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9.2.


군내버스를 타고 마실을 가려 하면 작은아이는 꼭 따라가고 싶다. 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호젓하게 놀겠다는 큰아이는 집에 있고, 작은아이하고 군내버스를 타는데, 오늘 드디어 군내버스에서 에어컨을 껐다. 여름이 저무는구나! 이제 창문바람을 쐴 수 있다. 창문바람을 쐬면서 《그 쇳물 쓰지 마라》를 읽는다. 댓글시인이라는 분이 신문글을 읽고서 이녁 느낌을 시로 적바림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딱딱하거나 따갑다고 할 만한 신문글을 읽고서도 시를 쓸 수 있네 싶어서 놀란다. 그런데 댓글시인이 시를 붙인 신문글은 우리 사회 한켠에서 가난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에서 비롯한다. 딱딱하거나 따가운 신문글이 아닌, 포근하면서 너그러이 감싸 주고픈 이웃들 이야기를 읽고서 시를 썼다고 한다. 쉰 쪽 즈음 읽을 무렵까지는 참 포근하구나 하고 느낀다. 쉰 쪽을 넘어가고부터는 모든 시가 엇비슷하다고 느낀다. 뒤쪽에 따로 시만 그러모은 꼭지에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네 싶기까지 하다. 댓글시인이 쓴 시가 안 아름답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늘 엇비슷한 신문글이나 사진을 보고서 시를 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녁 시도 엇비슷한 얼거리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구나 싶다. ‘로또’를 이야기하는 시는 만화영화 모아나에 나오는 테카(테피티)처럼 이글거리는 부아덩어리 같구나 싶기도 하다. 때로는 시나 노래가 부아나 짜증으로 불타오를 수 있을 테지만, 좀 소름이 돋았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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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빨래터에서 읽은 책 2017.8.29.


여름이 저물려 하지만 낮에는 볕이 뜨겁다. 아이들은 한동안 빨래터 물놀이를 즐길 수 있으리라 본다. 무엇보다 두 아이가 날마다 어찌나 쑥쑥 크는지 이제는 물이끼를 걷고 배롱꽃을 치울 적에 두 아이 일손이 매우 고마우면서 대견하다. 빨래터에서뿐일까. 아이들은 집에서도 일손을 퍽 잘 거든다. 비질이건 걸레질이건 야무진 손길을 베푼다. 셋이서 즐거이 물이끼를 걷어낸 뒤, 나는 몸을 쉬려고 담벼락에 걸터앉아서 《한복, 여행하다》를 펼친다. 한복을 입고 여행을 다니는 이야기가 흐른다. 글쓴이가 밝히기도 하는데, 가만히 보면 우리는 우리 겨레가 오래도록 즐기던 옷을 입고서 여행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일터에서도 잔치마당에서도 좀처럼 한복을 입지 않는다. 홀가분한 일옷차림으로도, 멋을 내는 잔치옷차림으로도 이래저래 한복은 안 어울린다고 여기지 싶다. 그런데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사람도 늘 서양옷만 입지 않나? 학교에서 교사도 늘 서양옷만 갖춘옷(정장)이라고 여기지 않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이들도 으레 서양옷만 두르지 않나? 여느 때에 안 입고, 뜻깊은 때에도 안 입으며, 일할 적에도 안 입다 보니, 한복이라는 옷을 새롭게 고치거나 가다듬어서 더 즐겁고 멋스러이 입는 길을 우리 스스로 끊은 셈이라고 느낀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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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8.30.


교정종이를 챙겨서 읍내로 가는 날. 집에서 글손질을 마치고 읍내로 가서 우체국 택배로 부치면 가장 좋으리라 생각하지만, 막상 집에서 밥짓고 빨래하고 이 일 저 일 건사하면서 마무리가 살짝 버겁다. 글을 쓴다는 분들이 조용하거나 호젓한 찻집에서 홀로 글을 붙잡곤 하는 삶을 알 만하다. 나는 여태 오직 글쓰기에만 하루를 써 본 적이 없다고 느낀다. 스무 살 무렵에는 신문을 돌리거나 신문값을 받으러 다니는 틈을 쪼개어 우체국 단말기로 글을 썼다. 스무 살부터 제금을 나서 살았기에 먹고사는 모든 일을 스스로 챙겨야 했고, 한 손에는 언제나 부엌칼이나 빨래비누를 쥐었다. 두 아이를 거느리는 동안에도 홀가분한 적은 없다. 그런데 이제껏 걸어온 길을 돌아보노라면 홀가분한 적이 없이 글을 썼기에 내 나름대로 즐거운 살림 이야기를 글마다 담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살림지기 노릇은 빠듯할 수 있지만, 살림지기 노릇을 하기에 스스로 다잡는 글쓰기가 되는구나 싶다. 읍내로 나오는 길에 가방에 《한국의 악기》 첫째 권을 챙겼다. 제법 묵직한 책이다. 국립국악원에서 지었다고 하는데, 말씨가 좀 어렵다. 우리 겨레 옛 노래(국악)를 다루는 글인데 한문 말씨라든지 번역 말씨가 짙다. 어쩌면 우리 겨레 옛 노래를 시골 들노래나 살림노래가 아닌 궁중노래를 바탕으로 살핀 탓일 수 있다. 부엌에서 살림하고 들에서 일하는 시골지기 마음이 되어 우리 겨레 옛 노래를 돌아본다면 부엌지기나 들지기 말씨로 옛 노래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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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8.31.


만화책 《방랑 소년》 첫째 권이 한국말로 나온 지 열 해가 넘는다. 다만 책이 워낙 들쑥날쑥으로 나오다 보니, 자칫 새로운 권을 놓칠 만한데, 재미있게도 이제껏 이 만화책을 한 번도 제때를 안 놓치고 장만했다. 2016년 3월에 열셋째 권이 나오고서 2017년 8월에 열넷째 권이 나왔으니 그야말로 놓치기 얼마나 쉬운 만화책인가! 무화과잼을 졸이느라 내내 곁에서 지켜보아야 하니, 마루에 누워서 그림책을 읽다가, 평상에 앉아 만화책을 읽는다. 잼 한 병 졸이기란 얼마나 대단한가. 곰국을 할 적에도 대단하고, 참말로 밥살림이란 무엇이든 대단하다. 아니 밥살림뿐 아니라 옷살림도 집살림도 대단하다. 책살림도 글살림도 대단할 테지.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지만 낮에는 볕이 따갑다. 더구나 가을로 접어드는 볕이 되다 보니 처마 밑으로 햇볕이 뜨뜻하게 스며든다. 아직 여름 끝물 가을 첫물이라서 이 볕을 덥다고 느끼지만, 곧 가을이 저물면서 겨울을 앞둘 즈음에는 이 볕을 포근하게 느낄 테지. 만화책 《방랑 소년》 열넷째 권은 가을볕 같은 이야기가 흐른다. 이쁘건 안 이쁘건 대수롭지 않은 삶이라는 대목을 톡톡 건드려 주는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힘이 되어 준다. 이쁜 가시내가 되어야 할 까닭이 없으며, 잘생긴 사내가 되어야 할 까닭도 없다는 대목을, 스스로 하고픈 일을 하면서 스스로 가려는 길을 즐거이 가면 될 뿐이라는 대목을 참으로 상냥한 가을볕처럼 넉넉히 들려준다. 열다섯째 권이 언제 한국말로 나오려나.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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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8.31.


엊저녁에 두 아이한테 잠자리에서 이튿날에 할 일을 이야기했다. 큰아이한테는 “벼리야, 한동안 빵 반죽을 안 하더라? 그렇게 안 하다 보면 잊고 말아. 아침에는 반죽을 해서 빵을 구워 보자.” 하고 얘기한다. 작은아이한테는 “보라야, 이제 이튿날에는 무화과를 잔뜩 딸 수 있어. 아버지가 날마다 살피는데, 이제 우리 무화과잼을 졸일 날이 되었어. 보라는 아침에 아버지하고 무화과를 따자.” 하고 얘기한다.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던가? 아니다. 밤말은 참말 아이들 마음에 쏙쏙 스며들었나 보다. 새로운 아침이 되니 큰아이는 반죽을 해서 부풀려 놓느라 부산하고, 작은아이는 무화과를 따자며 조른다. 사다리를 받쳐서 따기도 하고, 나무를 타거나 울타리를 밟고 올라서서 따기도 한다. 큰 냄비 가득 무화과를 땄다. 무화과를 따며 흐르는 하얀 물이 살갗이 닿으면 쓰라리면서 간지럽다. 아이들은 자꾸 손을 씻는다며 오락가락한다. 바야흐로 다 따서 손질까지 끝낸 뒤 냄비에 불을 넣는다. 설탕을 넣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졸이는데, 네 시간쯤 졸이는데도 단맛이 깊게 안 난다. 첫물 무화과인 탓일까. 그래도 삼삼하면서 단맛이 퍽 좋다. 무화과를 졸이는 동안 마루에 누워서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라는 그림책을 읽었다. 두 사람이 두 가지 다른 자리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아이한테 들려준다. 아이는 두 사람이 두 가지 다른 자리에서 두 가지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새롭게 배운다. 이리하여 아이가 모두한테 하는 말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아, 얼마나 사랑스러운 말이요 이야기인가. 얼마나 멋스러우며 아름다운 그림책인가. 두 아이는 저마다 다른 몸짓과 숨결로 어버이를 늘 가르쳐 준다. 참으로 고맙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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