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9.6.


올들어 읍내 우체국에 아이들을 이끌고 다녀오는 길에 사진기를 거의 안 챙긴다. 무겁거나 번거롭기 때문에 안 챙기지 않는다. 일곱 살하고 열 살을 넘어서려는 아이들하고 다니면서 한동안 사진 찍는 일이 크게 준다. 이제는 이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서 어버이 생각을 들려주는 일, 이 아이들이 궁금해 할 이야기를 먼저 살펴서 말머리를 여는 일, 가만히 바람소리를 듣는 일 들에 품을 쓴다. 군내버스에서 아이들이 잠들면 펼치려고 시집 한 권을 챙긴다. ㅈ출판사 대표님이 요즈음 마음에 든다고 하는 시인 가운데 이병률 님이 있어서 《찬란》을 읽어 보기로 한다. 시집 《찬란》은 내가 좋아할 만한 시나 이야기는 아니로구나 싶지만, ㅈ출판사 대표님이 이 시를 좋아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이웃이 얼마든지 좋아할 시와 노래와 책과 영화가 있다. 내가 좋아하더라도 이웃이 얼마든지 안 좋아하거나 눈길조차 안 둘 시와 노래와 책과 영화가 있다. 요즈음 다른 시인보다 어려운 말 쓰기를 덜 하는 듯싶지만, 그래도 제법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어려운 말이 보인다. 이런 허울을 좀 덜어내면 한결 눈부실 만하리라 생각해 본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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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캥거루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35
에릭 바튀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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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림책이 아직 이웃나라 그림책을 못 따르는 대목을 잘 느낄 수 있다. 다 다른 숨결이 참말 다르기에 저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서 새길을 연다는 줄거리를 투박하면서도 따스하고 넉넉하게 담아낸다고 할까. 대단한 줄거리를 다뤄야 하지 않는다. 고운 사랑으로 짓는 삶을 다루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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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밥하면서 읽은 책 2017.9.7.


아침에 일찍 책숲집에 가 본다. 며칠 비가 제법 왔지만 이동안 빗물이 많이 새지는 않았다. 빗물을 밀걸레로 조금 닦은 뒤에 책꽂이를 옮긴다. 칸칸이 쌓을 책꽂이는 쌓고, 상자에 넣어 빼둘 책은 뺀다. 뒷판이 헐렁한 책꽂이는 못질을 하고, 그림책하고 사진책이 좀 돋보일 수 있도록 책꽂이를 영차영차 들어서 나른다.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린다. 이러고서 알타리무를 손질해서 썬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은 저희도 칼을 쥐어 썰고 싶단다. 그러겠니? 나는 풀을 쑤면서 다른 양념 한 가지를 마련해 놓는다. 알타리무 썰기를 마무리하고, 굵은소금으로 재워 놓고는 느즈막하게 밥을 먹는다. 이러고서 《엄마, 오늘부터 일하러 갑니다!》를 읽는다. 열다섯 해 만에 바깥일을 하러 나갔다고 하는 일본 아주머니. 집에서는 집대로 집일을 하고, 밖에서는 밖대로 바깥일을 하는데, 두 아이하고 곁님은 집일을 거의 거들거나 맡을 줄을 모른단다. 세 사람이 스스로 나서는 적이 없단다. 얼마나 고단하면서 싫었을까. 어머니(또는 집일을 맡은 사람)가 집일을 안 가르치거나 안 시킨다고 하더라도 이렇게도 집일을 안 도울 수 있을까? 오늘날 한국도 그리 다르지는 않다. 다만 앞으로는 틀림없이 달라지리라고, 앞으로는 참말 바꿀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저녁에 책숲집에 한 번 더 가서 책꽂이를 또 나르고 책을 빼서 옮기는 일을 했더니 그야말로 등허리가 꽤 결린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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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는 책 2017.9.6.


비가 온다. 작은아이는 아직 뒷간에 똥 누러 갈 적에 “똥 누러 같이 가자.” 하고 부른다. 작은아이가 뒷간에서 똥 누는 소리를 들으면서 비님 오시는 소리도 듣는다. 그리고 시집 《물에서 온 편지》를 읽어 본다. 물이 어떤 글월을 띄웠을까. 바다에서 하늘에서 골짜기에서 땅밑에서 저마다 어떤 물에 글월을 띄웠을까. 우리 몸도 거의 모두 물로 이루는데, 우리 몸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흘러서 글월에 사부자기 내려앉을까. 가만히 흐르는 싯말이 조용하다. 작은아이를 씻기고, 큰아이는 스스로 씻고, 두 아이 밥상을 차리고, 이 아이들을 이끌고 책숲집을 다녀오고, 비를 맞으면서 좀 걷기도 한다. 마당 한켠에 마을고양이가 비를 함께 긋는다. 마당 한쪽에 있던 풀개구리가 폴짝폴짝 뛰어서 다가온다. 무화과를 파먹던 말벌이랑 모기랑 멧새 모두 이 빗줄기를 그으려고 어디론가 숨는다. 비가 개면 모조리 무화과를 먹으려고 나무 곁에 모일 테지.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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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9.5.


“넌 어디에서 태어났니?” 하고 물으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병원이요’나 ‘산부인과요’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요? 또는 ‘서울이요’나 ‘부산이요’ 같은 말을 할 테고요. 그런데 우리는 병원이나 서울에서만 태어나지 않아요. 우리가 어머니 몸을 거쳐서 이 땅에 나온 자리가 병원이나 서울일 수 있지만, 우리 숨결이나 넋을 이루는 바탕은 언제나 숲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목숨을 이으려고 먹는 밥도 모두 숲에서 비롯하고요. 그림책 《내가 태어난 숲》을 가만히 읽습니다. 바느질이 한 땀 두 땀 흐르면서 이야기가 한 꼭지 두 꼭지 어우러집니다. 붓끝을 넘어 바늘끝으로 이야기꽃이 피어요. 그림책은 투박하게 흐릅니다. 할머니가 찬찬히 놓은 바늘땀은 조용하면서 싱그러운 웃음입니다. 할머니한테 물려받은 웃음을 새롭게 피우려는 손길은 상냥한 노래입니다. 가을비가 옵니다. 잔잔하게 옵니다. 이 가을비를 맞으면서 마당에서 무화과를 두 소쿠리 땁니다. 말벌도 모기도 파리도 개미도 나비도 무화과 달콤한 열매맛을 보려고 모두 모입니다. 직박구리도 박새도 물까치도 무화과 달달한 열매맛을 보고 싶어 옆에서 저를 지켜봅니다. 그래 그래, 우리 같이 먹자.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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