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9.5.


《어머니 여신의 천》

 지그디쉬 치타라 지음/이상희 옮김, 보림, 2017.4.27.



어제는 자전거로, 오늘은 택시로 바다에 간다. 어제오늘 모두 썰물인 바다를 누린다. 밀물하고 다른 썰물은 우리를 먼바다로 끌어당기는 듯하지만, 밀고 당기고를 늘 되풀이한다. 물살에 몸을 맡기면 이리저리 물처럼 흐르면서 아늑하다. 바닷물에 잠겨서 놀다 보면 왜 바다를 어머니로 빗대어 이야기하는지 느낄 수 있다. 모래밭에 서서 햇볕을 쬘 적에는 해님이 아버지 같구나 하고 느낀다. 몸을 감싼 옷을 문득 만져 본다. 몸을 어루만지는 옷이란, 천이란, 어머니 손길일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 아버지 손길은 또 어디에 있으려나? 《어머니 여신의 천》을 열흘쯤 앞서 보았다. 한국에서는 꼭 200권만 찍었다고 한다. 종이가 아닌 천으로 빚은 책이란다. 천을 알 수 있도록 천으로 빚은 책. 그러네, 천을 알려면 천을 만져야겠지. 천을 짜야겠지. 천으로 거듭난 풀줄기를 어루만져야겠지. 천으로 거듭난 풀이 자란 흙을 보살펴야겠지. 천으로 거듭난 풀을 키운 바람하고 해하고 빗물을 느껴야겠지. 온누리 뭇숨결은 두 어버이 손길을 고이 받아서 태어나고 자란다. 풀도 사람도, 새도 벌레도, 따사롭고 넉넉히 품는 손길을 누리면서 꿈을 키운다. 꿈을 키우기에 삶이고, 꿈에서 사랑을 피워올리기에 살림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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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9.4.


《그림책이면 충분하다》

 김영미, 양철북 펴냄, 2018.3.20.



아이들하고 그림책으로 만난다. 아이들하고 노래로 만난다. 아이들하고 이야기로 만난다. 아이들하고 놀이로 만난다. 무엇으로든 즐겁게 만나고, 어디에서나 새롭게 만난다. 바다로 마실을 가는 길에 《그림책이면 충분하다》를 챙긴다. 셋이서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바다로 가는 길에 등바람이니, 집으로 오는 길에는 맞바람이 되겠네. 휴가철이 끝난 바다는 모래밭에 쓰레기가 가득하다. 숲이나 바다로 나들이를 다니는 분들 가운데에는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분도 많겠지만,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이도 아직 많다. 아이랑 나들이를 다니면서 여기저기에 쓰레기를 집어던지는 어른이라면,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는 셈일까.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어버이를 곁에 둔 아이는 어버이를 어떻게 느낄까. 아이는 어버이하고 같은 길을 갈까, 다른 길을 갈까. 한참 바닷물에 몸을 담가서 놀다가 쉰다. 아이들은 물놀이에 이어 모래놀이를 한다. 손바닥에 물이 다 다른 뒤에 책 하나를 다 읽는다. 바람도 바다도 상큼하다. 바다라고 하는 책을, 모래와 하늘이라고 하는 책을, 여기에 바람이라고 하는 책을 두 눈에 마음에 두 손에 담는다. 가만 보면 아이한테는 종이책이 없어도 된다. 아이다움을 잃은 어른한테야말로 그림책이 있어야겠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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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감이라는 것 - 자연을 비추는 거울
조영권 지음 / 자연과생태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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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책시렁 16


《도감이라는 것》

 조영권

 자연과생태

 2018.7.16.



생물 도감은 ‘생물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런데 도감을 하나둘 펴내고,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거듭하면서 도감이 지닌 뜻이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도감을 짓고 엮는 일은 자연을 비추고, 사회를 비추고, 자신을 비추어 내가 선 자리와 모습까지 살피는 일이었습니다. (5쪽)


도감에서는 생물 특징과 생태가 잘 드러난 사진이 중요합니다. 사진가 시각으로 영상미가 뛰어난 생물 사진을 담는다면 그것은 도감이 아니라 화보집이겠지요. (108쪽)


도감 원고를 살피다 보면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영어식, 일본식 문장이 매우 많다는 점입니다. 국내 자료가 적었던 시절에 주로 영어권과 일본에서 나온 도감이나 이를 번역한 교재로 공부했고, 이런 자료를 참고해 글 쓰는 일이 많았기 때문인 듯합니다. (145쪽)


용어도 우리말로 바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면 좋을 텐데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려면 먼저 우리말을 잘 알아야 하는데 생물 연구자가 그런 지식까지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생물 분야와 국어 분야가 협업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147쪽)



  도감이라고 하는 책은 1999년부터 눈을 떴습니다. 1999년 이해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들어갔는데, 제가 일한 출판사에서는 잔붓그림으로 도감을 여러 권 펴냈어요. 잔붓그림 도감을 짓기까지 곁에 둔 여러 나라 도감을 살피면서, 또 이 출판사에 새로운 도감을 여러 헌책집을 뒤져서 찾아내어 갖다 주면서, 도감이란 어떤 책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사전은 낱말을 오직 말로 밝혀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도감은 오직 그림이나 사진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로구나 하고 느꼈어요. 사전은 말을 국어학이라는 얼개인 학문으로 파고들지 않습니다. 도감은 생태나 자연을 생태학이나 환경학이나 생물학이라는 얼개인 학문으로 파고들지 않아요. 사전이나 도감은 말과 뭇숨결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 땅이 어떤 살림인가를 쉽고 부드러우면서 알뜰히 알아채거나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길잡이책이라고 느껴요.


  《도감이라는 것》(조영권, 자연과생태, 2018)은 생태도감을 꾸준히 펴내어 우리 삶을 더 깊고 너르며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도록 북돋우는 출판사 책지기가 손수 쓴 책입니다. 책꽂이에 모셔 두는 도감이 아닌, 책상맡에 놓고서 틈틈이 들추어 이웃(뭇푸나무하고 뭇짐승하고 뭇새하고 뭇벌레 모두)을 만나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도감을 어떻게 엮고 펴내며, 어떻게 읽고 즐길 만한가를 하나하나 짚습니다.


  도감 하나를 곁에 두기에 우리 삶이 얼마나 넉넉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지요. 도감 하나를 다 읽어낸 뒤에 마음이 얼마나 살찌고 눈빛이 얼마나 밝게 거듭나는가 하는 대목을 들려줍니다. 도감 하나를 짓는 땀방울이란 새벽에 풀잎에 내리는 이슬처럼 해맑은 손길입니다. 도감 하나를 알아보고 장만해서 품에 안고 살살 어루만지는 우리는, 이 지구라는 별이 어떻게 자라나면서 서로 사랑으로 어우러질 만한가를 배웁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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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캥거루 문학의전당 시인선 227
박숙경 지음 / 문학의전당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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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8


《날아라 캥거루》

 박숙경

 문학의전당

 2016.6.8.



  어릴 적에는 사다리를 놓아 달까지 가고 다른 별까지 갈 수 있으리라 여겼어요. 그저 확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요새는 달리 생각합니다. 눈을 감고서 가만히 마음으로 다녀오면 된다고 느껴요. 굳이 우주선을 뚝딱 지어서 다녀오기보다는, 마음을 다스려서 훌쩍 뛰어넘거나 가로지르면 되리라 여깁니다. 《날아라 캥거루》를 읽습니다. 별을 만지고 싶어 옥상 딸린 집을 찾으려 했다던 이야기를 가만히 읽고, 별을 보는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던 이야기를 곰곰이 읽습니다. 옥상이나 망원경이란 사다리하고 비슷하겠지요. 이런 연장이나 저런 연모가 있어야 비로소 다른 별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겠지요. 사람 사이를 헤아려 봅니다. 너랑 나는 사이에 돈이 있어야 사귈 수 있지 않겠지요? 같은 대학교를 마쳤거나 같은 고장에서 태어났다는 끈이 있어야 만날 수 있지 않겠지요?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마음이 흐를 적에 비로소 사귀거나 만나겠지요? 별마실도 이와 같아요. 우리는 뭔가 손에 잡히는 연장·연모가 아닌, 손을 고이 펴서 마음을 여는 숨결로 하루를 짓고 살림을 가꾸며 이야기를 노래합니다. ㅅㄴㄹ



별을 만져보고 싶었다 // 먼저 옥상 딸린 집을 구해야 했고 / 옥상에서 별까지의 거리를 잴 수 있는 줄자가 필요했고 / 별을 당길 수 있는 천체망원경이 필요했다 (별을 만지는 방법/76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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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9.3.


《마르틴 루터》

 도쿠젠 요시카즈 글/김진희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펴냄, 2018.8.15.



배움마실을 마치고 돌아온 곁님을 맞이한다. 배움마실을 다녀온 곁님은 척 보아도 한결 단단하고 부드러운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나도 배움마실을 마칠 적에 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숨결을 둘레에 퍼뜨릴 수 있는가 하고 돌아본다. 글 한 꼭지를 마무리해서 어디엔가 보내거나 띄울 적에, 책 한 권을 마무리지어서 새로 선보일 적에, 사전 하나를 드디어 끝내어 이웃님한테 알릴 적에, 눈빛도 몸빛도 환하게 피어나서 보금자리를 넉넉하게 밝히는 숨결이 되는가 하고 되새긴다. ‘이와나미 30’이란 숫자가 붙은 《마르틴 루터》를 읽는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길을 돌아본다. 루터가 어떤 삶을 걸은 사람이기에 이 책을 오늘 이곳에서 읽는가 하고 생각한다. 첫 쪽부터 끝 쪽까지 퍽 빠르게 읽어낸다. 이이가 오백 해 앞서 독일에서 살던 사람인 줄 잊고, 마치 눈앞에서 루터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말을 했는가를 그림처럼 떠올리면서 읽었다. ‘대단하다’라는 말로는 모자란 이야기가 있네. 흉이 잡힐 만한 발자국도 있지만, 말이 말다울 수 있도록 새롭게 깨운 빛이 참으로 크네. 서양에서 루터를 셰익스피어 곁에 둘 만하겠다고도 느낀다. 권력자 손아귀에 갇혔던 말을 누구나 손에 쥐어 날개를 달아 훨훨 띄울 수 있도록 풀어낸 몸짓이 곱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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