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자전거 타며 읽은 책 2017.10.3.


시골에 살며 홀가분한 대목 가운데 하나는 ‘시골에 사는 우리가 굳이 다른 시골에 안 가도 된다’이다. 우리 집이 시골이니까. 오늘날 한국에는 우리처럼 시골 보금자리를 누리는 분이 적으리라. 게다가 우리 집은 자동차조차 안 굴리지. 한가위를 앞두고 읍내를 다녀와서 먹을거리를 쟁여 놓았다. 오늘은 일부러 자전거를 몰아 아이들하고 가볍게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 마실을 다녀온다. 가을들이 샛노란 빛깔로 거듭난다. 이즈음은 마늘밭을 빼고는 농약을 치지 않으니 가을바람이 퍽 싱그럽다. 한가위에 시골로 걸음을 옮기는 분들은 샛노란 들길을 거닐어 보면서 나락이 익는 내음을 맡아 보시면 어떠할까 싶다. 껍질을 벗긴 쌀이 아닌, 흙에 뿌리를 박으며 햇볕을 쬐며 무럭무럭 익는 열매인 나락을 마주할 수 있다면, 책 여러 권을 읽었다고 할 만하지 싶다. 두 아이가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핀란드의 마음》을 읽는다. 이 책을 장만한 지 여러 달 되었는데 여태 한 쪽도 못 읽다가 오늘에서야 일흔 쪽 남짓 읽어낸다. 글결이 좀 공무원스러운 티가 날 만큼 딱딱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부러 꾸민 글결이 아니라서 읽기에 나쁘지 않다. 핀란드라고 하는 마음을 나누려는 글이라면 공무원스러움보다는 핀란드스러움을 글에 담아 볼 수 있었을 텐데. 핀란드사람이 사랑하는 핀란드 옛이야기 숨결을 담아서. 그래도 이 책 하나는 꽤 좋다. 한 시간 남짓 놀이터에서 놀다가 아이들한테 얼음과자 하나씩 장만해 주고 자전거를 달린다.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짓고서 씻는다. 찌뿌둥하다.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10.1.


시월로 접어들면서 모기는 줄어드는가? 그렇지만 새벽이나 밤에도 모기를 볼 수 있고, 낮에는 꽤 돌아다닌다. 여름처럼 자주 보지 않으나 고흥 같은 따스한 고장은 겨울에도 어쩌면 볼는지 모르리라. 마당에 앉아서 시월을 맞이하고 싶으나 시월 첫날부터 비가 쏟아진다. 새벽부터 밤까지 그치지 않는다. 대단하네. 바람까지 드세다. 시골에서 살며 한가위에 비바람이 세차게 찾아오는 모습을 볼 적마다 늘 다르게 느낀다. 나무랑 나락이랑 남새가 이 비바람을 어떻게 마주하는가를 새삼스레 지켜본다. 도시에서 바라보는 눈이라면 한가위 비바람이라고 대수롭지 않을 수 있으나, 코앞에서 나락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거나 감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사뭇 다르다. 마루에 앉아서 《모기가 궁금해?》를 읽는다. 모기를 다룬 아주 드문 인문과학책이다. 이 책을 쓰신 분은 곧 ‘모기 도감’까지 써낸다고 하니, 모기를 다룬 도감에 흐르는 이야기가 궁금하다. 《모기가 궁금해?》는 무척 단출하다. 이렇게 단출하게 모기 이야기를 써도 될까 싶으면서도 군더더기 하나 없는 글을 읽으면서 내내 고개를 끄덕인다. 자잘한 덧말 없이 더없이 깔끔하게 모기 한살이를 비롯해서 모기하고 지구라는 별하고 사람이 얽힌 이야기를 살뜰히 들려준다. 아주 멋지다. 이 책을 읽기 앞서까지 2017년 ‘올해책’으로 《한국 개미》를 뽑으려고 생각했는데, 이 생각을 바꾼다. 앞으로 11월하고 12월에 어떤 책을 만날는 지 아직 모르나, 이제까지 읽은 2017년 책 가운데 《모기가 궁금해?》를 나로서는 ‘2017년 으뜸 올해책’으로 삼는다.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9.30.


세미콜론 출판사는 만화책이 너무 비싸다. 100쪽을 살짝 넘는 《백성귀족》조차 8000원이라는 값을 붙이는 무시무시한 출판사이다. 《트윈 스피카》는 13500원이다. 처음 나올 적에 값 때문에 아예 안 쳐다보았으나, 한 권 두 권 나오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어느 날 셋째 권부터 장만해서 읽어 보고는 나머지도 장만하자는 생각이 들면서도 선뜻 장만하지 못하다가, 둘째 권을 장만해서 읽었다. 《백성귀족》이 110쪽 즈음에 8000원이라 한다면, 380쪽 즈음에 13500원은 그리 안 비싼 값일 수 있을까? 그렇지만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르슬란 전기》 같은 만화책은 190쪽 안팎에 5500원이니까. 세미콜론 출판사는 만화책을 고급스럽게 펴내고픈 뜻이 있구나 싶으나, 만화책으로 380쪽짜리를 ‘고급 종이’를 쓰면 어떻게 되는가 하고 헤아려 보고자 한다. 고급 종이 380쪽짜리 만화책은 들고서 읽기에 대단히 무거워 손목이 저리다. 만화책을 ‘만화 종이’에 찍는 까닭이 있기 마련이다. 값도 값이지만, 만화책을 볼 적에 종이를 넘기는 결이라든지, 들고 읽는 무게를 느끼는 손목, 그리고 햇빛이 환히 비추는 곳에서도 얼마든지 들고 다니면서 읽을 만한 가벼움이나 여러 가지를 헤아려 주면 좋겠다. 《트윈 스피카》 둘째 권에서는 주인공 가시내 마음속에 깃든 어릴 적 마음벗하고 얽힌 이야기가 애틋하게 흐른다. 별을 보는 마음, 별을 함께 보고 싶은 마음, 함께 본 별에 즐겁게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흐른다.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빨래터에서 읽은 책 2017.9.30.


한가위를 앞두고 고흥에서 조용히 노닐며 일하려고 한다. 어제 마을 빨래터를 치우려다가 어제 하루는 읍내를 다녀오며 저잣마실을 하느라 짬을 못 냈다. 오늘 두 아이랑 함께 빨래터 나들이를 간다. 오늘도 두 아이는 야무지고 씩씩하게 일손을 잘 거든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일손을 잘 거들어서 사랑스럽지 않다. 이 아이들이 즐겁게 노래하고 웃으며 함께 일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빨래터를 말끔하게 치운 뒤에 나는 담벼락에 앉아서 시집 《감(感)에 관한 사담들》을 읽는다. 두 아이는 빨래터에 새롭게 고이는 물에 몸을 담그면서 논다. 처음 시집을 펼 적에는 책이름을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거의 모든 시마다 한자를 덧달기에 뭔 글을 이렇게 쓰는가 하고 아리송하다. 눈을 눈이라 하지 않고 ‘눈(目)’처럼 자꾸 쓰니, 한국말 ‘눈’이 뭔가 모자라거나 덜떨어지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기면(嗜眠)에서는 꿈도 불순하다”는 뭔 소리일까? 한국말로 수수하게 “졸 때에는 꿈도”라 하면 시가 안 되나? “겹겹 포개놓은”이나 “남긴 유품” 같은 겹말도 자꾸자꾸 나온다. 가만히 보면 시집에 붙인 이름부터 ‘느낌’이 아닌 ‘감(感)’이다. 시집을 덮는다. 아이들은 더 놀라 하고 집으로 먼저 돌아가서 밥을 짓는다. 콩밥을 끓이고 국수를 삶는다. 가을날 햇볕이 매우 따갑고 눈부시다.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9.25.


사진책 여러 권을 미국 아마존에서 장만했다. 보름 즈음 걸려서 받은 듯하다. 먼 길을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사진책에서 살짝 쿰쿰한 냄새가 난다. 냄새를 빼려고 하루 동안 평상에 펼쳐서 햇볕을 듬뿍 쬐도록 했다. 바깥일을 보러 군내버스를 타기 앞서 읽고,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Edward Sheriff Curtis, Visions of the First Americans》(Chartwell Books, 2006)를 넘긴다. 애틋하며 아련한 이야기가 사진마다 흐른다. 얼마 앞서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이 다시 나왔다고 하는데, 예전 판에도 그러했지만, 새로운 판에도 ‘사진 찍은 이’ 이름이 어디론가 숨었다. 북미 텃사람이 입으로 남긴 이야기에다가, 이들 북미 텃사람을 온삶을 바쳐서 마주하여 남긴 사진이 있기에 이런 번역책이 나올 수 있을 텐데, ‘사진 찍은 이’ 이름은 어디로 사라져야 할까?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