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9.12.


고흥읍으로 나가는 길이다. 나는 오늘 순천 기차역으로 가서 수원역까지 기차를 타고 간 뒤에, 수원에 있는 마을책방 〈노르웨이의 숲〉에서 번개모임을 한다. 낮 두 시부터 너덧 시까지 모임을 한 뒤에 서울로 다시 기차를 달려 저녁 일곱 시 책모임으로 간다. 새벽바람으로 짐을 꾸려 길을 나서는데 고흥읍에 일곱 시 삼십칠 분에 군내버스를 내리고 보니, 곳곳에 할머니가 많이 보인다. 우리 마을 할머니 한 분도 새벽바람으로 병원에 간다며 길을 나서셨다. 우리 마을에서는 고흥읍 가는 첫 버스가 아침 일곱 시 오 분. 다른 마을에서는 첫 버스가 새벽 여섯 시나 여섯 시 반도 있는데, 이 첫 버스 다음으로 지나가는 버스가 으레 한두 시간 뒤이기 일쑤요, 때로는 군내버스가 하루에 두어 대만 다니는 마을도 있으니, 시골 할머니가 읍내 병원에 가려고 해도 무척 일찍 길을 나설 수밖에 없지 싶다. 병원이 문을 열 때까지 병원 문턱에 털썩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리신다. 나는 마실길을 나오며 책을 여러 권 챙기는데, 먼저 《한국의 악기》 둘째 권을 읽는다. 지난번에 첫째 권을 읽었으니 이제 둘째 권이다. 한국 악기를 다룬다는 대목에서 무척 돋보이는 책인데, 첫째 권도 둘째 권도 말씨가 매우 어렵다. 수많은 악기가 예부터 궁중에서뿐 아니라 여느 시골사람 살림살이로도 늘 곁에 있었다는데, 왜 수수한 사람들 악기를 다루는 글은 이토록 딱딱하면서 한문 말씨여야 할까. 그래도 이 책은 악기를 어떻게 짓거나 깎는지를 찬찬히 짚어 주어서 여러모로 좋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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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빨래터에서 읽은 책 2017.9.10.


아침에 책숲집에 가서 책꽂이를 옮긴다. 큰아이는 이동안 그림책이랑 만화책을 보며 조용하다. 작은아이는 골마루를 가로지르거나 풀숲을 헤치며 달리느라 바쁘다. 세 시간 즈음 땀을 흘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지어 차린다. 큰아이는 밥을 먹고서 낮잠을 잔다. 작은아이는 잠이 달아났다면서 낮잠을 안 자고 자꾸 묻는다. “아버지? 우리 언제 빨래터 가?” “누나 일어나면 가려고.” 큰아이는 일어날 낌새가 없다. 마당을 치우고서 둘이서 빨래터에 가기로 한다. 작은아이는 누나 없이 둘이 온 마을 빨래터에서 아주 훌륭한 청소돌이가 되어 준다. 아니 얘야, 네가 이렇게 청소 심부름을 훌륭히 하는구나? 누나가 곁에 있으면 늘 장난돌이인데, 누나가 없이 아버지하고 둘이 있을 적에는 얌전돌이에 차분돌이에 살림돌이가 되기까지 한다. 너 말이야, 누나 앞에서는 늘 장난스레 구는 모습이었구나. 일곱 살 시골돌이가 선보인 멋진 ‘수많은 돌이’ 모습을 누리며 빨래터를 치운다. 마을 할배 한 분이 우리 둘이 빨래터 치우는 모습을 보시고는 한 말씀 하신다. “자네가 빨래터 치워 주는 건 아무도 안 알아줘도, 여그 빨래터 여신님은 알아줄 게여. 그럼, 여기 여신님은 다 알지, 자네들 앞으로 복 많이 받을기라.” 마을 빨래터를 거룩하게 여긴다는 이야기는 더러 듣기는 했으나, 마을에서 이곳에 ‘여신’이 계신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그렇구나. 옛날부터 마을에서 이 빨래터를 그냥 빨래터로만 여기지 않으셨구나. 가만히 되새겨 보니 지난 일곱 해 동안 마을 어귀 빨래터를 참 부지런히 꾸준히 신나게 치우면서 지냈다. 시골 빨래터 여신님이 우리를 늘 지켜보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빨래터 담에 걸터앉아서 동시집 《딱 걸렸어》를 읽는다. 울산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는 분이 틈틈이 쓴 동시를 모았다고 한다. 울산도 틀림없이 커다란 도시이긴 하지만, 어쩐지 나는 울산은 도시라기보다 살짝 시골스러운 기운이 있는 고장은 아닌가 하고 여긴다.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이처럼 여길 수 있을 텐데, 이 동시집에 흐르는 이야기도 퍽 시골스럽다. 글쓴이하고 날마다 마주하는 보육원 아이들, 또는 유치원 아이들도 시골스러운 사랑을 곱게 받으리라 생각한다. 부디 도시 아이도 시골 아이도 숲바람을 마시는 꿈을 지을 수 있기를.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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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즈 간바라 메구미 시리즈 (너머) 1
온다 리쿠 지음, 박정임 옮김 / 너머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수수께끼를 차근차근 풀면서 조각을 하나씩 맞추어 이야기를 엮는 글이 소설인 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길이 없는 길 같거나 잃어버린 길 같은 곳에서 새롭게 길을 낼 뿐 아니라 새삼스레 나아갈 길을 찾는 이야기가 소설이 될 테고. 소설 ‘maze’는 ‘bush’에서 비롯하여 ‘door’로 마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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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자전거 타며 읽은 책 2017.9.8.


여러 손님을 맞이한다. 먼저 책으로 찾아온 손님이 있다. 1인출판을 하는 이웃님이 새로 낸 책을 보내 주셨다. 아, 고마워라. 그런데 소설이네! 나는 소설을 안 읽는데! 소설읽기에 부딪혀 보라는 뜻일 수 있다. 소설도 읽어 보라는 뜻이기도 할 테고. 다음 손님은 전화로 온다. 우리 책숲집을 살뜰히 아끼려는 마음을 전화 한 통으로 띄워 주신다. 그리고 셋째 손님은 자동차로 온다. 서울에서 통영과 순천을 거쳐 고흥으로 오셨다. 셋째 손님은 자동차로 오시기에 자전거를 달려 면소재지에 간다. 큰아이는 마루를 치우고 작은아이는 자전거에 함께 탄다. 먼길을 오신 손님이 이녁 집으로 돌아가신 뒤에 누리시기를 바라며 고흥 막걸리를 몇 병 장만한다. 해가 기울려고 하는 시골 들길을 달린다. 이 시골 들길에 새가 한 마리도 안 난다. 농약을 뿌리는 헬리콥터가 들판을 누비기 때문이다. 작은아이는 헬리콥터를 국경한다며 신난단다. 너는 그럴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자전거 발판을 구른다. 집으로 돌아와서 모깃불을 태울 즈음 셋째 손님이 대문을 똑똑 두들긴 뒤 들어오신다.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눈 뒤, 손님은 다시 자동차를 몰고 이녁 집으로 돌아가신다. 깊어 가는 밤에 가만히 생각에 잠기다가 살펴보니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책이 2017년 6월에 다시 나왔다고 한다. 꽤 오랫동안 판이 끊어졌는데, 마침 피우진 님이 보훈처장 자리에서 일하시고 난 뒤에 다시 나올 수 있었구나 싶다. 군대라는 곳, 군인이라는 사람, 여군이라는 자리, 나라를 헤아리는 넋, 그리고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잘 보여주는 책이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느낀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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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자전거 타며 읽은 책 2017.9.1.


8월하고 9월은 그저 달력 날짜로만 다를까? 그러나 달력을 안 보고 살더라도 바람결로 달이며 철이 달라지는 줄 느꼈다. 아이들을 이끌고 자전거를 달릴 적에도 바람맛이 다르다고 느꼈다. 오르막길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리기는 하지만, 이제 땡볕이 그다지 안 뜨겁다고 느끼는 철이로구나 싶다. 우리 집 아이들은 군내버스를 탈 적에는 창문을 열면서 바람을 맛보고, 자전거를 달리면서 온몸으로 바람을 쐬는데, 여느 때에는 집에서 언제나 바람을 마주하니까, 날이랑 철을 더 새롭게 맞아들이리라 느낀다. 자전거마실을 다녀오고서 마당에서 모깃불을 피우고 저녁을 짓고 씻고 한 뒤에 《조영권이 들려주는 참 쉬운 곤충 이야기》를 새삼스레 들추어 본다. 지난해에 나온 이 책을 가만히 되읽어 보니, 이 책에 깃든 이야기가 매우 훌륭하기는 하지만, 오늘날 어른이나 아이 모두 거의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이 책을 곁에 두고서 읽기는 어렵겠다고 느낀다. 참 그렇다. 도시에서 사는 어른이나 아이라면, 또 도시에서 아파트라는 집에서 사는 어른이나 아이라면, ‘곤충’이라고 하는 이웃을 살갗으로 만나기가 매우 어렵다. 아름다운 책을 아름답다고 느끼기 어려운 서울살림이요, 아름다운 벌레(곤충)를 아름다운 이웃으로 삼기가 만만하지 않은 도시살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짓는 모습을 보면서 따라하기 일쑤인데, 개미가 팔뚝을 타고 오르든, 거미가 어깨에 내려앉든, 노린재나 잠자리가 손등에 앉아서 날개를 쉬든 참말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 아니라, 재미있다고 여긴다. 그래, 이 마음을, 손길을, 몸짓을, 언제나 고이 품으렴.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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