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표류기
허지웅 지음 / 수다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숲노래 책읽기 2023.3.22.

인문책시렁 300


《대한민국 표류기》

 허지웅

 수다

 2009.1.20.



  《대한민국 표류기》(허지웅, 수다, 2009)를 읽다가 끝에 붙은 ‘우석훈 추천글’이 아리송하다가, 이런 추킴글을 고스란히 싣는다면, 한동아리라는 뜻이라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돼지’라는 짐승을 ‘그들(글쓴이 + 우석훈)’은 얼마나 잘 알기에 “돼지똥으로 가득 찬”이라든지 “농지투기에 허우적거리는 돼지들”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이들은 돼지가 어떤 숨결인지 하나도 모를 뿐 아니라, ‘돼지를 따돌리는(차별)’ 뜬금없는 말을 함부로 쓰는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허지웅 씨가 〈디 워〉를 “말을 꺼내 봤자 욕할 수밖에 없으니(240쪽)” 하고 읊은, 깎음말보다 더 깎음말을 읊은 대목을 알 만합니다. 영화이든 책이든 글이든 오롯이 영화요 책이요 글로 바라볼 노릇입니다. 맞춤길이나 띄어쓰기나 얼거리가 허술하대서 글이 허술하지 않습니다. 언뜻 보면 허술하기 그지없는 〈디 워〉일 텐데, 그런 껍데기만으로 바라보자니 그저 깎음말밖에 나올 말이 없겠지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술에 절어 술바보가 된다든지, 나라(정부·담배인삼공사)에서 파는 ‘니코틴 + 필터’가 붙은 담배에 얽매일 적에는 ‘담배’라 할 수 없습니다. 퍼마시는 술도 ‘마약’하고 똑같으며, 나라에서 파는 ‘니코틴 + 필터 담배’도 ‘마약’하고 매한가지입니다. 그래서 ‘술바보 + 필터담배 태우기’를 나란히 하면 무시무시한 ‘마약’을 하는 셈입니다.


  우리한테 ‘머리’가 있다면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예부터 우리나라 할머니 할아버지는 ‘잎담배’를 태웠습니다. 대나무로 길게 마련한 담뱃대에 ‘밭에서 거두어서 손수 집에서 말린 담뱃잎을 조금 재워서 가볍게 태웠’어요. 이런 ‘잎담배’는 북아메리카 텃사람도 으레 태웠습니다. 머리를 맑게 틔우려 할 적에 쓰던 ‘잎담베’는 ‘담배인삼공사 필터담배’하고 아주 다릅니다.


  손수 논밭을 지어 거둔 낟알로 손수 담가서 마시던 ‘집술(밀주)’도 가게에서 파는 술하고 다르지요. 그러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가기만 할 적에는, 또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가며 술담배를 할 적에는, 삶이 아닌 수렁에 스스로 빠져들기에 걸맞습니다.


  더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미국도 우리나라도 ‘양당제 정당’이 이름만 다를 뿐, 두 무리가 하는 짓은 매한가지입니다. 이명박·박근혜만 삽질을 밀어붙이지 않았어요. 김대중·노무현·문재인도 매한가지입니다. 누가 우두머리에 섰든, 또 누가 감투(국회의원·시도지사·군수)를 썼든 똑같이 삽질을 밀어붙였습니다. 이 나라에는 왼쪽(좌파)도 오른쪽(우파)도 똑같이 삽질로 뒷돈벌이를 일삼아요.


  나라를 갈아엎자면, 뭔가 배우거나 깨우친 이들이 스스로 서울을 떠나면 됩니다. 먼저 서울부터 떠나고, 인천과 부산과 대전과 광주와 대구에서도 떠나, 가까운 작은고장(중소도시)으로 옮겨서 살 노릇이요, 아예 시골로 깃들어 작은집에서 나무를 심고 풀꽃을 돌보면서 손수 씨앗을 심는 하루를 누릴 노릇입니다.


  《대한민국 표류기》를 내놓던 무렵에 허지웅 씨는 주머니에 돈 1000만 원도 없었다고 밝히는데, 돈 1000만 원이면 작은 시골집을 살 수 있습니다. 시골집을 사면, 서울하고 달리 살림돈(생활비)이 얼마 안 나갑니다. 1000만 원에 장만하는 시골집은 ‘재산세’가 한 해에 1만 원이 안 됩니다. ‘내 집’은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장만해서 손수짓기를 하나씩 늘려나갈 적에, 이 나라는 헤맴(표류)을 멈추고서 제자리를 찾을 만합니다. 부디 하나라도 눈을 떴으면 하루빨리 서울을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술담배에서도 쉽게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가게도 멀어서 술담배를 못 사거든요.


ㅅㄴㄹ


이명박의 이데올로기를 나눠 공유하는 자들의 희망인질 사익추구 계획, 뉴타운 개발은 이 땅의 서민들을 끝내 서울 밖으로 모두 밀어내고야 말 것이다. (69쪽)


진보 운운하는 성격의 모임들에 참석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당비만 낸다. 그들은 아니꼬운 진정성을 거들먹거리며 작은 진영을 쪼개고 분열시켰다. 이제 와 진보 진영은 거의 게토화됐다. 그들만의 정의가 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당신들에게 별 관심이 없어. 어차피 지금 이야기는 그런 자칭 ‘진짜 좌파’들을 위한 게 아니다. 나는 1등급 한우마냥 거들먹거리는 ‘진짜 좌파’들이 싫다. (218쪽)


실제 〈디 워〉는 기존의 비평 담론으로 평가 받기 어려운 영화다. 내러티브부터 플롯, 응집력, 연기, 구성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짜임새를 갖춘 게 아무것도 없다. 결국 말을 꺼내 봤자 욕할 수밖에 없으니 함구할 따름이다. (240쪽)


이 돼지똥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아름다움을 고민하고,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문화생산자들, 대한민국은 앞으로 이들이 지키는 것이지, 돈과 땅투기, 농지투기에 허우적거리는 돼지들이 지키는 것이 아니다. (우석훈 추천글/31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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