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베개

 


  나무베개를 베면 참 좋다. 나한테 맞는 나무베개는 어느 손가락 길이라 하는데, 아무튼 나무베개를 베면 나무결과 나무내음 솔솔 내 몸으로 스며든다. 마땅한 노릇인데, 여관에 들어 여관 베개를 베면 여관내음이 배어든다.


  아이들 재우며 내 팔로 베개를 삼으면, 시나브로 내 살결 기운이 아이들한테 스며든다. 책을 베고 누워 본다. 책에 깃든 얼과 꿈이 가만히 내 몸으로 스며들며 콩닥콩닥 뛴다. (4345.9.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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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이 지난 뒤 (도서관일기 2012.9.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저녁에 윗창을 열고 집으로 돌아갔더니, 태풍이 지나가며 윗창으로 나뭇잎이 잔뜩 들어왔다. 바람이 되게 몰아쳤을 텐데, 학교 유리창은 하나도 안 깨졌다. 그러고 보면, 여기 흥양초등학교가 문을 닫은 지 열 몇 해인데, 일부러 깨뜨린 유리 말고는 따로 깨진 데는 없었다. 태풍이 으레 지나가는 마을에 있던 학교였으니 건물이나 유리창은 튼튼하겠지. 바닥에 널브러진 나뭇잎은 다음에 와서 쓸기로 한다. 곰팡이가 잔뜩 피고 만 사진틀은 뒤쪽이 해를 보도록 유리창에 기대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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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도서관으로 (도서관일기 2012.8.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서재도서관으로 쓰는 학교 터를 모두 빌려서 쓰지는 못하니 풀베기를 마음껏 하지 못한다. 학교 운동장을 쓰는 분들은 나무 장사를 하려고 나무를 심기는 했으나 따로 돌보지는 않아 풀이 우거진다. 어느 모로 보면, 풀이 우거져도 풀약 하나 안 치기에 이곳 흙은 마을 흙보다 한결 좋을는지 모른다. 이곳에서 자라는 풀은 즐겁게 뜯어서 먹을 만한지 모른다. 아무튼, 풀이 제법 우거지기에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를 태우고 들어온다. 풀이 우거지니 모기도 많다. 피어나는 곰팡이·넘치는 모기·천장 세 군데에서 새는 비·아직 쓸 수 없는 전기와 물·따로 없는 뒷간, 이 다섯 가지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좋을까.


  숙제는 숙제라 하더라도 도서관에 아이들하고 오면, 아이들은 넓은 골마루를 저희 마음대로 달리고 구르며 논다. 소리를 지르든 노래를 부르든 다 좋다. 집에서도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니, 도서관에서도 똑같이 논다. 다만, 집보다 도서관은 한결 넓고 기니까 더 구슬땀을 흘리며 논다. 책을 오래오래 건사하자면, 값싼 책꽂이는 써서는 안 되고, 좋은 나무를 사서 손수 짜야 한다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값싸게 파는 책꽂이는 뒷판으로 대는 베니아판부터 곰팡이가 올라온다. 제대로 맞추는 나무는 곰팡이가 함부로 올라오지 못한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가 다니던 헌책방을 돌아보면, 어느 헌책방이고 원목을 사서 당신 손수 책꽂이를 짜셨다. 헌책방 책꽂이는 더없이 튼튼하며 아름답다고 느낀다. 우리 서재도서관이 앞으로 나아갈 길도 이러해야겠지. 좋은 나무를 마련해 손수 자르고 박아 마련하는 책꽂이에 책을 꽂아야겠지.

 

  우리가 도서관으로 쓰는 이곳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이웃마을 할아버지가 참깨를 줄 맞추어 심으셨다. 참깨꽃이 흐드러진다. 가을에는 참깨를 거두고 보리를 심으시던데, 올해에도 보리를 심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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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는 책

 


  큰아이가 그림책을 펼친다. 작은아이가 볼볼 기어온다. 누나가 무얼 들여다보나 저도 들여다본다. 누나가 이쪽을 보니 동생도 이쪽을 보고, 누나가 고개를 돌려 저쪽을 살피니 동생도 고개를 돌려 저쪽을 살핀다. 두 아이는 서로서로 하고 싶다. 한 아이가 사진기를 만지면 다른 아이도 사진기를 만지고 싶다. 한 아이가 무얼 먹으면 다른 아이도 무얼 먹고 싶다. 한 아이가 연필을 쥐고 무언가 그리거나 끄적이면 다른 아이도 연필을 쥐고 무언가 그리거나 끄적이고 싶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바라보며 배운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무엇을 하는가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배운다. 어버이가 된 이들 또한 어릴 적 이녁 어버이한테서 모든 삶을 배웠겠지. 어버이가 오늘 읽는 책이 아이들이 앞으로 읽을 책이 된다. 어버이가 오늘 하는 일이 아이들이 앞으로 누릴 삶이 된다. 어버이가 살아가는 보금자리가 곧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보금자리가 된다. 아이들이 사랑으로 크며 꿈으로 자라도록 이끌고 싶다면, 어른들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랑으로 살고 꿈으로 일하는 넋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4345.9.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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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읽는 책

 


  작은아이는 큰아이나 두 어버이 책읽는 모습을 으레 바라보기에, 가끔 저도 책을 읽곤 한다. 큰아이가 천천히 자라며 보여주었듯, 작은아이도 어떤 글이나 그림이나 줄거리를 읽지는 않는다. 그저 책을 손에 쥐거나 무릎에 올려놓으며 즐겁게 논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는 이야기를 읽어 줄 수도 있으며, 아이들은 저희들 혼자서 책을 무릎에 올려놓으며 놀 수 있다. 천천히 느끼고 찬찬히 생각하며 하나하나 맞아들인다. 개미를 바라보고, 거미를 바라본다. 제비와 풀벌레를 보고, 논과 밭을 본다. 나무와 멧자락을 보고, 구름과 달을 본다. 아이들은 언제나 책을 읽는다. 우르릉 쾅쾅 하고 울리는 천둥을 귀로 읽는다. 번쩍 하고 빛나는 벼락을 눈으로 읽는다. 서늘한 밤바람을 몸으로 읽는다. 몸도 마음도 책과 삶과 꿈을 읽는다. (4345.9.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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