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사건 속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는 유가와와 구사나기 콤비의 활약상

예지몽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용의자 X의 헌신'을 통해 처음 만났던 유가와 교수와 구사나기 형사 콤비의 활약을 본 후 

시리즈의 1권이라 할 수 있는 '탐정 갈릴레오'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기로 마음 먹었는데

예상 외로 두 번째 책인 이 책을 손에 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가 계속 쏟아져나오는 상황이라 쉽게 출간 속도를 따라갈 거라곤

생각 못했지만 아무래도 과학자 탐정이란 설정 자체가 조금 낯설었던 게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과학수사를 전면에 내세운 링컨 라임 시리즈나 스카페타 시리즈가 전문성을 내세워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긴 해도

전형적인 과학수사기법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에 좀 황당한 얘기들이 없진 않았는데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얘기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과학적으로 설명해내는 흥미로운 얘기들이었다.

먼저 '꿈에서 본 소녀'에선 17년 전 꿈 속에서 본 레이미라는 소녀가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소녀의 집을 무단칩임한 사건이 그려지는데, 영화 '온리 유'처럼 운명의 연인의 이름에

집착하는 것과는 좀 달랐다. 소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녀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그녀에 대한 일기 등을 남겼고 친구들도 그의 얘기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 단순히 스토킹이라

치부할 순 없는 뭔가가 있는 듯 했는데 역시 유가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숨겨진 얘기를 밝혀낸다.

'영을 보다'도 여자친구가 자신을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거절의 말을 하려고 갔는데도 그녀를

자기 집 앞에서 본 남자친구가 걱정이 되서 친구에게 가보라고 부탁했더니 살해당한 채

발견된 사건을 다루는데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상황임에도 알고 보면 다 사연이 있었다.

'떠도는 영혼'도 실종된 남편을 찾아나서는 아내의 얘기도 그려지는데,

예전에 봤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제로의 초점'과 비슷한 느낌도 들었지만 흔히 폴터가이스터라고

불리는 기이한 현상도 파고들어가 보면 충분히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알리바이'에선 남편이 살해된 상황에서 아내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다가 수상한 낌새를

알아채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이 펼쳐지는데 기술이 바탕이 된 기발한 전략에는

웬만해선 진실을 알기 어려울 것 같았다. 마지막이자 동명의 단편 '예지몽'에선 불륜녀의 자살과

이를 며칠 전에 목격한 소녀의 얘기가 그려지는데, 이 작품도 기상천외한 수법이 동원되어

평범한 사람들은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예지몽이 현실이 된 상황은 마지막의 또 다른 예지몽으로 묘한 여운을 남겼다. 

전체적으로 다섯 작품의 기본 상황만 보면 이게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미스터리로 남겨지기 십상이라 할 수 있었는데

모든 일에는 다 그럴 듯한 이유가 있었다.

흔히 기이한 일이 발생하면 신이나 초자연적인 뭔가에 해답을 구하며

야단법석을 떨곤 하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단지 우리가 그 내면을 들여다볼 줄 모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 과학과 합리적인 이성이

우리가 궁금하게 여기는 미스터리의 진실을 밝혀줄 수 있음을 잘 알게 해준 작품이었다.

색다른 콤비인 유가와와 구사나기의 시너지가 잘 발휘된 작품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활약상을 다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올바른 처벌과 진정한 속죄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안겨준 책

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침입한 도둑에게 어린 딸을 잃고 아내와도 이혼한 채

애완동물 장례업체를 운영하던 나카하라는 전처였던 사요코마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낯선 노인의 칼에 찔려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연이은 참극으로 혼란에 빠진 나카하라는 딸의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이

전처의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다시 방문하자 전처의 사건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사요코의 부모에게 조문을 간 나카하라는 사요코가 도벽에 빠진 사람들을 취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고 사요코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일본을 대표하는 인기작가 중 한 명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을 하는 작가답지 않게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내놓아 언제나 믿고 보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이번에 새롭게 내놓은 이 책도 그의 장기라 할 수 있는 미스터리 형식으로

처벌과 속죄라는 쉽지 않은 문제를 화두로 제시한다.

사실 나카하라가 겪는 두 사람의 죽음은 참담할 뿐만 아니라 황당할 정도였다.

자기 집에서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은 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마는

딸을 잃은 지 5년 만에 헤어진 아내마저 어이없는 죽임을 당하니 정말 세상이 원망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도 나카하라는 담담하게 전처의 죽음에 의문을 갖고 조사를 해나가기 시작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사실 사형제를 비롯해 형벌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응보 이상의 의미는 그리 크지 않다는 생각이다.

형사정책적으로는 응보, 일반예방, 특별예방 등이 형벌을 부과하는 의미라 하지만

예방적인 의미의 형벌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못하다.

막연하게 죄를 저지르면 처벌을 받는다는 정도로는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의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는데 자기가 잡힐 거라고 생각하고 죄를 짓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범인에게 자신이 저지른 대가에 맞는 형벌을 어떻게 가할 것이냐는 양형의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는데, 각종 끔직한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여론은 형을 대폭 상향시켜야 한다고 하고

이에 따른 입법이 되기도 하지만 그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형을 비롯해 중형을 선고하는 게 일반인이나 피해자들에게 감정적인 만족감은 줄지 모르지만

응보 이상의 효과는 그다지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딸을 잃은 나카하라와 사요코 부부가 범인이 사형에 처해지길 원하는 마음은

이해하고도 남지만(사형도 어떻게 보면 너무 약한 처벌이지만) 사형으로 범죄가 없어지지도

줄어들지도 않음은 사형제를 운영한 국가의 각종 통계상으로도 입증된 것으로 안다.

단지 유족의 한을 풀어준다는 그런 심정적인 효과만 있을 뿐 범인이 진정 속죄하거나

또 다른 범인이 나오는 걸 막지는 못한다.

물론 그 범인 자체가 다시 출소해 범죄를 저지르는 건 막을 수 있다.

그동안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형사사법체계에서 소외된 측면에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고

그들이 입은 손해를 국가가 대신 보상해주는 제도가 활성화 될 필요는 있지만

극형만이 올바른 해법은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고 교화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게 답답한 노릇이다.

사요코가 죽자 그녀를 죽인 노인의 사위가 사죄의 편지를 사요코의 부모에게 전해온다.

딸과 사이가 안 좋았던 노인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한 자신들의 잘못이 크다는 취지였는데

가해자의 가족도 범죄로 인해 고통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문제는 도대체 노인이 왜 사요코를 죽였는가 하는 범행동기였는데

거기에는 정말 오래전에 있었던 숨겨진 또 다른 범죄가 있었다.

사실 그냥 잊혀졌던 예전 범죄로 인해, 그것도 과연 이제 와서 처벌을 할 필요성이 있는지도

의문인 그런 범죄로 인해 엉뚱한 사람이 죽어야 했으니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보다 더한 짓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수두룩함에도

죄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속죄를 하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은

그 어떤 형벌을 가하는 것 이상의 마음의 형벌이었다.

이 책의 제목처럼 공허한 십자가는 아무리 짊어지게 한들 전혀 속죄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지만 마음에 십자가를 새긴다면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아도 평생 고통 속에 살게 됨을

잘 알 수 보여주었는데, 형벌과 속죄의 상관관계가 어떠한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흥미로운 미스터리로 잘 풀어낸 작품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많이 봤지만 그의 작품 속엔

늘 사람들마다의 사정과 애환이 담겨 있어 공감하며 볼 수 있었는데 이 작품도 어떻게 보면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특유의 이야기 솜씨로 흠뻑 빠져들 게 만든 작품이었다. 

얼떨결에 고민상담을 해주게 된 도둑 삼인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아쓰야, 쇼타, 고헤이의 세 명의 도둑은 훔친 차의 배터리가 나가자

사전조사할 때 봐 놓았던 인근 폐가인 '잡화점'으로 잠시 몸을 숨기기로 한다.

마침 우편함에 '달 토끼'란 사람의 상담편지가 느닷없이 도착하자

주간지를 통해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이 그동안 고민상담을 해왔음을 알게 된 삼인조는 

그를 대신해 '달 토끼'에게 고민에 대한 답장을 하기 시작하는데...   

일본 미스터리계에 수많은 스타작가들이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만큼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가는 드문 것 같다.

일본 추리소설가지만 국내에서의 인지도도 상당한 그는 엄청난 다작을 하고 있음에도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내놓아서 미스터리의 화수분이라는 생각조차 들 지경인데

이 책도 그의 여러 베스트셀러 중의 한 권으로 자리매김하는 상황이라 결코 놓칠 수가 없었다.

미스터리 작가답게 보통 범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은데 이 책은 기존의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다르게 제목처럼 기적같은 신비한 얘기를 들려준다.

고민상담과 그 해법을 편지로 주고받는 게 기본 설정인데,

기적은 바로 과거와 현재가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영화 '시월애'의 설정과도 어떻게 보면 비슷한데, 재밌는 건 이 책에서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상담편지를 보내는 '달 토끼', '생선가게 뮤지션', '폴 레논', '길 잃은 강아지'가

정교한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환광원이란 고아원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곳 출신인 사람들과 

그곳과 특별한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 얽히고 설키면서 얘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물들의 사연은 결국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던

세 명의 도둑의 훈훈한 얘기로 마무리가 된다.

고민상담이란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절박한 문제도 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겐

남의 얘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기 일처럼 진지한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이 책 속의 고민상담자들처럼 고민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나름의 해답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자기의 생각이 맞다는 동의를 얻기 위해 고민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아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서로 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가운데 스스로 해답을 찾거나 혼자서 고민을 가지고

끙끙대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에 고민상담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진지한 고민상담을 해주던 나미야 잡화점의 원래 주인과는 달리

백수에 도둑인 삼인조가 고민에 대한 답변을 해주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흥미를 더하는데,

스스로 답변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함에도 나름 진지하게 상담에 임하는

삼인조의 모습이 나름 기특한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상담자들이 과거에 있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상담을 해주는 건

여러 모로 수월할 수 있는데, 미래의 일을 어느 정도까지 얘기해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하며

가급적 과거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는 바람직한 자세까지 보여준다.

물론 잘못된 길로 빠지려는 여자에게 부동산이나 주식이 엄청 오를 것이란 정보를 제공해

그녀가 망가지는 걸 막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만 하지 않을까 싶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그의 스토리텔링 솜씨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여러 사건과 사람들을 그물망처럼 짜임새 있게 연결시키는 재주와 미스터리 작가로서

독자들이 잠시도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드는 솜씨는 이제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그동안 봐왔던 작품들과는 조금 성향이 다르지만 여러 사람들의 고민상담을 통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나름의 고민을 안고 살아감을 깨닫게 해준다.

그 고민을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진정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게 했는데, 익명성에 파묻혀 서로 무관심한 삭막한 현실에도 여전히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정이 기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르쳐주는 책이었다. 

연쇄살인사건을 막기 위해 호텔리어가 된 형사

매스커레이드 호텔 ㅣ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세 건의 살인사건에 남겨진 숫자의 비밀을 밝혀낸 경찰은 다음 살인사건의 범행장소가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임을 알고 형사들을 호텔에 잠복시킨다.

경시청 형사 닛타는 난데없이 호텔리어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 불만이 많지만 베테랑 호텔리어

나오미의 도움을 받으며 차근차근 호텔리어의 업무를 익혀가면서 살인사건을 수사해가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등단 25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라는데 그 오랜 세월동안 정말 다작을 한 그는

이제 자타공인 일본 추리소설계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나도 그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보았지만 항상 기본은 하는 작가라

그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선 '악의', '붉은 손가락' 등에 나왔던 가가 교이치로 형사나

'용의자 X의 헌신',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유가와 마나부 교수 외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세 번째 캐릭터인 닛타 형사가 등장한다.

아직까지 그가 등장하는 다른 작품은 나오지 않은 것 같은데

이 책을 보면 가가 교이치로 형사와는 또 다른 매력적인 캐릭터가 탄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호텔에는 별로 가본 적이 없어서 호텔의 운영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 책을 보니 호텔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략 알 수 있었다.

예전에 '호텔리어'란 드라마를 봤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데 이 책에 호텔리어의

살아 있는 교범이라 할 수 있는 나오미가 등장하여 손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제목처럼 손님의 가면을 잘 지켜주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만족시켜 주는 게

호텔리어의 임무다 보니 마지못해 호텔리어 노릇을 해야 하는 닛타 형사로서는 정말 고역이었다.

게다가 이 책에는 온갖 진상고객들의 황당한 요구들이 넘치나서

정말 호텔리어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닛타 형사가 나오미의 지적을 받으면서

조금씩 호텔리어로서의 모습을 갖춰 가는 과정이 나름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었다.

호텔업무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사건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범인이 남기고 간 숫자 단서에는 다음 범행장소를 알려주는 트릭이 숨겨져 있었다.

첨에는 딱 'ABC 살인사건' 비슷한 설정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교묘한 트릭을 선보였다.

범행 동기를 보면서 자신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겐 잊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쉽진 않겠지만 항상 다른 사람의 입장도 생각하면서

말과 행동을 해야 원한을 사지 않음을 잘 알 수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마치 화수분처럼

그에겐 이야기가 끊이질 않고 샘솟는다는 것이다.

다양한 소재를 잘 버무려내는 그의 능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다.

새롭게 등장한 닛타, 노세 형사 콤비의 활약과 닛타 형사와 나오미와의 로맨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뇌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의 변신

변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창해 / 2005년 7월

집을 구하러 부동산 중개소에 들렀던 준이치는 갑자기 들이닥친 무장강도로부터 소녀를 구하려다

총에 맞고 사경을 헤매다가 가까스로 뇌이식 수술을 받은 후 의식을 회복하게 된다.

수술을 성공리에 마친 도겐 박사팀이 준이치의 상태를 계속 체크하는 가운데

준이치는 조금씩 낯선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다작을 하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내놓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다 보니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도 어느 일본 작가들보다도 많은 것 같은데

나도 그 중 상당 수의 책을 읽었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들 중엔 아직까지 실망한 책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추리소설 내지 미스터리를 다작 하다 보면 붕어빵 같은 작품들을 내놓기에 십상인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비교적 다양한 소재와 형식의 작품들을 선보여서 식상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 책도 뇌이식 수술이라는 추리소설의 소재로는 다른 작품에서 찾기 힘든 소재를 선택하여

절묘하게 요리를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가 이공계 출신인 점이

이런 소재들을 작품에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의학의 발달로 뇌도 이식이 가능한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뇌이식 수술에 성공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럴 경우 이 책에서와 같은 문제가 실제로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준이치가 받은 뇌이식 수술은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서 뇌엽절제술을 받은 환자가 연상되었는데,

문제는 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환자를 실험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환자에게 이상이 생겼음을 알았음에도 실험을 위해 이를 쉬쉬하다가 결국에는 비극을

초래하는 과정은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은 비정한 인간들이 초래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단순한 추리소설을 넘어 늘 어떤 메시지를 전해 주는 것 같다.

이 책도 소설의 재미와 메시지 전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