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한테 학교는 마땅하지 않아요
첫째 아이가 다섯 살을 누립니다. 첫째 아이는 돌 무렵부터 둘레 어른들한테서 ‘보육원’이나 ‘유아원’에 가야 하지 않느냐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만, 아이는 이런 소리를 들어도 스스로 보육원이나 유아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그저 어른들이 저한테 말을 거는구나 하고 느꼈겠지요. 이제 다섯 살로 접어들고 보니, ‘어린이집’에 갈 때가 되었다는 소리를 자꾸 듣습니다. 시골에서는 나라에서 돈을 다 대니 아주 마땅하게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시골에서는 보육원이든 유아원이든 어린이집이든 돈이 들 일이 없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딱히 돈이 들 일이 없다고 느낍니다. 다 나라에서 돈을 댈 테니까요.
나와 옆지기는 학교라는 곳이 마땅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와 옆지기는 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이나 유아원이나 보육원이나 마땅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돈을 대는 보육원이나 유아원이나 어린이집이 ‘숲 배움터’라면, 아이더러 놀이 삼아 다니라고 해 볼는지 모릅니다. 나라에서 뒷배한다는 초·중·고등학교에서 아이한테 흙일과 물일을 찬찬히 가르치면서 집일을 일깨운다면, 곰곰이 생각해 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어린이집이든 어느 학교이든, 아이한테 지식만 집어넣습니다. 어느 배움터이든 배우는 터 노릇을 한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아이한테는 마땅히 배우는 터여야 하고 살아가는 터여야 합니다. 아이들 보금자리는 삶터이자 배움터이고 나눔터입니다. 아이들 학교는 배움터이면서 삶터이고 나눔터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와 둘레 어른이 일하고 놀이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배우고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와 둘레 어른이 여느 자리에서 으레 쓰는 말마디를 귀기울여 듣고 하나하나 따라하며 배웁니다. 아이들은 여느 때 여느 사랑을 나누는 어버이와 둘레 어른 삶을 받아먹으며 저희 꿈과 이야기를 빚습니다.
예방접종이든 영어이든 급식이든 지식이든, 나와 옆지기가 바라볼 때에 오늘 이 나라 어린이집이나 학교는 아이들한테 너무 끔찍한 불지옥이라고 느낍니다. 사람답게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살아가는 길을 아이들한테 하나도 안 보여줄 뿐더러 못나고 모진 도시 돈벌이로만 내모는 어린이집이나 학교라고 느껴요. 적어도 인권이나 평화나 평등조차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는 옳게 느끼며 배울 만하지 않다고 느껴요.
아이들한테 이런저런 체험을 시키거나 학습을 시키거나 교육을 시키는 일을 못마땅하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와 함께 살아가며 모든 일을 스스로 겪으며 찬찬히 받아들여 배우니까요. 어버이인 나부터 스스로 옳게 살아갈 길을 찾고, 착하고 참다이 일하는 길을 살피고, 곱게 꿈꾸고 사랑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느껴요. 이 길에서 아이들과 나란히 웃고 울면서 좋은 삶을 빚어야 한다고 느껴요.
첫째 아이는 가시내로 태어나고 둘째 아이는 사내로 태어납니다. 둘째가 사내로 태어났을 때 ‘이 아이는 앞으로 군대를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했습니다. 옆지기는 ‘군대에 가지 않도록 어버이로서 온힘을 다해 애써’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군대에 끌려가야 한다면 군대에서 죽임과 괴롭힘과 주먹다짐에 물들거나 휩쓸리지 않고 따스한 사랑과 평화를 나눌 줄 아는 아이로 마음을 북돋우도록 힘써’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나는 옆지기 말을 듣고 적이 마음을 놓았어요. 사내를 낳은 어버이로서 할 몫은 ‘아이를 군대에 떠밀기’여서는 안 되거든요. 삶과 사랑과 사람 아무것도 없는 군대는 죽음수렁이거든요. 끔찍한 무기와 엉터리 계급과 바보스런 신분과 무시무시한 주먹다짐과 거친 말들이 춤추는 군대는 ‘사람 죽이는 솜씨’를 모든 사내한테 길들이는 못난 쓰레기터입니다.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데에 써야 할 돈으로 무기를 만들고 무기를 지키며 무기를 움켜쥐도록 하는 슬픈 데가 군대이거든요.
너무 마땅하지 않으니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지 않습니다. 너무 마땅하지 않으니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습니다. 너무 마땅하지 않으니 아이가 군대에 끌려가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너무 마땅하기에 가방끈이나 자격증 같은 굴레에 아이들이 얽혀들도록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어느 꽃보다 일찍 피어나며 봄을 부르는 봄까치꽃처럼 아이들이 맑고 환하며 어여삐 꿈과 사랑을 빚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아주 마땅하며 매우 아름다운 삶길을 스스로 고이 보살피면서 한결같이 빛나는 넋이기를 빕니다. 나는 어버이로서 아이들과 복닥이고 싶어요. 나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맡긴 채 돈 많이 벌러 바깥으로 나다니고 싶지 않아요. (4345.2.24.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