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과 집을 읽는다

 


  기차는 차츰 서울과 가까워진다. 고흥에서 멀어질수록 둘레에서 들과 메가 줄어든다. 벌교를 지나고 순천을 거치니 살림집 바글거린다. 구례 곡성 남원 지나니 너른 들판과 높은 메에 어우러지는 숲도 차츰 줄어든다. 전주 익산 대전을 지나며 높다란 아파트가 춤을 춘다. 수십 미터 될 듯한 다리를 놓는 고속도로가 밭과 메를 가로지르고, 송전탑이 마을을 건너뛴다. 서울 언저리에는 나무 한 그루 뿌리내릴 틈이 거의 없다. 비싼 땅에 풀이 돋거나 나무가 자라게 하지 않는구나. 땅금이 비싸니까 찻길도 시원하게 나지 않고, 아이들 뛰놀 빈터나 흙땅은 아예 없으며, 사람들 살림집조차 다닥다닥 높디높게 빽빽 바글바글 갇힌다. 서울 언저리 작은 삭월세방조차 보증금 빼면 시골서 집과 땅을 살 만하지만, 사람들은 서울 언저리 도시에서 악착같이 악다구니를 쓰며 서로 낑기거나 밀치거나 밟으면서 살아간다. 무엇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삶일까. 무엇을 아끼며 좋아하는 나날일까. 들이 없고 숲이 사라지는 곳에서 사람들 삶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들을 누리지 못하고 숲을 생각하지 못하는 데에서 사람들 보금자리는 얼마나 빛날까. 사람들 누구나 가슴속에 환한 빛줄기 있는데, 사람들 스스로 이녁 가슴 환한 빛줄기를 바스라뜨리는구나 싶다. 까만 자동차와 잿빛 건물이 지나치게 많아, 사람들은 시나브로 삶을 잊고 돈한테 매달린다. 책이 있어도 책이 책다운 꿈을 펼치지 못한다. (4345.9.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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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아주·환삼덩굴·쇠비름

 


  아이들이 손수 밭을 일구는 이야기를 다루는 그림책을 읽다가 오래도록 책장을 더 넘기지 못한다. ‘밭에서 자라는 잡풀’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인데, ‘밭 푸성귀’가 잘 자라지 못하게 가로막는 풀이라서 ‘김매기’를 해서 뽑아 버려야 하는 풀로 돌피·강아지풀·괭이밥·망초·왕바랭이·쇠뜨기·쇠별꽃을 비롯해 명아주·환삼덩굴·쇠비름을 든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시골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유채조차 잡풀로 여겨 그냥 뽑아서 버리곤 한다. 갓 또한 그냥 버리곤 한다. 유채잎이나 갓잎을 뜯어 집에서 자실 수 있으나, ‘먹는 다른 풀이 많으’니 굳이 유채잎이나 갓잎을 김치로 담가서 먹는 일이란 드물다. 자운영이나 질경이나 미나리조차 애써 캐거나 뜯지 않는다. 모조리 낫이나 기계를 써서 베어 버리거나 풀약을 쳐서 죽이신다.


  그림책에는 ‘나물로 많이 먹는 풀’로 질경이·냉이·꽃다지·쑥·민들레를 든다. 그런데, 시골에서 살아가며 지켜보면, 쑥이든 꽃다지이든, 애써 뜯거나 캐서 먹는 분들은 아주 드물구나 싶다. 배추나 무나 상추를 심어서 드시더라도,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 씩씩하게 돋는 이들 풀을 반찬으로 삼는 분이 매우 드물다.


  새삼스레 더 생각해 본다. 괭이밥이나 쇠뜨기는 약풀로 쓴다. 이들 풀은 날로 먹어도 되며, 풀물을 짜서 마셔도 된다. 우리 식구는 명아주와 환삼덩굴과 쇠비름은 얼마든지 뜯어서 먹고 풀물을 짜서 마신다. 질경이와 민들레도 먹지만, 망초나 쇠별꽃이라서 못 먹을 까닭이 없다. 숲에서 스스로 자라는 망초라면 맛난 풀이요, 숲에서 예쁘게 크는 쇠별꽃 또한 좋은 풀이다.


  그런데,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나서 어른이 되기까지, 시금치라도 맛나게 먹는 아이는 몇이나 될까. 깻잎이든 호박잎이든, 고추잎이든 배추잎이든, 당근잎이든 부추잎이든 모시잎이든, 맛나게 즐기는 아이는 몇이나 되려나.


  밭을 왜 일구는지 모르겠다. 밭 일구는 이야기를 묶은 그림책이 아이들한테 무슨 삶과 생각을 들려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그림책을 장만해서 읽을 어른들은 질경이가 되든 명아주가 되든 가만히 바라보고 살며시 쓰다듬다가는 입에 기쁘게 넣어 냠냠짭짭 맛을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스스로 먹어 보지 않고 먹어 볼 만한 풀이라느니 못 먹을 풀이라느니 하고 금을 그을까. 참말 모르겠다. 우리 집 텃밭 산초나무가 씨앗을 떨구어 새로 나는 어린 산초나무를 가느다란 가지까지 통째로 꺾어 간장이나 된장으로 무친 다음 날로 먹곤 한다. 산초잎과 산초줄기도 참으로 맛난다. 이름을 아는 풀도 이름을 모르는 풀도, 저마다 다 다른 풀내음을 풍기면서 내 몸으로 스며들어 나하고 하나가 된다.


  참말 나는 잘 모르겠다. 밭을 일구는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엮어 내놓는 뜻을 잘 모르겠다. 밭을 일구는 삶을 그림으로 담는 어른들 생각을 잘 모르겠다. (4345.9.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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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으로 읽는 책, 책꽃

 


  연필로 종이에 써서 묶어야 책이 되지 않아요. 밭에서 나는 풀 가운데 무엇을 먹고 무엇을 안 먹나 가리는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려 종이에 담아 보여주어야 책이 되지 않아요. 밭자락에 할머니랑 쪼그려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삶 또한 아름다운 책읽기예요. 구름을 보며 곱다 느끼고, 햇살을 쬐며 따스하다 느끼며, 아이들과 웃고 떠들며 누리는 삶 모두 책읽기예요. 가슴에 피어나는 사랑꽃이 바로 삶꽃이면서 책꽃이에요. (4345.9.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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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쑥 내음 책읽기

 


  태풍이 지나가고 난 눈부신 파란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빨래를 넌다. 마당 귀퉁이에 빨래를 널다가, 가을을 맞이해 새로 돋는 ‘마당 쑥’ 내음을 맡는다. 아침에 풀물을 짤 때에 쑥을 한 주먹 뜯어서 함께 넣는데, 뜯으면서도 쑥내음이 나고, 뜯고 나서도 쑥내음이 감돈다. 봄에 돋는 봄쑥에는 봄내음이 묻어나고, 가을에 돋는 가을쑥에는 가을내음이 묻어난다. 봄에도 가을에도, 또 여름에도 마당 한켠에서 스스로 자라나는 쑥을 뜯어서 날로도 먹고 풀물을 짜서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맙고 즐거운가. 게다가 햇볕에 잘 마르는 빨래마다 가을쑥 내음이 배어들 테지. 마당에서 맨발로 노는 아이들 몸과 마음에도 가을쑥 내음이 찬찬히 스며들 테지. 나한테도 옆지기한테도 좋은 내음이 가만히 찾아들며, 언제나 좋은 넋으로 좋은 꿈을 꾸도록 도와주는구나 싶다. (4345.9.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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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놀이터 (도서관일기 2012.9.1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이란 책을 갖추는 곳이다.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 어느 사람은 가벼운 읽을거리를 바라고, 어느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는 읽을거리를 바란다. 어느 사람은 돈벌이에 도움이 될 무언가를 바라고, 어느 사람은 지식이나 정보를 쌓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삶에 따라 책을 마주한다. 스스로 생각한 대로 살아가기에, 스스로 살아가는 결에 맞추어 책을 손에 쥔다. 스스로 생각하는 삶결이 오직 돈벌이라면, 굳이 책이 찾아들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을 기울이는 삶자리가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면, 애써 책이 스며들지 않는다.


  흔히들 사람 있고 아이들 있는 데에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내가 느끼기로는 무엇보다 숲이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숲이 없으면서 도서관만 있다면, 이러한 곳은 책읽기를 못하고 삶읽기도 못하는 데라고 느낀다.


  도서관을 세우려 한다면, 책을 갖출 건물만 지어서는 안 된다. 책을 둔 건물을 둘러싸고 조그맣게라도 숲을 마련해서, 사람들이 책을 숲 한복판에 앉아서 읽도록 이끌어야지 싶다. 사람들한테 가장 모자란 한 가지라면, 도시나 시골이나 바로 숲이라고 느낀다. 숲다운 숲이 있어야 한다. 나무가 자라고 풀이 돋으며 짐승과 벌레가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숲이 있어야 한다. 도토리가 뿌리를 내리고 풀씨가 흩날리는 숲이 있어야 한다.


  숲은 사람들 삶터를 살찌운다. 숲은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놀이터가 된다. 숲에서 살고 숲에서 놀며 숲에서 일하는 사이, 시나브로 사람다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적에, 비로소 사람들은 스스로 글을 쓰고 책을 빚을 수 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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