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반대한다 - 우리시대에 고하는 하워드 진의 반전 메시지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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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인문책 2023.8.21.

인문책시렁 313


《전쟁에 반대한다》

 하워드 진

 유강은 옮김

 이후

 2003.2.19.



  《전쟁에 반대한다》(하워드 진/유강은 옮김, 이후, 2003)를 스무 해 앞서 읽을 적에 알쏭했던 대목을 이제서야 환하게 봅니다. 하워드 진 님이 쓴 꾸러미는 “on war”였더군요. 하워드 진 님은 “against war”가 아닌 “on war”를 보고, 짚고, 다루고, 밝히고, 이야기했어요. 무엇이 싸움이고, 싸울아비이며, 싸움판이고, 싸움돈에다가, 싸움박질인가를 하나하나 벗겨내면서 속낯을 바라보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처음부터 목소리로만 “전쟁 반대”를 하지 않았고, 하지 않을 일이자, 할 까닭이 없어요. 싸움터 한복판에 싸울아비로 뛰어들어서 ‘숱한 독일놈을 잿더미로 죽이는 짓’을 함께하고 나서, “내가 뭘 했는가?”를 돌아보았고, “몹쓸 독일놈을 짓밟았으니 평화인가?” 하고 되물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별이나 나라나 마을이 참답게 ‘민주·평등·평화·통일’이라고 한다면, ‘나랑 뜻이나 길이나 말이나 마음이 다른 저쪽’을 ‘저놈(적·적군)’이라 해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저놈을 모조리 몰아내거나 죽이거나 없애면 ‘민주·평등·평화·통일’인가요? 하워드 진 님도, 리영희 님도 ‘두 날개(어깨동무)’를 이야기했습니다. ‘외날개(왼날개)’로만 가서는 안 된다고 힘껏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왼날개인 외날개여서도, 오른날개인 옳은날개여서도 안 됩니다. ‘두 날개’일 노릇입니다.


  두 다리이기에 걷습니다. 다리 하나가 없으면 나무다리를 대고서 걷습니다. ‘손잡기(악수)’란 너랑 내가 손을 하나씩 나누어 ‘둘이 하나로 함께하는 어깨동무’입니다. 그런데 나라꼴을 보면, 이쪽하고 저쪽은 서로 밉놈이나 죽일놈으로 여기면서 막말을 쏟아붓고 화살을 쏘아댑니다.


  순이랑 돌이가 서로 싸워야 할 사이일까요? 순이돌이는 먼먼 옛날부터 ‘서로 다르기에 서로 돌보면서 어깨동무하는 보금자리를 일구는 사랑을 나누는 사이’이지 않나요? 순이를 괴롭힌 이는 돌이가 아닌 ‘힘꾼(권력자)’하고 ‘힘꾼 밑에 달라붙은 허수아비’입니다. 그래서 순이를 괴롭힌 돌이뿐 아니라, 순이를 괴롭힌 순이가 있어요. 겉모습으로만 순이나 돌이를 본다면 허울에 갇혀 날마다 툭탁거리면서 서로 미워하고 괴롭히는 쳇바퀴로 허덕여요.


  그렇다면 누가 싸움을 일으키고, 우리가 서로 미워하도록 부추길까요? 바로 힘꾼(권력자)입니다. 이쪽 무리 우두머리이든, 저쪽 무리 우두머리이든 서로 같아요. 누가 우두머리로 서든 그들은 늘 힘꾼이기에 왼쪽도 오른쪽도 우리를 부추겨서 싸움을 붙이고서 뒤에서 팔짱을 끼며 구경합니다. 순이돌이는 언제나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가꾸는 사이인데, 그들 힘꾼은 순이랑 돌이가 서로 마구 싸워대도록 불을 붙이고 불씨를 놓습니다. 순이돌이 스스로 마음을 태워서 싹이 못 틀 만큼 망가지기를 바라더군요.


  눈을 뜰 노릇입니다. 눈을 뜨고서 속빛을 볼 노릇입니다. “against war”가 아닌 “on war”를 보아야 합니다. ‘싸움’이 무엇이고, 누가 싸움을 일으키고, 누가 싸움판에서 길미를 챙기면서 히죽거리는지를 제대로 볼 노릇입니다. 순이돌이가 어깨동무 아닌 쌈박질로 갈라치기를 하면 누가 웃을까요? 어깨동무란, 돌이가 높지도 순이가 높지도 않은 사이입니다. 둘은 나란히 걸어갈 사이입니다. ‘민주정치’도 매한가지예요. 이쪽하고 저쪽 무리뿐 아니라, 그쪽이나 온갖 쪽 무리도 어우러질 적에 비로소 ‘민주정치’입니다. 힘꾼(대통령·청와대·국회의원·시도지사·장관·총리) 입김에 따라서 휘둘린다면 터럭조차도 민주가 아니고 정치가 아닙니다.


  불타오르면(분노하면·증오하면) 스스로 죽고, 동무랑 이웃까지 불태워 죽입니다. 사랑하면 스스로 살고, 이웃하고 동무랑 손을 잡고 어깨를 겯으면서 이 별을 푸른숲으로 가꿉니다.


ㅅㄴㄹ


주장이 아무리 ‘정당’하거나 ‘인도적’일지라도, 모든 전쟁의 변치 않는 고갱이는 국가 지도자들의 거짓말을 동반한 무고한 이들에 대한 계획적인 살육이기 때문이다. (17쪽)


이라크 폭격에 사용된 크루즈미사일은 모두 한 기당 가격이 백만 달러에 달하는 것이었는데, 국방부는 약 2백50기를 사용했다. 크루즈미사일에만 2억5천만 달러가 들어간 것이다. (40쪽)


베트남 참전군인들에게 물어보라. 죽은 이의 가족들에게 물어보라. 수족이 잘린 사람들과 걸어다니는 부상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렇다. 누군가는 그것이 훌륭한 대의였다고 주장할 것이다. 누군들 많은 생명이 헛되이 낭비됐다고 생각하고 싶겠는가?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증오와 분노에 가득 차 있다. (118쪽)


오늘날 드러난 증거들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일본 침공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184쪽)


전쟁이 끝난 뒤 의구심은 커져갔다. 나는 역사책을 읽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여러 민족의 독립과 자결권을 위해 싸운 것일까? 그렇다면 전쟁과 정복을 통해 팽창해 온 미국 자신의 역사는 도대체 무엇일까? (242쪽)


#OnWar #HowardZinn


우리는 누락된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 우리는 빠진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 우리는 사라진 얘기를 해야 한다

1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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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나그네 1 - 제주의 영혼, 오름을 거닐다 오름나그네 1
김종철 지음, 고길홍 사진 / 다빈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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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책읽기 2023.7.26.

인문책시렁 311


《오름나그네 1》

 김종철

 다빈치

 2020.4.15.



  《오름나그네 1》(김종철, 다빈치, 2020)를 읽었습니다. 두 다리로 걷고, 온몸으로 부대끼고, 두 팔로 품은 제주 오름을 하나하나 풀어낸 꾸러미 가운데 첫걸음입니다. 오름을 둘러싼 마을에 깃들지 않고서는 오름을 알 길이 없습니다. 마을이 안긴 오름을 돌아보지 않고서야 제주라는 고장을 알 턱이 없어요.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르게 집을 짓고, 다 다른 집은 어깨동무를 하며 마을을 이루고, 여러 마을이 오순도순 어우러져 고을을 이룹니다. 이 고을은 커다랗게 하나를 이루기도 합니다.


  스스로 바라보려고 하면 스스로 느껴서 알아차립니다. 누가 남긴 자취만 좇으려 하면 어느새 ‘우리 눈’이 아닌 ‘길든 눈’으로 헤맵니다. 잘 알려고 걷지 않습니다. 똑바로 배우려고 걸어다니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읽고, 이웃하고 만나는 자리를 보면서, 우리가 함께 인 하늘을 누리려고 하기에 즐거이 걸어요.


  뜻있게 여민 책이되, 글멋을 자꾸 부린 대목은 아쉽습니다. 제주사람뿐 아니라, 온누리 사람들은 ‘어려운 말씨’나 ‘한자로 엮은 말씨’에 갇힌 삶이 아닙니다. 스스로 삶자리에서 길어올린 말인 ‘삶말’은 ‘살림말 = 사투리’입니다. 흙을 돌보고 바다를 품고 오름을 안은 수수한 제주사람이 구태여 한자를 배워서 마을이름이나 오름이름을 붙인 일이 없겠지요.


  그러면 오름을 들려주는 책에 글결을 어떻게 가다듬을 적에 빛날까요? 비록 예전에 나온 책을 되살린 판이기는 하되, 어제 오늘 모레를 잇는 길을 어떤 숨길·글길·삶길·눈길로 추스르는 사랑길로 노래할 적에 스스로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이 샘이 속칭 거슨세미다. 물의 흘러나옴이 바다 쪽이 아니라 한라산 쪽으로 거스른 방향이란 뜻으로, 섬에서 몇 안 되는 이른바 역천逆泉 또는 역수逆水의 하나다. (25∼26쪽)


결국 다랑쉬는 높은 봉우리란 뜻이며, 원어 ‘달수리’의 변화된 형태로 남아 있는 고구려어라는 이야기다. (45쪽)


‘북오름’ 하면 산이라는 뜻이 중복된 표현이어서 어색한 느낌이 들기는 하나 ‘높다’의 뜻 쪽으로 본다면 ‘북오름’은 ‘높은오름’으로 해석해 부자연스러울 게 없을 것 같다. (67쪽)


잣(잣성)이란 옛날 목마장과 목마장을 구획하는 경계에 쌓던 담장을 이르며 (175쪽)


어느 것이 제 이름인지는 분명치 않고 한 오름에 별칭 한둘은 흔한 일이나, 한자명은 뒤에 생긴 것이라는 원칙에서 따진다면 아무래도 전설 어린 ‘각시바우오름’이 본디의 이름인 듯싶다. (238쪽)


한편 ‘색다리’라는 지명에 대하여는 어원상 ‘색’은 사이(間)의 뜻인 ‘삿’의 변화이며 ‘다리’는 들(野)을 뜻하기도 하는 ‘달’에서 온 것으로 삿달→샛달→색달→색다리의 변화를 거친, ‘가운데의 들’이란 뜻의 이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311쪽)


+


이 샘이 속칭 거슨세미다

→ 이 샘을 거슨세미라 한다

→ 이 샘이 거슨세미이다

25쪽


물의 흘러나옴이 바다 쪽이 아니라

→ 물이 바다 쪽으로 흘러나오지 않고

25쪽


섬에서 몇 안 되는 이른바 역천逆泉 또는 역수逆水의 하나다

→ 섬에서 몇 안 되는 거스름물이다

→ 섬에서 몇 안 되는 거스름샘이다

26쪽


뜻이 중복된 표현이어서 어색한 느낌이 들기는 하나

→ 뜻이 겹쳐 어설프기는 하나

→ 뜻이 겹치니 엉성하기는 하나

67쪽


‘북오름’은 ‘높은오름’으로 해석해 부자연스러울 게 없을 것 같다

→ ‘북오름’은 ‘높은오름’으로 풀이할 만하다

→ ‘북오름’은 ‘높은오름’으로 풀어도 엉성하지 않다

67쪽


흔치 않은 오름 위의 옹달샘으로서는 적은 수량이 아니다. 물줄기는 가늘어도

→ 흔치 않은 오름 옹달샘으로 물이 적게 솟지 않는다. 물줄기는 가늘어도

83쪽


긴 다리로 물 위를 유유히 걸어다니는 의젓함이며

→ 긴 다리로 물낯을 가볍고 의젓이 걸어다니며

→ 긴 다리로 물낯을 가만가만 의젓이 걸어다니며

123쪽


마음에 감치는 소박함을 지니고 있다

→ 마음에 감치며 수수하다

→ 마음에 감치도록 꾸밈없다

130쪽


서너 개의 작은 봉우리가

→ 작은 봉우리 서넛이

→ 작은 서너 봉우리가

228쪽


본디의 이름인 듯싶다

→ 옛이름인 듯싶다

→ 첫이름인 듯싶다

238쪽


한편 ‘색다리’라는 지명에 대하여는 어원상 ‘색’은 사이(間)의 뜻인 ‘삿’의 변화이며

→ 그리고 ‘색다리’라는 이름은 말밑으로 ‘색’은 사이를 뜻하는 ‘삿’이 바뀌었으며

311쪽


‘가운데의 들’이란 뜻의 이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 ‘가운데 들’을 뜻하는 이름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31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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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읽는 사고
사토 다쿠 지음, 이정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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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6.15.

인문책시렁 295


《삶을 읽는 사고》

 사토 다쿠

 이정환 옮김

 안그라픽스

 2018.6.22.



  《삶을 읽는 사고》(사토 다쿠/이정환 옮김, 안그라픽스, 2018)는 “塑する思考”를 한글로 옮깁니다. 일본말 ‘塑する’를 “삶을 읽는”으로 바꾸었는데, ‘思考’는 왜 ‘사고’로 가두었을까요? 줄거리를 곰곰이 보면 “삶을 읽는 생각”하고 맞물릴 수 있으나, 이보다는 “플라스틱을 생각한다”쯤으로 옮기는 길이 나았으리라 느낍니다. 어느 하나를 다른 무엇으로 바꾸면서 퍼져 나가는 길을 밝히는 줄거리이니, ‘플라스틱’이 그냥 플라스틱인지, 아니면 새길을 여는 실마리인지, 또는 좋거나 나쁜 틀을 벗어날 수 있는지 ‘생각’하자는 뜻입니다.


  우리말 ‘생각’을 한자 ‘思’나 ‘考’로 섣불리 옮기지 못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말 ‘생각 = 새롭게 심어서 나아가려는 길’을 나타내는데, ‘헤아리다·살피다·가늠·가리다·따지다·보다·어림·여기다·톺다·짚다·그리다’는 모두 다른 결을 나타냅니다. ‘돌아보다·살펴보다·바라보다·내다보다·둘러보다·훑어보다’도 결이 바뀌고, ‘파다·파헤치다·파고들다’라든지 ‘들여다보다·쳐다보다’처럼 ‘보다’를 자꾸자꾸 붙이면서 잇는 말씨도 결하고 너비를 바꾸어 갑니다.


  그런데 우리말 ‘생각’을 어떻게 조금씩 다르게 추스르거나 이야기하더라도 뿌리는 매한가지예요. ‘새·새롬·새로움’입니다.


  생각이라는 빛을 씨앗으로 심기에 마음에서 자라나서 무언가 일어납니다. ‘일어나’기에 ‘일’입니다. 돈벌이 가운데 일이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하는 모든 삶이란 ‘일어난 일’입니다. ‘삶·함·일·하루’가 맞물릴 뿐 아니라, 곰곰이 보면 ‘똑같은 모습이나 몸짓을 다르게 느끼고 받아들여서 나타내는 이름’일 뿐이라고 여겨도 됩니다.


  다 다르게 볼 줄 아는 눈이기에 손질(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다르게 갈 수 있는 손이기에 만질(디자인) 수 있고,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요. 장사하며 사고파는 살림도 꾸밀(디자인) 수 있습니다만, 우리가 쓰는 말글도 차근차근 다독일(디자인) 수 있기를 바라요. 멋부림(디자인)에서 그치는 몸짓은 눈비음(디자인)일 뿐인데, 글은 마음소리를 그리는(디자인) 무늬이지만, 보듬는(디자인) 마음이 없으면, 터럭만큼도 새로울 수 없습니다. 흔하거나 너르거나 수수하게 쓰는 ‘삶말’이 얼마나 새롭게 일어나는 빛씨앗인 생각인 줄 느끼지 못 한다면, 글쓰기(창작)도 옮기기(번역)도 부질없는 손장난이겠지요.


ㅅㄴㄹ


‘모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누구나 그것에 대해 알고 싶어지지 않나. 그 반복 작업을 통해서 대상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37쪽)


내 목표는 결정권을 쥔 이들의 충분한 이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나이 많은 경영진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세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피부로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46쪽)


오랜 세월 디자인에 종사하면서 일의 기본은 ‘사이로 들어가 연결하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62쪽)


‘적당히’라는 애매한 표현 속에 사실은 디자인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포함되어 있지 싶다. 그리고 이 ‘적당히’를 예전의 생활용품에서 엿볼 수 있다. (110쪽)


좀더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발언을 자주 듣는데 이것은 터무니없는 오해다. 화려한 디자인이 시도된 유명 디자이너의 물건보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젓가락에야말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디자인이 풍부하게 갖추어져 있다. (112쪽)


주변을 둘러보면 현대사회의 편리함 대부분은 ‘얼마나 신체를 쓰지 않을 수 있나’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229쪽)


#塑する思考 #佐藤卓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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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선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4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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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인문책 / 숲노래 책읽기 2023.4.21.

헌책읽기 11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사람이 누릴 땅은 새가 내려앉고 풀벌레가 노래하고 벌나비가 춤추고 거미가 집을 짓고 뱀이랑 개구리가 사이좋게 어울리면서 이따금 들고양이가 슬슬 지나갈 만한 너비이면 넉넉합니다. 해마다 나무를 한 그루씩 심을 만하고, 철마다 들꽃씨를 한 줌씩 뿌릴 만하고, 맨발로 사뿐사뿐 오가면서 춤출 만한 풀밭을 누리는 너비이면 즐겁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방울춤으로 놀고,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맞이춤으로 노래하고, 해가 드리우는 날에는 빨래를 해바라기로 내놓으면서, 아이들이 이마에 땀을 내며 달리고 뛸 수 있을 만한 너비이면 사랑스럽습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톨스토이 님이 남긴 여러 글자락 가운데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이 곁에 놓고 되새길 여러 삶노래’를 갈무리합니다. 톨스토이 님은 가멸찬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되,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온몸으로 맞아들이고 깨우치려 했습니다. 스스로 뒤집어쓴 허물부터 고스란히 바라보려 했기에 스스로 마음 한복판에서 사랑을 일깨울 수 있었고, 이 사랑씨앗을 차곡차곡 심는 글밭을 일굴 만했습니다. 가난집에서 태어나야 가난을 알거나 말할 수 있지 않습니다. 가난만 말할 적에는 가난도 가멸참도 오히려 말하지 못 할 뿐 아니라, 둘 사이를 녹여내는 살림빛은 한 마디도 못 읊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돈이 있어야 살림이 넉넉하지 않거든요. ‘살림’ 가운데 ‘살림돈’도 있지만, 숱한 살림살이 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부스러기인 돈입니다. 호미 한 자루에 도끼 한 자루가 살림입니다. 숯과 냉과리가 살림입니다. 작은 자루랑 이불 한 채가 살림입니다. 아이들 말소리가 살림이고, 어른들 이야기꽃이 살림입니다. 쇳덩이(자가용)를 거느리기에 살림하고 멉니다. 잿더미(아파트)를 붙잡기에 살림을 잊습니다. 풀씨랑 꽃씨랑 나무씨가 살림을 일구는 바탕이고, 온갖 씨앗을 손바닥에 얹다가 가볍게 심을 마당이랑 뒤꼍이랑 밭자락을 누린다면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릴 만합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L.N.톨스토이/박형규 옮김, 이성과현실, 1990.9.30.)


ㅅㄴㄹ


이제야말로 나는 깨달았다. 모두가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만 인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정말은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 속에 사는 자는 하느님 안에 살고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45쪽)


“공연한 짓을 해서 아이들의 버릇을 그르치지 말아요. 저런 애들은 한 주일쯤 잊어버리지 않도록 혼을 내줘야 하는데.” 할머니는 말했다. “아니에요, 할머니. 그거야 물론 우리네들의 생각이지만 주님의 뜻은 그게 아니거든요. 사과 한 알 때문에 이 아이를 때려야 한다면 이 죄 많은 우리는 도대체 어떤 벌을 받아야 하나요?” 노파는 잠자코 아무 대답이 없다. (61쪽)


“네 눈에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있어. 네 눈은 증오심 때문에 흐려졌다. 남의 잘못은 눈앞에 환히 보여도 자기의 잘못은 등 뒤에 감춰져 있다.” (74쪽)


농민들은 하느님의 힘은 악을 악으로 갚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착한 일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34쪽)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해드리겠습니다.” “그래 뭣을 할 수 있다는 거냐?” 하고 이반이 묻자 작은 도깨비는 말했다. “저는 당신이 원하신다면 무엇으로라도 군사를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까짓게 무슨 소용이 있지?” (146쪽)


하인은 괭이를 집어들고 빠홈의 무덤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정확하게 3아르신을 팠다. 그리고 그를 묻었다. (228쪽)


어느 날 움막에 들어앉아 있던 대자에게는 이제 더 이상 모자라는 것도 두려운 것도 없었으며, 마음속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거기서 대자는 생각했다.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큰 행복을 인간에게 내려주셨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공연히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실상은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는데도.’ (25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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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제국 당대총서 14
하워드 진 지음, 이아정 옮김 / 당대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숲노래 인문책 / 숲노래 책읽기 2023.4.21.

인문책시렁 304


《오만한 제국》

 하워드 진

 이아정 옮김

 당대

 2001.1.9.



  《오만한 제국》(하워드 진/이아정 옮김, 당대, 2001)을 되읽으며 생각합니다. 요즈음 이분 책을 곁에 두는 분이 얼마나 있을는지 모르나, 이분이 싸움날개(전투폭격기)를 몰며 꽝꽝 터뜨리던 무렵 스스로 지저른 죽임짓을 밝히는 대목은 앞으로도 눈여겨볼 글줄이라고 느낍니다. 어느 쪽만 ‘때린이(가해자)’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올바르다(정의의 편)고 외치면서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게 죽임짓을 일삼은 무리가 있어요.


  하워드 진이라는 분은 그이 스스로 ‘미국 싸움날개’를 몰지 않았다면, 또 그 싸움날개가 무슨 뜻이었는지 스스로 돌아보지 않았다면, ‘역사’라는 이름을 내세운 온갖 거짓말을 캐내려는 마음으로 나아가지 못 했으리라 느낍니다. 바보짓을 일삼은 적이 있어도 깨우치고 거듭날 수 있습니다. 바보짓을 한 적이 없더라도 오히려 바보스러운 굴레에 스스로 갇혀서 못 헤어나오기도 합니다.


  눈을 뜨고 참길을 걸어가면서 참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언제나 되새기려 하지 않는다면, 그만 나라(정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휘둘리는 허수아비 노릇을 하기 일쑤입니다. 허수아비가 되면, 돈도 이름도 힘도 쉽게 얻습니다. 허수아비가 되지 않겠노라 손사래치면, 돈도 이름도 힘도 없는 맨몸이 되겠지요. 그런데 맨몸으로 설 줄 알기에 스스로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면서 ‘어른’으로 거듭날 만합니다.


  나이만 먹는 이는 늙은 꼰대입니다. 나이먹기를 멈추고서 철들려는 몸짓으로 피어나기에 비로소 어른입니다.


  둘레를 보면 ‘어른 아닌 꼰대’인 놈들이 스스로 마치 ‘어른’이라도 되는 듯이 굴거나 뽐냅니다. 그러나 그들이 참으로 ‘어른’이라면 언제나 무릎을 꿇고서 어린이 곁에 설 뿐 아니라, 어린이랑 어깨동무하는 마음과 말과 몸짓으로 사랑을 물려주게 마련이에요. ‘어른 아닌 꼰대’이기에 어려운 말을 아이들한테 윽박지르며 외우도록 시킵니다. ‘그저 꼰대인 늙은이’인 터라 우리 삶터를 갈라치기(분열·차별)로 끊고서 자꾸 싸움을 부추깁니다.


  어른일 적에만 비로소 어버이로 다시 태어납니다. 어른이 아닌 사람은 어버이로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른인 넋으로 눈뜨는 마음일 때에 비로소 ‘어머니·아버지’로 서로 어깨동무하며 살림을 추스르는 보금자리를 일구어 ‘어버이’라는 이름을 새로 얻습니다.


  아기를 낳기에 ‘어버이’라 하지 않습니다. 철든 몸짓으로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줄 알아서 ‘어버이’입니다. 낳기는 했어도 사랑을 물려주지 못 하는 몸짓이라면 어른도 어버이도 아닌 그냥 ‘늙은 꼰대’입니다. 말과 이름을 어질게 가려서 쓸 노릇입니다. 말과 이름을 찬찬히 짚으면서 우리 넋을 돌아보고, 우리 하루를 스스로 그릴 적에, 비로소 이 땅에서 모든 총칼을 녹여내고, 아이들을 배움수렁(입시지옥)에서 건질 뿐 아니라, 우리 누구나 참사람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ㅅㄴㄹ


실제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부와 권력이 특정한 방법으로 분배되고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세계 속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현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20쪽)


정밀 폭격은 엄청난 자기기만이었다. 우리는 독일군이 도시를 폭격하여 수백 혹은 천여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분노했었다. 하지만 이제 영국군과 미군은 단 한 번의 공습으로 수만 명을 죽이고 있었다. (166쪽)


이미 대량폭격에 길들여진 미국의 대중들은 원자탄 폭격을 태연하게, 사실상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나 자신의 반응이 어땠는지 기억한다 … 나는 원자탄의 폭발이 히로시마의 남자, 여자, 어린이 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유럽에서 6마일 고도로 날며 떨어뜨린 폭탄에 맞아죽은 사람들의 죽음처럼, 추상적이고도 먼 것이었다 … 일단 처음에 어떤 전쟁에 대해 정당하다는 판단이 내려지고 나면, 그 뒤로는 생각을 중지한 채 승리를 위해 저지르는 모든 일 또한 도덕적으로 타당하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17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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