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이 2

‘푸른나무’라는 출판사가 있다. 이곳에서 낸 책을 하나씩 찾아서 읽는다. 이 출판사 책을 읽으니 아주 놀랍다. 학교에서 안 가르치거나 못 가르치는, 그렇지만 우리가 꼭 배우며 생각할 이야기가 가득하다. 어느 분 글에서 얼핏 ‘푸름이’란 낱말을 읽는다. 푸름이? 푸름이가 뭐지? 아, 그래, 그렇구나. ‘청소년’은 한자말이었구나. ‘푸름이’가 바로 우리를 가리키는 이름이네. 와, 멋지다. ‘어린이’처럼 ‘푸름이’로구나. 그래, 출판사 이름도 ‘푸른나무’였네. 다 그런 뜻이었네. 아름다운 이름을 품고서 우리를 아름답게 보살피고 싶은 어른이 어디엔가 있었구나. 1991.9.2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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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1

우리 어머니하고 1층 이웃집 아주머니가 신문을 돌리는 곁일을 하시니 날마다 몇 가지 신문을 읽는데, 나라에서 ‘청소년헌장’을 내놓았다는 글이 아주 짤막하게 나온다. 아주 짧은 글이라 청소년헌장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는 알 수 없다. 신문글을 오려서 이튿날 학교에 가서 교사들한테 묻는다. 어떤 교사도 ‘청소년헌장’이란 말을 들은 적이 없단다. 어제 오린 신문글을 보여주니 들은 적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참 어이없는 교사들이로구나 싶으나 꾹 참고서 한 말씀 여쭙는다. “선생님, 신문에 나온 글로는 청소년헌장 줄거리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 학교가 청소년을 맨날 두들겨패고 욕하기만 하는데, 청소년한테 지켜야 할 사항이나 청소년이 누릴 권리를 담았을 청소년헌장 줄거리를 알아내어서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적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우리 중학교가 중학교다운 모습 아닐까요?” 울그락불그락하는 교사들 얼굴을 곧바로 느낀다. 청소년헌장을 들먹이는 아이를 차마 때리거나 을러댈 수는 없다 싶다고 여겼는지 교실로 돌아가라고 한다. 이레 뒤 드디어 청소년헌장을 전지에 펜글씨로 옮겨적어서 골마루 귀퉁이에 세운다. 골마루 귀퉁이에 선 청소년헌장을 다시 따진다. “선생님, 거기에 두면 누가 읽나요? 건물로 들어오는 한가운데 문가에 세워야지요.” 교사는 교장하고 회의를 해보겠다고 하더니 건물 한가운데 문가로 옮겼다. 그러나 이레가 더 지나니 이 청소년헌장을 치우네. 그러고서 학교 곳곳에서 때리고 갖은 거친 말이 새삼스레 똑같이 춤춘다. 1990.5.2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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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동무

둘레에서 다들 어려운 말로, 아니 대학생이거나 대학원생이고, 또 의사나 변호사라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 또 글깨나 쓴다는 이들이 ‘민주·평화·평등·통일’ 같은 말을 읊는다. 틀리거나 나쁘거나 잘못된 말은 없다고 느낀다만 하나같이 겉돌거나 허울같기만 하다. 똑똑하다는 분들하고, 또 말 잘하고 높은자리에 있다는 분들하고, 같은 모임자리에 있다가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디긴 전철길에서 책을 펴서 읽다가 덮는다. 눈을 감고서 생각한다. 그분들이 읊는 말이 왜 이토록 겉돌거나 허울같은가 했더니, 그분들은 입으로는 외칠는지 몰라도 ‘어깨동무’를 하지 않더라. 내가 그분들 어깨에 손을 올릴 수 있을까? 그분들은 내 어깨에 아무렇지 않게 손을 올린다만, 나처럼 어리거나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그분들 어깨에 손을 올리면 어떻게 여길까? 버릇없거나 건방지다고 대뜸 말하더라. 그러면서 민주니 평화니 평등이니 통일이니 하고 읊으신다. 참 껄끄럽다. 남녀평등이든 여남평등이든,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 끝나는 일이다. 어느 한쪽이 높거나 낮아서는 못하는 어깨동무이다. 어려운 말을 할 까닭 없이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같이 걸을 줄 알면 다 이룬다. ‘연대’도 ‘연합’도 아니다. ‘어깨동무’를 하면 된다. 1994.7.1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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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나무꾼

어린이문학을 씩씩하게 자주 한국말로 옮기는 ‘햇살과나무꾼’ 두레가 있다. 이 두레에서 옮긴 책이 무척 많다. 아름다운 이웃나라 어린이문학을 널리 옮기니 대단히 고맙다고 여긴다. 다만 고마우면서도 서운하다. 햇살과나무꾼이 옮긴 말씨는 어느 작가 어느 책이나 똑같으니까. 일본문학이든 서양문학이든 햇살과나무꾼은 똑같은 말씨로 옮긴다. 이 글쓴이나 저 글쓴이나 모두 같은 말씨로 옮긴다. 게다가 번역 말씨나 어린이 눈높이에 안 맞는 한자말을 너무 자주 섞는다. 로알드 달은 로알드 달이라는 맛이 있고, 하이타니 겐지로는 하이타니 겐지로 맛이 있는데, 햇살과나무꾼 옮김말씨로는 어떤 맛도 못 느낀다. 우리 아이들이 로알드 달을 읽고 싶어 하기에 책 하나를 따로 마련한다. 하나는 깨끗이 건사하는 책, 다른 하나는 옮김말을 몽땅 ‘한국말로 새로 옮겨서 적는’ 책. 2019.3.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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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다 5

어버이는 아는 사람이 아닌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이를 맞이해서 돌보는 살림을 짓고, 서로 배우면서 가르치는구나 싶다. 아이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버이를 찾아 이 땅에 왔으며, 어버이하고 누리는 신나는 놀이랑 사랑을 듬뿍 받고 나누는 길을 언제나 새롭게 열면서 웃고 노래하면서 훨훨 날아오를 수 있구나 싶다. 2019.3.13.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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