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연수 작가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우리나라의 문학상이라는 문학상은 제다 휩쓴 작가인데다 평도 좋은 작가임에도

쉽사리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드디어 첫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으로 입양된 카밀라 포트만은 성인이 되어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 진남으로 온다.

그곳에서 친모가 다녔다는 진남여고를 방문하지만

교장은 재학생이 미혼모로 아이를 낳았을리 없다며 완강히 부인한다.

하지만 카밀라는 그곳에서 어머니 지은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녀가 남긴 문집 속에서 지은의 숨겨진 과거를 조금씩 확인하는데...

 

첨에 외국으로 입양되었던 한국인 여자가 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다는 내용을 접했을 때는

드라마나 소설, 영화 등 다른 작품들에서 보았던 그런 뻔한 내용이 전개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쩔 수 없이 자식을 버려야 했던 엄마와 자신을 버렸던 엄마를 만나

그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자식의 모습이 그려지는 신파성의 진부한 전개가 연상될 찰나에 이미

세상을 떠난 카밀라의 엄마 지은에게 숨겨진 비밀의 무게는 쉽게 상상했던 범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은의 얘기가 하나씩 풀려나올 때마다 조금씩 그녀가 겪었을 고통이 느껴졌는데

그녀를 알았던 사람들의 기억과 증언들은 결코 그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카밀라는 엄마가 남긴 흔적들을 살펴보면서 서서히 카밀라가 아닌 희재가 되어갔다.

그리고 결코 만나보지 못했던, 만날 수 없었던 1984년의 지은과 2012년의 희재는

그렇게 운명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 마치 파도가 바다의 일인 것처럼...

 

김연수 작가와의 첫만남은 사실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그냥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닌지라 문장 하나하나를 되새김질하는 노력이 필요했고

그럼에도 심해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작가의 말처럼 사람 사이에도 심연이 존재해 서로에게 건너갈 수가 없을 때가 많은데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런 심연을 건너 상대에게 가닿을 수 있는

그런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게 바로 이 소설을 읽는 묘미가 아닐까 싶다. 

카밀라가 희재가 되어 지은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자신을 찾아온 희재를 지은이 지켜볼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서로의 심연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 번 읽어선 놓친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작가가 심연 속으로 떨어뜨린 말들에

다시 귀를 귀울여보면 바다에서 파도가 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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