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서 읽는 책


  하루 내내 놀기만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루 내내 책만 읽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루 내내 놀기만 하며 지낸 어린 날을 떠올리면, 참말 놀기만 하면서 지낼 수 있다. 하루 내내 책만 읽던 때가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예 책만 읽고는 지내지 못한다고 느낀다.


  하루 내내 집일만 붙잡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루 내내 빨래만 하거나 밥만 짓거나 비질과 걸레질만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집일로 하루를 보내는 때가 꽤 있지만, 이렇게 보낼 수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만 보낼 때에 내 삶은 어떤 그림이 될는지 잘 모르겠다.


  실컷 놀던 어린 날을 떠올린다. 그저 놀기만 하면 곧잘 지친다. 몸을 쉬어야 한다. 풀밭이든 모래밭이든 벌렁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낮잠을 자든 딴짓을 하든 ‘놀이틈’을 만든다. 그러고 보면 신나게 놀기에 홀가분한 몸이 되어 책을 읽거나 어떤 공부를 할 수 있구나 싶다. 마음껏 뛰놀며 가벼운 몸이 되기에 집일이든 흙일이든 기쁘게 거들거나 물려받을 수 있구나 싶다.


  놀이하는 힘이란 스스로 살아내게 하는 힘이리라 생각한다. 천천히 놀고 잽싸게 놀며 바지런히 놀고 느긋하게 논다. 천천히 살고 잽싸게 살며 바지런히 살다가는 느긋하게 산다.


  놀면서 읽는 책이리라. 살면서 읽는 책이리라. 놀면서 가까이하는 책이리라. 살면서 가까이하는 책이리라. 책만 섣불리 손에 쥘 수 없다. 책만 딥다 파고들 수 없다. 노는 마음에 책이 깃들고, 놀며 즐거운 넋에 책이 스며든다. (4345.10.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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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책을 읽고 쓸 수 있는가

 


  교과서를 덮고 책을 처음으로 읽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92년부터 두 가지 다짐을 했다. 이제부터 내가 읽을 수 있는 모든 책을 읽어 보기로 하자는 다짐 하나. 여기에, 이제부터 내가 읽을 수 있는 모든 책을 읽고서, 내가 읽은 책마다 한 줄로든 백 줄로든 느낌글을 써 보자는 다짐 둘.


  나는 지구별 모든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어떤 통계나 숫자로 따진다면 아마 읽을 수 없다고 하리라. 그러나 내 마음을 살피고 내 뜻을 헤아린다면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모든 책을 다 읽는다’는 뜻을 돌아보면, 내가 온 땀과 품과 겨를을 들어 ‘종이에 찍혀 태어난 책’을 다 읽는 바로 이때에 새로운 책이 태어난다. 내가 잠든 사이, 또는 내가 숨을 거둔 뒤, 수많은 책이 새로 쏟아진다.


  어떤 사람한테든 뜻과 넋이 있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느낀다. 스스로 울타리를 세우고 틀을 짓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느낀다. 한자말로 ‘초인’이라는 이름은, 곧 ‘넘어선 사람’이라는 이름은, 스스로 아무런 허울도 울타리도 틀도 없는 사람한테 붙는다.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하늘을 난다. 물을 밟고 걸을 수 있다고 여기니 물을 밟고 걷는다. 곧, 지구별 모든 책을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다. 주머니를 털어 책을 사야만 책을 읽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고, 책방에 찾아가서 선 채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내 살림집 작은 방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읽을 수 있다. 지구별 곳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가를 지긋이 헤아리면서, 숱한 사람들이 저마다 슬기를 빛내어 영글어 놓는 열매를 받아들일 수 있다.


  어떠한 책이든 다 읽을 수 있다고 깨달은 뒤, 그러면 이렇게 읽은 책 이야기를 느낌글로 낱낱이 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이때에 나는 스스로 틀을 지었다. 나 스스로 틀을 짓지 않았으면 아마 나 스스로 읽은 모든 책에 얽힌 이야기를 글로 썼겠지. 그러니까, 눈에 드러나는 글 숫자와 부피로만 살피면 이러한 글쓰기는 할 수 없다. 눈으로 드러내는 모양새 아닌, 삶으로 녹이는 글쓰기를 한다면, 누구나 어떠한 글이라도 쓸 수 있다.


  스스로 읽은 책에 얽힌 이야기를 쓰는 일이란, 바닷가에서 물결 출렁이는 소리를 쓰는 일하고 같다. 몸소 읽은 책마다 무엇을 느꼈는가 하고 돌아보며 쓰는 일이란, 멧등성이 너머로 날아가는 멧새가 우짖는 소리를 쓰는 일하고 같다. 가을바람에 살랑이는 억새풀 이야기를 쓸 수 있는가. 풀벌레가 밤낮으로 노래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가. 누렇게 익는 나락빛 이야기를 쓸 수 있는가. 해맑게 웃는 아이들 놀이 이야기를 쓸 수 있는가.


  햇볕을 글로 쓰고, 흙빛을 글로 쓰며, 달빛을 글로 쓸 수 있을 때에, 스스로 어떤 이야기라도 글로 쓸 수 있다. 책 읽은 느낌이야 아무것 아닌 글쓰기가 된다. 독후감이나 논문이란 얼마나 손쉬운 글이요, 손쉬우면서 덧없는 글이 될까. 삶을 밝히려고 쓰는 글일 때에는 어떠한 글도 마음에서 우러나와 홀가분하게 쓸 수 있다. 삶을 밝히지 않거나 삶을 짓지 않는 글일 때에는 아무런 글도 사랑스럽게 쓸 수 없다.


  가만히 돌아보니,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적에 두 가지 다짐을 하고, 이 다짐을 곰곰이 아로새기면서 한 가지 다짐을 더 해서 세 가지 다짐을 했다. 마지막 셋째 다짐은, 읽고 느낀 모든 이야기를 삶으로 풀어내자 하고 다짐했다. 읽는 까닭과 쓰는 까닭은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살아가려는 마음이나 뜻이 없다면 읽을 까닭도 쓸 까닭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삶을 빚거나 누려야 할까. 사랑하며 살아갈 나날이란 무엇이요, 꿈을 꾸며 착하게 다스릴 삶이란 무엇일까. 읽을 수 있는 책을 종이에서건 풀에서건 하늘에서건 찬찬히 읽으면서 생각한다. 내가 무언가 읽는 까닭은 스스로 어떠한 삶을 즐기고 싶기 때문인가 하고 돌아본다. 내가 무언가 쓰는 까닭은 스스로 어떠한 삶을 빛내고 싶기 때문인가 하고 되짚는다. 곧, 셋째 다짐인 ‘삶으로 녹이기’가 있을 때에 책읽기가 생겨나고 글쓰기가 일어난다. ‘삶으로 지내기’가 있어야 비로소 책도 글도 이 땅에 태어난다. (4345.10.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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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세미꽃 책읽기

 


  나는 인천 골목동네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막상 사진찍기를 익힌 뒤에도 퍽 오랫동안 인천 골목동네를 굳이 사진으로 안 찍었다. 사진길을 걸은 지 열 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인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았다.


  인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찍기 앞서, 나는 내가 태어나 자란 인천 골목동네를 ‘태어난 삶터이니 잘 안다’고 짐짓 여겼다. 그렇지만, 막상 사진기를 한쪽 어깨에 메고, 큰아이를 한쪽 팔로 안으며 골목동네 구비구비 사진을 찍고 보니, 나로서는 온통 모르는 것투성이에 새로운 삶이 한가득이었다. 태어나 살며 으레 스치거나 부대꼈다 하지만, 언제나 스치거나 부대끼기만 했을 뿐, 찬찬히 들여다보며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했다고 깨달았다.


  이무렵 새삼스레 골목꽃을 보았다. 어릴 적부터 골목동네에는 꽃이 곳곳에 많다고 느끼기는 했으나, 이 꽃들이 어떻게 자랐고 어떻게 피어나며 어떻게 환한가를 깨우치지는 못했다. 무슨 꽃이 피고 지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알려 하지 않았다.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호박꽃과 오이꽃과 수세미꽃이 피고 지는 줄 알아챈 때는 골목 사진을 찍은 지 한 해가 다 될 즈음이었다. 참 모르는 사람은 호박꽃이랑 오이꽃이랑 수세미꽃을 알아보지 못한다. 여기에 참외꽃이나 수박꽃을 더하면 더 알쏭달쏭하다 할 테지. 게다가 꽃 말고 푸른 잎사귀를 바라보며 알아채라 한다면, 덩굴줄기를 바라보며 알아채라 한다면, 아마 거의 모든 도시내기는 두 손 두 발을 번쩍 들리라.


  이제 한 해를 꼬박 살아낸 고흥 시골집 텃밭 한 귀퉁이에서 수세미가 죽죽 덩굴을 뻗다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암꽃은 꽃가루받이를 하자마자 시들며 차근차근 열매를 키우고, 수꽃은 하염없이 노란 꽃송이를 벌린다. 암꽃은 시들기 무섭게 기나긴 나날에 걸쳐 수세미 열매를 커다랗게 키운다. 사람을 바라보든 꽃을 바라보든 어머니는 더없이 어머니답다. 어머니는 씨앗을 받아 열매를 키우면서 새로운 씨앗을 담을 뿐 아니라, 열매가 싱그럽고 구수하며 알차도록 온 기운을 쏟는다. 수세미 열매가 수세미 암꽃에서 비롯한 줄은 꼭지에 무늬만 남은 꽃차례 모양으로 알아볼 뿐이다.


  수세미 수꽃은 찬이슬이 듣든 찬바람이 불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쩌면, 수세미 수꽃은 찬이슬도 찬바람도 견딘다 해야 하리라. 수세미 수꽃은 햇살은 햇살대로 먹고 바람과 이슬은 바람과 이슬대로 먹으면서 꽃가루를 알뜰히 건사한다고 할 만하리라. 튼튼하게 살아내고 씩씩하게 살아가면서 ‘열매 될 씨앗 밑거름’을 옹골차게 보듬는 나날을 누리겠지.


  내 어머니, 곧 우리 아이들 할머니는 ‘노란 꽃’이 예뻐서 좋다고 말씀한다. 큰아이는 노란 꽃을 볼 때면 “할머니가 좋아하는 꽃이네.” 하고 말한다. 시골사람한테는 노란 꽃이 가없이 예쁘며 좋다고 여길 만하다고 비로소 느낀다. (4345.10.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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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새빛 책읽기

 


  아직 세 식구였을 적 제주섬을 한 차례 찾아간 뒤 좀처럼 제주마실을 못 한다. 네 식구 되면 제주마실 하기 벅차리라 여겨 세 식구일 적 마실을 하기는 했지만, 참말 네 식구 되니,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가는 마실이 아니고서는 다 함께 움직이기는 만만하지 않구나 싶다.


  셋이 제주마실을 하던 그러께였을 텐데, 제주섬 어디를 보아도 억새가 참으로 많았다. 참말 사람들이 제주로 억새 구경하러 올 만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우리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에도 억새가 퍽 많다. 곳곳이 억새밭이다. 빈논에도 억새밭이 이루어지고, 빽빽이 이어진 논과 논 사이에도 틈틈이 억새밭이 이루어진다. 바다를 메운 언저리라든지 마을을 못으로 바꾼 둘레에는 무척 넓게 억새밭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갈대밭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이웃 시골을 곧잘 찾아다니며 새삼스럽게 느끼곤 하는데, 이 나라 어디를 가도 억새밭이 매우 많다. 그러니까, 제주섬에만 억새가 많이 자라지 않는다. 어느 시골에나 억새가 많이 자란다. 어느 시골에서도 억새 구경을 할 만할 뿐 아니라, 관광객으로 우글거리는 제주섬에서 벗어나 한갓진 여느 시골을 군내버스 타고 달리다가 알맞춤한 곳에 내려 천천히 거닐어 보면, 조용하고 산뜻하며 시원하고 푸른 들과 파란 하늘을 누리면서 억새밭을 즐길 수 있다.


  두 다리로 걷다가, 자전거로 달리다가, 군내버스로 지나가다가, 문득문득 생각한다. 억새밭 예쁘다 여기는 누군가 있어, 이 나라 시골마을 두루 돌며 다 다른 시골자락 다 다른 억새밭 어여쁜 빛과 그림을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로 엮어 선보일 수 있으면 참 멋지겠지. 이른바 ‘대한민국 억새마실’이랄까. (4345.10.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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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책들을 (도서관일기 2012.10.13.)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이 나라에는 도서관이라 할 곳이 몇 군데 없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대여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도서관이지, 대여점 구실을 하는 데가 아니다.


  베스트셀러나 소설 몇 가지를 빌려주고 돌려받는 데라면 대여점일 뿐이다. 도서관이란 백 해나 이백 해나 오백 해가 흘러도 알뜰히 건사할 책을 갖추면서 사람들이 ‘책으로 삶을 읽고 살피도록 길동무 구실을 하는 데’라고 느낀다. 곧, 이런 구실을 하는 데가 거의 안 보이기에, 이 나라에는 도서관이라 할 곳이 몇 군데 없구나 싶다.


  베스트셀러나 소설 몇 가지를 쉽게 빌리고 돌려줄 만한 곳도 있어야겠지. 그런데 이 몫은 참말 대여점한테 맡기기를 바란다. 도서관에서는 베스트셀러나 소설 몇 가지도 알뜰살뜰 갖추어 자료로 삼도록 할 수 있으면서, 삶을 밝히고 사랑을 빛내는 온갖 책을 꾸준히 두루 갖추도록 힘써야 한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아기를 평화롭게 집에서 낳고 싶은 이들이 도움을 받을 만한 책과 자료를 도서관에서 갖출 수 있어야 하리라 본다. 대학교 아닌 길을 찾고 싶은 푸름이한테 도움이 될 만한 책과 자료를 도서관에서 얻을 수 있어야 하리라 본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삶짓기를 도와줄 길잡이책을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하리라 본다.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사람다움을 건사하도록 이끄는 빛줄기를 보듬는 책과 자료를 도서관에서 살필 수 있어야 하리라 본다.


  사진을 배우려는 이들이 도서관에서 나라 안팎 훌륭한 사진책을 만날 수 있어야겠지. 그림을 배우려는 이들이 도서관에서 나라 안팎 훌륭한 그림책(화집)을 만날 수 있어야겠지. 문학과 문화가 빛날 도서관이어야 한다. 방문객 숫자가 많은 도서관이 아니라, 책손다운 책손이 먼길을 기꺼이 찾아올 만한 도서관이어야 한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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