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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13.

숨은책 588


民衆時代의 文學

 염무웅 글

 창작과비평사

 1979.4.25.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열일고여덟 살에 헌책집에서 처음 《民衆時代의 文學》을 만났습니다. 열 살 무렵에 천자문을 익혔고, 열대여섯 살에 《목민심서》를 한문으로 읽었기에 염무웅 같은 글꾼이 한자를 잔뜩 넣은 글은 하나도 안 어려웠습니다. 다만, 푸른배움터를 통틀어 ‘한자가 새까맣게 박힌 책을 술술 읽는 사람’은 혼자였습니다. 책을 나누는 여러 동무한테 《民衆時代의 文學》을 빌려주었고, 불꽃을 튀기며 글·삶·사람을 놓고 이야기했습니다. 동무들은 “너무 어려워. 그런 책을 어떻게 읽어? 우리하고 너무 먼 이야기 같아.” 했습니다. 푸른배움터를 마치며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갔고, 서울에서 똑똑하고 잘난 윗내기를 잔뜩 만난 어느 날 문득 깨닫습니다. “아, ‘민중’이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민중’이란 이름을 안 쓰는구나. 그래, ‘민중’이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늘 ‘우리’란 이름을 쓰더라. ‘민중’이란 자리가 아닌 사람만 ‘민중’이란 틀을 붙잡더라.” 줄거리(내용)만 좋대서 글이나 책이 좋을까요? 글쎄, 아니라고 여깁니다. 줄거리가 훌륭하다면, 줄거리로 펼 글도 훌륭할 노릇입니다. ‘훌륭’이란 멋스러워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수수한 사람·민중)’가 읽을 ‘우리말’을 쉽고 사랑스레 써야지요.


ㅅㄴㄹ


‘아닌 사람’도 틀림없이 있으리라 보지만,

‘민중·인민·국민·시민’

이런 이름을 붙잡는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권력자요 기득권이면서

거짓말을 하지 싶다.


그저 ‘사람’인 자리로,

‘우리’가 어깨동무하는 자리로,

스스로 ‘들풀·들꽃’이란 자리로,

조용히 바람에 춤추고

햇볕을 나누면서

빗물에 노래할 적에

참말을 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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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86


《내가 만드는 요리》

 김성수 엮음

 소년생활사

 1979.1.15.



  밥은 ‘만들’지 않습니다. 밥은 ‘짓다·하다’란 우리말로 나타냅니다. ‘요리’는 일본스런 한자말이라지요. ‘조리’란 다른 한자말도 있는데, 우리말로는 ‘밥짓기·밥하기’나 ‘밥차림’입니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 밥짓기·우리 밥차림”을 생각할까요? 《소녀생활》 1979년 2월호 덧책(별책부록)으로 나온 《내가 만드는 요리》는 ‘소녀생활’이라는 달책에 덧책으로 나왔듯이, 푸른순이(청소녀)가 익힐 길을 들려줍니다. 1979년뿐 아니라 1989년에도 푸른순이가 익힐 길을 집안일로 못박은 우리나라인데, 2009년을 지나고 2019년을 지나는 사이 어느 대목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순이돌이 모두 손수 밥을 지을 줄 알아야 한다고 또렷하게 짚을까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 순이돌이가 함께 집안일도 집살림도 즐거이 맞아들여 하루를 노래하자는 이야기를 들려주나요. 《내가 만드는 요리》를 보면, 앞뒤 속종이에 “소년생활 칼라북스 120권 완간” 알림글하고 “소년생활 불루북스” 알림글이 있습니다. 《소년생활》이란 달책이 따로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소년생활’이 따로 있었다면 어떤 덧책을 여미었을까요? 푸르게 살아갈 이 나라 여린 눈망울에 어떤 숨빛을 나누거나 물려주는 어른일 적에 아름다울까 하고 돌아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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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13.

숨은책 585


《新註 墨場必携》

 洛東書院 엮음

 洛東書院

 1930.2.15.첫/1941.10.15.넉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고, 글을 잘 쓰는 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삶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사람이 있고, 삶을 꾸며서 글로 꾸미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글빛을 글빛 그대로 읽으나, 어느 사람은 꾸밈글이나 거짓글을 도무지 안 알아봅니다. 저는 낱말책을 짓는 사람이라 맞춤길·띄어쓰기·서울말을 다 헤아리고 가다듬어야 합니다만, 저 혼자만 이럴 뿐, 어린이나 어른 이웃이 글을 쓴다고 할 적에는 셋 모두 아예 생각조차 말라고 얘기합니다. 모든 글은 모름지기 글쓴이 삶을 사랑으로 가다듬어서 풀어내면 됩니다. 맞춤길·띄어쓰기·서울말은 나중에 책으로 여밀 적에 엮는이가 추슬러 주면 넉넉해요. 《新註 墨場必携》는 노래쓰기(시쓰기)를 이끄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중국사람이 예부터 쓰는 한문을 바탕으로 어떻게 글씨를 맞추어 노래를 엮는지 짚어요. 한자를 쓰되 ‘두글씨∼열여섯글씨’로 맞추는 길을 들려주고, 중국글을 보기로 찬찬히 듭니다. 우리한테는 ‘시조’가 있었다지만, 막상 글바치 아닌 수수한 살림돌이나 살림순이가 ‘시조’를 즐긴 일은 없다시피 해요. 오늘날은 수수한 이웃님이 마음껏 노래(시)를 쓰거나 즐길까요? 좀 나아졌을까요? 삶을 노래하는 길이 너무 먼 우리 글꽃(문학)에 갇혔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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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13.

숨은책 587


《어쩌다 그림책 vol.4. 나무의 시간》

 하정민 엮음 

 그림책산책

 2021.8.1.



  1997년 12월 31일에 드디어 강원도 양구를 떠났습니다. 스물여섯 달 동안 싸움터(군대)에서 보낸 나날은 꿈 같았습니다. 삶죽음 사이를 날마다 넘나들며 갖은 막말·막짓이 춤추던 곳이 참말로 있었는지 아리송했습니다. 새벽 여섯 시에 대우산 꼭대기 눈밭부터 걸었고, 또 걸었고, 짐차 뒤칸에 열 몇 사내가 온몸이 얼어붙으면서 “눈밭이 아름다워 보여도 뒤를 돌아보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시골버스로 읍내로 가고, 다시 춘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이제 기차로 청량리에 닿고서야 “죽음터에서 빠져나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용산 헌책집 〈뿌리서점〉부터 들릅니다. 이제부터 홀가분히 읽을 책을 손에 쥐며 눈물을 흘립니다. “집부터 가야지, 책집부터 오나? 허허. 군대를 마친 선물로 오늘 책값은 안 받지.” 1995년 11월∼1997년 12월은 저한테 ‘사라진’ 날입니다. 사라진 날을 찾으려고 처음 쥔 책은 《몽실 언니》요, 이때부터 어린이책을 하나하나 찾아 읽습니다. 어린이를 한참 지난 풋사내 마음은 어린이책이 달래 주었어요. 《어쩌다 그림책》은 구미 마을책집 〈그림책산책〉이 선보이는 조촐한 꾸러미입니다. 어쩌다 그림책이냐 묻는다면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저는 죽음 아닌 삶을 사랑으로 보려고 그림책을 찾습니다.


ㅅㄴㄹ


《어쩌다 그림책》을 만나고 싶다면

경북 구미 마을책집인

〈그림책산책〉을

나들이해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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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5.

숨은책 584


《岡山文庫 105 岡山の映畵》

 松田完一 글

 日本文敎出版株式會社

 1983.7.1.



  일본 오카야마 구라시키에 깃든 마을책집 〈벌레문고〉 지기가 쓴 책이 2021년 5월에 《나의 작은 헌책방》(다나카 미호 글/김영배 옮김, 허클베리북스)이란 이름으로 나왔고, 153∼158쪽에 ‘오카야마 문고’ 얘기가 흐릅니다. 《나의 작은 헌책방》을 인천 마을책집 〈나비날다〉에서 지난 7월에 장만했고, 석 달이 지난 10월에 서울 헌책집 〈흙서점〉에서 《岡山の映畵》를 만납니다. 《岡山の映畵》 뒤쪽에는 “岡山縣の百科事典·2,000,000人の岡山文庫”라 적으면서 2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고장 ‘오카야마’를 손바닥책에 차곡차곡 담아서 두루 알리고 나누는 책살림이라고 밝힙니다. 오카야마라는 곳에서 품을 들여 꾸준히 내는 손바닥책은 1963년부터 오늘날까지 ‘오직 오카야마 이야기만’ 여민다는군요. 천만이 사는 서울이나 200만이 넘는 인천은 어떤가요? 전남이나 경북은 무엇을 할까요? 손바닥책 한 자락을 내자면 목돈이 아니어도 되면서, 지은이한테 제대로 뒷배를 하는 길입니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삽질(토목사업)이 아닌 마을빛을 두고두고 사랑하는 길이에요.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고장마다 “마을 이야기 손바닥책”을 찬찬히 내놓을 수 있기를 바라요. 마을사랑은 마을 이야기를 마을사람이 손수 지으며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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