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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에서 이제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 한 신경숙 작가의 책 중 읽은 책은
그녀에게 국민 작가라는 명성을 안겨준 '엄마를 부탁해'와 초기 단편집인 '겨울 우화'가 전부이지만
왠지 그녀의 작품은 낯설지가 않은 느낌이다. 이 책은 제목 자체가 주는 아련한 느낌에 끌렸는데
사놓고 오랫동안 고히 책장에 모셔져 있다가 이제야 내 손에 잡히게 되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지는 않지만 왠지 전화벨이 울리는 듯한 환청이 들리는,
아니 환청이라도 듣고 싶은 마음이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간단히 말해 네 명의 친구들의 얘기다. 윤, 명서, 단, 미루.
아마 80년 대학생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얘기인지라 내가 직접 경험하진 않았지만
여러 영화, 소설, 드라마 등을 통해 수없이 간접경험한 바로 그 시대의 얘기였다.
윤의 애기와 명서의 갈색노트가 번갈아 등장하면서 이들의 파란만장한 청춘이 그려지는데
아무래도 내가 직접 경함한 시절이 아닌지라 공감도가 조금 떨어지긴 했다.
시대마다 청춘들의 고민이 똑같지는 않기에 그 시대를 같이 살지 않았으면
그들의 고민을 100%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독재정권 아래 민주화 운동과 시위로 점철된 대학가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라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다.
지난 세대 사람들이 취업 문제로 고통받는 요즘 청춘들을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세대마다 그 시절의 화두와 환경에 길들어져 있기에 공감도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큰 틀은 다르지 않기에 이들 네 사람이 과연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궁금했다.
윤과 단, 명서와 미루 이렇게 각각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네 명은
어느 순간 인연이 닿아 절친한 친구들이 된다.
하지만 이들에겐 각자 커다란 상처가 있기에 완전히 가까워지지는 못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결국 단과 미루가 죽으면서 남겨진 윤과 명서는 더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군대 의문사나 민주화운동자의 행방불명, 분신 자살 등 현대사의 아픔이 이들에게 고스란히 남아
윤과 명서는 서로를 향한 마음이 커질수록 아픈 상처도 더욱 도드라지는 힘든 상황에서 괴로워한다.
그렇게 조금씩 멀어졌던 그들을 팔 년 만에 다시 만나게 해준 건
바로 그들의 인연을 맺어준 윤교수가 위중하다는 소식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김난도 교수의 책도 있지만 청춘의 속성은 바로 아픔이지 않나 싶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인간으로 첫 발을 내디디지만 모든 게 서툴기에
세상과의 만남은 마냥 어렵고 그런 와중에 생기는 상처는 어쩌면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 속의 네 명의 청춘들은 세상에 발을 제대로 내딛기 전에
이미 큰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고, 무정한 세상을 마주하기엔 너무 어렸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 네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타깝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청춘의 방황과 상처는 성장통이라지만 삶을 바꿔놓을 정도의 큰 고통을 이겨내면서
꿋꿋이 버텨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윤교수가 했던 크리스토프 얘기를 다시 학생들에게 늘어놓는 윤의 모습은 청춘들에게 필요한 게
과거나 오늘이나 다를 게 없음을 잘 보여줬는데, 윤이 지금 이십대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한 "함께 있을 때면 매순간 오늘을 잊지 말자"고 말하는 싶은 사람을 갖고, "언제든 내가 그쪽으로
갈게"하는 사람이 되라는 그녀의 말이 인상적이면서도 뭔가 허전한 울림을 주었다.
아마 그런 사람을 갖지도 되지도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신경숙의 책을 읽으면 항상 마음 속 어딘가가 저릿하게 아파온다.
이 책도 네 명의 청춘들을 보면서 우리 현대사의 아픔과
그 시절을 겪어왔던 청춘들의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런 상처를 서로 보듬어줄 수 있는 게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사랑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어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