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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라는 문장
손세실리아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2월
평점 :
숲노래 책읽기 2023.4.1.
책으로 삶읽기 813
《그대라는 문장》
손세실리아
삶이보이는창
2011.2.13.
《그대라는 문장》(손세실리아, 삶이보이는창, 2011)을 읽었다. 글을 쓰는 분들은 하나부터 아홉까지 ‘문장’이라는 한자말을 좋아한다만, 나는 어린이 곁에서 살며 ‘글·글자락·글월·글가락·글발·글결’ 같은 우리말을 쓴다. 우리 집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온누리 모든 아이들 곁에서 ‘그녀’ 같은 얼뜬 일본말씨를 쓰지 않는다. 우리말로는 ‘그놈·그년’처럼 따로 가르는 때도 있으나 모두 ‘그’일 뿐이고, 우리말씨를 살피자면 ‘아무개 씨’라고 해야 어울린다. 요새는 ‘아무개 님’이라고 하는 말씨가 어울릴 테고. 모든 글은 삶에서 태어난다. 저마다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말을 하고, 이 말을 가다듬어 글로 빚는다. 다만, 모든 글은 모든 말일 뿐이다. 말씨하고 다른 글씨라면 꾸밈글이나 치레글로 기울고 만다. 삶말을 쓴다면 삶글을 쓸 테고, 사랑말을 편다면 사랑글을 쓰게 마련이다. 모든 글은 모든 말일 뿐인데, 모든 말은 모든 마음이다. ‘마음 → 말 → 글’인 얼개이다. 그리고 ‘사랑 → 살림 → 삶 → 마음’이며, ‘밤(어둠·고요) → 꿈 → 씨앗 → 빛(새벽·아침) → 숨결 → 넋’인 얼개이다. 글은 늘 맨 나중이다. 글은 ‘끝’이다. 처음은 ‘밤’이다. 고요하고 어두운 밤에서 꿈을 그리고, 이 꿈은 씨앗으로 맺어 빛을 바라보며 태어나니 숨결을 얻어 넋으로 영근다. ‘넋’이란 다 다르게 흐르는 ‘우리 스스로’이다. 글만 쳐다본다면 글은 굴레에 갇히곤 한다. 말을 담는 글인 줄 알면 글이 조금 살아난다. 마음을 담은 말을 옮기는 글인 줄 알면 글이 더 깨어난다. 이러면서 삶과 살림과 사랑이 얽힌 길을 읽으면 누구나 글꽃을 여밀 수 있고, 사랑은 다 다른 우리 넋이 저마다 빚는 꽃인 줄 알면 글쓰기가 어떠한 노래인지를 깨닫겠지. 벼슬이나 감투도 허울이지만, ‘문학·문장’도 허울이다. 밤마다 별빛을 그리면서 꿈자리에 깃들고서, 새벽에 새 하루를 그리는 씨앗을 품고서 일어나는 숨결을 읽고 느끼고 보는 넋으로 이 삶을 사랑으로 짓는 살림을 펴면, 누구나 글순이에 글돌이로 어우러지리라. 글은 높지도 낮지도 않고 그저 글이되, 글만 바라보면 글을 모르고 만다.
ㅅㄴㄹ
그녀는 내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지만 나는 오히려 동갑내기인 그녀의 삶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반성한다. 하루 열세 시간의 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맨 먼저 책을 펼쳐드는 자세라든가 독서를 통해 살아가는 이유와 미래의 희망 등을 발견해내는 모습, 그리고 좋은 글을 쓰는 글쟁이가 되면 좋겠지만 좋은 글을 읽어내는 훌륭한 독자로 남아도 실망하지 않겠다는 생각 등이 그것이다. (57쪽)
아이들은 예의 신록 같은 짱짱함으로, 오월 햇살 같은 반짝임으로 낭송을 마쳤다. 모두들 아파하고, 미안해하고, 사과하는 마음 한 바닥 없이 국어교과서 읽듯 또랑또랑 읽어내던 것이었다. (212쪽)
상징성 있는 몇 줄 직함, 몇 줄 공약, 몇 줄 출마의 변이면 안 되는 걸까? 길거리 약장숴럼 되는 말, 안 되는 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 말고, 담담하고 진솔하고 호소력 강한 유세전을 펼칠 순 없는 걸까? (30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