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10.12.
가을이 깊어 가면서도 볕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바로 이 가을볕은 나락이 무럭무럭 익도록 해 줄 뿐 아니라, 알을 낳을 풀벌레나 나비한테 마지막 따스한 숨결이 되리라 느낀다. 어제그제는 저녁까지 제법 더웠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면서 살짝 서늘하다. 글월 두 통을 띄우려고 우체국 마실을 간다. 작은아이가 따라나선다. 군내버스에서 《초록비 내리는 여행》을 읽는다. 곁님이랑 두 딸이랑 ‘그림마실’을 즐기는 오치근 님이 네 사람 손길로 함께 빚은 책이다. ‘초록비’가 내리는 여행이라고 하는데, 네 사람은 차나무하고 찻잎을 따라서 찻물바람이 흐르는 마실을 다녔다고 한다. 그림도 글도 온통 푸른 빗물이요 바람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어버이랑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찻물을 즐기고 차바람을 마시는 아이들은 어떤 꿈으로 어떤 이야기를 앞으로 새롭게 지피려나. 내가 읍내에서 글월을 써서 부치는 동안 작은아이는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읍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서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작은아이는 눈이 말똥말똥. 나는 고단해서 꾸벅꾸벅. 이제껏 아이들이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든 군내버스인데, 오늘만큼은 작은아이 어깨에 기대어 쉬어 본다.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