지 않는다.


  그래도 세 살 작은아이(사내)는 요즈음 밤오줌을 누지 않는다. 밤에 바지나 이불이나 기저귀에 쉬를 거의 안 눈다. 어느 날은 밤부터 아침까지 오줌을 안 누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한꺼번에 누기도 한다. 밤에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구르면서 자는데, 낑낑거리면 쉬가 마렵다는 뜻이요 안 낑낑거리면 쉬 안 누고 아침까지 내처 잘 만하다는 뜻이다. 밤에 자장노래 한참 부르며 재웠는데 작은아이가 안 자고 자꾸 깨면 쉬를 한 번 더 누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럴 때 작은아이가 말문을 트고 “쉬 마려.” 하고 말하면 한결 수월할 텐데, 작은아이는 말문을 참 늦게 트려고 하는 듯하다. 그래도 곁에서 누나가 언제나 수다쟁이 되어 조잘조잘 말을 거니까 이 말 저 말 누나한테서 많이 배운다.


  곰곰이 생각한다. 큰아이 밤기저귀를 뗀 때가 언제였던가. 작은아이가 태어나기 두 달 앞서 비로소 큰아이는 밤기저귀를 오롯이 떼었다. 그러니까, 큰아이 나이 세 살(꽉 찬 세 살은 아니고)에 밤기저귀를 떼었고, 이제 작은아이도 얼추 비슷한 나이가 되니, 밤기저귀를 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밤부터 작은아이 바지에 기저귀를 안 대 볼까 싶다고 생각하며 아침을 여는데, 작은아이가 마루에서 아버지를 부른다. “똥 다 누었어요.” 누나가 똥걸상에 앉아 아버지를 부를 적에 “똥 다 누었어요.” 하고 말하는데, 이 목소리를 똑같이 따라하며 아버지를 부른다. “응? 그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려는데 똥내가 난다. 아, 참말 똥을 누었나 보네. 그런데 왜 똥걸상에서 안 누고 마룻바닥에다가 누니. 똥 다 누었으니 치워 달라 하려면, 이제부터는 똥걸상에 앉아서 시원하게 눈 다음 아버지를 불러 주렴. 4346.7.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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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엊저녁 아이들 밥을 차려서 먹이고 난 다음 만화책 《은빛 숟가락》 셋째 권을 읽는데, 딱 15분이면 어떤 밥감(식재료)가 있어도 한 끼니 차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살짝 책을 덮고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가? 그래,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15분이면 밥차리기에 넉넉하다. 때로는 5분만에 후딱 차릴 수 있기도 하다. 밥차리기야 ‘식은 죽 먹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마음 기울이기에 따라 다른 노릇 아닌가.


  칼질 한 번에 달라지고 손질 한 번에 바뀐다. 물 한 번 끓이면서 밥차림이 바뀌고, 접시에 어떻게 얹느냐에 따라 참말 모든 것이 달라진다. 냄비로 밥을 끓일 적에는 처음에 불을 좀 세게 하면 더 빨리 밥을 지을 수 있다. 조금 센 불로 하면서 밥뚜겅 틈틈이 열어 나무주걱으로 슬슬 뒤집으면 더 빨리 밥을 짓기도 한다. 다만, 밥뚜껑 열며 밥을 뒤집으려면 물을 좀 넉넉히 붓고 끓여야 하는데, 물이 모자라다 싶으면 더 부어도 된다.


  밥이란 몸을 살찌우는 먹을거리이면서, 마음을 북돋우는 기운이 된다고 할까. 밥이란 몸을 돌보는 먹을거리이면서, 마음을 사랑하는 빛이 된다고 할까. 밥 한 끼니 차리는 데에 꼭 15분이면 넉넉하기도 하지만, 밥을 차리느라 한 시간 십오 분을 써도 아깝지 않다. 그만큼 즐겁게 웃으면서 차리면, 한 시간 아닌 두 시간을 들여도 기쁘다. 4346.7.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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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돌 쓰기

 


  부엌칼을 갈아서 쓴다는 생각을 한 지 몇 해 안 된다. 이러고도 집살림 맡아서 한다니 참 어설픈 사람인데, 칼이 무디면 무딘 대로 잘 쓰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지난겨울쯤 비로소 숫돌을 하나 장만해서 부엌에 두었는데, 막상 아침저녁으로 칼질을 할 적에 숫돌을 꺼내어 칼을 갈아서 쓰지 못했다. 1∼2분쯤 들여 칼을 갈고서 쓰면 될 노릇이나, 이렇게 마음을 쓰지 못했다.


  어제 아침을 차리며, 이래서는 안 될 노릇이라 생각하며, 아이들이 밥 달라 칭얼거리더라도 칼부터 갈자고 생각한다. 숫돌을 꺼내 개수대에 기대고는 칼을 간다. 낫을 갈듯 칼을 간다. 한 번 갈고서 무를 써니 예전보다 조금 낫다. 무를 썰어 국냄비에 넣은 다음 칼을 또 간다. 감자를 썰고서 다시 한 번 간다. 고구마를 썰어 본다. 그리고 한 차례 더 칼을 간다.


  칼을 갈아서 쓰니 꽤 낫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한다. 누가 잡아가지 않고, 누가 등을 떠밀지 않는다. 느긋하게 칼을 갈면서 밥을 차리자. 4346.7.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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