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의 우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3
김인숙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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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4.17.

인문책시렁 217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1》

 김인숙

 세계

 1987.9.15.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1》(김인숙, 세계, 1987)를 2022년에 곰곰이 읽으면서 ‘1980년대 운동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말을 썼는지 돌아보았습니다. 1963년에 태어나 1980년대 첫무렵에 서울에서 대학생으로 있으면서 글(소설)을 써서 이름을 날린 분이 잇달아 선보인 《'79―'80》인 터라, 그즈음 ‘살짝 지식인’ 말씨를 어림해 보기에 좋습니다.


  글님은 “겨울에서 봄 사이”라는 이름을 덧달았는데, 1979년에서 1980년으로 넘어서는 즈음은 “겨울에서 봄”이라기보다는 “겨울에서 겨울”이었다고 느껴요. 우두머리 하나가 고꾸라진들 봄이 찾아오지 않거든요. 벼슬아치가 고스란히 있고, 다른 힘꾼·돈꾼·이름꾼이 숱하게 있는데 어떻게 봄일까요.


  1980년부터 2022년에 이르는 하루하루를 돌아보자면, 지난날 ‘살짝 지식인’이던 이들이 오늘날 ‘새 힘꾼·돈꾼·이름꾼’이 되어 우쭐거립니다. 예전에 ‘햇병아리 모델’이던 이들이 오늘날 ‘사장’ 자리를 차지하면서 거들먹거리고요.


  소설 《'79―'80》을 읽는 내내 ‘시대 상황’을 보여준다는 목소리는 가득하구나 하고 느끼되, ‘서울 대학생이 서울에서 조금 맛보는 시대 상황’일 뿐, ‘서울에서 밑자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 살림새’하고는 한참 멀고, ‘서울 둘레에 있는 크고작은 도시 살림결’하고는 아주 멀고, ‘지난날 시골이며 오늘날 시골 숲빛’하고는 끝없이 멀다고 느낍니다.


  예나 이제나 글을 쓰는 이들은 으레 서울·큰고장에 머뭅니다. 늘 그곳에서 서울살이를 서울사람 눈으로 옮깁니다. 이 나라가 ‘서울공화국’이니 서울 이야기가 가장 잘 먹히고 팔리긴 하겠습니다만, 또 글꾼 가운데 ‘대학생 아닌 고졸이나 중졸이나 국졸이나 무학’인 분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기도 하겠습니다만, 너무 판박이입니다. 소설을 쓰는 분들은 《민중자서전》이나 《한국구비문학대계》는 아예 안 들여다보는 듯합니다.


  그리고 ‘서울 대학생 시대 상황’을 그려내는 데에 바빠서 ‘그래서 우리가 함께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할 적에 서로 아름다우면서 새롭게 나아갈 삶길인가?’ 하는 이야기는 건드릴 틈이 없어 보이더군요.


ㅅㄴㄹ


대통령을 나랏님이라고 서슴없이 부를 수 있는 할매, 이분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이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은 새삼스레 아픔이었다. (31쪽)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학술적 용어를 동원하여 일장연설을 한 바 있었다. 물론 이들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자랑할 의도는 추호도 없는 것이었고 오히려 이들과 같은 건달들,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이들과 그 원인을 같이 공감하고자 하는 열띤 진심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 녀석이 무슨 신기한 말을 하는가 하고 귀기울이던 이들은 윤익의 몇 마디 말이 진행되기도 전에 성냥개비로 귀를 후벼파고 하품을 하고 담배를 질근질근 씹어댔다. 그리고 윤익의 당혹감 앞에서 그들은 말했었다. 은자 다 했나? 오랫만에 꼰데 설교 듣자카이 눈 앞에서 별이 하나 둘 셋 막 떨어지네. (168쪽)


누군가의 강경한 선동이었고 그들은 총을 접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와락와락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묘한 흥분이었고 격한 감격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자고로 꼰데들 때문에 일이 안 된다. (174쪽)


“감정적인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지금은 그런 식의 감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과학적인 판단을 해야 할 때입니다.” (199쪽)


회사CF 전속모델이 된 지 반 년 만에 그 애의 손을 처음 쥐어 주었었다. 그때 그 아이는 고개를 외로 꼰 채 마치 ‘기다렸어요, 사장님’ 하는 듯한 숨소리를 보내 왔었다. 햇병아리 모델 초년생의 당연한 순서였다. (24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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