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단편선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4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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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인문책 / 숲노래 책읽기 2023.4.21.

헌책읽기 11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사람이 누릴 땅은 새가 내려앉고 풀벌레가 노래하고 벌나비가 춤추고 거미가 집을 짓고 뱀이랑 개구리가 사이좋게 어울리면서 이따금 들고양이가 슬슬 지나갈 만한 너비이면 넉넉합니다. 해마다 나무를 한 그루씩 심을 만하고, 철마다 들꽃씨를 한 줌씩 뿌릴 만하고, 맨발로 사뿐사뿐 오가면서 춤출 만한 풀밭을 누리는 너비이면 즐겁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방울춤으로 놀고,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맞이춤으로 노래하고, 해가 드리우는 날에는 빨래를 해바라기로 내놓으면서, 아이들이 이마에 땀을 내며 달리고 뛸 수 있을 만한 너비이면 사랑스럽습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톨스토이 님이 남긴 여러 글자락 가운데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이 곁에 놓고 되새길 여러 삶노래’를 갈무리합니다. 톨스토이 님은 가멸찬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되,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온몸으로 맞아들이고 깨우치려 했습니다. 스스로 뒤집어쓴 허물부터 고스란히 바라보려 했기에 스스로 마음 한복판에서 사랑을 일깨울 수 있었고, 이 사랑씨앗을 차곡차곡 심는 글밭을 일굴 만했습니다. 가난집에서 태어나야 가난을 알거나 말할 수 있지 않습니다. 가난만 말할 적에는 가난도 가멸참도 오히려 말하지 못 할 뿐 아니라, 둘 사이를 녹여내는 살림빛은 한 마디도 못 읊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돈이 있어야 살림이 넉넉하지 않거든요. ‘살림’ 가운데 ‘살림돈’도 있지만, 숱한 살림살이 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부스러기인 돈입니다. 호미 한 자루에 도끼 한 자루가 살림입니다. 숯과 냉과리가 살림입니다. 작은 자루랑 이불 한 채가 살림입니다. 아이들 말소리가 살림이고, 어른들 이야기꽃이 살림입니다. 쇳덩이(자가용)를 거느리기에 살림하고 멉니다. 잿더미(아파트)를 붙잡기에 살림을 잊습니다. 풀씨랑 꽃씨랑 나무씨가 살림을 일구는 바탕이고, 온갖 씨앗을 손바닥에 얹다가 가볍게 심을 마당이랑 뒤꼍이랑 밭자락을 누린다면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릴 만합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L.N.톨스토이/박형규 옮김, 이성과현실, 1990.9.30.)


ㅅㄴㄹ


이제야말로 나는 깨달았다. 모두가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만 인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정말은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 속에 사는 자는 하느님 안에 살고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45쪽)


“공연한 짓을 해서 아이들의 버릇을 그르치지 말아요. 저런 애들은 한 주일쯤 잊어버리지 않도록 혼을 내줘야 하는데.” 할머니는 말했다. “아니에요, 할머니. 그거야 물론 우리네들의 생각이지만 주님의 뜻은 그게 아니거든요. 사과 한 알 때문에 이 아이를 때려야 한다면 이 죄 많은 우리는 도대체 어떤 벌을 받아야 하나요?” 노파는 잠자코 아무 대답이 없다. (61쪽)


“네 눈에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있어. 네 눈은 증오심 때문에 흐려졌다. 남의 잘못은 눈앞에 환히 보여도 자기의 잘못은 등 뒤에 감춰져 있다.” (74쪽)


농민들은 하느님의 힘은 악을 악으로 갚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착한 일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34쪽)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해드리겠습니다.” “그래 뭣을 할 수 있다는 거냐?” 하고 이반이 묻자 작은 도깨비는 말했다. “저는 당신이 원하신다면 무엇으로라도 군사를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까짓게 무슨 소용이 있지?” (146쪽)


하인은 괭이를 집어들고 빠홈의 무덤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정확하게 3아르신을 팠다. 그리고 그를 묻었다. (228쪽)


어느 날 움막에 들어앉아 있던 대자에게는 이제 더 이상 모자라는 것도 두려운 것도 없었으며, 마음속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거기서 대자는 생각했다.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큰 행복을 인간에게 내려주셨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공연히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실상은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는데도.’ (25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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