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11.5.

숨은책 762


《벼룩의 간》

 위기철 글

 이희재 그림

 세계

 1989.4.25.



  불수레(지옥철)가 괴로워 1995년 4월 5일부터 제금을 났습니다. 인천하고 서울을 오가는 칙폭이(전철)는 한 칸에 1000이 넘는 손님을 태우고, 주안나루부터 미는놈(푸쉬맨)까지 있습니다. 제금나는 살림돈은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벌고, 싸움터(군대)를 다녀오면 열린배움터(대학교)를 그만둘 생각이라 틈새일(알바)을 바지런히 했습니다. 한국외대 배움책숲(구내서점)에서도 일했는데, 책집일꾼으로서 책을 사면 책집지기님은 ‘책집에 들어온 값(도매값)’으로 팔아 주었습니다. “여태 일한 사람 가운데 교재 아닌 책을 산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야.” 하더군요. ‘마침종이(대학졸업장) 없는 앞날’을 그리자니 5원부터 아낄 노릇입니다. 으레 굶고 책값하고 종이값(1인 소식지 복사하는 값)을 빼고는 아예 안 씁니다. 떨어진 붓(연필·볼펜)을 줍고, 길에 나둥구는 쪽종이(광고지)도 주워 뒤쪽에다가 글을 썼어요. 《벼룩의 간》을 장만해서 읽고는, 싸움터에 끌려가기 앞서 뒷내기(후배)한테 빌려주었더니 글월을 곁들여 돌려주더군요. 삶이란, 일이란, 오늘이란 무엇일까요. 벼룩간을 빼먹는 나라에서 푸른꿈으로 어깨동무할 길은 어떻게 찾을까요. 스물여섯 달 동안 ‘사람을 바보로 밟는 곳’에서 마음을 참하게 건사하자고 다독였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1995년 그때에는 뒷종이(이면지)로 삼으려고

길에서 주워 건사하던 쪽종이(광고지)인데

이제 와 돌아보니

재미난(?) 뒷자취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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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1.5.

숨은책 761


《詩人의 마을》

 정태춘

 성음사

 1985.3.10.



  인천하고 서울을 오가는 칙폭이(전철)에 미닫이(창문)만 있고 바람이가 없던(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는) 무렵, 이 길을 새벽하고 저녁마다 오가자니 죽을맛이었습니다. 길삯도 많이 들고, 밀리고 밟히고 눌리니 몸마음이 너덜너덜합니다. 1994년은 날마다 불수레(지옥철)에서 납작오징어가 되면서 “나랏놈은 이 불수레를 안 탈 테지? 그놈들이 탄다면 불수레를 그냥 두겠어? 아니, 불수레인 줄 아니까 사람들을 더 옥죄려고 등돌릴까? 길들이려고 말이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은 “아, 이래서 얼른 인부수(인천·부천·수원)를 떠나 서울로 가야 한다고 꿈꾸겠구나. 서울에서 살면 걷거나 자전거로도 일터를 오갈 테니까.” 싶어요. ‘서울로(in Seoul)’를 부추기는 판입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같은 말을 누가 퍼뜨렸는지 괘씸했습니다. 헌책집에서 《詩人의 마을》을 보았습니다. ‘사전심의 폐지운동’을 펴는 그 ‘정태춘’ 노래를 콩나물종이(악보)에까지 얹어서 담은 꾸러미인 줄 알아차리면서 “이분은 시골 평택에서 나고자란 삶을 서울에서도 노랫가락에 담았구나” 싶어 새로웠습니다. 몸이 어디 있더라도 마음을 푸르게 다스릴 노릇이더군요.


내 고향 집 뒷들의 해바라기 울타리에 기대어 자고 / 담 너머 논둑길로 황소 마차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 음, 무너진 장독대 틈 사이로 음, 난장이 채송화 피우려 / 음, 푸석한 슬레트 지붕 위로 햇살이 비쳐 오겠지 / 에헤야, 아침이 올게야 / 에헤야, 내 고향 집 가세 (고향 집 가세/154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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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107


《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

 김수미 글

 샘터

 1987.10.10.



  군산 말랭이마을 한켠 ‘채만식 글돌(문학비)’하고 언덕받이 마을책집 〈봄날의 산책〉 사이는 ‘김수미 길’입니다. 예나 이제나 새뜸(신문·방송)에서는 시골살이를 거의 안 다루는데, 나라가 온통 서울바라기(도시화·도시집중)이니 눈여겨보는 사람이 드물고, 속깊이 헤아리려는 마음도 줄어요. 이러다 그저 귀퉁이 같은 〈전원일기〉가 태어났고, 여기에서도 귀퉁이 몫이던 ‘일용 엄니’가 빛났습니다. 한창 꽃다운 나이에 색시도 아줌마도 아닌 할머니로 꾸며야 하던 김수미 님은 처음에 몹시 뿔난 마음이었다지만 부아를 삭이고서 ‘두고봐, 누구도 생각 못한 연기를 보여주겠어’ 하고 별렸다더군요. 구석자리 작은 할머니 몫을 참말로 어릴 적부터 늘 보던 마을 할매 모습을 떠올려 살려내면서 〈전원일기〉도 김수미 님도 새삼스레 돋보였어요. 이런저런 속내는 《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에 환히 드러납니다. 바닥을 치는 삶에서 별님을 그리며 걸어온 나날은 응어리를 이슬로 바꾼 손빛 같군요. 아버지 바짓가랑이를 잡고서 군것질할 돈을 조르던 작은아이는 어느새 너털웃음을 짓는, 참말로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나는 대본을 받아들면 사랑하는 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 곱다랗게 분 단장하는 여인네의 기분을 가져본다. (184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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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0.26.

숨은책 737


《꼬마 인형》

 가브리엘 벵상

 별천지

 2009.10.30.



  어릴 적에 우리 할머니나 할아버지하고 논 적이 없습니다. 나이가 많기도 하셨으나, 할아버지는 술노름으로 몸이 진작 망가진 뒤였고, 할머니는 이런 짝꿍이 보기싫어 따로살았습니다. 몸져누운 할아버지인데, 우리 어머니는 살뜰히 돌보며 똥오줌을 날마다 치워 주었습니다. 같이 놀고 같이 웃고 같이 쉬고 같이 살림을 짓는 길을 좀처럼 배우거나 보거나 맞이하지 못 했더라도, 술노름이 아닌 살림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늙어서 쓰러지기 앞서, 아직 힘을 쓰고 말을 할 수 있을 무렵, 어진 눈빛하고 마음결을 추스른다면, 아이한테 새길을 차근차근 이야기로 여미어 물려줄 수 있어요. 《꼬마 인형》은 1992년에 처음 나왔고, 우리말로는 2003년에 옮깁니다. 길거리에서 돈을 안 받고서 ‘인형극’을 보여주는 할아버지가 골목아이하고 동무로 어울리면서 웃음꽃을 들려주고 나누는 하루를 상냥하게 그려냅니다. 요즈음 이 나라 할아버지들은 어떤 눈빛에 손길에 몸짓에 말씨일까요? 아이들이 이어받아 어떤 터전으로 가꾸기를 바라는 마음일까요? 붓 한 자루로 그림책 한 자락이 얼마든지 아름답게 태어납니다. 값진 물감이 잔뜩 있어야 하지 않아요. 쌈지가 두둑해야 잘살지 않아요. 마음자리에 사랑씨앗을 심어서 돌볼 줄 알아야 살림이에요.


ㅅㄴㄹ

#LaPetiteMarionnette #GabrielleVincent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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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10.23.

숨은책 758


《Maria Sibylla Merian : Metamorphosis Insectorum Surinamensium》

 Maria Sibylla Merian 글·그림

 Lanoo Books

 2016.



  1647년에 태어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님은 독일사람인 아버지에, 네덜란드사람인 어머니를 둡니다. 시앗(후처)으로 들어간 집에서 거의 사랑받지 못 하며 자라던 메리안 님은 어릴 적부터 들에서 놀기를 즐겼고, 풀꽃나무뿐 아니라 ‘풀꽃나무에 깃드는 벌레’를 눈여겨보며, 이 벌레가 나비로 깨어나는 모습을 낱낱이 지켜보았다지요. 꽃이나 나비를 그리는 사람은 많아도 ‘나비가 어떻게 깨어나는지’ 살피거나 이를 담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뿐 아니라, ‘벌레를 가까이하거나 그림으로 담으면 마녀사냥으로 몰려 죽을 수 있던’ 그즈음, 몰래 벌레를 집에서 기르며 고치·날개돋이를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끝내 독일을 떠나야 하면서 어머니 나라인 네덜란드로 건너갔고, 밭짓기하고 그림그리기로 늙은 어머니와 두 딸을 돌보았다지요. 유럽하고 사뭇 다른 수리남을 어렵사리 다녀온 뒤 ‘풀벌레 한살이·눈부신 나비’를 이 풀벌레가 좋아하는 풀꽃나무랑 함께 그림으로 담아 1705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펴내기도 합니다. 이 책은 2016년에 《Maria Sibylla Merian : Metamorphosis Insectorum Surinamensium》란 이름으로 새로 나오지요. 풀꽃 곁에는 풀벌레가 있고, 풀벌레는 풀꽃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풀꽃이 맺는 열매하고 풀잎이 사람들 밥이니, 사람은 풀벌레가 곁에 있어야 밥살림을 지어요. 풀꽃나무를 사랑하려면 풀벌레를 사랑하고, 모두 어우러지는 숲을 사랑하자는 뜻이 그림에 물씬 흐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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