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문단의 대표작가 중 한 명인 황석영의 신작인 이 책은

그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으로 조선 후기 이야기꾼인 전기수 이신통과

그의 아내 연옥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이야기꾼의 얘기를 허황한 민담조의 서사로 쓰려고 했지만

그 당시의 시대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기에 격동기의 조선 후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동학농민운동, 임오군란 등을 통해 무너진 신분사회 속에서

외세의 침입에는 무기력하면서 자신들의 잇속 차리기에만 급급한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이

대다수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지게 만든 참담한 상황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서자 출신의 의원 아버지 밑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라지만

공부를 해도 제대로 출사를 할 수 없었던 이신은

이복형의 종모법에 따른 노비소송 제기로 곤욕을 치른 후 역마살이 붙은 것처럼 세상을 떠돌게 된다.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연옥과 잠시 부부의 연을 맺지만 그의 방랑벽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고전소설을 낭독하는 전기수에 재능을 보인 그는 이신통이라 불리며 인기를 얻는 것도 잠시

천지도에 가입하면서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그런 그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연옥은 남편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그의 안부를 하나씩 전해 듣는데

보통 여자 같았으면 일찌감치 남편을 포기했겠지만 연옥은 늘 그의 그림자처럼

그가 머물고 떠난 곳을 찾아다니며 그의 소식을 접하는데 안쓰러움과 애틋함이 절로 묻어났다.

 

작가는 이신통이란 인물을 통해 조선후기의 굵직한 역사를 흥미롭게 재현해냈다.

특히 천지도로 이름만 바꾼 동학과 관련한 얘기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본주의 정신을 이땅에 널리 퍼뜨린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엄격한 신분사회 아래에서 핍박받던 대다수 민중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르쳐준 혁명적인 사상이라 할 수 있었는데,

당연히 지배세력의 처절한 탄압이 뒤따랐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사라져갔지만

그들의 희생을 통해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변화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이신통이 이야기꾼 노릇을 하지만 결국에는 연옥을 통해

그의 치열했던 삶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암울했던 시대 속에서 자신을 불태웠던 한 남자와 그를 항상 마음으로 응원했던 한 여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수많은 민초들의 모습을 통해 조선 후기 격동의 시대를 만날 수

있었고,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우리 문학의 참맛을 맛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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