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광야의 것이다 창비시선 182
백무산 지음 / 창비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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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6


《길은 광야의 것이다》

 백무산

 창작과비평사

 1999.1.15.



  1900년대가 저물며 2000년이 찾아온 지 열여덟 해가 지났습니다. 2000년대도 한창 달리다가 머지않아 2100년을 맞겠지요. 하루하루 한 해 한 해 가만히 흐릅니다. 우리가 하루에 얽매이든 말든 하루는 지나가고, 해나 철이 바뀌는 줄 느끼거나 못 느끼거나 해도 흘러갑니다. 《길은 광야의 것이다》는 1999년에서 2000년으로 접어드는 즈음 이 삶과 삶터와 사람을 바라본 이야기를 시로 갈무리합니다. 달력에 적힌 날만 달라지는 삶인지, 우리 스스로 하루를 새롭게 지으면서 거듭나는 삶인지, 우두머리나 벼슬아치가 주물럭거리는 삶인지, 사람들 스스로 싱그러이 노래하면서 깨어나는 삶인지, 곰곰이 돌아보면서 새로운 나날을 맞이하기를 비는 꿈을 적습니다. 풀씨한테 1999년이나 2000년은 무슨 뜻이 있을까요? 꽃송이한테 2000년대나 2100년대는 어떤 값이 있을까요? 무엇을 바라보기에 하루를 웃음으로 갈무리할 만하고, 무엇을 하기에 오늘을 노래로 지을 만할까 하고 헤아립니다. 짜증을 내기도, 성을 내기도, 시샘을 하기도, 투정을 하기도 쉽습니다. 그리고 기지개를 켜기도, 씩씩하게 걷기도, 당차게 주먹 쥐고 호미 쥐어 밭자락을 가꾸기도 쉽습니다. ㅅㄴㄹ



이렇게 작은 풀씨 하나가 / 내 손에 들려 있다 / 이 쬐그만 풀씨는 어디서 왔나 (풀씨 하나/8쪽)


나 그때 넘어져서 보았다 / 온몸에 멍이 들고 상처를 입고 / 쓰러져 얼굴을 처박았던 곳 / 그 코앞에 핀 쬐그만 / 냉이꽃 한송이를 (그 쬐그만 것이/14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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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보이 - 고형렬 장시 최측의농간 시집선 5
고형렬 지음 / 최측의농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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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5


《리틀보이》

 고형렬

 최측의농간

 2018.7.25.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개미가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나르기에, 개미가 애써 집을 지었기에, 개미가 풀벌레 주검이나 밥찌꺼기를 낱낱이 갉아서 먹어치우기에, 이곳을 고이 지키거나 건사할 수 있을까요? 개미가 집을 지어 사는 터전이기에 섣불리 삽차를 안 밀어붙일 수 있을까요? 《리틀보이》는 일본에 떨어진 핵폭탄을 둘러싸고서, 일본하고 한국(조선)하고 미국하고 중국 사이에 불던 바람을 이야기합니다. 이른바 한국현대사를 시로 풀어내려 합니다. 한국현대사 가운데에도 개화기·일제강점기·해방 언저리에 이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를 살아야 했는가를 싯말로 차곡차곡 짚으려 합니다. 하늘 높이 뜬 폭격기에서 본다면 사람은 아예 안 보입니다. 개미로조차 안 보여요. 총칼을 앞세운 군홧발한테 옆나라는 이웃나라 아닌 식민지일 뿐입니다. 스스로 임금님이 되고 양반이 되는 권력 눈에는 그들 밑에 밟힌 사람이 백성인지 백정인지 안 보입니다. 오늘날에도 시민이든 국민이든 그들 권력 자리에서는 하나도 안 보일 수 있겠지요. ‘작은이’조차 아닌, 개미조차 아닌. 그러나 개미한테도 삶이 웃음눈물이 노래가 있습니다. ㅅㄴㄹ



폭격은 부역자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 미군들에게는 그들도 개미떼와 같이 보이는 / 일본놈들과 똑같이 보였다. (92쪽)


22억 달러나 들여 만드는 무기가 /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 되고 말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들은 이 전쟁 속에 지난 50년간의 / 미국 전 예산보다도 더 많은 어마어마한 돈을 / 몇 년에 걸쳐 투자하고 있었던 것이다. (177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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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8.30.


《“다 똑같디요”》

 임종진 사진, 류가헌 펴냄, 2018.8.1.



사진책 《“다 똑같디요”》는 열 몇 해 앞서 북녘을 찍은 사진을 모은다. 열 몇 해 앞서 여러 신문·잡지에 이 사진이 실렸는데, 책으로는 이제 태어난다. 북녘사람이 들려준 말마디처럼 “다 똑같디요”를 보여주는 사진이요 책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는 다 같으면서 다 다르다. ‘똑같지요’ 아닌 ‘똑같디요’라 말해도 뜻은 같으며 마음이 같을 테지. 그리고 뜻하고 마음이 같아도 살림터가 다르기에 말씨가 다를 테며 생김새나 살림새도 다르기 마련일 테고.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은 눈빛으로 서로 바라본다. 한켠으로 기울어진 정치 무리가 북녘에 있듯이, 남녘에도 한켠으로 기울어진 정치 무리가 있다. 배고플 뿐 아니라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 젊음을 버려야 하는 젊은이가 북녘에 있듯이, 남녘에도 배고픈 이웃이 있으며 전쟁무기를 손에 쥐며 싸움질을 해야 하는 젊은이가 있다. 평화는 어느 한켠에만 이바지하지 않는다. 모두한테 이바지한다. 다 똑같은 줄 알아채고 알아보며 알아내려는 길을 갈 적에 비로소 평화가 되며, 이 평화에서 민주나 평등 같은 싹이 튼다. 사이좋게 지내려는 길을 생각한다면 사진도 삶도 글도 모두 아름답게 거듭난다. 밟고 올라서려는 길을 헤아린다면 모든 자리에서 다툼질이 불거진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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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월 1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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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76


《인월 1》

 김혜린

 대원씨아이

 2017.6.30.



  빗물이 돌고 돕니다. 이곳에서 내린 비는 흙으로 스며 땅밑에서 큰 줄기로 모여서 흐르다가 샘으로 솟고 냇물이 되어 다시 땅을 적시더니 어느새 새롭게 비가 되어 내립니다. 말이 돌고 돕니다. 우리 입에서 처음 터진 말은 뭇사람을 거치고 또 거쳐서 다시 우리 귀로 돌아옵니다. 삶이 돌고 돕니다. 사랑으로 지은 삶도, 미움으로 지은 삶도, 끝없이 돌고 돌면서 우리를 감쌉니다. 김혜린 님이 오랜만에 빚는 《인월》 첫걸음은 돌고 돌되 아프게 돌고 도는 삶을 짚으려 합니다. 가슴에 뜨겁게 솟구치려는 아픈 불길을 잠재우려는, 이러면서도 터뜨리고 싶은, 뜨겁게 아픈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또 헤어지는 갈림길을 짚으려 해요. 아픈 불길은 터뜨리고 자꾸 터뜨리면 잠재울 만할까요? 또는 누그러질 만할까요? 괴로운 불길은 일으키고 거듭 일으키면 비로소 사그라들 만할까요? 먼발치에 있는 다른 사람을 보며 불길을 터뜨리려 하면 아무리 불길을 터뜨려도 시원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고요히, 차분히, 새롭게 사랑으로 태어날 수 있는 씨앗이 되도록 다스리지 않는다면, 미움도 싸움도 종살이도 끝나지 않고 맴돌지 싶습니다. ㅅㄴㄹ



“형, 그 녀석 무사히 지네 패거리 찾아갔을까? 근데 왜구들도 먹을 게 없어서 맨날 쳐들어오나? 그 녀석 꼴 보니까 털어간 거 다 어디다 어쨌는지 모르겠던데.” “도둑놈들이 그렇지 뭐. 그리고 그놈은 졸병이잖아. 거기도 대장이 있을 테니까.” (26쪽)


‘나도, 시주공물이었구나. 그래, 노비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니까.’ (78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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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그대에게 6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김동욱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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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75


《불멸의 그대에게 6》

 오이마 요시코키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8.7.31.



  모두 넉넉히 주어진 곳에서 태어났기에 무엇이든 넉넉히 할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넉넉히’란 무엇일까요? 이른바 좋은 쪽으로 있을 때에만 넉넉할까요, 나쁜 쪽으로 있기에 안 넉넉할까요? 좋다고 하든 나쁘다고 하든 우리한테 밥이 됩니다. 좋다면 좋은 대로, 나쁘다면 나쁜 대로 마음을 살찌우는 길이 되어요. 다만 이를 깨닫기까지 오래 걸릴 수 있어요. 우리한테 나쁜 것이 잔뜩 있기에 너무 어렵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불멸의 그대에게》 여섯걸음은 ‘어버이한테서 받은 삶’을 아이로서 어떻게 받아들여 새롭게 가꾸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우리는 어버이가 물려주는 여러 가지가 나쁘다며 싫어할 수 있습니다. 어버이가 무엇을 물려주건 말건, 또 무엇을 보여주거나 들려주건 말건 이를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마음에 품는 꿈대로 길을 나설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 삶이에요. 날이 맑든 궂든 가야 할 길을 갈 뿐입니다. 아이가 아이로서 새롭고 씩씩하게 한 걸음씩 뗀다면, 모든 삶을 고스란히 밥으로 삼는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그야말로 불구덩이 같은 곳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기운내면서 웃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ㅅㄴㄹ



‘나는 안심했다. 그 녀석도 용서할 수 없는 게 있구나 하고. 그건 어쩐지 인간 같았다. 그리고 나 같았다. 내 미래에 그 녀석도 있었으면 좋겠다.’ (38∼39쪽)


“우리 부모는 악마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거랑 상관없이 우린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할 뿐이야. 안 그래?” (58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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