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 가장 작고 사소한 도구지만 가장 넓은 세계를 만들어낸 페트로스키 선집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홍성림 옮김 / 서해문집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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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4.29.

인문책시렁 218


《연필》

 헨리 페트로스키

 홍성림 옮김

 서해문집

 2020.7.17.



  《연필》(헨리 페트로스키/홍성림 옮김, 서해문집, 2020)을 읽었습니다. 글을 쓰는 붓, 그러니까 ‘글붓’을 다룬 이야기가 두툼합니다. 다만, 글붓을 쓰는 마음이나 삶이 아닌, 글붓장사를 다룹니다. 하늬녘(유럽)하고 미국에서 어떤 사람이 글붓장사를 널리 펴려고 애썼는가 하는 자취를 하나하나 짚으니, 이러한 발자취가 궁금한 사람한테는 제법 이바지하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글붓이 ‘나무하고 돌한테서 얻은 숨결’로 여미어 새롭게 이야기를 펴는 살림살이라고 하는 대목은 아예 안 짚다 보니, 저로서는 제법 따분했어요.


  누구나 집에서 글붓을 깎는 길이라도 한 꼭지를 다루었다면 눈여겨보았을 테지만, 지음터(공장)에서 더 많이 더 빨리 더 나은 글붓을 짓는 길을 찾으려고 얼마나 애써 왔는가 하는 흐름만 짚은 책이더군요. 참말로 ‘손수 글붓 짓기’를 살짝이라도 다루었다면 얼마나 알찼을까요.


  글쓴이는 책끝에 “정작 연필을 다룬 글”이 거의 없다고 적습니다만, 글쓴이가 못 찾아내었을 뿐이라고 느낍니다. 이름난 글쟁이가 남긴 글은 드물는지 몰라도, 수수한 사람들이 쓴 글이 제법 있을 테며, 일본에만 해도 꽤 되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박물관들에서도 연필처럼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하는 단순한 대상에 대해서는 그저 무시하거나 잊었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17쪽)


1794년 콩테가 혁명적인 방법을 개발하기 전까지 18세기 동안 연필 제조 공정에서 이루어진 지지부진한 개선은 기껏해야 과학 이전의 원시적인 공작 행위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136쪽)


전쟁 때문에 연필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집에 편지를 쓸 때 연필을 사용했던 듯하다. (291쪽)


문필가들은 그렇게 많은 글을 연필로 쓰면서도 정작 연필에 관한 글은 거의 쓰지 않았다. (52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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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우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3
김인숙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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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4.17.

인문책시렁 217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1》

 김인숙

 세계

 1987.9.15.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1》(김인숙, 세계, 1987)를 2022년에 곰곰이 읽으면서 ‘1980년대 운동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말을 썼는지 돌아보았습니다. 1963년에 태어나 1980년대 첫무렵에 서울에서 대학생으로 있으면서 글(소설)을 써서 이름을 날린 분이 잇달아 선보인 《'79―'80》인 터라, 그즈음 ‘살짝 지식인’ 말씨를 어림해 보기에 좋습니다.


  글님은 “겨울에서 봄 사이”라는 이름을 덧달았는데, 1979년에서 1980년으로 넘어서는 즈음은 “겨울에서 봄”이라기보다는 “겨울에서 겨울”이었다고 느껴요. 우두머리 하나가 고꾸라진들 봄이 찾아오지 않거든요. 벼슬아치가 고스란히 있고, 다른 힘꾼·돈꾼·이름꾼이 숱하게 있는데 어떻게 봄일까요.


  1980년부터 2022년에 이르는 하루하루를 돌아보자면, 지난날 ‘살짝 지식인’이던 이들이 오늘날 ‘새 힘꾼·돈꾼·이름꾼’이 되어 우쭐거립니다. 예전에 ‘햇병아리 모델’이던 이들이 오늘날 ‘사장’ 자리를 차지하면서 거들먹거리고요.


  소설 《'79―'80》을 읽는 내내 ‘시대 상황’을 보여준다는 목소리는 가득하구나 하고 느끼되, ‘서울 대학생이 서울에서 조금 맛보는 시대 상황’일 뿐, ‘서울에서 밑자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 살림새’하고는 한참 멀고, ‘서울 둘레에 있는 크고작은 도시 살림결’하고는 아주 멀고, ‘지난날 시골이며 오늘날 시골 숲빛’하고는 끝없이 멀다고 느낍니다.


  예나 이제나 글을 쓰는 이들은 으레 서울·큰고장에 머뭅니다. 늘 그곳에서 서울살이를 서울사람 눈으로 옮깁니다. 이 나라가 ‘서울공화국’이니 서울 이야기가 가장 잘 먹히고 팔리긴 하겠습니다만, 또 글꾼 가운데 ‘대학생 아닌 고졸이나 중졸이나 국졸이나 무학’인 분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기도 하겠습니다만, 너무 판박이입니다. 소설을 쓰는 분들은 《민중자서전》이나 《한국구비문학대계》는 아예 안 들여다보는 듯합니다.


  그리고 ‘서울 대학생 시대 상황’을 그려내는 데에 바빠서 ‘그래서 우리가 함께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할 적에 서로 아름다우면서 새롭게 나아갈 삶길인가?’ 하는 이야기는 건드릴 틈이 없어 보이더군요.


ㅅㄴㄹ


대통령을 나랏님이라고 서슴없이 부를 수 있는 할매, 이분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이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은 새삼스레 아픔이었다. (31쪽)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학술적 용어를 동원하여 일장연설을 한 바 있었다. 물론 이들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자랑할 의도는 추호도 없는 것이었고 오히려 이들과 같은 건달들,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이들과 그 원인을 같이 공감하고자 하는 열띤 진심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 녀석이 무슨 신기한 말을 하는가 하고 귀기울이던 이들은 윤익의 몇 마디 말이 진행되기도 전에 성냥개비로 귀를 후벼파고 하품을 하고 담배를 질근질근 씹어댔다. 그리고 윤익의 당혹감 앞에서 그들은 말했었다. 은자 다 했나? 오랫만에 꼰데 설교 듣자카이 눈 앞에서 별이 하나 둘 셋 막 떨어지네. (168쪽)


누군가의 강경한 선동이었고 그들은 총을 접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와락와락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묘한 흥분이었고 격한 감격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자고로 꼰데들 때문에 일이 안 된다. (174쪽)


“감정적인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지금은 그런 식의 감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과학적인 판단을 해야 할 때입니다.” (199쪽)


회사CF 전속모델이 된 지 반 년 만에 그 애의 손을 처음 쥐어 주었었다. 그때 그 아이는 고개를 외로 꼰 채 마치 ‘기다렸어요, 사장님’ 하는 듯한 숨소리를 보내 왔었다. 햇병아리 모델 초년생의 당연한 순서였다. (24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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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속 티타임 - 언제 보아도 좋은 달콤한 영국동화 이야기
기타노 사쿠코 지음, 강영지 그림, 최혜리 옮김 / 돌베개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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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3.19.

인문책시렁 215


《책장 속 티타임》

 기타노 사쿠코

 강영지 그림

 최혜리 옮김

 돌베개

 2019.2.28.



  《책장 속 티타임》(기타노 사쿠코·강영지/최혜리 옮김, 돌베개, 2019)은 영국에서 태어난 글꽃에 깃든 먹을거리를 둘러싼 이야기를 찾아나서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우리나라도 일본도 영국하고 다르게 마련이라, 밥살림도 달라요. 영국사람으로서는 투박한 먹을거리일지라도 우리로서는 낯설 뿐 아니라 궁금할 만합니다.


  우리나라 글꽃에 깃든 먹을거리도 이웃나라 사람한테는 낯설면서 궁금할 테지요. 그런데 밥살림 이야기는 ‘이 밥을 손수 지어’ 보아야 비로소 글꽃에 담아낼 만합니다. 나무로 불을 때어 아궁이에서 솥밥을 지어 보지 않고서 ‘아궁이밥’이 뭔지, ‘솥밥’이 뭔지, 하나도 못 그려요. 글로 시늉은 낼 테지만, 불을 때면서 퍼지는 냄새에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 또 아궁이에서 번지는 불에 이글거리는 낯, 불빛이 없는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다가 아기를 보고, 아이들을 살피는 눈길이 밥 한 그릇에 고루 서립니다.


  전기밥솥에 쌀을 넣고서 단추만 척 누르면 끝나는 밥을 하더라도, 쌀알을 그릇으로 옮겨서 한 톨씩 손가락 사이로 느끼며 살살 젓고서 쌀뜨물을 내고, 이 쌀뜨물로 된장국이나 김치찌개를 끓인다든지, 이 쌀뜨물로 빨래를 한다든지, 이 쌀뜨물로 나중에 설거지를 한다든지, 이 쌀뜨물을 꽃이나 나무한테 준다든지, 얼마든지 어느 곳에서라도 밥살림 이야기에 밥내음이 피어나는 결을 담을 만합니다.


  아주 조그마한 자리를 눈여겨보면서 침을 꿀꺽 삼키던 글님은 스스로 ‘영국 밥살림’이나 ‘영국 주전부리’를 찾아나서기로 했다지요. 글 몇 줄 또는 글 몇 마디만으로는 도무지 궁금한 대목을 풀 길이 없을 테니까요. 어떠한 땅이며 터전에서 어떠한 햇볕을 쬐면서 자라는 들살림을 어떠한 손길로 건사해서 어떠한 살림집에서 어떠한 세간을 다루면서 어떻게 차려내었는가를 몸소 느껴 보아야 ‘영국 글꽃에서 마주한 밥 한 그릇’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구나 싶습니다.


  푸른별 모든 곳에 고르게 흐르는 바람입니다만, 우리나라 바람하고 이웃나라 바람은 다릅니다. 전남 고흥조차 읍내하고 마을 바람이 다르고, 바닷가랑 멧기슭이랑 들이랑 마당에서 맞이하는 바람이 다릅니다. 서울바람하고 제주바람도 마땅히 달라요. 이 다른 바람결을 느낀다면,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살림을 지으면서 스스로 일군 다 다른 사랑을 글 한 줄에서도 읽을 만합니다. 옮김말은 매우 일본말씨·옮김말씨스러워서 안타깝긴 했습니다.


ㅅㄴㄹ


함께 둘러앉아 식사하고 차를 마시면서, 비버 부부와 아이들은 방금 만난 사이일 뿐인데도 어느새 힘을 모아 하얀 마녀에게 맞서 나니아를 되찾겠다는 강한 동지의식을 갖게 됩니다. (22쪽)


《비밀의 화원》에는 미셀스웨이트 저택의 요리사들이 만든 음식과 디콘네 같은 농민이 먹는 음식이 영국 계급사회를 드러내듯 대조적으로 등장합니다. (61쪽)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정원을 위해 쓴 작품이기에, (133쪽)


영국에서 남자아이에게 흔히 붙이는 이름인 ‘피핀’은 접목이 아니라 종자를 통해 생겨난 사과 품종을 가리킵니다. (161쪽)


5월에 영국 시골의 숲을 걷다가 희고 작은 선갈퀴꽃이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어지러이 피어 있는 광경과 마주한 일이 있습니다. (176쪽)


#物語のティ-タイム #お菓子と暮らしとイギリス兒童文學 #北野佐久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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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집밥 내가 좋아하는 것들 5
김경희 지음 / 스토리닷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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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3.10.

인문책시렁 214


《내가 좋아하는 것들, 집밥》

 김경희

 스토리닷

 2022.1.20.



  《내가 좋아하는 것들, 집밥》(김경희, 스토리닷, 2022)은 ‘집밥’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집밥을 잘 차리거나 멋스러이 해내는 길을 다루지 않습니다. 집밥을 어떻게 맞이했고 받아들이면서 아이들하고 곁님한테 물려주는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순이돌이로 짝을 이룬 이웃님한테 마실을 갈 적에는 으레 그 집 살림을 들여다볼밖에 없는데, 참으로 숱한 돌이는 부엌일을 아예 안 하다시피 합니다. 이분들이 나이가 제법 있기에 어릴 적부터 부엌일을 안 해 버릇한 탓이라고 둘러댈 수 없습니다. 제가 만나는 이웃 순이돌이는 하나같이 ‘생각이 좀 있다’거나 ‘책 좀 읽었다’는 분이거든요.


  머리로는 ‘왼길’에 선다고 입으로 말하면서 막상 두 손에 물을 안 묻히는 돌이가 수두룩합니다. 부엌일은 누가 해야 할까요? 시골에서 살며 밭살림을 가꾼다면 밭일은 누가 해야 할까요?


  부엌일도 밭일도 ‘함께’ 해야 아름답습니다. 순이돌이가 나란히 하고, 아이어른이 같이 할 적에 사랑스럽습니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물려줄 어깨동무(성평등·페미니즘)란, ‘함께짓기’라고 느껴요. 함께짓기에 함께걷는 길입니다. 함께짓기에 함께사는 사랑입니다.


  집밥이란, 집살림을 이루는 사랑이 드러나는 빛이에요. 끼니를 때우려고 맞아들이는 집밥이 아닌, 오늘 하루를 스스로 어떻게 사랑으로 지피면서 나누려 하느냐는 생각을 주고받는 집밥이라고 느낍니다. 밥살림에 옷살림에 집살림을 어버이 곁에서 차곡차곡 지켜보면서 물려받는 아이들이 자라나서 어른이라는 자리에 서는 멀잖은 앞날이라면, 이 나라는 아름답겠지요.


  집안일을 하라고 시킬 까닭이 없어요. 집안일을 안 하겠으면 함께 안 살면 됩니다. 스스로 집안일을 할 줄 알고, 손수 집살림을 돌볼 줄 아는 돌이랑 순이가 만나서 아이를 사랑으로 낳을 적에, 비로소 집밥은 언제나 맛나고 멋스러우면서 즐겁습니다.


ㅅㄴㄹ


청소와 정리 대신 나는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했다. (25쪽)


“물론 그 말도 상처가 됐고 당신의 손님 근성도 싫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의 태도도 싫어. 난 지쳐서 더는 못하겠어.” “당신이 고생하는 거 알지.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 “언제까지 표현을 못 한다고만 할 거야. 크게 표현하래, 일상에서 배려하고 생각해 주라고.” (48쪽)


일하는 엄마로 살아 보니 굶지 않게 집밥을 해서 내놓는 것만도 대단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90쪽)


신문지를 식탁에 깔고 그 위에다 다듬다 보면 아이들도 와서 호기심에 한주먹만큼은 곧잘 다듬어 주었다. 남편이 있을 때는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순순히 하지는 않았다. “나만 먹지 않는다는 거 알지?” 하고 외쳐야 했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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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 이세진 / 청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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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10.12.

인문책시렁 185


《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

 이세진 옮김

 청미

 2019.3.20.



  《체리토마토파이》(베로니크 드 뷔르/이세진 옮김, 청미, 2019)는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할머니가 어떠한 마음과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가를 찬찬히 옮겼다고 할 만합니다. 할머니가 손수 이녁 삶자취를 글로 적을 수 있고, 할머니를 좋아하는 젊은이가 할머니 삶길을 눈여겨보거나 귀여겨듣고서 글로 옮길 수 있습니다.


  우리 곁에는 늘 할머니가 있습니다. 아기도 아가씨도 아저씨도 할아버지도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르게 맞이하는 하루를 다 다르게 노래하면서 살아갑니다. 푸른돌이가 할머니처럼 살지 않고, 할아버지가 푸른순이처럼 살지 않습니다. 아줌마가 어린돌이처럼 안 살고, 어린순이가 아저씨처럼 안 살아요.


  모든 이야기는 삶자리에서 태어납니다. 다른 사람 삶이 아닌, 우리 삶을 들여다보기에 비로소 이야기를 얻고 펴면서 누립니다. 스스로 아팠기에 이웃이 아플 적에 어떻겠구나 하고 어림합니다. 스스로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갈랐기에 동무가 자전거를 타며 휙 바람을 가를 적에 어떻겠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느긋이 살아가기로 해요. 서두르지 않아도 아기는 어린이로 크고, 푸름이로 자라며, 시나브로 철이 들면서 어른이라는 길에 섭니다. 서둘러 죽어야 할까요? 빨리 늙어야 할까요? 시골에서나 서울에서나 숱한 분들이 먼저 버스나 전철을 타려고 우르르 달려들거나 새치기를 하더군요. 아이를 툭툭 밀치면서 새치기하는 분 뒷통수에 대고 “빨리 죽고 싶어서 빨리 타야 하니 아이를 막 밀치고 다니시는군요?” 하고 으레 한마디를 합니다.


  시골에서는 시골버스를 타는 사람이 뚜벅이랑 어린이·푸름이하고 할매할배하고 이웃일꾼(이주노동자)입니다. 시골버스를 타며 가만히 보면 어린이·푸름이가 자리를 내줄 적에 “고맙다”고 말하거나 “그대로 앉으렴” 하고 말하는 할매할배는 아주 드뭅니다. 예전에는 제법 있었으나, 갈수록 이처럼 말하는 할매할배가 자취를 감춥니다. 우리 삶터에서 ‘어른스러운’ 길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나이만 먹은 사람인지, 철이 들며 생각이 깊어 가는 사람인지, 언제라도 찬찬히 생각하면서 오늘을 지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ㅅㄴㄹ


살짝 걱정스러운 심정으로 애들을 지켜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아직 자전거를 탈 수 있으려나? (63쪽)


혼자 살아도 심심할 겨를이 없다. 할 일은 늘 있다. (172쪽)


살 만큼 살아 봤고 허다한 고뇌와 번민을 겪어 본 우리도 끝은 아직 모르기에. 우리의 끝, 이승을 떠나 빛으로 나아간다고 믿더라도 죽음은 늘 어둠과 결부된다. (216쪽)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이제 나는 나 아닌 사람들의 괴로움을 살피려고 충분히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274쪽)


애들은 오늘 저녁을 먹고 올라갔다. 애들은 파리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밤참을 먹을 거다. (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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