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한 줄, 예쁘게 읽는 책

 


  우리 집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모두 병원에서 낳고 말았습니다. 옆지기와 나는 병원 아닌 집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따뜻하며 느긋하게 아이를 맞아들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미국사람 메리 몽간 님이 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샨티,2012) 59쪽을 읽습니다. “출산은 과학이 아니다. 해부학도 아니다. 또한 의사나 조산사, 간호사의 일도 아니며, 누군가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산은 부모와 아기의 것이다.”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벌써 아이를 둘 낳았고, 다섯 살 두 살 두 아이는 무럭무럭 크는데, 나는 굳이 ‘아이낳기’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집 두 아이를 집에서 사랑스레 낳지 못했으나,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더 커서 스무 해쯤 뒤가 되면, 이 아이들도 아이를 낳을 때가 될 테지요. 이때에 우리 아이들이 병원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집에서 사랑스레 아이를 낳도록 돕자면, ‘앞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옆지기와 내’가 오늘 ‘아이낳기’를 예쁘고 사랑스레 다시 배워야 해요.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을 쓴 메리 몽간 님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병원에서 낳고 말았다지만, 당신이 낳은 아이들이 커서 아이를 낳을 무렵 당신이 지난날 겪은 아픔과 슬픔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꿈꾸면서 ‘히프노버딩’이라는 ‘아이를 사랑스레 낳는 길’을 마련했다고 해요. 메리 몽간 님은 105쪽에서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말과 생각을 할 필요가 있고, 원치 않는 환경을 불러들이는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말이나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 하고 덧붙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내가 바라는 꿈을 곱게 헤아릴 때에 참으로 내가 바라는 꿈이 곱게 이루어집니다. 내가 바라는 꿈이 아니지만, 내 둘레에서 이래저래 떠돈다 해서 귀를 기울이거나 눈길을 둘 때에는, 뜻밖에도 내가 안 바라거나 내가 안 좋아하는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내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할 때에는 사랑이 태어나요. 내 마음속에 미움이 깃들 때에는 미움이 나타나요.


  블라지미르 메그레 님이 적바림한 책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한글샘,2011) 119쪽을 살피면, “사람의 소명은, 주위의 모두를 깨닫고 우주에 훌륭함을 짓는 것이야. 지구를 닮은 것을 다른 은하계에 짓는 거야. 그리고 새 세상 모두에게 지은 훌륭한 창작을, 지구에 더하는 거야.”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일이란 ‘훌륭한 삶을 짓기’라는 말마디를 되새깁니다. 나부터 스스로 오늘 하루를 훌륭하도록 아름답게 누리고, 이렇게 훌륭하도록 아름답게 누리는 삶을 내 옆지기와 아이들과 이웃과 동무 모두한테 곱게 나눌 때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숨결이 된다는 이야기를 되읊습니다.


  예쁘게 나누는 말은 예쁘게 나누는 사랑입니다. 내가 예쁜 말을 보낼 때에 나한테 예쁜 말이 돌아옵니다. 나는 예쁜 말을 보내지 않으면서 나한테 예쁜 말이 오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나는 노상 밉거나 궂거나 모진 말을 보내면서 나한테만큼은 예쁜 말이 오기를 바란다면 내 삶은 엉망진창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요시노 겐자부로 님이 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양철북,2012) 52쪽을 읽습니다. “진심으로 네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져야 해.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 때도, 네가 그것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때도 그 감정은 언제나 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단다.” 하는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면서 내가 좋아할 만한 내 삶이어야겠지요. 어깨너머로 기웃거린다든지 겉치레로 꾸민다든지 내 뚜렷한 줏대 없이 휘둘리거나 휩쓸린다면, 나 스스로 하나도 재미없는 삶이 되리라 느껴요.


  좋은 봄햇살을 누립니다. 좋은 여름햇볕을 누립니다. 좋은 가을햇빛을 누립니다. 좋은 겨울해님을 누립니다.


  봄부터 여름과 가을을 거쳐 겨울이 되는 네 철은 사람들 누구한테나 기쁜 선물입니다. 따스함과 시원함과 더움과 추움과 넉넉함과 푸름과 빛남과 어두움과 환함을 골고루 누리면서 내가 지을 가장 좋은 내 사랑스러운 삶을 돌아봅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이 빚은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16권 114쪽을 보면, 종교전쟁을 일으키는 우두머리 한 분이 아들을 옆에 두고 이렇게 얘기를 나눠요. “왕자여, 저 일출을 보아라.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답지 않느냐.” “정말 아름답습니다.” “왕자여, 나는 해의 신을 모시고 해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기로 했다.”


  아, 아. 아름다운 해를 보며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우려 하면 참으로 예쁠 텐데요. (4345.7.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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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9-08 09:23   좋아요 0 | URL
큰 아이 표정은 언제나 밝아서 참 좋아요

숲노래 2012-09-09 03:46   좋아요 0 | URL
네, 아이들 모두 늘 잘 웃어서 좋습니다~
 


 들깨꽃 책읽기

 


  사람들이 꽃 이야기를 더는 하지 않는 이른가을, 들깨는 조용히 꽃망울을 터뜨린다. 줄줄이 작은 꽃송이를 맺는다. 들깨는 꽃이 지고 자그마한 열매가 맺었을 적에 꽃송이를 통째로 꺾어서 튀겨 먹어도 맛나지. 잎사귀를 먹어도 즐겁고, 가만히 냄새를 맡아도 좋다. 참깨꽃처럼 꽃송이가 커다랗지 않아 눈에 잘 안 뜨일 만한 들깨꽃이지만, 한여름부터 이른가을까지 붉은 꽃망울 곱게 드리우는 봉숭아하고 나란히 밭두둑을 빛낸다. (4345.9.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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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을 바라보는 책읽기

 


  옆지기 어버이 살아가는 경기도 일산에서도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면 별을 만날 수 있다. 아파트가 비죽비죽 올라선 틈바구니에서도 별 한두 조각 찾을 수 있다. 내 어버이 살아가는 충청북도 음성에서도 하늘을 찬찬히 올려다보면 별을 마주할 수 있다. 높고낮은 멧봉우리 사이사이 별 여러 조각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별이 이것밖에 없었을까. 별이 이것밖에 안 보일까.


  밤이 되면 어느 곳이든 깜깜하다. 어둠이 내린다. 다만, 깜깜해지더라도 등불을 켜며 밝히는 데가 있고, 어둠이 내려도 수많은 가게마다 환하게 불빛을 쏘는 곳이 있다.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등불을 켠 밑에 서면 밤하늘을 바라보지 않는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불빛 환한 가게 둘레에 설 적에는 밤하늘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를 둘러싼 별빛을 느끼지 않고, 우리를 어루만지는 달빛을 헤아리지 않는다.


  내 어버이 시골집 마당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생각한다. 아침과 낮에 고운 햇살을 느끼지 않는 데에서는 저녁과 밤에 보드라운 달무늬와 별무늬를 느끼지 못하는구나 싶다. 아침과 낮에 고운 햇볕과 바람과 흙을 누리지 못하는 데에서는 저녁과 밤에 보드라운 밤노래와 밤바람과 밤구름을 느끼지 못하는구나 싶다.


  해를 잊는 곳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달을 잃고 별을 등지는 데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마주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해가 흩뿌리는 빛과 볕을 사랑으로 받아들일 때에 내 마음속에서 따순 이야기 천천히 피어난다. 달이 드리우는 무늬와 결을 꿈으로 맞아들일 적에 내 가슴속에서 너른 이야기 하나둘 샘솟는다.


  별이 잔치를 이루는 곳에서 별똥이 흐른다. 별이 노래하는 곳에서 밤새와 밤벌레가 춤을 춘다. 별이 오순도순 얼크러지는 곳에서 사람들은 숲에 깃들어 풀과 꽃과 나무를 맑은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새근새근 잠든다. (4345.9.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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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구나 글 한 조각

 


  시를 쓰는 박노해 님이 내놓은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2010)를 읽는다. 날마다 예닐곱 꼭지씩, 때로는 열다섯 꼭지나 스무 꼭지씩 읽는다. 아침에 〈무엇이 남는가〉를 읽다가 오래도록 생각에 잠긴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공 하나씩 쥐며 뛰논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려는 따사롭고 시원스러운 나날, 좋은 숨결 느끼며 좋은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는다. 나도 아이들도 모두 싱그럽다. 박노해 님은 시를 쓰며 노래한다. “정치가에게 권력을 빼 보라 / 무엇이 남는가” 하고 노래한다. 이윽고 “나에게 사랑을 빼 보라 / 나에게 정의를 빼 보라 // 그래도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하고 노래한다.


  나한테 책을 뺀다면, 나한테 집안일을 뺀다면, 또 나한테 사랑을 빼고 꿈을 뺀다면, 나는 무엇이 될까. 나한테 뺄 만한 권력이나 돈이나 직위나 이름이 있을까 헤아려 본다. 나한테 연필을 빼거나 사진기를 뺀다면, 또 나한테 자전거를 빼고 기저귀를 빠는 손을 뺀다면, 나한테 무엇이 남을까. 아니, 이것저것 모두 빼더라도 나는 오롯한 나로서 남을 수 있을까. 나한테서 모든 것을 송두리째 뺀다 하더라도 나는 참다운 알맹이로서 남을 수 있을까.


  나를 느끼는 글을 쓰며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다. 나를 느끼도록 이끄는 글을 읽으며 나와 이웃과 삶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놀고 놀며 또 논다. 이것을 만지고 저것을 줍는다. 여기에서 땀을 내고 저기에서 땀을 쏟는다. 바람은 아이들 이마를 간질인다. 아이들은 땀을 흠뻑 쏟다가 바람이 산들산들 어루만지는 손길을 누리며 땀을 말끔히 씻는다.


  이제 밥을 안쳐야지. 이제 국을 끓여야지. 이제 풀물을 짜서 식구들 다 함께 마셔야지. 이제 짐을 꾸려 충청도 음성에서 살아가는 할아버지한테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를 하러 길을 나서야지. 이제 마알간 햇살 곱게 누리며 숲길을 달리는 군내버스를 타야지. (4345.9.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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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와 책읽기

 


  이제 전기가 없으면 글을 못 쓰고, 책을 엮지 못하며, 편지를 띄울 길 또한 없는 한국이 되었다. 그런데 이 전기를 중앙정부가 거머쥐고는 나누어 주지 않는다. 마을마다 조그맣게 전기를 일구어 쓰도록 돕거나 이끌지 않는다. 도시면 도시, 시골이면 시골, 저마다 쓰임새에 맞추어 햇살과 흙과 푸나무와 어깨동무할 좋은 전기를 빚어 쓰게끔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 중앙정부는 전기를 비롯해, 사람들 먹을거리도 마을마다 스스로 일구어 먹도록 돕거나 이끌지 않는다. 나라밖에서 값싸게 사다 먹도록 할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서로 값다툼을 하도록 내몬다. 도시면 도시, 시골이면 시골, 스스로 먹을거리를 일구어 먹는 틀거리를 마련할 생각이 조금도 안 보인다.


  전기는 돈으로 만든다. 전기를 돈으로 만든 다음 돈벌이로 삼는다. 사람들 누구나 전기 씀씀이에서 헤어나지 못할 얼거리로 짠 뒤, 중앙정부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도록 내몬다. 가만히 보면, 학교에 들어가고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다니는 얼거리도 중앙정부 틀거리인 셈이다. 사람들은 학교를 다니며 배우는 틀에서 홀가분하지 않다. 학교를 안 다니면 안 되는 듯 여기고 만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를 생각하지 못하면서, 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일자리를 못 얻는다고 여기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집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밥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글을 쓰고 책을 엮어 이야기를 빚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마을학교를 열 수 있어야 하고, 마을학교에 앞서 집학교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마을마다 스스로 배움터를 일구고, 집집마다 스스로 배움마당을 마련할 때에 가장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마을에서는 마을전기를 쓰고 마을살림을 꾸리며 마을배움터를 누릴 때에 참으로 사랑스럽겠지.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나 공항에 기대는 삶이란 얼마나 쓸쓸할까. 교통수단 아닌 삶을 찾아야지 싶다. 기계문명 아닌 마음을 살려야지 싶다. (4345.8.2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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