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읽는 사고
사토 다쿠 지음, 이정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2023.6.15.

인문책시렁 295


《삶을 읽는 사고》

 사토 다쿠

 이정환 옮김

 안그라픽스

 2018.6.22.



  《삶을 읽는 사고》(사토 다쿠/이정환 옮김, 안그라픽스, 2018)는 “塑する思考”를 한글로 옮깁니다. 일본말 ‘塑する’를 “삶을 읽는”으로 바꾸었는데, ‘思考’는 왜 ‘사고’로 가두었을까요? 줄거리를 곰곰이 보면 “삶을 읽는 생각”하고 맞물릴 수 있으나, 이보다는 “플라스틱을 생각한다”쯤으로 옮기는 길이 나았으리라 느낍니다. 어느 하나를 다른 무엇으로 바꾸면서 퍼져 나가는 길을 밝히는 줄거리이니, ‘플라스틱’이 그냥 플라스틱인지, 아니면 새길을 여는 실마리인지, 또는 좋거나 나쁜 틀을 벗어날 수 있는지 ‘생각’하자는 뜻입니다.


  우리말 ‘생각’을 한자 ‘思’나 ‘考’로 섣불리 옮기지 못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말 ‘생각 = 새롭게 심어서 나아가려는 길’을 나타내는데, ‘헤아리다·살피다·가늠·가리다·따지다·보다·어림·여기다·톺다·짚다·그리다’는 모두 다른 결을 나타냅니다. ‘돌아보다·살펴보다·바라보다·내다보다·둘러보다·훑어보다’도 결이 바뀌고, ‘파다·파헤치다·파고들다’라든지 ‘들여다보다·쳐다보다’처럼 ‘보다’를 자꾸자꾸 붙이면서 잇는 말씨도 결하고 너비를 바꾸어 갑니다.


  그런데 우리말 ‘생각’을 어떻게 조금씩 다르게 추스르거나 이야기하더라도 뿌리는 매한가지예요. ‘새·새롬·새로움’입니다.


  생각이라는 빛을 씨앗으로 심기에 마음에서 자라나서 무언가 일어납니다. ‘일어나’기에 ‘일’입니다. 돈벌이 가운데 일이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하는 모든 삶이란 ‘일어난 일’입니다. ‘삶·함·일·하루’가 맞물릴 뿐 아니라, 곰곰이 보면 ‘똑같은 모습이나 몸짓을 다르게 느끼고 받아들여서 나타내는 이름’일 뿐이라고 여겨도 됩니다.


  다 다르게 볼 줄 아는 눈이기에 손질(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다르게 갈 수 있는 손이기에 만질(디자인) 수 있고,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요. 장사하며 사고파는 살림도 꾸밀(디자인) 수 있습니다만, 우리가 쓰는 말글도 차근차근 다독일(디자인) 수 있기를 바라요. 멋부림(디자인)에서 그치는 몸짓은 눈비음(디자인)일 뿐인데, 글은 마음소리를 그리는(디자인) 무늬이지만, 보듬는(디자인) 마음이 없으면, 터럭만큼도 새로울 수 없습니다. 흔하거나 너르거나 수수하게 쓰는 ‘삶말’이 얼마나 새롭게 일어나는 빛씨앗인 생각인 줄 느끼지 못 한다면, 글쓰기(창작)도 옮기기(번역)도 부질없는 손장난이겠지요.


ㅅㄴㄹ


‘모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누구나 그것에 대해 알고 싶어지지 않나. 그 반복 작업을 통해서 대상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37쪽)


내 목표는 결정권을 쥔 이들의 충분한 이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나이 많은 경영진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세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피부로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46쪽)


오랜 세월 디자인에 종사하면서 일의 기본은 ‘사이로 들어가 연결하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62쪽)


‘적당히’라는 애매한 표현 속에 사실은 디자인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포함되어 있지 싶다. 그리고 이 ‘적당히’를 예전의 생활용품에서 엿볼 수 있다. (110쪽)


좀더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발언을 자주 듣는데 이것은 터무니없는 오해다. 화려한 디자인이 시도된 유명 디자이너의 물건보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젓가락에야말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디자인이 풍부하게 갖추어져 있다. (112쪽)


주변을 둘러보면 현대사회의 편리함 대부분은 ‘얼마나 신체를 쓰지 않을 수 있나’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229쪽)


#塑する思考 #佐藤卓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