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10.14.


경복궁에 갔다. 네 식구가 일산으로 할아버지를 뵈러 마실을 왔고, 일산 할아버지는 아이들한테 경복궁 구경이랑 남산 구경을 해야 한다고 예전부터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 함께 대화역부터 경복궁역까지 전철을 달린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또 저곳에서 이곳으로 오가는 경복궁. 온갖 나라 사람들이 온갖 나라 말로 수다를 나누면서 걷는 경복궁. 서울도 관광도시 가운데 하나라는 대목을 새삼스레 돌아본다. 경복궁에 있는 박물관을 돌아보는데, 전시 품목이 퍽 초라하다고 느낀다. 건물은 큼지막하지만 막상 지난 우리 발자국을 되짚도록 이끄는 품목이 얼마 없다고 할까. 유물을 건사하자면 불빛을 낮추기는 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어둡다. 진열장 옆에 붙인 알림판 글씨를 못 읽겠다. 유물 아닌 진열장 옆 알림판에 따로 작은 불을 놓든지 글씨를 키우든지 해야지. 그리고, 임금 아닌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하나도 건사하지 않기에 초라하지는 않다. 임금을 둘러싼 유물조차 고작 이만큼밖에 못 보여주나 싶어서 초라하다고 느낀다. 기념품을 파는 곳을 둘러보는데, 비단으로 지은 연필주머니가 눈에 뜨인다. 참 멋지네. 그런데, 경복궁 기념품집에서 파는 연필주머니에 정작 연필이 안 들어간다! 연필주머니에 연필이 안 들어가다니! 이런 놀라운 우스개가 다 있을 수 있나? 겉감뿐 아니라 안감까지 비단이라 좋다만, 짜리몽땅한 연필주머니는 어찌해야 좋을까. 공깃돌을 담는 이쁘장한 주머니처럼 알뜰히 빚은 좋은 기념품이 많이 보이면서도, 이른바 살짝 모자라서 아쉬운 대목을 여러모로 느낀다. ‘파는 눈’이 아닌 ‘사서 쓸 사람 눈’으로 하나하나 만지고 돌아본다면 기념품을 어떻게 건사해야 좋을는지를 느낄 수 있으리라. 이곳에 책도 여러 권 있어서 《동궐의 우리 새》를 장만해 본다. 나는 생태 도감 책은 거의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 펴낸 책으로만 아이들한테 보여준다. 《동궐의 우리 새》라는 줄거리나 생각은 퍽 좋은데, 사진을 놓은 엮음새가 좀 아쉽고, 다른 곳이 아닌 꼭 여기 경복궁하고 창경궁 언저리에서 만날 수 있는 숱한 새하고 얽힌 이야기도 좀 적다. 동궐이라고 하는 터전을 남달리 눈여겨보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텃새하고 철새 이야기를 묶어 준다면, 생태 도감이라는 틀보다는 ‘동궐에서 만나는 새 이야기’라는 자리에서 조금 더 가벼우면서 재미있게 살펴 준다면 한결 좋을 텐데.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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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10.13.


네 사람이 함께 길을 나선다. 아주 오랜만이라 느낀다. 엊저녁에는 두 아이더러 스스로 짐을 꾸려 보라고 일렀다. 두 아이는 “응! 우리가 쌀게!” 하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막상 아이들이 손수 싼 가방을 들여다보니 옷짐이 허술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옷을 빨래하지 못하는데 한 벌씩만 챙겼네. 얘들아, 너희가 너희 옷을 한 벌만 챙기면 모자라단다. 집에서야 가을에 같은 옷을 이틀이나 사흘을 입더라도 바깥에서는 다르지. 아이들이 빠뜨린 옷가지를 챙겨 준다. 이러고서 너른 천을 펼쳐서 옷가지를 싼다. “아버지가 혼자 바깥일을 보러 갈 적에도 말이야, 옷은 가방에 그냥 안 넣어. 천가방에 따로 넣지. 생각나니?” “응.” “너희 옷도 마찬가지야. 가방에 그냥 안 넣고 이렇게 옷가지는 따로 천으로 싼단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서서 고흥읍을 거쳐서 시외버스를 타야 한다. 모두 긴옷으로 잘 챙기도록 하고 일찍 재운다. 작은아이부터 일찍 깨어난다. 어젯밤에 미리 한 빨래는 거의 말랐다. 마루하고 부엌에 빨랫대를 두면 며칠 사이에 바싹 마르겠지. 시외버스는 고흥을 떠나 오수를 거쳐 서울로 간다. 만화책 《사야와 함께》 셋째 권을 읽는다. 풋풋하게 그리는 사랑이 포근하게 흐른다. 근심이나 걱정이 아닌 새로운 꿈하고 길을 담는 마음이기에 “사야와 함께” 보내는 하루가 모두 즐겁다고 이야기한다. 만화책 《트윈 스피카》 여덟째 권을 읽는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도 ‘사야’처럼 고등학생 나이. 다만 《트윈 스피카》는 여덟째 권에서 마무리를 지으면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나오는데, 별을 가슴에 품고 저마다 다른 길을 씩씩하게 걷는 어여쁜 몸짓이 참 곱다. ‘스피카’ 이야기는 아무래도 별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룬다고 할까. 닿을 수 없는 별이 아닌, 닿으려고 하는 별을 노래한다. 먼먼 별이 아닌 마음에서 피어나는 별을 노래한다. 지는 별이 아닌 새로 돋는 별을 노래한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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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10.12.


가을이 깊어 가면서도 볕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바로 이 가을볕은 나락이 무럭무럭 익도록 해 줄 뿐 아니라, 알을 낳을 풀벌레나 나비한테 마지막 따스한 숨결이 되리라 느낀다. 어제그제는 저녁까지 제법 더웠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면서 살짝 서늘하다. 글월 두 통을 띄우려고 우체국 마실을 간다. 작은아이가 따라나선다. 군내버스에서 《초록비 내리는 여행》을 읽는다. 곁님이랑 두 딸이랑 ‘그림마실’을 즐기는 오치근 님이 네 사람 손길로 함께 빚은 책이다. ‘초록비’가 내리는 여행이라고 하는데, 네 사람은 차나무하고 찻잎을 따라서 찻물바람이 흐르는 마실을 다녔다고 한다. 그림도 글도 온통 푸른 빗물이요 바람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어버이랑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찻물을 즐기고 차바람을 마시는 아이들은 어떤 꿈으로 어떤 이야기를 앞으로 새롭게 지피려나. 내가 읍내에서 글월을 써서 부치는 동안 작은아이는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읍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서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작은아이는 눈이 말똥말똥. 나는 고단해서 꾸벅꾸벅. 이제껏 아이들이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든 군내버스인데, 오늘만큼은 작은아이 어깨에 기대어 쉬어 본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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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10.10.


살아가는 나날은 늘 여행이다. 쉽게 말해 본다면 나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가고 들어오는 나들이라고 할까. 이곳에서 저곳으로 나간다고 하지만, 저곳에서 이곳으로 들어온다. 몸으로 밥이 들어오고, 이 밥은 똥오줌이 되어 바깥으로 나간다. 새로운 목숨을 받아들여서 기운을 내고, 기운을 내어 움직이고 나서 우리가 디딘 이 땅을 북돋울 새로운 것을 몸에서 내놓는다. 사진책 《어떤 여행》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찬찬히 짚어 보는 이야기를 사진이라는 틀에 맞추어서 넌지시 보여준다. 작은 이웃 목숨한테서, 우리 밥이 되는 이웃 목숨한테서, 우리 둘레에 늘 있지만 오늘날 도시 터전에서는 좀처럼 마주하기 어려운 이웃 목숨한테서, 들고 나는 여행이라고 하는 숨결을 느낀다. 한글날까지 지나간 시월 십일. 하늘이 맑고 파랗다. 상큼하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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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10.8.


읍내에 모임이 있어서 나가기로 한다. 두 아이가 고뿔에 걸려 며칠 동안 골골대느라 이래저래 돌보며 기운을 쏟으니 나도 슬슬 고뿔을 옮는다. 그러나 볕이 좋고 아이들도 거의 나은 빛이 돌아 이불을 빨고 청소까지 실컷 한다. 이렇게 하고서 드러눕는다. 세 시 군내버스를 타러 나가기까지 누워서 쉰 뒤, 일거리를 챙긴다. 모임은 다섯 시이기에 세 시 버스를 타고 읍내 커피집에 가서 무릎셈틀로 일을 해 볼 생각이다. 버스를 타고 나가는 길에 《문화재는 왜 다른 나라에 갔을까》를 읽는다. 문화재하고 얽혀 이제 이만 한 어린이책이 나올 수 있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한국 문화재를 다루기 앞서 세계 여러 나라 문화재를 이야기한다. 그리스 문화재조차 영국 박물관에 있다는 대목, 그리스에서 일찌감치 문화재 되찾기에 힘을 쏟으면서 다른 나라에도 이 같은 일이 알려졌다는 대목을 읽어 본다. 다른 나라 문화재를 훔친 나라를 꼽자면 영국하고 프랑스하고 미국하고 일본을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하겠지. 그 문화재를 빚은 나라가 그 문화재를 제대로 건사할 줄 모른다면서 빼앗았다고 할 텐데, 전쟁무기를 앞세워 이웃나라를 무너뜨리니 그 나라가 문화재를 건사할 힘이 있을까. 무엇보다 전쟁무기를 앞세워 훔쳐가는데 무어라 어떻게 따지겠는가. 어제를 이룬 바탕을 문화재에서 읽으면서 오늘을 새롭게 짓는 슬기를 아이들이 잘 배울 수 있기를 빈다. 그나저나 읍내 커피집에 앉아서 무릎셈틀로 일을 하는데 커피집 여러 손님이 신나게 수다꽃을 피우시기에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군청 옆에 있는 평상에 아무도 없네. 이곳에 앉아서 일을 마저 한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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