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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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이란 제목을 보는 순간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괴테의 파우스트 얘기가

생각났는데 이 책은 파우스트가 영혼을 판 것과는 다른 의미의,

상처받고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차원에서의 영혼 팔기를 얘기하고 있다.

제목과 동명인 작품과 '천사의 가루'라는 두 편의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터넷 포털 다음에서

인기리에 연재된 작품이라 그런지 인터넷 소설의 톡톡 튀는 감각이 느껴졌다.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에는 츠키라는 극단의 단원이 된 류의 얘기가 펼쳐지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현실과는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묘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츠키라는 극단 자체가 단순히 연극을 공연하는 것만 아니라 '특별한' 손님들에게 특별한 플레이를

제공하는 이색적인 극단이라 할 수 있었는데 특별한 플레이는 바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그들이 원하는 상황을 재연시켜 주는 것이었다.

상처받은 의뢰인들의 사연들은 하나같이 구구절절했는데 그동안 가슴 속에 쌓였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토해내면서 영혼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후련함을 맛보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 그런 플레이를 해주는 극단이 있다면 상처받은 영혼들로

우글대는 요즘 시대에 적절한 사업아이템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설정은 '또 다른 나'라는 인터넷 프로그램이었는데

나이, 신체 사이즈, 취향 등을 입력하고 결혼이나 여행 등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입력하면

그 이후에는 입력한 정보대로 만들어진 또 다른 내가 알아서 원하는 일들을 시아버 공간에서 하면서

'나의 일기'란 제목의 이메일을 보내주는 내용이었다. 기존에 유사한 설정의 게임 등이 있었지만

모두 사용자가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책 속의 '또 다른 나'는 오직 처음 설정만

하고 나면 완전히 독립한 존재가 되어 사이버 공간 속에서 살아나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현실의 내가 누리지 못하고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사이버 공간 속의 '또 다른 나'를 통해

대리만족을 경험하는 재밌는 설정이었다.

남의 상처와 슬픔을 치유해주는 역할을 하던 류는 정작 자신은 그들이 버리고 떠난 감정의 무게에

짓눌리는데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한다는 네코마마의 말에 위안을 얻게 된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도 힘든 일인데

누군가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준다면 그것만큼 큰 힘이 되는 게 없을 것 같다.

 

두 번째 작품인 '천사의 가루'에선 라라와 요요라는 커플이 만들어가는 사랑이야기인데

쿨한 내용에서 점차 가슴 아픈 내용으로 변해갔다.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사랑하기까지, 서로에게 길들여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렇게 정성들여 이룬 사랑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느낄 상실감과 공허감은 엄청날 것 같다. 요요가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라라는 매일 공항에 나가 다시는 오지 못하는 사람을 기다리곤 하는데

그런 그녀에게 요요가 운영하던 병원의 어리바리한 직원 히로시가 '천사의 가루'를 선물함으로써

그녀는 요요를 잃은 상실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나을 수 있다고 하는데

라라에 대한 히로시의 배려가 그녀를 고통의 늪에서 구해낸 것 같다.

 

그동안 나도 너무 영혼의 무게에 짓눌려서 살아온 것 같다. 자주 비워내는 시간을 가졌어야 함에도

고스란히 끌어안고 살다 보니 이젠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상태가 되고 말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영혼을 파는 게 필요함을 느꼈다.

살면서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고 싶은 순간들이 간혹 있었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었고

쓸데없이 스스로 내 상처를 덧나게 만들면서 깨끗이 털어내지 못한 채

비만인 영혼을 만들고 말았는데 영혼의 다이어트를 통해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그런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책의 내용들 자체는 좀 판타지같은 부분들이 있어서

몽환적인 느낌이 들곤 했지만 상처받은 영혼에겐 치유가 필요함을,

그것도 사랑의 치유가 필요함을 깨닫게 만들어줬는데 현실에선 나름의 자구책(?)을 시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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