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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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세령호 살인사건으로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아버지 현수 때문에

세상의 따가운 눈초리와 친척들의 외면을 견디며 승환과 함께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서원은 우연히 세령호 사건에 대해 승환이 쓴 원고를 발견하는데

과연 7년 전에 일어났던 세령호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2009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내 심장을 쏴라'를 통해 처음 만났던 정유정 작가의 신작인 이 책은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서사의 힘을 전작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모습을 보여준다.

7년 전 세령호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 속에 숨겨졌던 진실을 하나둘씩 파헤쳐나가는 가운데,

딸을 잃은 남자의 광기와 아들을 지켜야 했던 남자, 그리고 두 사람의 틈바구니 속에서

진실을 모른 채 7년을 방랑하며 보내야 했던 소년의 얘기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역동적인 사건 전개와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잘 어우러져 소설의 재미를 한층 높여주었다.

 

7년 전 사건의 진실은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서원의 아버지 현수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판결을 받게 되지만, 현수는 사건의 발단이 된 불운한 교통사고의 가해자일뿐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살인마는 아니었다. 정작 괴물은 따로 있었는데

오히려 그가 모든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라 할 수 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광기에 사로잡혀 가족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던 남자는

자신이 소유물처럼 생각하던 아내와 딸이 자신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하자 더욱 미쳐 날뛰게 되고,

어리숙하고 무능한 현수가 이런 남자와 얽히게 되면서 비극의 무대로 내몰리게 된다.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벌어진 일들은 7년이 지난 후에도 끝나지 않고 다시 되살아나는데...

 

정신병원을 무대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환자들과 병원 직원들의 얘기를 생동감 있게 그려냈던

정유정 작가는 한층 더 힘이 느껴지는 얘기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선보여서 더욱 맘에 들었는데,

우리의 인생이 정말 한 순간의 뜻하지 않은 실수로 인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 간에 행해지는 폭력이 또다른 폭력을 낳고,

그런 가정의 붕괴가 결국 끔찍한 비극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실감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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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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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의 대표작가 중 한 명인 황석영의 신작인 이 책은

그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으로 조선 후기 이야기꾼인 전기수 이신통과

그의 아내 연옥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이야기꾼의 얘기를 허황한 민담조의 서사로 쓰려고 했지만

그 당시의 시대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기에 격동기의 조선 후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동학농민운동, 임오군란 등을 통해 무너진 신분사회 속에서

외세의 침입에는 무기력하면서 자신들의 잇속 차리기에만 급급한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이

대다수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지게 만든 참담한 상황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서자 출신의 의원 아버지 밑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라지만

공부를 해도 제대로 출사를 할 수 없었던 이신은

이복형의 종모법에 따른 노비소송 제기로 곤욕을 치른 후 역마살이 붙은 것처럼 세상을 떠돌게 된다.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연옥과 잠시 부부의 연을 맺지만 그의 방랑벽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고전소설을 낭독하는 전기수에 재능을 보인 그는 이신통이라 불리며 인기를 얻는 것도 잠시

천지도에 가입하면서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그런 그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연옥은 남편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그의 안부를 하나씩 전해 듣는데

보통 여자 같았으면 일찌감치 남편을 포기했겠지만 연옥은 늘 그의 그림자처럼

그가 머물고 떠난 곳을 찾아다니며 그의 소식을 접하는데 안쓰러움과 애틋함이 절로 묻어났다.

 

작가는 이신통이란 인물을 통해 조선후기의 굵직한 역사를 흥미롭게 재현해냈다.

특히 천지도로 이름만 바꾼 동학과 관련한 얘기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본주의 정신을 이땅에 널리 퍼뜨린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엄격한 신분사회 아래에서 핍박받던 대다수 민중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르쳐준 혁명적인 사상이라 할 수 있었는데,

당연히 지배세력의 처절한 탄압이 뒤따랐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사라져갔지만

그들의 희생을 통해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변화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이신통이 이야기꾼 노릇을 하지만 결국에는 연옥을 통해

그의 치열했던 삶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암울했던 시대 속에서 자신을 불태웠던 한 남자와 그를 항상 마음으로 응원했던 한 여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수많은 민초들의 모습을 통해 조선 후기 격동의 시대를 만날 수

있었고,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우리 문학의 참맛을 맛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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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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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우리나라의 문학상이라는 문학상은 제다 휩쓴 작가인데다 평도 좋은 작가임에도

쉽사리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드디어 첫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으로 입양된 카밀라 포트만은 성인이 되어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 진남으로 온다.

그곳에서 친모가 다녔다는 진남여고를 방문하지만

교장은 재학생이 미혼모로 아이를 낳았을리 없다며 완강히 부인한다.

하지만 카밀라는 그곳에서 어머니 지은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녀가 남긴 문집 속에서 지은의 숨겨진 과거를 조금씩 확인하는데...

 

첨에 외국으로 입양되었던 한국인 여자가 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다는 내용을 접했을 때는

드라마나 소설, 영화 등 다른 작품들에서 보았던 그런 뻔한 내용이 전개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쩔 수 없이 자식을 버려야 했던 엄마와 자신을 버렸던 엄마를 만나

그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자식의 모습이 그려지는 신파성의 진부한 전개가 연상될 찰나에 이미

세상을 떠난 카밀라의 엄마 지은에게 숨겨진 비밀의 무게는 쉽게 상상했던 범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은의 얘기가 하나씩 풀려나올 때마다 조금씩 그녀가 겪었을 고통이 느껴졌는데

그녀를 알았던 사람들의 기억과 증언들은 결코 그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카밀라는 엄마가 남긴 흔적들을 살펴보면서 서서히 카밀라가 아닌 희재가 되어갔다.

그리고 결코 만나보지 못했던, 만날 수 없었던 1984년의 지은과 2012년의 희재는

그렇게 운명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 마치 파도가 바다의 일인 것처럼...

 

김연수 작가와의 첫만남은 사실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그냥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닌지라 문장 하나하나를 되새김질하는 노력이 필요했고

그럼에도 심해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작가의 말처럼 사람 사이에도 심연이 존재해 서로에게 건너갈 수가 없을 때가 많은데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런 심연을 건너 상대에게 가닿을 수 있는

그런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게 바로 이 소설을 읽는 묘미가 아닐까 싶다. 

카밀라가 희재가 되어 지은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자신을 찾아온 희재를 지은이 지켜볼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서로의 심연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 번 읽어선 놓친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작가가 심연 속으로 떨어뜨린 말들에

다시 귀를 귀울여보면 바다에서 파도가 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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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사랑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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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린 새엄마의 유언으로 오래 전 헤어졌던 새 엄마의 딸 유란을 찾아나선 희수는

유란이 살던 집에 머물면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 유란의 삶을 엿보게 되는데...

사랑에 '최소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사랑이란 게 모든 걸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그런 것이라면

'최대한'과 가까우면 가깝지 '최소한'은 결코 해당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 책에선 그 '최소한'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다.

'최소한을 지키기가 이렇게도 어려운데 왜 우리는 최대한의 욕망에 휘둘려

혼란에 빠지는 것일까'라는 문장이 바로 이 책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가 싶은데

가장 가깝고 서로 사랑해야 하는 가족 사이에도 최소한의 것을 지키지 못해

서로 상처를 주고 아파하며 등을 돌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희수와 새엄마, 그리고 유란의 관계도 또한 그러했다.

콩쥐 팥쥐를 비롯해 계모와 전처 자식 사이에는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처럼

그려지곤 하는데 보통은 계모가 전처 자식들을 구박하는 그런 내용이 전개된다.

하지만 이 책에선 반대로 계모의 딸인 유란을

전처의 자식들인 희수 남매가 버리고 오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자신들을 둥지에서 밀어낼지 모르는 뻐꾸기 새끼를 처치하는 거라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새엄마와 유란은 생이별을 하게 되고 유란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새엄마에 대한 마음의 빚때문에 희수는 유란의 흔적을 더듬으며

유란이 떠난 빈 자리에서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다 보니 최소한의 사랑도 하기가 힘들어졌다.

각종 정보통신기기의 발달로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많아졌고

물리적 거리는 거의 사라졌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있듯 오히려 아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긴 쉽지 않은 상황인데

그래서 그런지 고통과 상처를 받은 사람은 많아도 이를 치유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이 책의 희수도 최소한의 사랑을 지키지 못하다가 뒤늦게나마 유란을 찾아나서면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데 각박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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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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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이란 제목을 보는 순간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괴테의 파우스트 얘기가

생각났는데 이 책은 파우스트가 영혼을 판 것과는 다른 의미의,

상처받고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차원에서의 영혼 팔기를 얘기하고 있다.

제목과 동명인 작품과 '천사의 가루'라는 두 편의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터넷 포털 다음에서

인기리에 연재된 작품이라 그런지 인터넷 소설의 톡톡 튀는 감각이 느껴졌다.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에는 츠키라는 극단의 단원이 된 류의 얘기가 펼쳐지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현실과는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묘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츠키라는 극단 자체가 단순히 연극을 공연하는 것만 아니라 '특별한' 손님들에게 특별한 플레이를

제공하는 이색적인 극단이라 할 수 있었는데 특별한 플레이는 바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그들이 원하는 상황을 재연시켜 주는 것이었다.

상처받은 의뢰인들의 사연들은 하나같이 구구절절했는데 그동안 가슴 속에 쌓였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토해내면서 영혼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후련함을 맛보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 그런 플레이를 해주는 극단이 있다면 상처받은 영혼들로

우글대는 요즘 시대에 적절한 사업아이템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설정은 '또 다른 나'라는 인터넷 프로그램이었는데

나이, 신체 사이즈, 취향 등을 입력하고 결혼이나 여행 등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입력하면

그 이후에는 입력한 정보대로 만들어진 또 다른 내가 알아서 원하는 일들을 시아버 공간에서 하면서

'나의 일기'란 제목의 이메일을 보내주는 내용이었다. 기존에 유사한 설정의 게임 등이 있었지만

모두 사용자가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책 속의 '또 다른 나'는 오직 처음 설정만

하고 나면 완전히 독립한 존재가 되어 사이버 공간 속에서 살아나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현실의 내가 누리지 못하고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사이버 공간 속의 '또 다른 나'를 통해

대리만족을 경험하는 재밌는 설정이었다.

남의 상처와 슬픔을 치유해주는 역할을 하던 류는 정작 자신은 그들이 버리고 떠난 감정의 무게에

짓눌리는데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한다는 네코마마의 말에 위안을 얻게 된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도 힘든 일인데

누군가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준다면 그것만큼 큰 힘이 되는 게 없을 것 같다.

 

두 번째 작품인 '천사의 가루'에선 라라와 요요라는 커플이 만들어가는 사랑이야기인데

쿨한 내용에서 점차 가슴 아픈 내용으로 변해갔다.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사랑하기까지, 서로에게 길들여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렇게 정성들여 이룬 사랑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느낄 상실감과 공허감은 엄청날 것 같다. 요요가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라라는 매일 공항에 나가 다시는 오지 못하는 사람을 기다리곤 하는데

그런 그녀에게 요요가 운영하던 병원의 어리바리한 직원 히로시가 '천사의 가루'를 선물함으로써

그녀는 요요를 잃은 상실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나을 수 있다고 하는데

라라에 대한 히로시의 배려가 그녀를 고통의 늪에서 구해낸 것 같다.

 

그동안 나도 너무 영혼의 무게에 짓눌려서 살아온 것 같다. 자주 비워내는 시간을 가졌어야 함에도

고스란히 끌어안고 살다 보니 이젠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상태가 되고 말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영혼을 파는 게 필요함을 느꼈다.

살면서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고 싶은 순간들이 간혹 있었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었고

쓸데없이 스스로 내 상처를 덧나게 만들면서 깨끗이 털어내지 못한 채

비만인 영혼을 만들고 말았는데 영혼의 다이어트를 통해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그런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책의 내용들 자체는 좀 판타지같은 부분들이 있어서

몽환적인 느낌이 들곤 했지만 상처받은 영혼에겐 치유가 필요함을,

그것도 사랑의 치유가 필요함을 깨닫게 만들어줬는데 현실에선 나름의 자구책(?)을 시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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